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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옥천군 안내면 현리 안내유통 황현구씨
 충북 옥천군 안내면 현리 안내유통 황현구씨
ⓒ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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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회관과 우체국, 초등학교와 면사무소, 오랜 양조장과 빛바랜 간판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안내면 현리 버스정류장 앞에는 특별한 가게가 있다. 넓지 않은 공간에 간소한 품목이 전부지만, 유리문에 붙은 '상비의약' 네 글자가 듬직하게 느껴지는 안내유통이다.

큼직한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서면 손님이 쉬어갈 의자와 탁자를 정돈하는 한 사람이 눈에 띈다. 2007년부터 안내유통을 운영 중인 황현구(86)씨다. '누가 찾을까?' 싶은 가게지만, 그는 15년째 안내유통의 불을 밝히고 있다.

2012년, 안내유통의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다

"밭일하다 잠깐, 가게 앞을 지나다 잠깐, 집에 들어가다 심심해서 잠깐" 들르던 안내유통이 새로운 이야기를 써나가게 된 건 2012년의 일이다. 보건복지부 '특수장소에서의 의약품 취급에 관한 지정' 고시에 따라 의원이나 약국, 편의점이 없는 마을에서는 이장의 집이나 특수 지정 장소에서 진통소염제, 소화제, 파스 등의 상비약을 판매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때 약국이나 편의점이 없던 안내면에서는 안내유통이 그 역할을 맡게 된다.

"갑자기 열이 오르거나 체했을 때, 간단한 병인데도 약 한 알이 급할 때가 있지요. 마을 대부분 노인이다 보니 어디 한 군데 아프다고 읍내까지 가기 어렵고 보건지소가 닫았을 때도 그렇고..."

도심에선 편의점만큼이나 쉽게 찾을 수 있지만, 농촌에선 일찌감치 자취를 감추는 곳이 바로 약국.

안내면 사정도 다르지 않다. 황현구씨는 가게 문을 잠그고 집에 돌아간 후에도 "어디가 좋지 않아 약이 필요하다"는 전화를 받으면 언제든 달려나간다. 덕분에 늦은 저녁을 먹고 소화가 안 되는 할머니도, 무릎이 아파 잠들지 못하는 할아버지도, 염색약에 옻이 올라 온몸이 가렵다는 동네 청년도 다시 일상의 웃음을 되찾는다.

"안내면 현리에 주민 등록된 노인만 107명 정도인데, 아침이든 저녁이든 간단한 약이라도 구할 수 있는 곳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약이 필요하다고 연락이 오면 시간 따지지 않고 언제든 가게로 달려갑니다."
 
진통소염제, 소화제, 파스같은 얼마되지 않는 품목이지만, 노인인구가 대부분인 안내면에서는 꼭 필요한 것이 상비약이다.
 진통소염제, 소화제, 파스같은 얼마되지 않는 품목이지만, 노인인구가 대부분인 안내면에서는 꼭 필요한 것이 상비약이다.
ⓒ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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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옥천군 안내면 현리 안내유통 내부
 충북 옥천군 안내면 현리 안내유통 내부
ⓒ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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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안내유통의 간판을 걸다
     
황현구씨가 고향인 안내면 현리로 돌아온 건 정년퇴임을 맞이한 1999년의 일이다. 1963년 서울농업대학교(현재 서울시립대학교)를 졸업하고 강원도 각지에서 교직에 있던 그는, 약 4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도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잊은 적 없다.

"고조할아버지부터 터를 잡고 살아온 제 근간이 안내면입니다. 일하던 때에도 정년퇴임 후에 고향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직 힘이 있으니 고향에서 농사짓고 동네에 봉사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요."

고추와 마늘, 들깨와 참깨, 배추와 무... 고향에 돌아와 농사를 지으며 살다 보니, 계절이 가는 줄도 모르고 바삐 지냈던 젊은 날과 달리 쉬는 날도 생겼다. 황현구씨는 농사 틈에도 동네 사람들과 일상을 나누며 함께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2007년 원래 약국 자리였던 상가를 얻어 안내유통 간판을 걸었다. 넓지 않은 공간에 품목도 얼마 되지 않았지만, 동네 사람들이 잠시 쉬어갈 공간을 만들겠다는 그의 다짐만큼은 분명했다. 그렇게 안내유통 한편에 마을 사람을 위한 의자와 탁자가 만들어졌다.

"고향에 돌아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으니 좋지요. 농사일을 하다가, 또 바삐 살다가 한 번씩 들어와 숨을 돌리는 공간이 되었으면 하고 바랍니다."
 
구씨의 아내와 자녀들
 구씨의 아내와 자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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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고향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꿈꾸며

"아버님과 어머님에 대한 기억, 유년 시절에 대한 기억도 모두 이곳에 남아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안내중학교가 없었으니 자전거로 옥천농업중학교까지 비포장도로를 달려 통학도 했었답니다. 이듬해 열병이 나서 읍내에 작은 집을 얻었지만요."

일제강점기를 살며 배우지 못한 것이 평생의 한이라 말하던 부모님은 어려운 시절임에도 자식만큼은 아쉬움 없이 배울 수 있도록 힘썼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옥천읍에 집을 구해 공부하도록 했고, 서울에 있는 대학에 유학을 보내 배움을 이어갈 수 있도록 했다.

일찍 집을 나와 살다 보니 온 가족이 복닥복닥 살아가던 유년에 대한 기억이 퇴직 이후 고향에 돌아가 봉사하며 살리라는 마음을 부추겼다.

"대학에 합격해 서울에 갔을 때, 아버지께서 (충북)옥천에서 서울까지 올라오셨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두루마기를 벗으니 허리춤에 등록금이 있었지요. 어려웠던 시절이라 한 마을에서 대학에 간다는 사람이 두세 명도 안 되던 시절이었는데, 땅과 소를 팔아 남부럽지 않게 자식을 가르치겠다 하셨습니다."

옥천농업중학교와 옥천농업고등학교, 서울농업대학교에서 배우고 횡성농고, 원주농고 등 농업학교에서 오래 근무했던 그가 농촌과 농촌 교육에 대한 걱정과 애틋함을 품게 된 건 필연적인 일이었을 터. 2010년에는 안내초 총동문회장을, 이후에는 안내중 운영위원장을 지내며 안내면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리라 다짐했다.

"힘닿는 데까지 봉사하며 지내겠다는 생각을 새기며 살아갑니다. 그저 해물지심(害物之心: 물건을 공연히 해치려 하는 마음) 하지 않고, 자식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도록 깨끗하게 살아가리라는 마음뿐입니다."

새벽같이 일어나 토끼를 먹이고, 계절과 건강이 허락하는 만큼 농사를 지으며 하루하루 정돈된 삶을 살겠다 다짐하는 황현구씨. 오늘도 그는 누군가 앉아 잠시 쉬어갈 안내유통의 불을 켠다.
 
충북 옥천군 안내면 현리 안내유통에서 나오는 황현구씨
 충북 옥천군 안내면 현리 안내유통에서 나오는 황현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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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옥이네 통권 53호(2021년 11월호)
글·사진 서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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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옥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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