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보도국에서 뉴스 프로그램을 제작했던 한 프리랜서 방송작가가 JTBC와 합의를 거쳐 퇴직금 명목의 위로금을 받았다. 고용노동청에 해당 퇴직금 지급 진정이 제기된 지 5개월 만이다. 작가들 사이에선 "'노동자'에게만 주는 퇴직금을 작가가 받아 작가의 노동자성을 확인한 사례"라는 환영이 나온다.
 
JTBC와 김한별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장은 이달 중순께 'JTBC의 위로금 지급에 합의하며, 동시에 김 지부장이 고용노동부에 제기한 진정사건을 취하한다'라는 합의서를 썼다. 진정사건은 지난 5월 김 지부장이 JTBC를 상대로 서울고용노동청 서부지청에 낸 퇴직금 진정이다.

합의 절차는 최근 JTBC가 금전 지급을 완료하면서 마무리됐다. 김 지부장은 퇴직금뿐만 아니라 주휴수당과 연차수당도 JTBC가 지급해야 한다고 진정을 냈다. 두 수당 모두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받아야 할 임금이다. JTBC는 김 지부장이 요구했던 금액 전액을 지급했다.

"JTBC 포함한 모든 방송계의 문제"
 
 방송작가유니온(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 조합원이 피켓을 든 모습.

방송작가유니온(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 조합원이 피켓을 든 모습. ⓒ 방송작가유니온

 

김 지부장이 JTBC에 퇴직금을 요구한 이유는 방송사들이 노동법을 위반해 방송작가의 노동을 쓰고 있다고 말하기 위해서다. 작가의 실질적인 업무 과정을 보면 방송사에 고용된 직원과 다를 바 없는데도, 방송사가 프리랜서 계약을 남용하며 작가의 노동권을 박탈한다는 문제의식이다. 김 지부장은 "내가 JTBC에서 일했을 뿐 JTBC를 포함한 모든 방송계의 문제"라고 말했다.
 
실제 김 지부장은 고용노동청에 진정서를 내며 자신이 얼마나 방송사에 종속돼 노무를 제공했는지를 입증하는 증거도 제출했다. 김 지부장은 "작가들은 모든 과정에서 담당 PD의 지휘·감독에 따르고, 특히 아이템 선정부터 대본작성은 PD 지휘 없이 독자적으로 할 수 없다"라고 노동청에 강조했다.
 
그는 2019년 7월부터 지난 1월까지 1년 9개월여간 JTBC 오전 뉴스프로그램 '아침&'에서 일했다. 국제·경제·법률 등 분야의 현안을 정리하는 코너를 맡아 코너 구성안과 대본을 썼다. 주 업무 외 뉴스 출연진 의전이나 이들 주차증 관리, 출연료 정산 등의 행정업무도 맡았다. '프리뷰 작성'도 맡아 뉴스 생방송을 보며 속기를 받아치고 이를 홍보팀 등에 전달하는 것도 작가의 일이었다.
 
매일 오전 3시 30분 출근해 오후 2~3시경까지 일했다. 명시적인 출근 시간 지시가 없어도 아침 7시30분 생방송 시작에 맞추려면 오전 3시대에 출근할 수밖에 없었다. 생방송 전엔 PD와 논의하며 뉴스 아이템을 찾고 원고 초본과 방송 자막을 작성했다. 생방송이 끝난 후엔 각종 행정업무를 처리하면서 내일 아이템을 찾고 출연진을 섭외했다.
 
JTBC는 같은 문제로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된 전력이 있다. 김 지부장과 같은 프로그램에서 일한 A작가가 지난해 4월 고용노동청에 낸 퇴직금 진정이다. 사건을 조사한 서울서부지청은 JTBC가 'A작가에게 퇴직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A작가의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성을 인정한 결과다.

JTBC가 이에 불응하자 근로감독관은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그러나 지난 3월 31일 서울서부지검이 '퇴직금 미지급에 고의가 없다'라며 JTBC에 무혐의 처분하며 사건은 종결됐다. 이번 합의에 A작가도 거론이 됐으나 당사자가 거부해 합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방송작가도 노동자' 결정 점점 늘고 있다
 
김 지부장은 "이번 사건은 최근 알려진 SBS '궁금한 이야기 Y' 부당해고 사건에서처럼, 지난 3월 MBC '뉴스투데이' 중앙노동위원회 판정과 고용노동부의 서울 지상파 3사 방송작가 근로감독이 큰 영향을 미쳤다"며 "일련의 흐름은 방송작가가 프리랜서가 아닌 노동자로서의 실질을 갖고 일한다는 사실과 방송사들도 이를 부정할 수 없다는 점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말했다.
 
 지난 9월30일 발행된 방송작가유니온 노보 5호 1면 갈무리.

지난 9월30일 발행된 방송작가유니온 노보 5호 1면 갈무리. ⓒ 방송작가유니온

 
 
SBS '궁금한 이야기 Y' 사건은 지난 5월 한 작가가 프로그램 합류 뒤 한 달 만에 계약해지를 통보받아 서울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한 사안이다. 사건은 SBS가 계약서상 계약 기간인 12개월 임금을 전액 지급하기로 합의하면서 종결됐다.

당시 지노위 심문회의에 들어갔던 김 지부장은 "공익위원과 근로자위원이 작가 측에 '답이 나와 있는 사건'이라거나 '노동자성이 인정된 판례가 있다'며 화해를 권고했다"고 전했다. 노동자성 인정 주장에 수긍하는 지노위원들 발언이 작가의 합의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
 
지난 3월 중앙노동위원회가 MBC 보도국 작가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한 결정은 이후 유사한 사건에서 준거점으로 활용되고 있다. 10년 동안 MBC 아침뉴스 '뉴스투데이'를 제작했던 작가 2명이 계약 만료 전 구두 통보로 해고돼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해 이긴 사건이다. 김 지부장은 "사실 JTBC가 끝까지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거라고 예상해 각종 법적 대응을 염두에 뒀다"며 "MBC 작가 사건의 영향력이 방송계에 퍼진 결과"라고 해석했다.
 
김 지부장은 이번 합의 의미를 "작가가 청구한 체불액 전액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한 합의로, JTBC에서 방송작가 노동자성 다툼을 사실상 포기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사실 나보다 훨씬 더 종속적으로 일하는 JTBC 작가들이 많다. 보도국엔 특히 2011년 개국 때부터 일한 작가, 기자처럼 취재하는 작가도 많다"며 "이들 모두 퇴직금, 주휴수당, 연차수당 등 노동자로서 응당 받아야만 하는 노동의 대가를 마땅히 받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JTBC는 이와 관련 "해당 작가가 그간 JTBC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하는 차원에서 위로금 지급한 것"으로 "해당 건만으로 프리랜서 작가의 근로자성을 인정했다고 할 수는 없으나, JTBC는 현재 비정규직 인력의 처우 개선 방향에 대한 논의를 진행 중이며 해결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성상민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사무차장은 "한 작가 개인의 문제로 좁게 해석하게 놔둬선 안 된다"며 "방송계엔 작가는 물론이고 다른 직종에도 '무늬만 프리랜서'가 많다. 이 결과가 똑같은 이들에게도 같게 적용될 수 있도록, 구조를 개선하는데 주안점을 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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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영 기자입니다. 제보 young@ohmynews.com / 카카오톡 rockyrkd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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