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색깔" 포스터 영화 포스터 이미지

▲ "가족의 색깔" 포스터 영화 포스터 이미지 ⓒ 영화사 진진


* 이 기사에는 영화의 주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1_조금 특별한 셋의 조합, 가족이 되다
 

규슈 남단 가고시마 지역을 오가는 철도운전사 세츠오는 어느새 60을 앞두고 퇴직을 예정하고 있다. 그런 그가 밤늦게 퇴근하고 돌아오던 날 집 앞에 젊은 모자가 여행 캐리어와 짐 가방을 들고 기다리고 있다. 둘은 자신들이 세츠오의 며느리와 손자라고 말한다.

알고 보니 관계를 끊다시피 살고 있던 외아들 슈헤이의 가족이다. 하지만 슈헤이는 뇌출혈로 얼마 전 급사해 뼛가루 항아리로 돌아온 상황. 모자는 아들 슈헤이가 동업자에게 사기당한 빚 때문에 장례를 치르자마자 도쿄의 셋집에서 쫓겨난 상태다. 결국 다른 방도가 없어 생면부지의 시아버지/할아버지를 의지해 찾아온 것. 세츠오는 일단 놀라움을 가라앉히고 모자를 집에 들인다.
 
그런데 며느리 아키라와 손자 슌야는 나이차가 모자지간이라기엔 너무 적어 보인다. 여기엔 비밀이 있다. 세츠오도 이를 아는 눈치다. 시아버지와 며느리는 아들이 죽은 뒤에야 첫 대면한 처지, 할아버지와 손자 역시 공식적으로는 이제 처음 만난 관계, 며느리와 손자는 피가 섞이지 않은 사이이다. 이 셋을 이어주는 헐거운 아교풀은 오로지 이미 죽은 아들뿐이다.
 
셋은 각자의 숙제를 짊어진 채 기이한 동거를 시작한다. 초등학교 4학년, 이제 10살인 손자 슌야는 생모와 일찍이 이별한 뒤 생부마저 떠나보낸 지 채 한 달도 안 된 상황이다. 슌야는 보호자인 아키라를 '엄마'라 부르지 않고 '아키라 짱'이라 부른다. 의지할 곳 없어 아키라에게 기대긴 하지만 갓 열 살이 된 아이로선 급격한 변화와 작별이 당황스럽기만 한 시기다. 아키라도 뭔가 상처를 안고 살아온 듯, 딱히 의지하거나 연락할 곳도 없어 보인다. 세츠오는 무덤덤하게 계속 현업을 이어가는 중이다.
 
작은 파문이 갓 형성된 삼대에 걸친 이 가족에게 발생한다. '철덕'인 슌야를 위해 운전면허도 없던 아키라가 전동차 운전사를 지망하게 된 것이다. 이제 세츠오와 아키라는 직장에서 고참과 수습으로 이중의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한편 슌야는 도쿄에서 가고시마로 전학을 와 적응에 만만찮은 진통을 겪고, 그 과정에서 담임교사 유리와 아키라는 서로의 비밀을 공유하게 된다.
 
2_익숙한 가족 드라마에 녹아든 소소한 변주
 
"가족의 색깔"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가족의 색깔"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영화사 진진

 
<가족의 색깔>은 제목처럼 각자의 상처와 사연이 있는 낯선 이들이 모여 단계별로 시련을 겪으며 좌절도 하고 난관에 부딪혀가면서 비온 뒤에 땅 굳어지듯 새로운 가족을 형성해가는 이야기다. 일본 인디영화를 자주 접해온 이들이라면 전혀 낯설지 않은 소재다. 아니 너무 익숙해 조금 식상한 이야기일 법하다. 조금 과장하자면 영화를 보지 않고도 배경설명만 듣고 줄거리를 가상으로 전개 가능할지도? 영화를 연출한 요시다 야스히로 감독 역시 자신의 필모그래피 대부분을 비슷한 부류의 작업들로 채워왔다.
 
그렇다면 관건은 전개가 능히 짐작되는 익숙한 이야기 속에서 얼마나 장르적 완성도를 높여내느냐? 그리고 빤한 내용에 무리 없이 적절하게 이색적인 변주를 추가할 수 있느냐? 정도가 과제로 남을 것이다. 과연 <가족의 탄생>은 어떻게 전형적인 가족영화에 참신함을 가미해 답습에 그치지 않는다는 평가를 얻을 수 있을까?
 
2_1. 가족영화의 전형에 여성연대를 추가하다
 
일단 기본적 이야기 전개는 가족영화의 전형성 그대로이다. 위기는 단계별로 배정되어 있고 너무 상황이 잘 풀린다 싶을 때쯤 어김없이 공포영화 슬래셔 무비의 법칙 마냥 이때다 하고 고비가 들이닥친다. 하지만 익숙한 설정 속에서도 과도하게 선을 넘지 않고 우연성과 개연성의 기준선을 아슬아슬 지키는 건 유사한 장르 작업에 익숙한 감독의 연출력 덕일 테다(감독은 전작들에서 파격적이진 않아도 꽤나 무난한 호흡을 선보여 왔었다). 그리고 불쑥불쑥 돌출되는 사건들이라도 기본 줄거리나 주제와 동떨어진 흥미 위주의 것들은 거의 없이 어떤 식으로건 중심부와 연결고리가 마련되어 있는 부분들이라 큰 위화감은 들지 않는다.
 
그리고 영화는 제법 흥미로운 소소한 변주를 몇 가지 선보인다. 첫 번째는 여성간의 연대다. 아키라는 시아버지 댁에 의지는 하고 있지만 슌야를 위해서라도 자립해야 한다. 그저 충동적으로만 보일 수 있는 철도 운전사 지망 또한 시골마을에선 보기 드문 일이다. 실제 연수과정에서 아키라 외에는 모두가 남성 수습생뿐이다. 첫 실습에 나서 작은 실수를 저질러도 '여자가 운전했어?'라는 색안경을 쓴 시선이 더 차갑게 다가온다.

지역사회 특유의 폐쇄성 속에서 한 부모 가정의 젊은 어머니는 자신의 직장에서나 슌야의 학교에서나 무시받기 쉬운 존재다. 하지만 그런 소수자적 특성 때문에 아키라는 담임교사 유리가 말 못하고 끙끙 앓는 비밀의 이해자이자 격려자가 될 수도 있다. 상처입고 외로운 동갑내기 여성들은 서로 큰 힘은 못 되더라도 작은 도움을 주고받으며 친구가 된다.
 
물론 <가족의 색깔>은 본격적으로 여성연대를 주창하는 주제의식을 선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이 영화가 드러내려 하는 '가족'의 가치는 과거 세대의 '정상가족'을 개념으로 삼지는 않으려 함을 분명히 한다. '버디' 무비의 주인공들처럼 공감과 우애를 나누는 아키라와 유리는 비록 외부의 편견에 시달리며 홀로서기에 버거워하는 시간을 보내지만 남자에게 의존하려는 태도와는 거리가 멀다. 그녀들이 직접적으로 목소리를 높이지는 않더라도 영화 속에서 그녀들에게 부당한 차별적 언사를 행하는 이들의 못난 모습을 통해 가족 형태의 변화해가는 시류를 영화는 적절히 첨가한다.
 
2_2. 로컬 요소의 적극적인 활용이 가져온 차별화
 
"가족의 색깔"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가족의 색깔"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영화사 진진

 
두 번째로는 '철덕'들이라면 환호할 장면들이다. 철도원 삼대처럼, 세츠오는 기차를 운전한 지 37년째를 맞이했다. 그는 아들 슈헤이가 자신을 이어 철도 일에 종사하리라 믿었지만 열심히 철도를 그리던 아들은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어 도쿄로 떠났고, 거듭된 대립으로 부자간 관계는 냉랭해졌다. 모자가 찾아오기 전 세츠오는 조기퇴직을 신청하고 별다른 노후 계획도 없이 반복된 나날을 보낼 뿐이었다. 부인과도 사별했고 외아들마저 심지어 자신이 알지도 못한 사이에 떠나보냈던 세츠오는 사실상 늘그막에 쓸쓸한 여생만 남은 상태다.

하지만 어릴 적의 아들처럼 '철덕'이 된 손자와, 그런 손자를 위해 운전사가 되려는 며느리의 존재는 다시 철도란 존재를 통해 이 신생가족을 연결시켜준다. 그 과정에서 삼대의 대화를 연결해주는 깨알 같은 철도 상식과, 아키라가 수습운전사로 연수와 실습에 임하면서 마치 관객이 그 과정에 동승하는 것처럼 우리가 일상적으로 쉽게 접하기 힘든 철도 운행 소개를 접하게 되는 건 덤이다.
 
특히 일본의 열차 계열 중에서도 규슈 남단 가고시마와 구마모토 일대만 운행하는 히사츠 오렌지 철도의 HSOR-100형 1량 1편성 전동차가 또 다른 주인공 격으로 영화 속 중요한 캐릭터로 등장한다. '철덕'이라면 일본의 철도노선 상황을 꿰고 있을 터. 원래라면 폐선이 되거나 재래선(신칸센 제외한 철도노선)에 부분 통합되면서 없어졌어야 할 구간노선이지만, 지역특성상 폐지하지도 못하고 민간에 노선을 넘기지도 못한 상황이다. 그래서 해당노선은 반관반민의 제3섹터 형태로 110여 km라는 짧은 거리를 1량만 운행하는 중이다. 이 희귀한 노선을 마음껏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해당노선의 명물로 주말에만 운행되는 식당 열차도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히사츠 오렌지 철도와 특유의 열차 소개에 할애된 비중은 자연스럽게 세 번째 특이점이라 할 지역성, 향토색으로 이어진다. 도쿄와 가고시마라는 일본의 동과 서로 나뉜 긴 거리는 극중에서 아키라 모녀가 새 고향에 정착하는 과정의 난관을 상징하는 것은 물론, 세츠오와 슈헤이 부자간의 감정의 골과 함께 그럼에도 온전히 잃기는 힘든 고향에 대한 향수까지 확장된다.

가고시마를 포함한 과거 사쓰마 번 시절, 일본에 처음 상륙해 뻗어나간 지역 특산물 고구마를 이용한 음식이나 술이 수시로 등장해 영화 속 인물들의 정서를 이어붙이는 감초 역할을 쏠쏠하게 수행한다. 실제 지역 명물인 고구마 소주와, 타 지방에선 흔하지 않을 고구마 카레가 영화의 개별 국면에서 차지하는 함의를 연관시켜보는 것도 관람할 때 흥미유발 포인트로 작용할 법하다.
 
3_낡은 가족 드라마에 새로운 피를 수혈한 힐링 무비
 
영화는 그렇게 익숙한 가족 드라마에 몇 개의 부가적 조미료를 과하지 않게 적절히 가미해 두 시간의 여정을 크게 탈선하지 않고 안전운행을 이어나간다. 결말에서도 통속적 가족영화 속성에서 조금은 벗어나는 예외적 요소가 두 개쯤 발견된다.
 
3_1. 영화가 선보인 사려 깊은 미덕
 
첫째는 그저 가족에 헌신하거나 구성요소가 되길 요구하지 않는 조부모세대의 사려 깊음이다. 세츠오는 아키라에게 피가 섞이지 않았다고 해서 슌야와 떨어뜨려놓으려 하거나, 반대로 따지고 보면 피 한방울 안 섞인 슌야의 '엄마' 노릇을 강제로 하기를 강요하지 않고, 떠나보낸 아들에게 말년에 해주지 못했던 자상한 충고와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 물론 세츠오 또한 이 기묘한 새 가족들과의 동거 속에서 무뚝뚝하고 고집 강하던 자신의 생을 돌아봤기 때문일 테다.
 
둘째는 가장 혼란하고 위태로울 어린 세대에 대한 우선순위 배려다. <가족의 색깔>에서 뜻밖에 만난 가족은 모두 상처와 아픔을 가득 안은 존재들이다. 서로 모진 말을 주고받기도 하고, 차갑게 외면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내 스스로를 돌아보고 과거를 회상하며 자신이 처했던 상처를 물려주지 않으려 성찰을 중단하진 않는다. 그 덕분에 이들은 가장 힘겨워할 존재가 누구인지 돌아보고 우선순위를 현명하게 따져볼 수 있는 여력을 잃지 않는다. 그런 섬세한 고려를 통해 영화는 주말드라마적인 신파성과 혈연우선주의 이데올로기를 저만큼 떨어뜨려놓는 미덕을 드러낸다. 파격적이진 않더라도 의미 있는 반영인 셈이다.
 
3_2. 배우들의 연기가 빚어내는 '가족의 색깔'
 

국내엔 특히나 <곡성>으로 친숙해진 쿠니무라 준이 맡은 세츠오는 이 배우가 얼마나 다양한 색깔을 보유하고 있으며 표정만으로도 여러 감정을 연기할 수 있는지 증명한다. 감독들이 믿고 연락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아이돌 급 스타 배우이던 아리무라 카스미는 아키라 역을 맡아 무난하게 젊은 엄마를 소화한다. 담임교사 유리를 맡은 사쿠라바 나나미 역시 적절한 선의 연기를 선보인다. 고인으로 등장하는 슈헤이와 아들이자 손자인 슌야는 실제 부자관계라 해도 될 만큼 닮았다. 별것 아닌 듯해도 이 부자의 싱크로율이 영화 속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꽤 중요하기에 캐스팅에 공을 들였음이 분명하다.
 
제목처럼 이 꽤나 대안적인 구성을 이룬 가족의 색깔은 과연 무엇일까? 화려한 원색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영화 속 주 무대인 히사츠 오렌지 철도와 가고시마 시골의 풍경처럼 적당히 여러 색이 뒤섞여 있지만 통통 튀는 원색이 아니라 조금 낡아서 서로 뒤섞인 채 조화를 이루는 그런 편안한 혼색 니트 느낌이랄까. 지역 특산 고구마의 갈색이 진한 카레 빛에 가까운 걸까. 가족이 모여서 편안한 차림으로 카레를 만들어먹는 풍경이 아마 영화 속 가족의 탄생과 가장 맞닿아있지 않을까?
 
<작품정보>
가족의 색깔 Our Departures, かぞくいろ-RAILWAYS わたしたちの出発-
2018|일본|드라마
2021.10.27.개봉|121분|전체관람가
감독 요시다 야스히로
주연 쿠니무라 준(세츠오 역), 아리무라 카스미(아키라 역)
출연 사쿠라바 나나미(사사키 유리 역)
수입 및 배급 영화사 진진
가족의 색깔 요시다 야스히로 쿠니무라 준 아리무라 카스미 사쿠라바 나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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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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