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1.30 11:44최종 업데이트 22.03.29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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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수정: 3월 29일 낮 12:32]

왕조나 시대가 교체될 때마다 자주 발생하는 징후가 있다. 신흥 종교가 교세를 급격히 늘리거나 대규모 정치운동(이른바 '난')에 나서는 현상이 그것이다.


유럽 국가들의 침략으로 동아시아가 미증유의 위기를 겪던 19세기에도 그랬다. 조선에서는 동학이 혁명 전쟁을 일으켜 정부군을 위협할 정도까지 갔고, 청나라에서는 홍수전의 배상제교가 태평천국을 세워 1851년부터 1864년까지 양자강(장강) 일대에서 국가 역할을 했다. 일본에서는 동학이나 배상제교만큼은 아니지만 나카야마 미키의 천리교가 정부의 탄압에도 교세를 확장해 대표적 신종교로 자리를 잡았다.

일본제국주의가 물러가고 미군이 한반도에 들어온 1945년 이후로는 기독교 교세가 급격히 커졌다. 이미 19세기부터 기반을 잡아온 한국 기독교는 1945년 이후로 서양문화가 급속히 유입되는 속에서, 또 냉전질서와 한국전쟁으로 반공이념이 확산되는 속에서 한층 더 빨리 교세를 늘려갔다.

과도기 때 새로운 종교 현상이 자주 출현하는 일은 과거에는 훨씬 많이 일어났다. 몽골(중국명 '원')이 초원으로 쫓겨나고 명나라가 중국 대륙을 차지한 14세기에도 비주류 종교들의 약진이 대단했다. 1355년에는 백련교도와 미륵교도들이 주축이 된 홍건적이 몽골에 맞서 일어섰고, 1363년에는 백련파 주원장이 미륵파 진우량을 꺾고 명 건국의 기틀을 세운 뒤 1368년에 몽골을 초원으로 올려 보냈다.

종교계에서 급격한 변동이 일어나는 현상은 같은 시기 고려에서도 나타났다. 정치권과 연계된 불교 세력이 신속히 쇠퇴하면서 성리학 교양을 쌓은 유학자들이 조정을 대거 장악했다. 공민왕 때 절정에 달한 이 현상은 한국사 교과서에서 신진사대부들의 약진으로 서술된다.

동시대 중국 대륙의 비주류 종교들과 달리 한국 유교의 신봉자들은 과거 급제나 관직 진출의 기회가 많았기에 혁명적 방식이 아닌 합법적 방식으로 정치권에 진출했다. 신진사대부들의 활동 양상이 백련교나 미륵교도들과 달랐던 것은 그 때문이다.

태평도라는 종교의 지도하에 후한(후기 한나라)에 맞서 일어난 황건적의 난은 동아시아 역사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 정도까지는 아닐지라도, 왕조가 바뀌거나 시대가 교체될 때마다 어느 정도씩은 종교계 지각변동이 일어나곤 했다.

심상치 않은 종교계

지금의 대한민국에서는 비주류나 신흥 종교가 사회질서를 위협하거나 교란할 정도의 교세를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다. 그래서 종교계 동향만 놓고 보면, 왕조 말기나 시대 말기에 나타났던 현상을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명확히 찾아내기 힘들다.

하지만, 그 직전 혹은 인접 단계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현상들은 자주 나타나고 있다. 비주류나 신흥 종교들이 주류 진영의 기독교·불교·천주교에 밀리지 않는 혹은 위협할 만한 힘을 갖고 있다는 점이 비일비재하게 드러나고 있다.

최근 10년 이내에 대한민국 전체를 핵폭탄급 충격으로 몰고 간 사건들 중에는 뜻밖에도 비주류 혹은 신흥 종교와 연관된 사례들이 많았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때는 구원파로 알려진 기독교복음침례회라는 소수 종파가 주목을 끌었다.
 

25일 오후 인천시 남구 인천지방검찰청사 앞에서 기독교복음침례회(일명 구원파) 신도 500여 명이 검찰 규탄 집회를 열고 있다. 이날 오전 경기도 안성에서 한 구원파 신도가 검찰 수사팀에 긴급체포된 데 따른 항의 차원의 집회였다. 2014.5.25 ⓒ 연합뉴스

 
유병언의 구원파는 '우리가 남이가!' '김기춘 실장, 갈 데까지 가보자!!'는 인상적인 플래카드로 정치권에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한 일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구원파가 정권 핵심부의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을 향해 "우리가 남이가!"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으로 해석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회적으로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이 종파가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상당한 네트워크를 구축해놓았다는 느낌을 갖게 할 만한 일이었다(나중에 구원파는 1991년 정권의 비리가 오대양 집단자살사건으로 덮인 것과 2014년 본 교단 논란으로 세월호 참사의 본질이 흐려진 것의 유사성을 지적하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주장했다).

촛불혁명으로 이어진 2016년 박근혜 국정농단 사태 때는, 무속에다가 기독교·불교·천도교를 혼합해 박정희 정권과 유착했던 최태민의 후예들이 불쑥 튀어나왔다. 최태민 후계자인 최순실(최서원)이 보유한 금력과 네트워크가 세상의 주목을 끌었다. 기성 종교들에 밀리지 않는 금력과 네트워크가 최태민 후예들의 수중에 있었음이 드러났다.

갑작스레 발생한 팬데믹 사태로 온 세계의 이목이 중국 우한에 집중되고 한국은 비교적 안전하다는 인식이 존재할 때인 2020년 상반기에는, 신천지 예수교 증거장막성전이라는 신흥 종교가 느닷없이 주목을 받았다. 1984년에 이만희 교주가 창시한 신천지교는 기독교·천주교의 일반 신도뿐 아니라 성직자들을 상대로도 대단한 포교력을 발휘했고 1995년부터 대한예수교장로회 교파들에 의해 이단으로 규정됐다.

코로나19 사태로 국민적 주목을 받은 이 종교는 20·30대 청년층의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었을 뿐 아니라 대단한 사회적 네트워크를 갖고 있었다. 시온기독교선교센터·무료성경신학교·신천지신문·신천지방송 등을 통해 교세를 확장해온 사실도 알려졌다.
  

신천지 집회 방식의 문제점을 보도한 문화방송 PD 수첩 ⓒ MBC

 
한국 사회를 강타한 최근의 주요 사건들 배후에 뜻밖에도 비주류 혹은 신흥 종교들이 있었고 이들이 기성 종교에 밀리지 않는 영향력을 갖고 있었음이 드러났다는 것은, 기독교·불교·천주교가 보유했던 영향력의 상당 부분이 이 종교들로 전이됐음을 보여줄 만했다.

비슷한 일이 지금 우리 목전에서 또다시 일어나고 있다. 검사들로 둘러싸였을 것으로 생각됐던 윤석열이, 검찰총장을 그만두고 정치권으로 가면 극우세력에 둘러싸일 것으로 생각됐던 윤석열이 뜻밖에도 '도사'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었다.

기성 종교의 힘이 막강하면, 유력 대권주자 주변에 도사들이 많이 포진하기가 쉽지 않다. 기성 종교의 정치적 영향력이 그만큼 떨어졌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2014년 이후의 굵직한 사례들만 놓고 봐도, 한국에서 종교적 지각변동이 진행되고 있다고 해석해도 충분할 정도다.

기성 종교의 쇠퇴 

앞서 언급했듯이 지금의 현상은 과거의 왕조 말기적 현상은 분명히 아니다. 한두 개의 신흥종교가 사회 전체를 요동케 할 정도의 힘을 보유했다는 정황이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 직전 혹은 인접 단계에 진입해 있다고는 말할 수 있다. 기성 종교들이 현저히 약해져 비주류나 신흥 종교들의 활동 공간이 커진 것만큼은 분명하다.  

안 그래도 약화되는 한국 종교의 기반이 코로나 19 이후로 한층 더 취약해졌다는 사실은 작년 5월 20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도 드러난다.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 19세 이상 1500명을 대상으로 '종교에 대한 인식'이란 주제 하에 진행된 이 조사에서 "우리 사회에서 종교의 영향력이 증가하고 있다고 보느냐 감소하고 있다고 보느냐?"란 질문에 54%가 '과거와 비슷하다'(A)고 답했고, 28%가 '감소하고 있다'(B)고 답했고, 18%는 '증가하고 있다'(C)고 답했다. 

이 조사 결과의 의미에 관해 한국갤럽은 "1984년 이래 처음으로 종교의 사회적 영향력 증감 의견이 뒤바뀌었다"라고 평가했다. A나 B로 답한 응답자보다 C로 답한 응답자가 적어진 것이 1984년 이래 처음이라는 것이다. 한국갤럽은 이렇게 설명했다. 

"영향력이 '증가하고 있다'는 응답은 1980년대 약 70%에서 1997년 59%, 2004년 54%, 2014년 47%로 줄었고, 이후 7년 만에 30%포인트 가까이 급락했다. 반면, '감소하고 있다'는 응답은 1980년대 약 10% → 2014년 19% → 2021년 28%, 같은 기간 '과거와 비슷하다'는 10% 미만→34%→54%로 늘었다."

'증가하고 있다'는 한때 70%에서 지속적으로 감소하다가 지금은 18%로까지 떨어진 반면, '비슷하다'와 '감소하고 있다'는 지속적으로 증가해 지금은 각각 54% 및 28%가 되었으니 종교의 영향력이 감소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갤럽은 "한국인이 느끼는 종교의 영향력은 2014년까지 확장세, 2021년 지금은 답보 혹은 축소 쪽으로 기울었다고 볼 수 있다"며 "이러한 인식 변화는 종교인과 비종교인 모두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났다"라고 분석했다. 종교인들 자신도 영향력 약화를 체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성 종교들의 권위가 약해지고 비주류 혹은 신흥 종교들이 뜻밖의 파워를 갖고 있음이 드러나는 지금의 현실은 대한민국을 지탱해온 신념이나 관념 체계가 동요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이 사회를 정비하는 노력이 경주되지 않으면 안 될 필요성을 최근 일련의 현상들이 시사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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