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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설렁탕 먹고 싶으면 말해."

지난 주말 오전 10시 18분에 오빠한테 온 메시지다. 오빠는 대구 건설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현장 업무 특성상 주말에도 일해야 해서 일주일이나 이주에 한 번씩 주말에 서울 집으로 온다.

일요일, 그날도 직장에 나간 오빠는 점심 메뉴를 선택하라고 했고 오전 11시 20분에 배달을 시킨다고 했다. 오빠는 가끔 이렇게 대구에서 서울 사는 엄마와 나에게 점심이나 저녁 먹을 거리를 배달앱으로 주문해 주곤 한다. 멀리 떨어져 사는 오빠가 우리에게 마음을 보여주는 작은 배려다.

80대 노모를 돌보는 비혼 자녀들
 
"내가 손발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는 자식들 밥 해 먹이고 싶어."
 "내가 손발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는 자식들 밥 해 먹이고 싶어."
ⓒ 고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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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여기저기 아프시긴 해도 간병을 요구할 만한 질환을 갖고 있진 않다. 그래도 나의 손길이 점점 많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엄마의 별명은 큰 강아지. 진짜 반려견은 작은 강아지다. 물론 엄마는 아직까지 부엌을 사수하고 계신다.

"내가 손발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는 자식들 밥 해 먹이고 싶어."

그 마음을 알아서 엄마가 지키고 싶은 자신의 역할을 굳이 뺏지는 않고 있다. 그게 엄마를 지탱하게 하는 엄마만의 땅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시간이 갈수록 내가 부엌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그 외에 병원을 모시고 가는 것도, 시장을 보는 것도, 엄마 컨디션이 안 좋을 때 챙겨야 하는 것도 내 몫이다. 오빠는 떨어져 살고 있으니 어쩔 수 없이 내가 감당해야 할 일들이다.

그게 마음에 걸렸는지 오빠는 엄마에게 생활비를 드리는 것 외에, 병원에 다니시라고 자기 카드 하나를 엄마에게 드렸다. 자식 돈 쓰는 걸 무서워하는 엄마는 정말 아주아주 아플 때만 그 카드를 꺼내신다.

집에 필요한 필수품을 사는 것도 오빠의 몫이다. 태생적으로 자상한 오빠는 엄마와 내가 굳이 말을 꺼내지 않아도 필요한 것들을 잘 챙겨준다. 얼마 전에는 가습기도 들여놨다.

가족 여행을 갈 때도 운전과 숙박비 같은 굵직한 부분은 오빠가 담당한다. 오빠는 종종 나에게도 커피 쿠폰을 쏴주기도 하고, 가끔은 용돈을 입금시켜주기도 한다. 그러면서 보내는 짧은 메시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나이든 강아지, 어린 강아지 돌보느라 수고가 많다.'

우리집은 비교적 가족내 역할 분담이 잘 되어 있다. 굳이 입으로 꺼내서 정한 건 아닌데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집에서 실질적으로 엄마를 보살피는 게 나의 몫이라면, 오빠는 큼직한 재정을 담당한다.

내 수입보다 오빠의 수입이 훨씬 많다 해도 강요할 순 없는 부분인데, 그 몫을 자진해서 담당해 주고 있으니 고마울 따름이다. 오빠와 내가 이렇게 할 수 있는 건, 둘 다 비혼이기 때문이겠지만 그렇지 않다 해도 돌봄의 문제는 이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다.

어느 책에선가 부모를 봉양하는 일은 가족 모두의 일이라는 말을 본 적 있다. 그 저자는 어머니가 쓰러지고 수술을 받고 퇴원해서 재활하는 과정을 쓰며, 그때 가족들이 허둥지둥하면서 체계를 잡았다고 했다.

누군가는 엄마와 함께 병원에 가는 일을, 누군가는 재정을 담당하는 일을, 누군가는 보험사에 알아보는 일을 맡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책임을 나누지 않으면 가족 전체의 비극이 될 수 있다고 하는 데 격하게 공감했다.

참 어려운 안녕한 노후

내 경우에는 오빠와 나 둘 다 경제 활동을 하고 있고, 엄마는 본인의 몸은 스스로 보존하실 수 있는 상태이고, 나는 엄마 옆에서 필요할 때마다 손발이 되고, 오빠는 재정적인 부분을 알아서 잘 감당하면서 제법 균형을 이루고 있다. 덕분에 아직까지는 일상을 잘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 균형이 언제까지 지속되진 않을 것이다. 지금 내 주변을 보면 아픈 부모를 간병하느라 삭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만약 나도 엄마를 간병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부담은 더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 균형이 깨졌을 때 내 일상에도 분명 균열이 올 것이다.

엄마가 건강하고, 오빠와 어느 정도 분담을 하는 나도 앞으로를 생각하면 이렇게 걱정이 되는데, 혼자 부모님을 돌봐야 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막막할까. 요양제도가 있다 해도 그것만으로는 감당이 안 되는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얼마 전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버지를 혼자 오랫동안 간병하던 청년이 그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걸 방치했다는 이유로 징역 4년형을 받은 것만 봐도 그렇다. 정부에서는 저소득층의 과도한 의료비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재난적 의료비를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 간병비는 지원되지 않는다. 누군가는 간병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돌봄은 누구에게나 다가온다. 혼자 산다고 해서 혹은 자녀가 있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부모를 돌보다 일상이 발목 잡혀서는 안 된다. 나도 나이 들었을 때, 안심하고 돌봄을 받고 싶다. 스스로 아무리 준비한다 하더라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은 반드시 존재한다. 그렇다면 함께 방법을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을 하다 보면 서글픈 질문이 올라온다. 누구 하나 열심히 살지 않은 사람이 없을 텐데도 무사히 노후를 보낸다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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