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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옥천 이원초등학교
 충북 옥천 이원초등학교
ⓒ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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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덧 111살... 1111살 되고 싶습니다, 지켜주세요>(http://omn.kr/1wj09)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이원초] 우리 학교가 영원했으면 좋겠습니다

□ 이원초등학교
설립년도 : 1920년 4월 1일 이원공립보통학교 설립 인가
주소 : 충청북도 옥천군 이원면 신흥길 25
전교생 : 69명(병설유치원 11명 미포함)


이원초등학교는 1920년, 이원공립보통학교로 개교했다. 목조 기와를 갖춘 초기 건물은 1970년대 철근 콘크리트 2층 슬라브로, 현대식 콘크리트 교실(1993)에서 지금 모습으로 변하며 2021년 제100회 졸업식까지 총 9천475명의 학생을 길러냈다. 부족한 교실을 보충하고자 한때 지탄·대성분교가 설립됐다가 통폐합한 역사도 있다.

이원초의 큰 자랑은 무엇보다 '양궁부'다. 올해 도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김우진 선수를 비롯해 박경모, 김종호 선수와 같은 양궁 국가대표 여럿이 이원초등학교 양궁부에서 실력을 키웠다. 이원초 100년 역사가 쌓여 만들어낸 금메달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테다.

계획대로라면 2020년에 열렸어야 할 100주년 행사이지만, 올림픽이 그러했듯 코로나19의 확산으로 학교 행사도 뒤늦게 치러졌다. 2021년 10월의 30일이었다.

행사 당일, 이원초 졸업생과 지역 인사들이 운동장에 모였다. 대부분 나이가 지긋한 졸업생들. 오랜만에 만난 옛 동창을 마주해 감회가 새로운 표정이었다. 그중에는 이원초에 통합된 지탄·대성분교 졸업생도 있었다.

"100회 기념식이라니 거짓말 같습니다. 이전에 농구부를 재밌게 했던 일이 생생하네요. 대성분교를 졸업해 이곳이 모교는 아니지만 그래도 동창들을 다시 만나 반가워요. 학생 수가 많이 줄어든 것이 가장 아쉽습니다. 한 반에 60명이 넘었던 때니까." (이창규씨, 75, 대성분교 38회 졸업생)

멀리서 모교를 찾은 이도 있었다.

"100주년 기념식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서울에서 새벽 5시 30분 기차 타고 왔지요. 이전에 우리 집이 영화관이었기에 친구들과 어울려 놀던 일이 기억 납니다. 해질 때까지 탁구도 치고 크리스마스면 교회 친구들이랑 크리스마스 떡국 먹고. 고향같이 좋은 것이 없어요." (정동수씨, 75, 39회 졸업생)

그는 "아직도 매년 서울에서 향우회 모임을 한다"며 남다른 애정을 보이기도 했다. 그 외에도 많은 졸업생이 학교에 대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었다. 54회 졸업생 김영규(60) 씨는 과거 학교 운동장에 있던 큰 둥구나무를 회상했고 38회 졸업생 금영길(77) 씨는 "6·25전쟁 직후, 무대가 없어 학교 창고 가마니 위에서 학예회를 했었다. 가마니 무대 위에서 텀블링을 했던 기억이 있다"고 전했다.
 
맨 오른쪽이 이원초 최고령 졸업생 강영현씨
 맨 오른쪽이 이원초 최고령 졸업생 강영현씨
ⓒ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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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 대부분이 과거와 달리 학생 수가 적어진 것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자리에 참석한 박형용 도의원(52회 졸업생)은 "'격세지감'이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한 반에 65명, 쉬는 시간이면 왁자지껄했는데 그때 비하면 학교가 많이 조용해졌다"며 "혹여나 이후 학생 수가 줄어들더라도, 폐교로 이어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일본은 폐교 대신 휴교를 내렸다 이후 상황이 나아지면 재개하는 경우가 있더라. 이를 도입해본다면 어떨까"는 의견을 남기기도 했다.

최고령 졸업생으로 자리에 참석한 강영현(96, 19회 졸업생)씨는 "우리 학교가 영원히 빛났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전했다. 재학생인 이원초 이채현 학생회장과 이시온 학생부회장도 "얼마 있지 않으면 우리도 101회 졸업생이 되겠지만, 앞으로도 졸업식이 계속됐으면 좋겠다. 많은 사람이 학교를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며 애틋함을 전했다.

100주년 기념식은 총동문회가 진행을 맡아 기념비 제막, 기념 식수, 감사패 전달 등의 순서가 있었다. 기념비에는 '백 년의 자긍심 천 년을 향한 꿈'이라는 글귀가 새겨졌다.

6·25전쟁 중에도 품에 넣어 다닌 학교기록

신장호(74)씨는 부친이자 이원초 18회 졸업생인 고 신상식옹이 생전에 간직해 온 졸업장, 상장, 표창장 등 23점을 학교에 기증했다. 고 신상식옹이 6·25전쟁 중에도 품에 끌어안고 소중히 간직해 온 기록이었다.

"아버님이 이원초등학교 수석졸업생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일본인 교장 시절이었지만 학교가 나서 조선 소년의 일본 유학을 추천할 정도였죠. 집안이 가난해 어렵다고 하자 학교에서 학비를 보태주겠다고 했답니다. 학교뿐인가요, 마을에서도 나서 유학비를 마련해주셨습니다." (신장호씨)

그렇게 일본 유학을 떠났으니 학교와 마을에 대한 마음이 남달랐을 테다. 고인은 생전 영동군 용화면장, 교회 장로로 봉사했고 6·25 참전 유공자로 국립묘지에 안치됐다. 신장호씨는 돌아가신 부친이 생전 학교에서의 기록을 귀중히 생각했다고 말했다.

"저더러 '자료들을 소중히 간직하라'고 말씀하셨지요. 학교에 기증하라고 따로 이야기하신 적은 없지만, 이원초 100주년 기념식이 있고 학교 사료를 찾는다는 말씀을 듣고 학교에 전달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1983년 이원초 양궁부 훈련
 1983년 이원초 양궁부 훈련
ⓒ 이원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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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간 품은 졸업장, 상장, 표창장 등 23점은 80여 년 만에 다시 이원초에 돌아왔다. 그의 기증품은 이원초 역사의 일부가 되어 역사관에 전시됐다. 이원초가 존재하는 한 영구히 보관될 것이다.
 
이원초 총동문회는 이외에도 100주년 기념 책자를 출판했다. 총동문회 정보용 회장, 이원봉 사무국장을 비롯한 임원진과 김전환 교장이 책자 출판에 힘을 썼다. 이들이 책자를 만들 때 가장 신경 쓴 점은 지탄·대성분교의 역사까지 동등하게 다루는 것.

이원봉 사무국장은 "세 학교를 대통합할 수 있는 자료를 만들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만드는 과정에서 학교의 아픈 역사도 알게 됐다. 20회에서 24회 졸업생까지는 창씨개명된 학적부가 남아있더라. 한국전쟁 때 학교가 피해를 입어 소실된 자료도 꽤 있는 것 같다"면서 "그토록 어렵던 시절을 다 지난 학교가 지금 학생 수가 적어 또다른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 더 안타깝고 슬프다"고 덧붙였다.

이원초 100주년 기념 책자는 700부 이상 출판돼 학교 역사관 및 동문에 제공될 예정이다. 정보용 총동문회 회장은 "책장에 꽂혀 있는 이 책자가 후배들이 학교 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갖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전환 교장은 "50년대 이전 사진 자료가 많이 사라졌고 부족한 점도 있겠지만 추억을 기록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애교심과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역할 했으면 한다"고 전했다.

[안내초] 학교와 마을은 하나
 
충북 옥천 안내초등학교
 충북 옥천 안내초등학교
ⓒ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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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내초등학교
설립년도 : 1921년 5월 2일 안내공립보통학교 개교
주소 : 충청북도 옥천군 안내면 현리길 74
전교생 : 37명(병설유치원 5명 미포함)


안내초등학교는 1921년, 안내공립보통학교로 처음 문을 열었다. 1941년에는 학령기를 지난 주민을 대상으로 한 안내공민학교가 분립했다. 한글 등 생활에 필요한 기초 지식을 단시간에 가르치기 위한 교육기관이었다.

교실 수가 부족하던 무렵에는 용촌국민학교(1965), 대동국민학교(1973)가 분립됐다가 점차 학생 수가 줄면서 1990년대 다시 안내국민학교에 통폐합됐다. 오늘 안내초등학교는 전교생 30여 명의 작은 학교이지만 이들은 마을과 손을 잡고 새로운 100년을 향해 한 발짝, 한 발짝 나아가고 있다.

안내초등학교는 충북형 혁신학교인 '행복씨앗학교'를 5년째 운영하고 있다. 교육과정에 마을을 밀접하게 연계시킨 덕분에 학교와 마을은 이제 떨어질 수 없는 존재가 됐다. 안내초 학생들은 마을을 토대로 여러 가지 활동을 하는데, 최근에는 마을 설화를 근사한 작품으로 탄생시켰다.

행복씨앗학교를 시작한 2017년부터 안내초 학생들은 마을 이장님을 마을해설사로 모시고 '마을 여행'을 떠났다. 마을의 옛 이름과 유래,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특산물, 문화재 등을 담아 학생들이 직접 '마을교육자료'를 만들었다. 이때 발굴한 '능검이 이야기'는 2020년 마을 벽화로 재탄생됐는데 안내면이장협의회 주관, 안내면 카페 '토닥' 이종효 대표의 도움이 있었다.

활동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능검이 설화는 '연극 놀이 프로젝트'로 이어져 대형 연극을 올리는 데까지 확장됐다. 춤, 노래가 곁들어졌으니 뮤지컬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올해 3월부터 11월까지, 1년이 꼬박 걸려 완성한 작품이다.

"전교생이 다 참여해 만들었어요. 설화 재해석, 시나리오 작성, 개사, 안무 짜기, 무대 기획, 무대 배경을 만들고 연기하는 것까지 학생들이 직접 했죠. 창체(창의적 체험 활동) 시간, 방과후 수업 등 시간을 활용해 완성했어요." (임은영 지도교사)

이 모든 과정을 거쳐 지난 11월 4일, '능검이 이야기'가 마침내 무대에 올랐다. 1~3학년은 율동과 춤 위주, 4~6학년은 연기 위주로 공연을 선보였다. 힘이 장사인 노비 '능검이'에 관한 원 설화가 다소 잔혹해 교육용으로 적합하지 않았기에 일부 내용을 수정했다. 기존 능검이 설화는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원수를 갚고자 사또가 되어 원수를 벌하고 노비 동료들을 구한다'는 내용으로 각색됐다. "신데렐라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요"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익숙한 노래도 설화에 맞게 개사했다.

이번 프로그램을 지도한 임은영 교사는 "학생들이 마을에 관심이 참 많다는 것을 크게 느꼈다. 마을 이야기로 만든 작품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들이 힘을 모아 만들었기에 더 의미가 있는 것 같다"면서 "마을 교육 프로그램이 벽화 그리기, 연극 만들기로 이어진 것처럼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작은 학교, 작은 마을이지만 학교에서의 활동으로 더 큰 세상을 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는 바람도 덧붙였다.

마을에 학교가 중요한 이유
 
'능검이 이야기' 제작과정
 "능검이 이야기" 제작과정
ⓒ 안내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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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와 마을의 연계는 학교 밖에서도 계속된다. 꼼지락 꿈 다락방은 안내면이장협의회가 도교육청 '지역연계 돌봄교실 운영 민간위탁 공모사업'에 지원하면서 2018년 문을 열었다.

오후 4시, 수업이 끝나면 학생들은 복지회관으로 향한다. 꼼지락 꿈 다락방은 안내초 학생들에게 또 하나의 학교이자 놀이터와 같은 공간이다. 수학, 영어 외에도 드럼, 요리, 공예 등 예체능 활동도 이루어진다. 2명의 돌봄 교사가 봉사하고 있고 전교생 37명 중 28명이 이곳을 이용할 만큼 호응이 좋다.

"학생 중 다수가 방과 후 집에 가도 돌봐줄 사람이 없는 경우가 많았어요. 농사일 등 늦게까지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죠.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방과 후 방치되고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점이 안타까웠어요. 마침 민간위탁 돌봄교실 공모사업이 있어 지원해 운영하게 됐죠. 아이들이 이곳을 참 좋아해요." (꼼지락 꿈 다락방 이요셉 운영위원장)

학교 역시 이러한 시설을 반긴다. 안내초 김재현 교감은 "학생들이 꼼지락 꿈 다락방 돌봄교실을 통해 방과 후에도 다양한 체험을 하고 소질을 발견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안내초 운영위원회 주도완 위원장은 안내초 59회 졸업생이자 과거 돌봄교실 공모사업을 지원할 때부터 적극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는 "학교의 존립은 마을의 '생존'이 달린 문제"라면서 학교와 마을 연계 교육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마을과 학교는 불가분의 관계예요. 학교가 살아야 마을이 삽니다. 마을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학교가 잘돼야 해요. 그런 점에서 마을이 학교에 깊은 관심, 애착을 가져야 한다고 봐요. 꼼지락 꿈 다락방 외에도 안내면이장협의회가 수계기금 일부를 학교에 지원하는 것도 그런 이유죠. 학생들이 마을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훗날 이곳을 기억해주길 바라요." (안내초 운영위원회 주도완 위원장)

꼼지락 꿈 다락방은 앞으로가 더욱 기대된다. 안내면 기초생활거점육성사업으로 꿈자람행복센터가 조성되면서 이곳에 도서관, 돌봄교실 등이 생길 예정이기 때문. 이요셉 운영위원장은 "앞으로 더 좋은 시설에서 꾸준히 돌봄교실을 해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안내초 100주년 행사
 
'능검이 이야기'를 각색해 그린 벽화
 "능검이 이야기"를 각색해 그린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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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초 100주년 행사는 어린이날을 앞둔 올해 5월 4일, 재학생을 비롯한 교직원, 총동문회 임원이 모여 진행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많은 인원이 모일 수는 없었지만, 오랜만의 행사에 한껏 들뜬 분위기였다. 재학생은 단체로 화사한 노란 티셔츠도 맞춰 입었다. 학생 대표의 축사 낭독, 재학생의 난타 공연 이후에는 어린이날 축하 행사가 이어졌다. 페이스페인팅, 달고나·팝콘 만들기, 그립톡 만들기 등도 이어졌다. 그야말로 '재학생 중심'의 100주년 행사였던 것.

안내초 총동문회는 행사 외에도 100주년 기념 책자 제작을 위해 100인의 편찬위원회를 구성했다. 100주년이라는 의미를 살리고자 기수별로 한 사람씩 모은 것. 이들은 과거 학교 사료를 모으고 내년 기념 책자 발간을 목표로 활동한다. 학교에 남아있는 과거 기록이 많지 않아 신문 광고, 재직했던 교사, 동문 등을 수소문해 자료를 찾고 있다.

"안내초는 용촌, 대동초등학교가 분립·통폐합했던 역사가 있는데 두 학교 자료가 거의 없어요. 교실을 신축·증축하는 과정에서 보관이 잘 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총동문회 박인현 출판위원장)

이들은 기념 책자에 학교 관련 내용 외에도 안내면 마을에 대한 기록을 실을 계획이다. 마을도 학교 역사의 일부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안내초 졸업생이라면 결국 안내면 마을 출신 아니겠어요? 마을의 역사가 곧 학교의 역사인 거죠. 뗄 수 없는 관계인 거예요." (총동문회 박인현 출판위원장)

정정우 총동문회 회장은 "동문뿐만 아니라 안내면 주민들을 위한 책자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 책자 발간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급하게 하지 않고 차근차근 완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마을과 학교가 하나 된 기념 책자가 될 테다. 그는 학교 활성화 방안에 대해 폐교된 '대동초등학교'를 교육이주 주택으로 활용해보는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교직에 41년간 몸담은 사람으로서 모교에 학생 수가 줄어드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100년 맞은 것으로 그치지 말고, 더 큰 꿈을 가지는 재학생, 졸업생, 주민들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정정우 총동문회 회장)
  
[군서초] 진짜 경주는 지금부터 시작
 
충북 옥천 군서초등학교
 충북 옥천 군서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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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서초등학교
설립년도 : 1909년 6월 15일 사립화명학교 설립인가/ 1921년 6월 15일 군서공립보통학교 개교
주소 : 충청북도 옥천군 군서면 성왕로 517
전교생 31명(병설유치원 5명 미포함)


군서초등학교 전신은 1909년 설립인가를 받은 사립화명학교다. 청산초, 죽향초와 마찬가지로 일제에 저항하고 국권을 회복하고자 마을 유지들이 기금을 모아 설립했다. 당시 군서면 은행리에 세워졌던 건물이 1925년 현 위치(동평리)로 옮겨졌다고 전해진다.

군서초 100주년 기념행사는 군서공립보통학교가 공식인가를 받아 개교한 1921년을 기준 삼아 진행한다. 본래 올해 9월 군서면민체육대회를 열어 성대하게 총동문회를 치를 계획이었지만 코로나19 여파로 6월 15일, 재학생이 중심이 되어 99명이 참석한 채로 기념식을 진행했다. 군서초 총동문회의 100주년 기념행사는 현재 진행형이다. 이들은 특색있는 100주년 기념 책자를 만들고 열지 못한 동문 체육대회를 개최하고자 부단히 준비하고 있다.

100주년 기념 책자 발간을 위해 김홍섭 총동문회 사무국장을 비롯한 7명의 편찬위원회가 결성됐다. 100주년을 맞이한 학교가 기념 책자를 내는 일이 보편적이라지만 다른 이에게 맡기지 않고 총동문회에서 직접 만들고자 했다.

그렇게 쓰기 시작한 100년사 책자가 어느새 500페이지를 채우고도 남았다. 책자에는 군서초의 역사뿐만 아니라 군서면 산성을 비롯한 문화재, 보호수, 전해 내려오는 구비 전설도 함께 담길 예정이다. 출판을 앞두고 마무리 작업만 남겨놓은 상태다.
 
한 자리에 모인 군서초 동문들
 한 자리에 모인 군서초 동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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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주년을 맞이한 군서초가 그간의 역사를 한번 정리할 시점이라고 보았습니다. 되도록 정성을 담아 직접 책을 만들고 싶었어요. 동문 기수별로 기금을 모아 발간 자금을 마련했으니, 그야말로 모든 동문이 함께 만든 책인 셈입니다." (김홍섭 사무국장)

학교 소장 자료는 물론 동문 SNS를 활용해 추가로 필요한 자료를 수집했다. 활발한 동문 활동 덕에 자료를 모으기가 수월했다. 김홍섭 사무국장은 "동문회가 군서초만큼 활발한 곳은 드물 것"이라고 자부했다. 반면 학교 소장 자료 중 소실된 것이 많아 아쉬웠다고 말한다.

"학교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2005년 무렵에 학교 기록물을 저장하는 서버가 달라졌다네요. 그때 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탓에 그 무렵 졸업사진이라든지 기록물이 많이 사라진 거예요. 1, 2회 졸업사진처럼 아주 오래된 자료가 남아있는 것과 달리 말이에요." (김홍섭 사무국장)

오래된 사진 속에서 이들은 교복을 입은 학생들, 그 뒤편에 걸린 일장기도 보았다. 군서면과 관련된 역사도 새삼 알게 됐다.

"검정색 제복을 입은 학생들이 어린 시절 제 모습과는 너무도 달라 괴리감이 들었고, 일장기 아래에서 찍은 사진을 볼 때는 서글픈 마음이었죠. 군서면에 이렇게 많은 산성이 있었다는 것도, 이곳이 백제와 신라의 격전지였다는 것도, 이곳 사람들이 누에를 치며 살았다는 것도 모두 새롭게 알게 된 이야기예요." (김홍섭 사무국장)

전문 지식이 필요한 문화재 해설은 한남대학교 신동호 교수가 직접 답사한 후 서술한 내용을 담았다.

"지금은 힘들어도 나중에는 고서가 돼서 후세에 전해지지 않겠어요? 모양새만 좋게 하지 말고 내용을 충실하게 담아야 한다고 봐요. 나중에 펴봤을 때 감동을 주기를 바라죠." (이원형 위원장)

이토록 정성을 담아 엮은 책은 1500부 출판해 학교, 교육청, 기관단체, 동문 기수별로 제공될 예정이다.

'군서초 살리기'도 이어진다
 
1924년 군서초. 배경의 일장기가 눈에 띈다.
 1924년 군서초. 배경의 일장기가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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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9월 부임한 김욱현 교장은 이전에 '청성초 살리기'로 활약한 경력이 있다. 그는 이를 바탕으로 '군서초 살리기'를 이야기한다.

"최근 교육 이주를 희망하는 분들이 늘고 이를 준비하는 작은 학교가 많아지고 있어요. 교육 이주 주택의 종류도, 특색있는 교육 활동도 신경을 써야 하죠. 군서초 역시 장점을 살린 활동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가 꼽은 군서초의 장점은 사계절 스포츠 프로그램과 밴드부 등 다채로운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 학교 역사가 길고 총동문회도 활발해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는 점, 장령산 등 활용가능한 자연환경이 갖춰졌다는 점 등이다.

"나아가 졸업생 혹은 지역 주민을 주기적으로 학교에 모셔서 강좌를 연다거나 학부모와 학생이 소통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열어보면 어떨까 합니다. 장령산 혹은 학교 운동장에 텐트를 치는 야외 활동을 통해 구성원 간 교류하는 거죠."

그러나 "학교만의 노력으로는 성공할 수 없고 마을 공동체와 지자체의 관심도 중요하다"면서 주변의 관심을 당부했다.

"개인적으로는 앞으로 100년 후, 200주년이 더 의미 있을 것이라 봅니다. 학교가 200주년을 맞이한다면 인구 감소 위기를 극복했다는 뜻일 테니까요. 지금부터 시작이죠."

월간옥이네 통권 54호(2021년 12월호)
글·사진 한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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