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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달팽이유니온이 함께하고 있는 ‘용산정비창 개발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출범 기자회견 후 용산정비창 펜스에 기록한 주거권 보장 관련 그라피티
 민달팽이유니온이 함께하고 있는 ‘용산정비창 개발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출범 기자회견 후 용산정비창 펜스에 기록한 주거권 보장 관련 그라피티
ⓒ 민달팽이유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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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달팽이유니온은 주거권 보장과 주거 불평등 완화를 위해 활동하며 세입자 네트워크를 지향하는 청년 당사자 연대 조직이다. 청년 주거 빈곤율 증가 현상, 타워팰리스보다 비싼 고시원,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원룸 관리비 등의 이슈를 발굴해왔다. 청년 당사자들이 교육과 상담, 연구를 통해 직접 발굴하고 문제 제기했던 것들이며, 기존에 주거 정책 대상으로 여겨지지 않았던 청년을 호명하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4대 보험으로 증빙 가능한 노동자를 중심으로 초기 행복주택 입주자격 기준이 설계되었던 것을 확장해 제도 개선을 이루기도 했고, 도시의 저임금 노동자들이 다수 선택하게 되는 단독/다가구 주택에 적합한 원룸 관리비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청년 맞춤형 원룸 상식 사전·집 구하기 체크리스트·집 구하기 안내서 등을 제작하는 등 한국 사회에서 세입자로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의 주거 불안을 풀어가기 위한 시도를 다층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한편,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 설립을 추진하고 지원하여 청년 세입자가 보다 주체적으로 주택 점유 및 공동체 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대안적인 비영리 주거모델을 실험했다. 주거비를 부담할 수 있고, 주택 관리와 운영에서 주체적인 권한을 부여받을 수 있고, 집의 안과 밖이 안전한 평등문화를 실천할 수 있고, 집으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삶을 찾아가며 안정적으로 정주할 수 있는 안식처로의 집들을 직접 만들기 위해 다양한 유형의 사회주택을 공급하고 주택관리임대사업 등을 펼치고 있다.

민달팽이유니온은 주거교육과 주거상담 사업을 일상적으로 진행한다. 현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필요할 때는 현안 대응 또는 제도 개선 활동을 실천한다.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의 주택 공급과 운영 사업을 협업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주거권 침해와 주거 불평등 현장들을 목격한다. 그 모든 현장에 대해 청년 세입자가 겪는 주거 불안을 일시적인 것으로 치부한다. 청년이면서 세입자로 사는 사람은 떠도는 사람, 외부인, 주민이 아닌 자, 주거권이 없는 자로 여겨진다.

청년 주택은 그 편견과 혐오어린 시선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청년이 거주하는 임대주택은 손쉽게 혐오와 적대의 대상이 된다. 경기도 모처, 청년 주택을 짓기로 했던 한 동네에서는 직장 소재지가 불분명한 청년이 입주하는 주택이며 유령회사나 유흥업소에 다니는 청년도 입주할 수 있다고 매도하는 전단지를 비정기적으로 배포됐다. 우리 동네를 난민촌으로 만들 셈이냐는 현수막을 달아놓은 채 다양한 사회구성원을 한데 묶어 혐오하고 차별하는 현장이 벌어지기도 했다. 2021년에도 벌어지는 일이다.

과거 민달팽이유니온이 어떤 지역 주민모임에 가서 대학생은 주민이 아니지 않냐는 말을 들었다던가, 행복주택 공청회에서 누구 돈 받고 왔냐, 청년 주택 들어오면 러브모텔화된다는 등의 말을 들은 것은 과거의 에피소드만이 아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청년 연령대를 지나고 있는 자, 세입자로 살아가고 있는 자에 대한 지역사회의 흐름을 주도하는 사람들의 편견과 혐오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청년 세입자는 왜 혐오받고 차별받는가. 그것이 우리의 삶을 보다 불안하게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이 주거 불안이 내가 집을 구매하지 못해서, 내가 아직 어려서라고 이야기할 일은 분명 아니다. 행여나 이러한 주거 불안이 내 임금이 적고, 가족으로부터 물려받을 자산이 적어서 생긴 격차 때문에 발생한 불안이라면, 그래서 내가 더 노력해서 돈을 많이 벌면 해결될 불안이라고 생각한다면, 어쩌면 나중에 우리는 더 큰 억울함이 겹겹이 쌓여가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그 불안이 정말 온전히 우리 개인의 몫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집은 능력이 아니라 권리여야

그 혐오는 어디에서부터 출발하는가. 집을 자기 몫으로 소유하고 있지 않은 사람에 대한 차별을 당연히 여겨왔던 한국 사회의 오랜 관습에서부터 피어난 것들은 아닐까. 충분한 자산을 지원받지 못한, 임금이 그렇게 높지 않은 사람이 세입자로 살게 되는 것은 일상에서 흔히 마주할 수 있는 장면이지만 누구도 그 흔한 장면 속 차별들은 쉽게 지나친다. 공간 자체가 열악하거나, 지나치게 비싸거나, 임대인의 횡포 앞에 기댈 곳 하나 없거나. 다양한 형태의 주거 불안을 겪다가 이사 다니는 삶을 반복한다.

누가 이 도시, 이 지역에서 정주하며 사는가. 우리는 왜 정주할 수 없고, 정착할 수 없는가. 내 임금으로 부담 가능한 주거비로 살 수 있는 집이 지나치게 열악하다면, 이 사회가 제공하는 주거의 최저 수준이 지나치게 낮음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이를 방치하고 있는 문제 아닌가. 좀 나은 집에 가기 위해선 자산 대부분이 보증금으로 묶이고, 대출을 꼭 받아야 하고, 임금의 가장 큰 비중을 월세와 이자로 흘려보내야 하는 것이 정말 당연한 일은 맞는가. 그 높은 보증금과 월세가 전부 개인의 몫이 맞긴 하는가.

모든 사람은 어떤 주거 공간에서 쉬고 자며 자기 일상을 돌보는 시간을 보낸다. 그 공간이 몹시 열악하거나 비싸거나 그리하여 삶이 불안해진다면, 이것은 개인이 홀로 극복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구조적 문제로 인해 주거권을 침해받아 불안을 겪고 있는 개인에게, 이 사회는 그 불안정성을 완화하려는 조치를 해야 한다.

국제연합(UN)에서는 적정한 주거 요소 7가지를 꼽으면서 정주할 수 있는 권리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높은 주거비 부담과 건강을 위협하는 주거 환경 또한 그 자체로 적정한 주거를 구성하는 필수 요소로 이야기하고 있다. 적정한 주거, 흔히들 말하는 주거 안정은 단순히 주택 공급을 통해서만 가닿을 수 있는 목표가 아니다.

그렇게 공급되는 집에 살게 되는 사람이 그 집을 소유했든 그렇지 않았든 충분히 부담 가능한 주거비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공간에서, 쫓겨날 걱정 없이 살며 자기 삶의 계획을 주체적으로 세워나갈 수 있는 공간. 우리에게는 그런 집이 필요하지 않을까.

자산 불평등이 심화하는 사회일수록, 자산 격차가 곧 삶의 격차가 되는 사회일수록, 그 격차로 인해 삶의 불안을 겪는 사람들의 고충은 더 극심해질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사회는 무책임한 공급을 넘어,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시스템을 바꿔가야 한다. 집은 능력에 따른 전리품이거나 집안 대대로 물려받아 불려가는 가업이 아니다. 그 자체로, 권리로 모든 시민에게 보장되어야 한다.

이 사회에는 적은 돈으로도 쾌적하고 안전하게 정주할 수 있는 집이 더 많아져야 한다. 그런 집이 당연해질수록 더 많은 사람의 삶이 안전해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시작은 주거권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것부터일 것이다. 집을 소유해야만 주거권을 누릴 수 있는 게 아니다. 이 사회에 생존하고 있다면 그 자체로 우리는 적정한 주거를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 그 책임은 당연히 사회에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지수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이 쓴 글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비정규노동> 1,2월호 '사이를 잇다' 꼭지에도 실렸다.


태그:#청년, #주거, #불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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