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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오른쪽)가 21일 오후 서울 용산구 김한길 전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 사무실에서 김 전 대표와 회동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오른쪽)가 21일 오후 서울 용산구 김한길 전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 사무실에서 김 전 대표와 회동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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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길 전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측의 새시대준비위원장이 됐다. 윤석열 후보가 설명한 이유는 "좀 더 중도적이고 합리적 진보를 포용할 수 있는 분으로서 이분이 적임자가 아닌가 해서"라고 한다. 

1953년에 출생해 소설가와 기자 등을 거친 김한길 위원장은 영호남 지역 갈등이 매우 심각하고 갈등 극복 필요성이 강렬히 요구되던 1990년대 초반에 국회의원선거에 처음 도전했다. 1992년 3월 제14대 총선 때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만든 통일국민당의 공천으로 서울 동작을에 출마했다.

그해 12월 대선을 위해 정주영의 공보특별보좌관으로 일했던 그는 1996년 4월 11일 제15대 총선 때에는 김대중의 새정치국민회의(국민회의)로부터 공천을 받고 전국구(비례대표) 의원에 당선했다. 그 뒤 김대중 정부 하에서 대통령정책기획수석비서관과 문화관광부장관을 지냈다.

1997년 화개장터의 김한길

지역감정의 피해자인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가 1997년 대선을 준비할 당시, 그는 국민통합을 상징할 수 있는 인물 중 하나로 이목을 끌었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줄기 따라 화개장터엔"으로 시작하는 대중가요 <화개장터>의 작사가인 탓이다.

그래서 제15대 총선 3개월 뒤 국민회의는 지역감정을 극복하고 김대중의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한 전국 버스 투어에 초선 의원이자 총재 특보인 김한길을 포함시켰다. 그해 7월 13일 치 <경향신문> 기사 'DJ 버스 투어 나선다'는 그달 말에 시작될 이 행사와 관련해 "투어의 마지막 일정은 경남 하동과 전남 구례의 중간에 있는 화개장터"라면서 방문 의의를 이렇게 설명했다.

"김한길 의원이 작사하고 가수 조영남이 노래해 유명해졌으며 영호남 화합 행사 때마다 등장하는 화개장터를 방문함으로써 화해의 메시지를 던지기 위한 것이다."

이런 취지에 따라 김대중 버스 투어의 하이라이트가 된 8월 1일 화개장터 '지역화합 축제 한마당'엔 조영남이 출연해 노래를 불렀고, 김한길의 이름이 거론됐다. 그달 2일 치 <동아일보> '김대중 총재 영남 나들이 화개장터서 뒤풀이' 기사는 "조영남씨는 노래를 부르기에 앞서 '이 노래는 김한길 의원이 함께 만든 것'이라고 소개한 뒤 노래 가사 중 '경상도 전라도'를 '김영삼 김대중', '김대중 김종필'로 바꿔 부르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2007년 2월, 비상한 정치 이력의 시작
  
김대중 정부가 노무현 정부로 바뀐 뒤, 김한길은 2006년에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원내대표에 취임했다. 그런데 노무현 정권 말기부터 그에게서 주목할 만한 정치적 이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해인 2007년 2월이 그 출발점이다.

이때 의원 22명과 함께 집단 탈당한 그는 그해 5월에 중도개혁통합신당을 창당하고 대표가 됐고, 다음 달인 6월에 국민회의의 계승 정당인 민주당과 합당해 중도통합민주당을 창당하고 공동대표가 됐다. 같은 해 8월 3일 의원 18명과 함께 중도통합민주당을 탈당, 곧바로 열린우리당의 흔적이 묻은 대통합민주신당에 들어갔지만 이명박이 대통령이 된 그해 대선 뒤에 노무현을 비판하면서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15대·16대 때 비례대표로 당선되고 17대 때 서울 구로을에서 당선한 그는 2012년 총선에서 4선에 성공했다. 그해에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이 됐다가 박근혜가 당선된 그해 대선 직전에 사퇴했다. 2013년에는 민주당 대표가 되고, 2014년에는 안철수가 합류한 새정치민주연합의 공동대표가 됐다. 그랬다가 이듬해에 안철수를 따라 국민의당으로 갔다.

그의 비상한 정치 이력이 2007년 2월부터 시작한 데는 노무현에 대한 반감이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 반감의 깊이를 그달 11일 치 <오마이뉴스> '김한길·강봉균, 일단 무대에서 내려가고'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기사는 김한길 등이 열린우리당에 남을 수 없는 이유를 "노무현 대통령과는 함께 갈 수 없다는 것이다"라는 말로 소개한다. 그런 뒤 구체적인 이유로 "반복적인 말실수, 코드 인사, 인재풀의 한계, 언론과의 적대적 관계, 고집·오만·독선, 자주를 가장한 탈미적 접근, 당 배제, 편 나누기, 뺄셈 정치, 싸움의 정치 등"으로 소개했다.

'반복적인 말실수'나 '고집·오만·독선'은 노무현이 싫은 개인적 이유를, '코드 인사'나 '인재풀의 한계'는 노무현과 함께하는 사람들이 싫은 이유를 정당화하는 논리라고 할 수 있다.

노무현의 인재풀이 약하다는 지적은 기존 관점에 입각한 인재들이 노무현 주변에 많지 않았다는 말이 될 수도 있다. 혹은 김한길 등의 시각으로 볼 때 인재가 될 만한 사람들이 노무현 주변에 많지 않았다는 말이 될 수도 있다. 노무현 주변 사람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음을 드러내는 말이다.

'뺄셈 정치, 싸움의 정치'는 노무현의 정치가 싫은 이유를, '자주를 가장한 탈미적 접근'은 노무현이 두려운 이유 등을 정당화한다. 인간 노무현도 싫고, 그 주변 사람들도 싫고, 이들이 하는 일들도 싫었던 것이다.
 
2006년 3월 6일 김한길 당시 열린우리당 원내대표가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06년 3월 6일 김한길 당시 열린우리당 원내대표가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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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진보세력에 대한 반감

노무현 개인만 싫은 게 아니라 함께하는 사람들도 싫었다는 것은 노무현과 함께 등장한 새로운 진보세력에 대한 김한길 등의 시각을 드러낸다. 넓은 의미의 보수세력이 민주 대 반민주 구도로 대립했던 전통적인 한국 정치를 흔들며 나타난 새로운 진보세력에 대한 거부감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런 반감은 결이 달랐을 뿐, 당시의 보수 정당인 한나라당에도 존재했고 2004년에 제도권 밖에서 형성된 뉴라이트 진영에도 존재했다. 노무현과 함께 부각된 새로운 진보세력에 대한 거부감이 보수정당과 보수·극우 재야뿐 아니라 민주계 정당 내부에도 공통적으로 자리했던 것이다.

그런 시기에 민주계 정당 내의 반노무현 정서를 조직하면서 반노세력의 구심점으로 부각된 인물이 김한길이다. 2000년대 이후의 새로운 진보정치에 대한 기성 정치권 일부의 적대감을 조직한 인물이라고 평가해도 과하지 않다.

2007년 집단탈당 당시, 김한길 등은 한나라당으로 갈지 모른다는 의심을 받았다. 위 <오마이뉴스> 기사에 따르면, 이들은 그런 시선을 의식해 한나라당을 '비민주적 권위주의 세력, 수구보수세력, 국민분열세력, 무(無)정책세력, 전쟁불사세력'으로 규정했다. "자신들을 '언제가는 한나라당으로도 갈 수 있는 세력'이라고 보는 시각에 대한 반박"이라고 기사는 말했다.

한나라당을 그렇게까지 규정했던 김한길이다. 한나라당을 국민분열세력으로 규정했던 그다. 그런 그가 한나라당의 후신인 국민의힘에 합류하면서 국민통합기구인 새시대준비위원장직을 수락했다.

이처럼 한나라당과도 함께할 수 있는 그가 노무현에 대해서는 거부 반응을 보였다. 한나라당과는 함께할 수 있어도 노무현과는 함께하기 힘든 그의 내면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대중이 정치의 주역이 되고 기존 권위가 뒤집히는 노무현식 진보정치에 대한 그의 인식을 반영하는 대목이다.

21세기의 '국민통합'과 어울리는 인사일까

김한길의 정치 이력은 그가 민주계 정당은 물론이고 그 외의 세력과도 손잡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재벌 정당 총재를 가까이서 보좌했고 안철수식 보수정당도 이끌었다. 나아가 '비민주적 권위주의 세력, 수구보수세력, 국민분열세력, 무정책세력, 전쟁불사세력'의 후계 정당과도 이번에 손을 잡았다.

그렇게 할 수 있으면서도 노무현과 진보세력에 대해서는 그러지 못했다. 이는 그가 진보 정치를 포용하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말해도 무방하다. 영호남 갈등이 국민통합의 최대 걸림돌이었던 시절에는 나름대로 역할을 할 수 있었지만, 국민의 층위 양상이 한층 복잡다단해진 지금 상황에서는 그가 역할을 해내기 힘들다는 것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지금 시대의 국민통합 임무에는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라고 평가해도 과하지 않아 보인다.

윤석열은 '국민의힘에 당장 함께하기는 조금 주저되는 세력, 좀 더 중도적인 세력, 합리적인 진보세력을 포용하는 데에 적임자'라며 김한길을 국민과 당원들에게 추천했다. 20세기에는 국민통합에 도움이 될 수 있었지만 21세기에는 국민통합보다는 탈당·창당에 더 능했던 김한길의 개인 이력과 어울리지 않는 평가 아닐까. 

태그:#김한길, #윤석열, #새시대준비위원회, #화개장터, #반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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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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