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1.13 05:59최종 업데이트 22.01.13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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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지난 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성범죄 처벌 강화, 무고죄 처벌 강화'라는 짧은 글을 올렸다. ⓒ 윤석열 페이스북

 
성범죄 처벌 강화
무고죄 처벌 강화
 
지난 7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열네 글자의 짧은 SNS 글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포지션과 어떤 사람을 유권자로 상정하고 있는지 드러내는 것에 성공했다.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반응은 뜨거웠다. 수많은 사람들이 해당 게시글에는 '따봉' 이모티콘과 박수를 치는 사진, 윤석열 후보를 칭찬하는 댓글을 달았다.

"구태정치와 차별화되는 느낌입니다."


누군가는 윤석열 후보의 글을 이렇게 평했다. 그런데 나는 그것이 구태정치와의 차별화를 보여주는 게시물이 아니라, 정치의 실종이 낳은 '비극적 산물' 같이 느껴졌다.

정치가 실종되어버린 세상에서 진행되는 대선은 성범죄와 무고죄 처벌을 동시에 강화하자는 기묘한 주장을 낳았다. 성범죄 피해자들의 말을 막기 위해 무고죄가 얼마나 빈번하게 사용되는지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이라면 할 수 없는 주장이 대선 후보의 입에서 나온 것이다. 열네 글자가 쓰여질 때까지 단 한 줄의 설득의 노력도, 단 한 번의 현황 파악의 노력도 없었다고 볼 수 있다. 

2017년과 2018년 대검찰청 사건 처리 분석 결과에 따르면, 7만 1740명(중복 가능성이 있는 8937인을 제외한 데이터)이 성범죄 처분을 받았다. 같은 기간, 성범죄 무고로 기소된 범죄자는 556명에 불과했다. 단순 비교하자면 0.78% 정도 되는 수치다. 무고죄로 기소된 범죄자 중 무죄가 아닌 유죄를 받은 범죄자는 341명이었다. 성범죄 가해자에 의해 무고로 고소 당한 이들에 대한 불기소율은 84.1%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통계로서 성범죄 무고 고소가 지나치게 남발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어느 순간 무고죄 고소는 가해자의 방어 수단으로 활용되기 시작했고, 가해자들은 성폭력 고소를 당한 이후 무고죄로 역고소를 하는 것을 하나의 절차처럼 사용하기 시작했다. 성폭력 피해자들을 꽃뱀으로 비난함으로서 책임을 벗고 성범죄의 심각성을 은폐해왔던 시간들은 '무고죄'라는 제도를 이용한 공격으로 변모했다.

이 모든 사실을 이해한다면 성범죄 강력 처벌을 말하며 무고죄 처벌을 이야기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문구 ⓒ 윤석열 페이스북

 
여성가족부 폐지

성범죄 처벌과 무고죄 강화라는 짧은 글이 인기를 얻어서인지 윤석열 후보는 한 줄짜리 정치를 이어나갔다. 그는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글을 올린 다음날 또 다른 짧은 글을 통해 '여성가족부 폐지' 주장에 대한 부연설명을 했다.

"아동, 가족, 인구감소 문제를 종합적으로 다룰 부처의 신설을 추진하겠습니다."

그런데 이 짧을 글에서 윤 후보가 언급한 아동과 가족에 대한 정책은 이미 여성가족부에서 진행하고 있다. 여성가족부는 아동과 가족 정책으로 절반 이상의 예산을 사용하고 있다. 이미 여성가족부가 하고 있는 사업들을 하기 위해 새로운 부처를 만들어야 한다는 논리는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오히려 문제를 제기하고 싶었다면 여성가족부가 터무니없을 만큼 작은 예산을 배정받는 것을 지적했어야 했다. 여성가족부는 국가 전체 예산의 0.2% 가량만 배정받을 뿐인데도 한부모와 저소득층 아동 돌봄, 경력단절 여성 지원, 성폭력 사건 피해자 지원 등 수많은 사업을 집행해야 한다.

최근 코로나 여파로 여성 우울증이 급증하고 가족의 형태 또한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다양해지고 있다. 이 때문에 여성가족부의 과제는 이전보다 더 늘어나고 있다. 디지털을 중심으로 한 여성폭력의 문제 증가도 여성가족부 과제에서 빼놓을 수 없다. 다양한 문제들이 산적해 있음에도, 그간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했던 수많은 정치인들은 명확하고 제대로 된 대안을 제시하지 않았다. 여성가족부 폐지 주장으로 손쉽게 표를 얻을 수 있다는 계산은 여성가족부 사업을 통해 지원을 받고 있는 사회적 소수자의 권리를 고려하지 않은, 무책임한 행동에 지나지 않는다. 

윤석열 후보가 진정한 정치인으로 거듭났다면, 혹은 늦게나마 시작한 '정치인'의 길을 제대로 걸어가고자 했다면, 여성가족부가 '젠더 갈등'을 부추긴다는 논리가 어떻게 가능한지 설득력 있는 근거를 토대로 주장했어야 한다.

부처 신설과 인구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여성에 대한 정책 집행 담당 부서를 삭제해 버리자는 거대한 주장은 고작 일곱 글자의 SNS 게시글로 표현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여성가족부 폐지도, 무고죄 처벌 강화도 누군가의 인권이, 그리고 삶이 달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오직, 표를 위해
 

'정권교체' 외치는 윤석열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12일 오후 고양시 킨텍스 전시장에서 열린 경기도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정권교체를 외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대선 후보마저 이제 자신의 공약을 공을 들여 설명하지 않는다. 열네 글자 또는 일곱 글자짜리 정치는 윤 후보가 자신의 포지션과 정 반대에 놓인 사람들의 의견을 듣거나 설득하지 않아도 된다는 판단을 내렸기에 할 수 있는 것들이라고 본다. 

무고죄 처벌 강화와 여성가족부 폐지. 이미 너무나 많이 반박되어 더 이상 할 말이 남아 있지도 않은 주장을 또 다시 꺼낸 것은 순전히 효과를 기대한 선택이지, 정의나 대의를 위한 선택은 아니었을 것이다. 떨어지는 지지율을 조금이라도 반등시켜 보겠다는 얇팍한 계산이 대안도 미래도 없는 '무조건 폐지'라는 결론을 선택하게 만든 듯하다. 윤석열 후보는 그 주장으로 조금의 표는 얻을 수 있을지언정, 세상을 바꾸는 정치는 포기해야 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여성도, 장애인도, 성소수자도, 사회적 소수자도 유권자이자 시민이란 사실이다. 그들을 포기하고 가는 것이 표를 모으는 과정에서 더욱 유리하다는 사실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후보에게 다양성의 확대와 자유의 증진, 평등한 사회를 바랄 수는 없을 것이다.

철학과 표를 맞바꾼 이는 언제든 표를 위해 누군가를 버릴 준비가 되어 있다는 걸 온몸으로 보여준 것이나 다름없다. 표를 위해 끊임없이 누군가를 배제해도 된다는 믿음은 결과적으로 모두를 '벼랑 끝에 내몰린 사람'으로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 글을 보는 이들은 벼랑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나보다 더 취약하고 어려운 사람이 먼저 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들의 말에 속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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