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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글쓰기 그룹 '대체왜하니?'는 초4에서 중3까지 10대 사춘기 아이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엄마 시민기자들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편집자말]
"아빠 첵(check)해! 그냥 췌엑~ 제발~ 응?"

마지막 카드를 남겨두고 둘째는 드디어 애원을 시작했다. 아이가 애절한 눈빛을 보내지만 아빠는 개의치 않고 칩 세 개를 던진다.

"췍은 무슨 췍! 삼백!"

이 판세를 놓칠 리 없는 엄마도 가볍게, 무심히, 던지고 만다.

"삼백 받고 삼백 더."  

첫째 딸은 잠시 망설이더니 알 듯 모를 듯한 모나리자의 웃음을 띠고 콜을 외친다. 이 게임에 진심인 둘째는 기어이 울음을 터뜨리며 방에 들어갔고, 흥이 깨진 가족들은 주섬주섬 게임을 정리했다...라고 이어질 것 같은 게임의 서사이지만, 어디 그런 흔한 결말을 향해 치달을 리가.

아직 어린 둘째가 울며 불며 자기 방으로 '쾅' 문을 닫고 들어가는 단계를 가볍게 뛰어넘은 데는 아빠의 특훈이 한몫했다. 얼마나 치열한 세상인데, 하물며 게임의 세계가 얼마나 살벌한데 자꾸 봐줘 버릇하면 세상에 적응을 못한다는 것이 (아니, 아이들이랑 게임 한번 하자는데 뭐가 이렇게 피도 눈물도 없을 일인가!) 아빠 나름의 놀이 철학이기 때문이었다.

도박의 냄새 쏙 뺀 우리집 연례 행사
 
게임에 이긴 첫째가 쓸어가는 칩.
▲ 가족끼리 즐기는 세븐포커 게임에 이긴 첫째가 쓸어가는 칩.
ⓒ 은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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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모로 그 덕분에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게임 한 번 하려면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그러나 단 한 번을 봐주지 않는 그 공정함(?)은 아이들을 편법이나 요행을 바라지 않는(?) 정직하고 바른 아이들로 키워냈으니... 게임을 할 때만큼은, 참 편하다.

서두가 너무 장황했나? 이 풍경은 어느 집에나 있는 흔한 연말 풍경의 우리 집 버전이다. 언젠가부터 우리 가족의 연말 게임의 원픽으로 우뚝 선 포커게임. 이름에서 풍기는 진한 도박의 냄새 때문에 선뜻 발을 들이기 어려웠으나 열심히 검색을 해본 결과 돈을 거는 불법 도박판만 아니면 모든 게임은 건전한 것이라는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우리는 마음 편히 포커게임, 그중에서도 네 명이서 할 수 있는 세븐포커를 즐기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모든 놀이가 그러하듯이 포커게임도 한번 시작하면 웬만하면 끊을 수 없는 흥미와 스릴을 선사한다. 어쩌면 놀아줘야 하는 많은 어린이용 보드게임과 다르게 함께 즐길 수 있는 으른(?) 게임이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여하튼 연말을 장식하는 놀이로는 꽤나 제격이다.

다만 거룩해야 할 성탄절과 진지해야 할 연말연시에 카드게임을 하는 이런 그림은 사실, 내가 그리던 연말 풍경은 아니라는 점이 좀 걸렸다. 내가 좋아하는 연말 그림은 지난 일 년을 정리하고 내년 일 년을 준비하는 소감과 덕담 한 마디를 나누는 다정한 풍경이다. 하지만 이때만큼은 나의 뻔함을 잘 아는 가족들에게 나의 '엄. 근. 진.(엄격, 근엄, 진지)'은 전방위로 포위를 당한다.

노는 것 좋아하고 오글거리는 것 싫어하고 재미있는 것 좋아하는 식구들의 질색으로 나의 개인적 취향이 양보 되었다고 말하고 싶지만, 솔직하게는 나도 이 게임에 진심이다. 오로지 재미만으로 나의 돼도 않는 '엄.근.진'을 집어던졌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

인간을 정의하는데 '호모 사피엔스'만큼이나 설득력 있는 것이 '호모 루덴스'라는 용어라고 한다. 인간을 '호모 루덴스', 즉 '놀이하는 인간'으로 정의하다니. 놀랍도록 쿨한 이 정의가 생각할수록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은 인간의 본능을 이보다 더 잘 나타내주는 말이 없는 것 같기 때문이다.

칩을 잃어도, 게임에 져도, 치사하다고 자리를 뜨지 않고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것은 놀이가 주는 재미와 매력 때문일 테니, 어쩌면 우리는 놀이를 하면서 어른이 되고 놀이를 하면서 늙어가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이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기다리는 것은 어느 순간부터 이렇게 '놀이' 때문인데, 특히 이번엔 무엇보다도 가족놀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다는 것이 내심 다행스럽기도 하다. 또다시 강화된 '거리 두기'로 집안에서 보내야 하는 연말연시를 지루하지 않게 보낼 수 있는 것은 행운이니까. 곧 아이들 방학이니 시간을 때울 만한 놀이로도 좋겠다. 훗날 엄마 아빠와 함께 놀았던 추억을 즐겁게 기억해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고.

"얘들아 우리, 한판 더 할래?"

그런데 이것 참. 놀이도 잡고 추억도 잡은 일석이조의 포커판인 것까지는 좋았는데, 이상하게 포커판의 여신이 점점 나에게서 등을 돌리는 듯한 느낌이다. 아이들이 게임에 익숙해지면서 점점 얼굴을 읽을 수가 없으니 그야말로 내 위치가 절대적 강자에서 애매모호한 약자가 되어가는 과정이랄까.

그러니까 내가 언제나 포커판의 강자로 군림할 줄 알았던 것은 철저한 나의 오해였던 것이다. 이 글 처음에 언급한 그 게임의 결과 말이다. 겨우 에이스 투페어를 가진 나와 플러쉬를 가진 남편이 겁 없이 판을 키운 탓에 우리 둘 무참한 패배를 맛보고 말았다. 첫째를 얕본 것이 실패의 원인. 첫째가 뒤집은 카드는 무려 풀하우스였고, 그렇게 우린, 눈 뜨고 코 베인 것만큼이나 허무하게, 졌다.

나는 안 그럴 줄 알았는데 쌓여 있던 칩을 첫째가 쓸어가는 것을 보고 있자니 왜 이리 빈정이 상하는지.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일이 남일로 느껴지지 않는 걸 보니 게임 고수가 되려면 한참 멀었지 싶다.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치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인생과 별다를 게 없이 느껴지는 것을 보니 놀이가 곧 인생의 축소판인 것만 같기도 하다. 내 놀이에도 철학이 생기려나, 하는 찰나 웃으며 끝내야 하는데 자꾸 승부욕에 발동이 걸린다. 안 되겠네. "얘들아 우리, 한판 더 할래?"

초4에서 중3까지 10대 사춘기 아이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엄마 시민기자들의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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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고 글쓰는 일을 좋아합니다. 따뜻한 사회가 되는 일에 관심이 많고 따뜻한 소통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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