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세지감이다. 필자가 국민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1·2학년은 2부제 수업을 했다. 한 반이 70명이 넘던 학년도 있었다. 1964년, 출산율 5.0%, '덮어 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의 시절이었다. 

그렇게 전 세계에서 출산율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였던 대한민국, 적극적인 산아제한 정책 덕분일까, 70년대 들어 3.0%로 출산율이 떨어졌다. 그러던 것이 80년대에 들어서는 2.0% 미만으로 떨어지더니, 2000년대 들어서는 전세계 꼴찌가 되었다. 2019년 0.92%, 코로나로 인해 더욱 떨어졌다. 2020년 0.84%이다. 사망자가 출생인구 보다 더 많은 '인구 데드크로스'를 지났다. 60대 이상이 전체 인구의 1/4이다. 

그런데 정부는 적극적으로 저출산에 대해 대응하고 있다고 한다. 저출산과 관련된 예산만 무려 46조 원이다. 지난 20일 방영한 KBS1의 <시사 기획 창>은 그 많은 저출산 예산 46조 원의 실체를 밝힌다. 이를 위해 '저출산위원회'가 펴낸 700쪽 짜리 보고서를 분석했다.

누구를 위한 저출산 예산인가
 
 <시사 기획 창- 정말입니까? 46조원>

<시사 기획 창- 정말입니까? 46조원> ⓒ KBS1

 

46조 6846원의 저출산 예산에는 127개의 과제가 포함된다. 그 중에 1조 원이 넘는건 12개, 이들이 저출산 예산의 핵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들 핵심적 예산이 제대로 씌여지고 있을까? 저출산 예산의 뼈대를 이루는 아이돌봄에 해당하는 예산이 15조 7천 억이다. 현실은 어떨까.

직장맘 박신영씨,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리러 가느라 허겁지겁이다. 보육로 지원도 받고 있고, 아직 아이가 어려 아동수당도 받는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건 버겁다. 법적으로 정해진 출산 휴가와 육아 휴직 시한이 있지만 1년이 안 돼서 스스로 복직을 신청했다. 금전적 이유 때문이었다. 아이를 키우며 집에 있다가는 빚을 지는 처지에 놓일 거 같아서였다. 지원도, 수당도 정작 아이를 키우는 현실에서는 복직을 미루고 아이를 키울 만큼의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그래도 신영씨는 수당도 받고, 보육료 지원도 받는다. 맞벌이를 하면서 세 아이를 키우는 김영석씨네는 다자녀 가정이다. 덕분에 다자녀 가정으로서의 혜택이 있다. 그런데, 그 혜택이란 게 자세히 들여다보면 '눈 가리고 아웅 식'이다. 전기 요금 1만4000원 할인, 수도세 4340원 할인, 가스 요금 1650원 할인, 물론 그런 자잘한 것들이 다 모여서 엄청난 규모의 예산이 되겠지만, 영석씨의 입장에서는 그저 좀 깍아줬다 정도의 느낌이다. 정작 돈이 많이 들어가는 때, 즉 아이들의 초·중등 시절에는  아동수당도, 육아휴직의 혜택도 없었다. 

그런데 출산 휴가나, 육아 휴직 등과 관련된 예산의 65%가 대부분 대기업, 공공 기관의 몫이다. 일을 해도 정규직이 아니면 혜택은 그림의 떡이다. 방송국에서 일하는 VJ 등 비정규직이나 연극 배우 같은 프리랜서에게는 육아 휴직도, 출산 휴가도 없다. 연극 배우 유정민씨는 아이를 등에 업고 공연하기도 했다. 연극 배우처럼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은 직업일수록 돌봄이 절실하지만 그런 혜택은 없다. 

전국 곳곳의 직장 어린이집은 설치비와 인건비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이와 관련된 예산만 올해 700억 원이 들어갔다. 그중 가장 많은 지원을 받은 곳은 어디일까?삼성 전자가 29억을 가져갔다. LG와 포스코도 10억 원 안팍, KBS와 MBC도 1억원 안팎의 지원을 받았다. 국가적 지원을 잘 받으려면 대기업, 공공기관 직원이어야 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정작 도움이 필요한 열악한 계층은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이다.  

특히 비정규직 742만 명, 그중 3명 중 1명이 1년에서 2년 정도의 기간 계약을 한다. 다시 복직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 때문에 육아 휴직을 이용하기가 힘든 현실이다. 게다가 고용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직장도 많다. 비정규직 46.1%만 고용 보험에 가입돼 있다. 제도적 보장을 받을 수도 없고, 짧은 계약 기간이 되풀이 된다. 그러다 보니 육아 휴직과 같은 제도는 남의 나라 이야기이다. 

게임 사업이 저출산 예산?
 
 <시사 기획 창- 정말입니까? 46조원>

<시사 기획 창- 정말입니까? 46조원> ⓒ KBS1

 

그렇다면 저출산 예산은 다 어디에 쓰인걸까. 주택 구입, 전세 자금 대출 관련 9조 9천억, 청년 맞춤형 임대 주택 공급, 신혼부부 매입, 전세, 임대 주택 공급, 신혼 부부 행복 주택 관련 예산이 22조 2천억 원이다. 이들이 저출산 예산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한다. 과연 이들 예산은 저출산 극복에 도움이 될까? 

경기도 인근 지역에서 행복 주택에 사는 박현호씨, 보증금 500만 원에, 임대료 6만원, 관리비 8만 원을 지출하며 살고 있다. 햇빛도 안 들던 지하 방에서 살던 때에 비하면 감지덕지다. 하지만 이곳에서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아 기를 수 있냐고 물으면 고개를 갸웃거린다. 

우선 주변이 개발 중이라 상권이 형성되어 있지 않아 살기가 불편하다. 게다가 싱글인 그가 살기엔 적당한 6.4평이지만, 주거비 절약이나 자산 형성에 도움을 줄지언정 부부가 살 공간으론 부족하다. 게다가 원한다고 다 들어갈 수도 없다. 수십, 수백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가야 한다. 프랑스, 스웨덴의 정부 지원 임대 주택이 18%에 이른 반면, 우리가 겨우 8%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들 예산은 결국은 회수될 돈이다. 보이는 금액만 클 뿐, 착시 효과인 것이다. 정부는 5만호를 더 건설하겠다고 장담하지만, 그 혜택 조차도 신혼 부부 중 25%에게만 돌아갈 수 있다. 

더 심각한 것은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이라던가, 웹툰 융합센터 건설이라던가, 이들 예산 담당자조차도 왜 이 항목이 저출산 관련 예산인지 모르는 사업들이 저출산 예산으로 운영되고 있다. 국립 종합 직업 체험관인 성남 잡월드도 미래 역량 개발이란 명목으로 들어가 있다.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난 것일까. 각 부처별로 저출산에 투입할 수 있는 자원을 각출하다 보니 어중이떠중이 사업이 다 저출산 사업으로 둔갑한 것이다. 결국 이런 사업들은 일종의 부풀리기 저출산 사업인 셈이다. 

실제 프랑스 등에서는 매달 130유로, 우리 돈 18만 원 정도의 지원을 해주고 있다. 20세가 될 때까지 받는다. 우리처럼 법으로는 18세 이하가 아동이라 정의내려 놓고 정작 7세 미만에게만 아동 수당을 지급하는 현실에서는 저출산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다. 아이를 키우기 위한 도움이 7세 미만에만 필요한 건 아니다.

앞서 3명의 아이를 키우는 김영석씨는 태권도장을 운영한다. 김영석씨는 자신의 아이 3명을 키우는 것도 어렵지만 태권도장의 운명이 더 우려된다. 해마다 눈에 띄게 아이들이 줄어드는 현실이다. 

말뿐인 저출산 예산은 대한민국의 낮아지는 출산율을 전혀 제어하지 못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 https://brunch.co.kr/@5252-jh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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