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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을 가꾸면서 빠져드는 수순은 대략 모두 비슷하다. 나도 그랬다. 처음에는 그냥 집에서 먹을 깻잎이나 좀 키워보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보니, 모종을 사는 김에 토마토도 사고, 고추도 사고... 그러면서 가짓수가 한두 개씩 늘어났다. 

그래, 미나리는 키우기 쉽다더라. 부추를 키우면 색이 예뻐서 사용이 편해. 바질 같은 허브류는 늘 집에 있으면 요긴하지... 이런 종류의 핑계를 대며 화분을 점점 더 모으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텃밭이 필요하게 되었다.

먹는 것만 키울 뿐, 처음에 꽃은 관심이 없었는데 (예전에 화분을 하도 죽여서 아예 시도하고 싶지도 않았다) 슬슬 꽃에도 관심이 가더니 다년생이냐 일년생이냐 따지며, 발아도 시키고 싶고, 삽목도 하고 싶고 번식욕이 생겼다. 

실패를 하더라도, 또 시도하는 일 
 
먹고 남은 금귤 씨앗을 심었더니 싹이 나왔다
 먹고 남은 금귤 씨앗을 심었더니 싹이 나왔다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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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 욕심은 당연히 발생하는 일이다. 무엇을 먹어도 거기서 나오는 씨앗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으니, 먹고 난 토마토도 심고, 금귤 씨도 심고, 발아된 밤도 심고... 이런저런 실패를 거듭해도 또 시도를 하고 또 시도를 한다.

그러다 보니, 내가 내 밭에서 키운 것들의 씨앗은 당연히 거둬들여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사실 씨앗을 거두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니다. 꽃이 피었을 때부터 잘 관찰해서 적당한 시기에 거둬들여야 하는데, 너무 서두르면 씨가 다 여물지 않아서 발아가 안 되는 녀석들이 되어버리고, 그러다가 너무 기다리면 씨가 다 익어서 알아서 툭 터져 이미 사방으로 다 날아간 이후가 되기도 한다. 
 
단단한 껍데기 안에 들어있는 열무 씨앗들
 단단한 껍데기 안에 들어있는 열무 씨앗들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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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무를 캐서 먹는 것보다 기다렸다가 씨를 받고 싶은 마음에 지저분하게 널브러질 때까지 남겨두고는 혼자 희희낙락하는 일은 아주 흔한 일이다. (열무 꽃은 씨앗이 될 때까지 정말 오래 걸린다) 그래도 각종 씨앗들을 모아서 정리하면 아주 기분이 좋다. 

꽃이 예쁘면 오래 피게 둘 명분이 더욱 생긴다. 곤드레는 고려엉겅퀴라는 이름이 무색하지 않게 아주 예쁜 엉겅퀴 꽃을 피운다. 오죽하면 처음부터 텃밭에 심지 않고 꽃밭에 심었으랴.
 
곤드레 꽃
 곤드레 꽃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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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꽃이 시들면서 이렇게 씨가 되어서 매달리게 되는데, 예쁜 꽃 부분이 날개가 되어서 날아갈 준비가 완료되는 것이다. 그들의 목표는 우리 집 마당이 아니다. 솜털처럼 가벼운 날개를 달고 아주 멀리 가고 싶은 것이다. 지구를 점령하기 위해서 말이다.
 
시들어서 색이 변한 곤드레 꽃
 시들어서 색이 변한 곤드레 꽃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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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을 팔다 보면 아차 하는 사이에 꽃씨는 간 곳이 없다. 작전명을 이수하러 각자의 길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절한 시간에 확 잡아서 데리고 들어와야 한다. 

나는 마른 꽃을 조심스레 해체했다. 날개 밑에 달려있는 씨앗들은 흡사 낙하산을 탄 군인들 같았다. 넓은 땅을 점령하기 위해 뛰어내리는 낙하산의 군인들. 사람들도 전쟁을 하며 타국의 땅을 노리지만, 식물들도 이렇게 낙하산을 타고 내려와 자신들의 영역을 넓히고자 하니, 모두들 이렇게 땅을 노리는 것이 자연의 섭리일까?
 
곤드레 꽃과 거기서 나온 씨앗들
 곤드레 꽃과 거기서 나온 씨앗들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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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들을 낙하산에서 분리해서 하나씩 체포하는 일은 아주 더뎠다. 낙하산에 달린 채로 휘리릭 쓸어서 봉지에 넣어도 되겠지만 난 그들을 생포해서 사랑에 빠지고 싶었나 보다. 그들을 독방에 넣는 대신 쓰다듬어서 모두 함께 모았다. 

지구를 점령하는 가장 쉬운 법
 
모아 놓은 곤드레 씨앗들
 모아 놓은 곤드레 씨앗들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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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비록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침공하지는 못하였지만, 이렇게 내 손에 들어왔으니, 계획했던 곳과는 다른 곳으로 가게 될 것이다. 내 친구들의 집으로... 씨앗을 원하는 지인들의 품으로 들어가서, 내가 가진 사랑을 전파하는 의무를 띄게 될 것이다. 

지구를 점령하는 가장 쉬운 법은, 그냥 침공하여 날아가는 것이라 생각했겠지만, 사실은, 더 좋은 방법이 있다. 바로, 사랑을 하는 것이다. 미치 앨봄(Mitch Albom)의 유명한 책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Tuesdays With Morrie)"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구절은 "사랑이 이긴다, 언제나 이긴다(Love wins, love, always wins)"이다. 이 승리는 이겨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져서 이기는 것이고, 가져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내주어서 이기는 것이리라. 
 
씨앗을 모아서 말리는 모습
 씨앗을 모아서 말리는 모습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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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렇게 모은 씨앗들은 물론 우리 집 화단과 텃밭에도 들어가지만, 씨앗을 원하는 다른 많은 사람들의 품속으로도 날아갈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들의 지구 점령 작전은 성공을 거둘 수 있는 것이고, 나는 나대로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것이니 이보다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슬슬 봄이 오고 있다. 날씨는 아직 차갑지만 우리들의 마음속에는 작은 씨앗들이 벌써 꿈틀거리고 있다. 그리고 내가 그들의 작전명을 방해하고 있다고 나무라지 마라. 나는 다른 방법으로 그들을 돕고 있을 뿐...

덧붙이는 글 | 기자의 브런치에도 같은 글이 실립니다 (https://brunch.co.kr/@lachouette/)


태그:#씨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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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 거주하며, 많이 사랑하고, 때론 많이 무모한 황혼 청춘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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