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2.24 13:19최종 업데이트 21.12.24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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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에 태어나 2020년에 스무 살이 된 남성은 29만 1989명이다. 한편 2020년에 태어나 2039년에 스무 살이 될 남성은 13만 9362명이다. 20년이 지나면 현행 병역법에 따라 새로 병적에 편입되는 남성의 수가 절반 이하로 감소한다.

인구 감소에 따른 병역 제도 개편의 필요성은 저출생 추세가 심화되기 시작한 2000년대부터 꾸준하게 제기되어 온 문제다. 2020년대에 이르면 본격적으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하고, 2030년대가 되면 병력 규모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이 당시 전문가들의 지적이었다.


이에 참여정부는 '국방개혁 2020'을 발표하고 병력을 감축하기로 계획했으나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감군 계획을 유예했다. 2017년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목표 병력을 50만으로 설정하고 감군을 추진하고 있으나 징집률이 2020년 기준 83%를 상회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도 간신히 병력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우리 군은 2000년대나 지금이나 똑같은 병역 제도를 유지하며 인구 절벽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바꿔 말하면 병역 제도 개편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국가적 차원에서 이루어진 적이 없다는 얘기다. 안타깝게도 병역 제도 개편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모든 제도가 그렇지만 병역 제도는 더더욱 단기간에 확 바꿀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선을 앞두고 모든 후보가 병역 제도 개편을 거론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발등의 불

병역 제도 개편을 공약한 대선 후보들은 이전에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더불어민주당 김두관 의원은 2012년 대선 경선에 출마했을 때부터 모병제를 공약했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도 2017년 대선에서 징병제와 모병제를 혼합한 한국형 모병제를 공약했다.

그러나 선거 과정에서 병역 제도가 진지한 의제로 다루어진 적은 없다. 아직 도래하지 않은 문제라 사안의 심각성이 사회적으로 공유되지 못한 탓도 있지만, 병역 제도를 바꾸는 일이 매우 복잡하고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선거에서 하나하나 곱씹어 다루기가 쉽지 않은 주제다.

이런 연원이 있기 때문에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이루어지는 병역제도 개편 논의에는 우려스러운 점이 많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지난 10월 국민개병제를 유지하면서 단기간 복무하는 징집병과 중기 복무하는 전투부사관을 병역의무자가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선택형 모병제를 공약으로 제시했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20년 뒤에는 모병제로 가야 하지 않겠느냐면서도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한 바는 없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2029년까지 징병제와 모병제를 단계적으로 혼용하여 30만 명으로 감군한 뒤 모병제로 완전 전환하겠다는 계획이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임기제 부사관을 군 병력의 50%로 확대하고 병사의 숫자를 줄이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편 2024년부터 전면 모병제를 실시하겠다는 진보당 김재연 후보도 있다. 일각에서는 여성 징병으로 병역자원 부족 문제를 해결하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윤석열 후보를 제외한 대부분의 후보가 병역 제도를 전환하는 작업을 임기 내에 시작해야 한다는 문제 의식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기는 하지만, 방향성과 구체적 대안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후보마다 공약의 내용이 다른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병역제도 개편을 둘러싼 논의의 가장 큰 맹점은 어떤 쟁점을 토론해 유권자의 선택을 받을 것인지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병역 제도 관련 공약은 '좋은 말 대잔치'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 입영심사대 앞에서 입영장병과 가족 및 친구들이 인사하고 있다. 2020.2.3 ⓒ 연합뉴스

 
한국군의 규모는 과연 얼마여야 하는가

병역제도 논의의 시작점은 병역 형태나 군 구조 개편이 아니다. 징병제냐 모병제냐, 남성 징병이냐 여성 징병이냐, 부사관 중심이냐 병사 중심이냐를 논하기에 앞서 먼저 풀어야 하는 문제가 있다. "한국군의 규모는 얼마나 되어야 하는가?", "50만 대군을 유지해야 하는가?"가 그것이다. 병력 규모가 합의되지 않으면 병역제도 개편 논의는 공염불이 될 수밖에 없다.

병력 규모는 매우 복잡한 문제다. 편제 변경과 그에 따른 방위 전략의 목표와 작전계획 변경이 함께 고민되어야 한다. 작전 계획을 바꾸자면 미국이 갖고 있는 전시작전권 문제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병력 규모에 대한 입장이 불분명한 상황에서 부사관을 50%로 증원한다든가, 일반병 복무기간을 줄이고 부사관의 수를 늘린다는 식의 공약은 현실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지금 중요한 것은 감군 논의다. 인구가 줄어드는 현실 속에서 우리가 처한 안보 상황과 전략적 목표에 대한 총체적 재검토가 필요하다. 2020년 2월 육군본부가 발표한 <육군비전 2050>에 따르면 현실적 여건 하에서 현행 제도를 유지해도 한국군은 2050년 기준 30~35만 명 이상의 병력을 유지할 수가 없다. 그런데 군 구조와 편제는 그대로 두고 병력만 15만 명이 줄어드는 상황은 있을 수 없다. 인구 감소와 병력 감축이 상수인 상황에서 그에 따른 객관적인 상황 평가와 안보 전략의 재설정 작업이 시급하게 시작되어야 하는 까닭이다.

한국군이 50만 명에 이르는 대규모 병력과 다수의 전방 사단을 운영하는 가장 큰 이유는 '유사 시 북한 안정화 작전', 즉 전쟁 발발 시나 북한 정권 붕괴 시 한국군이 북진하여 북한 정권을 붕괴시키고 휴전선 이북 지역을 온전히 수복하는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서다.

한국전쟁 직후부터 촘촘하게 사람을 두어 휴전선을 경계하다 전쟁이 나면 육로로 넘어오는 북한군을 막기 위해 전방에 줄지어 사단을 배치해둔 까닭도 크다. 이러한 전략 목표가 여전히 현실적인지,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방위 전략인지 평가하고 적정 병력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

결국 병역 제도는 안보 전략의 문제다. 윤석열 후보처럼 '20년 뒤에는 모병제로 가야 하지 않을까?'라고 태평하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지금부터 계획을 세우고 움직여야 20년 뒤에 병역제도가 바뀐다.

방위 전략 수정, 병역 규모 재설정, 모병 병력에 대한 유인의 마련, 군의 인권 상황 개선 등 딸려 있는 문제 모두 하루아침에 해결 될 수 있는 일들이 아니다. 그 시작점이 바로 우리 군의 적정 병력은 몇 명이어야 하는지 논의하는 일이다.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후보들이 감군의 구체적 목표와 근거를 두고 논박하는 모습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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