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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낀40대'는 40대가 된 X세대 시민기자 그룹입니다. 불혹의 나이에도 여전히 흔들리고 애쓰며 사는 지금 40대의 고민을 씁니다. 이번에는 '나의 아버지'에 대해 다룹니다. [편집자말]
하나 둘, 하나 둘.

어릴 적 기억을 되돌리면 떠오르는 따뜻한 장면 중 하나가 있다. 내 두 발이 아빠의 두 발 위에 하나씩 올려져 있고, 아빠는 하나 둘, 하나 둘 움직이신다. 작고 어린 나는 아빠의 발걸음 위에서 자연스레 몸이 움직여지고 붕 뜬 상태로 춤을 추는 기분이 되는 시간. 나의 어린 시절은 그런 이미지로 만들어져 있다. 내 유년 시절의 기억을 그렇게 따뜻하게 만들어준 사람이 바로 나의 아빠이다.

아빠를 생각하면 '편안함'이 떠오른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까지도 '아빠 다리 위'가 내 지정석이었다. 아빠 다리 위에 앉아 아빠의 목을 팔로 끌어안고 앉아 TV를 보고 간식을 먹었다.

어린 시절 아빠와의 관계에서 얻어진 수확
 
사랑받았던 기억은 삶을 버티게 해준다.
 사랑받았던 기억은 삶을 버티게 해준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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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사업을 하셨던 아빠는 출근이 조금 늦으신 편이었는데 내가 준비물이나 도시락을 두고 학교에 가면, 내가 두고 간 준비물을 들고 매번 학교에 갖다주셨다. 내가 운동장을 가로질러 수위실 앞으로 아빠를 만나러 가면 한 번도 귀찮아 하시거나 인상 쓰시는 법이 없었다. 그저 껄껄 웃으며 꿀밤 먹이는 시늉만 하고는 돌아가셨다. 그렇게 내 손에 쥐어주고 가신 내 준비물이나 도시락 가방 안에는 언제나 초콜릿 하나가 들어 있었다.

나는 사람을 알아가는 것을 좋아하고, 인간에 대한 호기심이 있고, 사람과의 교류, 마음이 통하는 느낌, 표정 속에 숨은 마음들을 살피는 것을 좋아한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서서히 가까워지며 익숙해지는 그 과정이 나에게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심리치료를 공부하기도 했고, 그 공부를 하면서 배우기도 했다. 내가 사람과의 관계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불안해하지 않는 이유가, 어린 시절 아빠와의 관계에서 얻어진 수확이었다는 것을.

아빠는 아이가 엄마 다음으로 만나는 첫 번째 타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자신과 동일시 되는 엄마와의 관계를 통해 아이는 기본적 인성과 자아감을 만들어가고, 그 다음 최초의 사회적 관계 맺기의 대상인 아빠와의 관계는 아이의 사회성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그런 측면에서 나는 아빠로부터 이 세상은 아빠의 품처럼 안전하고 긍정적인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믿음, 삶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감을 얻은 행운아일지도 모른다. 

물론 아빠가 백퍼센트 완벽한 사람은 아니었다. 선하고 부드러운 만큼 우유부단했고 과묵한 사람이어서 엄마인 아내에게는 조금 답답한 남편이었을 것이다. 사업이 잘 되지 않아 어려운 시기를 겪기도 하셨다. 가끔은 그런 아빠가 가장으로서, 사회인으로서 실망스러울 때도 있었다.

고등학교 때, 우연히 버스정류장에서 아빠를 만나 같이 집으로 돌아온 적이 있다. 그때 멀리서 보이는 아빠를 처음엔 몰라봤다. 나를 보고 반가워 하는 아빠가 가까워지고서야 비로소 알아보게 되었는데 어릴 땐 그렇게나 넓고 커다랗게만 보이던 아빠의 어깨가 저렇게나 작은 사람이었던가... 생각하고 이상한 마음이 들었다.

삼남매를 키우기 위해 고군분투했을 아빠를 생각해보면 그 마음이 얼마나 애가 타고 어려우셨을까. 나도 어른이 되었지만 마음까지 어른이 되거나 단단해지는 건 아닌데, 나의 아빠도 그러셨겠지. 그렇지만 어떻게든 버텨야 하는 가장의 무게를 그 어깨에 짊어지고 힘들 때도 외로울 때도 많으셨겠지. 지금의 내 나이와 비슷한 나이의 아빠를 생각해보며 이제야 하나 둘 조금 헤아리게 된다.

결혼을 하고 나서 얼마 뒤, 친정에 있는 내 짐을 가지러 다녀온 적이 있다. 마침 그 날 엄마는 외출 중이셔서 아빠 혼자 집에 계셨다. 차에 내 짐을 싣고 집 앞을 나오는데, 차가 골목을 빠져나오는 동안 아빠는 한 손은 뒷짐을 지고, 다른 한 손은 잘 가라고 손을 흔들며 서 계셨다.

막내딸이 기뻐하는 얼굴을 보기 위해 가방에 초콜릿을 넣어주던 나의 다정하고 카다란 우주같은 사람이 나이든 모습으로 서서, 점점 작아지고 멀어지고 있었다. 그 순간 아빠의 눈빛이 조금 흔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 모습을 보며 쏟아지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영영 못 볼 사이도 아닌데 나는 분명 아빠와 커다란 이별을 겪는 기분이었다. 이제 어른이 되는구나. 아빠의 품을 떠나 내 삶을 살아야 하는구나. 그런 마음이었던 것 같다.

고된 삶을 버티게 하는 힘

내 키보다 훨씬 더 커다래진 아이들을 키우며, 사회의 구성원이 되어 어른으로 하루하루의 삶을 산다. 강하고 단단해져야 하고,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것이 유리하다는 걸 가끔 실감한다. 그렇지만 여전히 내 안에는 어린 아이가 있어 상처받는 날도, 쉬고 싶은 날도 있다.

그럴 때 나도 모르게 찾는 기분은, 어릴 적 아빠가 나에게 준 것과 같은 편안하고 안전한 느낌이다, 다시 작은 소녀가 되어 아빠 다리에 앉아 기대고 싶고, 아빠가 준 초콜릿을 입 안에서 녹여먹으며 생각했던,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기분을 달콤하게 느끼고 싶다.

떼쓰고 싶고 울고 싶어 목이 메어올 때, 어른으로 살아내느라 가슴이 답답할 때 나를 지탱해주는 것은 내 마음대로 감정을 표현하고 눈치보거나 걱정하지 않으며 맘껏 기댈 수 있었던 어릴 적 기억은 아니었을까.

여든이 넘은 우리 아빠는 얼마전 내 생일날 카톡을 보내셨다. "생일 축하한다~ 항상 건강하고 행복해라~♡" 아빠의 메시지 내용보다 뒤에 달린 물결 표시와 하트에 눈길이 간다. 아빠의 철없는 막내딸은 여전히 사랑받으며, 그 힘으로 하루를 살아낸다.

덧붙이는 글 | 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https://brunch.co.kr/@writeurmind


40대가 된 X세대입니다. 불혹의 나이에도 여전히 흔들리고, 애쓰며 사는 지금 40대의 고민을 씁니다.
태그:#낀40대,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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