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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 가면 쉽게 만나는 풍경. 길가에 핀 억새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시골에 가면 쉽게 만나는 풍경. 길가에 핀 억새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 장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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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수생 식물인 갈대. 절대 산에는 자라지 않지만, 사람들은 억새와 갈대를 잘 구별하지 않는다.
 반수생 식물인 갈대. 절대 산에는 자라지 않지만, 사람들은 억새와 갈대를 잘 구별하지 않는다.
ⓒ 장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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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들판에 바람에 누웠다 일어나는 억새를 편하게 '갈대'라고 부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는 이름으로는 억새와 갈대를 구별하지만, 그 실물과 이름을 맞추지 못해서다. 둘을 혼동해도 불편하지 않은 건 그렇게 말해도 아무도 그걸 문제 삼지 않기 때문이다. 

갈대는 산에서 자라지 않는다

사람들이 갈대와 억새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은 그걸 일상에서 제대로 살펴볼 기회가 없어서가 아닌가 싶다. 억새나 갈대를 자기 집 화단에 기르는 이는 없으니, 그걸 만나려면 산이나 들로, 호숫가로 가야 한다. 그리고 억새와 갈대가 한자리에 있어서 눈여겨보고 어떻게 다른지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런 기회가 모두에게 있는 건 아니다.

농촌에서 자란 이에게 억새는 낯설지 않다. 그러나 대중가요에서 '여자의 마음'으로 표현하는 갈대는 귀에 익기는 해도 동네 개울가에 가면 만날 수 있는 풀이 아니다. 갈대를 처음 본 게 언제였는지 내가 기억조차 못 하는 이유다. 갈대가 우거진 호숫가는 외국 영화에나 나오는 풍경이 아니었던가 말이다.

구미에 살면서 샛강생태공원이나 강변체육공원을 드나들며, 심심찮게 억새와 갈대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었지만, 그걸 확연히 구별하게 된 것은 근년에 와서다(관련 기사 : 낙동강 체육공원에 이런 곳이... '인생 스팟' 찾았습니다). 두 공원에서 억새와 갈대를 만날 수 있는 것은 거기가 샛강이고 강변이어서다. '물가'는 반수생 식물인 갈대의 생육 조건 가운데 가장 으뜸이기 때문이다. 

같은 볏과의 여러해살이풀이고, 비슷한 시기에 꽃이 피고 지지만 억새와 갈대는 '엄연히' 다르다. 둘의 가장 기본적인 구별법은 억새는 산이나 비탈에, 갈대는 물가에 군락을 이뤄 자란다는 점이다. 따라서 억새는 가끔 물가에서도 볼 수 있지만, 갈대는 절대 산에서 만날 수 없다. 

자연히 산에 피는 것은 억새다.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라고 노래하는 그 '으악새'다. 대중가요에서 바람이 불면 서걱이며 흘러가는 억새의 흔들림을 시적으로 표현할 만큼 억새는 가깝고 정겨운 풍경이었을 것이다. 억새는 논두렁을 비롯하여 들과 산 곳곳에 무리를 지어 하얀 꽃을 바람에 날리면서 깊어가는 가을을 심화해 준다.
 
이른 아침에 역광으로 만난 억새. 저기 금오산이 보인다.
 이른 아침에 역광으로 만난 억새. 저기 금오산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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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흔들려 한쪽으로 쏠리는 억새
 바람에 흔들려 한쪽으로 쏠리는 억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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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는 갈대와 달리 쉽게 군락을 이루어 자생한다.
 억새는 갈대와 달리 쉽게 군락을 이루어 자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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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 황매산의 억새. 온 산을 뒤덮은 억새의 물결이 장관을 연출한다.
 경남 합천 황매산의 억새. 온 산을 뒤덮은 억새의 물결이 장관을 연출한다.
ⓒ 장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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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꽃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해 질 무렵 해를 마주한 채 보아야 한다. 스러지는 낙조의 붉은 빛을 머금으며 역광으로 빛나는 억새는 저물어가는 계절을 쓸쓸하게 환기해 주기 때문이다. 자생하거나, 또는 증식한 억새 군락이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이유도 같다. 

경상도 쪽에는 영남알프스의 간월재(관련 기사 : '1박2일'도 반한 한국의 알프스? 가보면 누구든 반한다), 창녕 화왕산, 밀양 사자평, 합천 황매산(관련 기사 : 지친 마음 어루만져주듯... 반짝이던 황매산 '억새 물결') 따위의 억새 군락이 유명하다. 온산을 뒤덮은 억새의 은빛 물결을 즐기러 온 나들이객으로 이들 산은 몸살을 앓는다. 
 
억새는 꽃이 은빛 또는 흰색이지만, 갈대는 갈색이나 고동색이다.
 억새는 꽃이 은빛 또는 흰색이지만, 갈대는 갈색이나 고동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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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는 키가 2~3m에 이른다.
 갈대는 키가 2~3m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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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가 거대한 군락을 이루고 있는 순천만 습지.
 갈대가 거대한 군락을 이루고 있는 순천만 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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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물가에 피어나는 갈대는 억새만큼 널따란 군락을 이루기 어렵다. 산을 뒤덮은 억새 군락만큼 흐드러진 갈대 군락은 순천만 습지의 갈대밭밖에 나는 알지 못한다. (관련 기사 : 순천만 갈대는 그 자체로 충분하다) 구미의 샛강은 습지여서 더러 갈대 군락이 보이지만, 강변체육공원에는 갈대가 억새 군락 주변에 드문드문 섞여 있을 뿐이다.

갈대, 풍경 대신 시편의 소재가 되다

억새 군락처럼 아름다운 풍경이 되는 대신 갈대는 시의 소재가 되었다. 원로 신경림 시인의 <갈대>와 중견 시인 신용목의 <갈대 등본>이 갈대를 노래한 시편들이다.
 
언제부턴가 갈대는 /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중략)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 그는 몰랐다
- 신경림, <갈대> 전문

속으로 '조용한 울음'을 우는 존재인 '갈대'가 인간 존재라는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한 파스칼의 명제를 굳이 불러오지 않아도 시인은 근원적인 고독과 비애를 깨달은 인간을 연약한 갈대에 빗댄 것이다.

갈대의 소리 죽인 울음은 '인간 존재의 근원적 고통'을 감각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갈대는, 마침내 그 '조용한 울음'이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라는 것, 즉 '울음(슬픔)'도 삶의 본질이라는 걸 깨닫는다. 

비극적인 삶에 대한 존재론적 각성을 노래한 이 시는 시인의 초기 작품이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의 시는 인간의 근원적 고통에서 농촌의 암담한 현실과 농민의 아픔을 사실적으로 형상화한 '농무(農舞)'와 '목계장터' 같은 민중 시로 옮겨 갔다. 
무너진 그늘이 건너가는 염부 너머 바람이 부리는 노복들이 있다 
언젠가는 소금이 설산(雪山)처럼 일어서던 들 // 
누추를 입고 저무는 갈대가 있다 //
(중략)
내 각오는 세월의 추를 끄는 흔들림이 아니었다 초승의 낮달이 그리는 흉터처럼 바람의 목청으로 울다 허리 꺾인 가장(家長) / 아버지의 뼛속에는 바람이 있다 나는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
- 신용목, '갈대 등본' 전문 

신용목 시인의 '갈대 등본'은 폐염전의 배경으로 서 있는 갈대를 '허리 꺾인 가장 아버지'와 이으면서 그 가족사를 노래한다. 바람이 부리는 노복(奴僕), 갈대는 그 생애를 닮은 아버지의 일생과 이어진다. 갈대가 '등본(謄本)'이 되는 연유다. 

화자와 갈대, 그리고 아버지를 잇는 것은 '바람'이다. '바람의 목청으로 울다 허리 꺾인 아버지'의 바람은 아버지가 견뎌낸 고단한 세월인데 화자는 "아버지의 뼛속"에 있는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라며 아버지의 일생을 따르고자 하는 결의와 함께 애틋한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 

키가 크고 줄기가 가늘며, 줄기에 비하여 잎이 무성하여 바람에 금방 한쪽으로 쏠리는 속성 때문에 갈대는 쉽게 마음이 변하는 사람에 비기곤 한다. 두 시인은 그런 진부한 비유 대신 갈대를 인간의 근원적 고독과 비애를 깨닫는 존재로, 들판에 선 바람의 생애로 노래한 것이다. 시편을 거듭 읽으며 문득 깊어진 가을을 되돌아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 블로그 ‘이 풍진 세상에’(https://qq9447.tistory.com/)에도 싣습니다.


태그:#억새, #갈대,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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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이 넘어 입문한 <오마이뉴스> 뉴스 게릴라로 16년, 그 자취로 이미 절판된 단행본 <부역자들, 친일문인의 민낯>(인문서원)이 남았다. 몸과 마음의 부조화로 이어지는 노화의 길목에서 젖어 오는 투명한 슬픔으로 자신의 남루한 생애, 그 심연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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