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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초부터 단계적인 일상 회복(위드 코로나)을 시작할 것이라는 소식이 조금씩 전해지면서 요즘 내 마음은 굉장히 들뜨고 설렌다. 바로 초중고 전면 등교가 가닥을 잡아가고 있기 때문인데, 아이들과의 대면 수업을 손꼽아 기다렸던 나에게는 정말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방역 등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아이들이 학교에 돌아온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의료진들의 노력에 큰 존경을 표하며 오늘은 소소한 우리 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담임교사로 우리 반 아이들을 '육사랑둥'이라고 부르고 있다. 서로 사랑이 넘쳤으면 하는 마음에서 붙인 별명인데 역시 누가 지었는지, 한 명 한 명 모두 어디 가서 빠지지 않을 사랑둥이들이다.

올해 초부터 보호자들과 아이들의 관심사는 "선생님, 저희 언제 학교 가요?"였다. 그도 그러할 것이 소중한 5학년 1년이 코로나로 인해 증발하듯 어물쩍 넘어갔으니 초등학교 마지막 해가 될 올해만큼은 등교하는 것을 원하는 듯했다.

하지만 올해야말로 본격적인 온라인 수업의 해였으니... 특히 우리 학교 고학년 학생들은 5일 중 3일은 온라인, 2일은 등교였기 때문에 아이들은 목요일 아침만 되면 온라인 수업으로 인해 서로 못 만나 쌓인 회포를 푸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렇게 등교를 해서 아이들을 대면할 기회가 적다보니 나 스스로도 줌 수업만 하는 사이버 교사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고 이는 내 나름대로의 교육철학(작지만 미약하게 성장중이다)을 실현하기 매우 어려운 환경이었다.

내가 아이들과 함께할 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아마 "왜 그렇게 생각하니?"일 것이다. 나는 거창하지만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호모 사피엔스(지혜가 있는 사람)를 키워내는 것이 교육의 최종 목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자신만의 언어로, 내 생각을 한 줄이라도 말하고 쓸 수 있는 사람. 표현이 어렵더라도 나다움이 뭔지 아는 사람. 1년, 짧다면 짧은 시간 내 손을 거쳐간 아이들에게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근육이 어느 정도 붙는다면, 그것만큼 고마운 것이 있으랴.

생각 글쓰기 프로젝트를 시작하다
 
학생의 생각글과 그에 대한 나의 답글
 학생의 생각글과 그에 대한 나의 답글
ⓒ 남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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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이 길었다. 그래서 이러한 내 생각을 실현하기 위해, 그리고 온라인 수업이라는 간극을 메우기 위해 우리 반의 중요 프로젝트를 시작하였으니, 바로 '생각 글쓰기' 프로젝트이다. 생각 글쓰기는 이미 교사들 사이에서 '주제 글쓰기'로 불리며 학교 현장에서 많이들 쓰고 있는 방법이다. 하지만 나는 어떤 주제를 교사가 주고 아이들이 수동적으로 글을 써온다는 어감이 이름에 담겨 있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고 여겨 '생각글'이라 명명했다.

"생각글쓰기" 활동은 두 가지 교육적 목표를 가지고 시작되었다. 첫째, '사고하는 자기주도적 글쓰기 교육', 둘째, '생각글 답글을 통한 교사와의 진정성 있는 라포(rapport) 형성'. 이 중 두 번째 목표에 많은 심혈을 기울였는데, 결론적으로 이 생각글 답글이 우리 반을 진정한 육사랑둥이로 만들어 주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5줄의 생각글을 써오면 나는 최소 10줄 이상 답글을 수기로 남긴다. 또 아이가 15줄의 생각글을 써오면 나도 그에 상응하는 양의 답글을 남긴다. 모든 생각글은 연필로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쓰도록 했다. 즉, 아이들이 자신의 글을 통해 선생님과 소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수 있도록 매 주 개별상담을 한 셈인데, 이 부분이 아이들에게 학교의 존재감이 흐릿해지는 것을 막아주었고 우리 반 사이의 유대감을 심어주었다고 나는 믿고 있다.

생각글 공책을 돌려받은 뒤 상기된 얼굴로 내가 쓴 답글을 열심히 읽어보는 모습들이 어찌나 깜찍한지... 연필로 쓰게 한 것은 저 세상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교정하기 위한 특별지침이었다. 겸사겸사 소근육 발달도 되고, 눈 나빠지는 것 투성이인 요즘 교육 환경에서 이 아날로그 한 스푼은 내 고집이었다.

'학급문집, 책을 엮어보자'란 생각을 하게 된 계기
 
▲ 육사랑둥이 생각글 레시피
ⓒ 남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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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글을 쓰자고 했을 때의 다양한 반응들, 첫 답글을 써 주었을 때 아이들의 놀란 표정을 잊을 수 없다. 그 이후부터 아이들은 고사리같은 손으로 통통 튀는 생각들을 열심히 써오곤 했다. 생각글을 쓴 뒤부터 글에 무감각하던 아이들이 친구의 글에 호기심을 갖게 되었고, 자신의 숨은 글재주를 발견하게 되었으며, 글을 꾸준하게 쓰는 습관을 들이게 되었다고 자부한다.

나도 생각글쓰기 활동을 하면서 아이들의 마음에 한 발짝 더 가까워졌고, 그들에게 듣고 배우는 것이 많았다. 특히 아이들의 생각글 공책을 싸 들고 퇴근해서 밤에 답글을 써줄 때의 그 느낌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고단하고 힘들었지만 아이들의 글을 보며 나도 많은 위로와 행복을 느꼈으니 말이다.

꾸준하고 성실하게 한 권의 글쓰기를 한 이들은 이제 한 명의 꼬마 작가들이다. 이미 우리 반에서는 내가 그렇게 불러주고 있는데,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학급문집, 책을 엮어보자.'

우리 반 아이들은 목요일 아침만 되면, 선생님이 오늘은 어떤 친구의 생각글을 읽을지 기대하곤 한다. 마음 같아선 보석같은 모든 글을 다 읽어주곤 싶지만 고르고 골라 고심해서 한두 편 읽어주곤 한다. 이렇게 구연동화같은 시간은 좋아하면서도 한두 명씩 자기 글 공책은 꼭 잃어버리곤 했는데,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책을 엮어보자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아이들의 뭉클한 소감
 
문집이 나온 뒤 아이들이 학급 밴드에 올린 글
 문집이 나온 뒤 아이들이 학급 밴드에 올린 글
ⓒ 남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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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학년 1학기 국어 마지막 단원, 마지막 차시에 학급 신문 만들기 활동이 있는데, 나는 과감하게 그 단원을 생각글 책 출판으로 재구성하기로 했다. 계획은 1학기 한 번, 졸업 전 한 번, 총 두 번 책을 내는 것으로 잡았다(서점에서 출판되는 것은 아니다). 그 동안 학생당 10편 정도의 생각글을 썼는데, 여름방학전까지 4편정도 더 써서 그 중 5~6편씩 실을 계획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200페이지에 달하는 <육사랑둥이 생각글 레시피>가 탄생하였고, 그 과정은 엄청 힘들었으나, 해피 엔딩이었다. 아이들 반응은 아래와 같다.
 
"책을 만들면서 많은 좋은 추억을 쌓은 것 같고 우리반 친구들이 단합하여 한 권의 책을 낸다는 것이 좋았다. 각자의 글에 각자의 개성이 담겨 있어 다른 친구들의 글을 보는 것도 재밌었고, 편집하는 것이 힘들기도 했지만 재밌던 기억이었던 것 같다."(강OO)


"우리반이 책을 낸다는 것이 정말 신기했다. 원래는 글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쓰다보니 좋아지게 되었다."(김OO)

"내 이야기를 책으로 만든다는 사실이 정말 설렜고, 나중에 보면 정말 추억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쓸 때 자꾸 오타도 나고 6개나 쓰려니 꽤 힘들었다. 그래도 정말 재밌었다."(박OO)

"생각글을 쓰고 문집을 만들면서 힘들고 머리가 아프기도 했지만, 역시 우리가 하나의 책을 만들어냈다는 뿌듯함은 그 힘듦보다 컸다. 문집 2편도 만들면 좋을 것 같다. "(김△△)

"나는 책을 만들면서 정말 여러 가지의 감정과 느낌을 많이 받았다. 어렵고 힘든 일도 많았지만, 우리반 27명과 함께 글을 쓰는 시간이었기에 너무 좋았고, 이렇게 끝나니 아쉬운 점도 많다. 다음에도 또 문집을 만들면 좋을 것 같다."(임OO)


이렇게 2021년 6학년 봄부터 여름까지 아이들의 열정이 녹아있는 책이 나왔을 때의 그 희열감과 성취감이란. 내가 아이들보다 더 감동해서 눈물이 찔끔 나올 뻔했다.

나는 이제 우리 반 아이들과 헤어질 준비를 하고 있다. 다음 주면 중학교 원서를 쓰는데 참 마음이 헛헛하다. 생각글은 2학기에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고, 아이들의 글솜씨는 늘었고 학교 일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담임의 답글은 짧아졌다. 하지만 아이들은 의연하다. 약간의 서운함을 내비치면서도 놀랍도록 성장한 자신의 생각을 다음 주에 들고 온다. 이렇게 커가는 거겠지.

코로나 팬데믹 상황으로 언택트 시대가 도래하면서 사람 사이 거리두기는 자연스러워졌다. 하지만 올해 내가 어렴풋이 느낀 것은 학교가 물리적 공간으로써 왜 존재해야 하는지, 왜 우리가 얼굴을 맞대고 함께해야 하는지에 대해 얕게나마 깨달았다는 점이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교육 현장도 1년 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모습으로 빠르게 변모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교육자로서 학교라는 공간에 있을 자격이 지속되는 한, 선생님에 대한 아이들의 무조건적인 사랑에 응답하기 위해 다시 원점으로, 처음으로 돌아가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마음을 두드릴 것이다. 그것이 학교가, 교사가 아이들의 사랑에 답하는 길일 테니 말이다.

태그:##육사랑둥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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