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0.01 18:30최종 업데이트 21.10.01 18:30
  • 본문듣기
공익의 대표자로서 정의와 인권을 바로 세우고 범죄로부터 내 이웃과 공동체를 지키라는 막중한 사명을 부여받은 것입니다.

고색창연한 검사 선서문의 한 구절이다. 읽으면서 불편하지 않았다면 당신은 검찰개혁에 공감하지 않는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왜 이분법으로 재단하느냐고 화내지는 마시라. 그간 정의와 인권을 바로 세우는 데 그 나름 이바지해온 검찰의 긍정적 기능조차 깔아뭉개려는 반검찰주의자의 논리는 아니니까. 이 논쟁은 나중에 다시 다루기로 하고, 일단 요즘 화제인 화천대유 문제를 들여다보자.

화천대유와 검찰권력
 

27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판교동에 위치한 '화천대유' 사무실. ⓒ 이희훈

 
이 사태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는 검찰권력이다. 언제부터인가 대형 비리 사건의 중심부에 종종 검사 출신들이 눈에 띈다. 바꿔 말하면, 그들이 우리 사회의 부와 권력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다는 얘기다. 물론 검사 출신이라고 다 그런 건 아니다. 조직에 있을 때 '명성'을 떨친 소수 인사들에게만 해당하는 얘기니까.

검찰에서 이른바 잘나가는 검사는 전체의 2% 남짓이다. 정원이 2200명이니 50명 안쪽이다. 이들은 주로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법무부를 오가면서 특수, 공안, 기획 등 노른자위 보직을 차지한다. 재직 중 요직과 고위직에 오르고, 그 경력을 바탕으로 개업해서도 권력과 부를 누리며 평범한 변호사들을 자괴감에 빠지게 한다.


대장동 개발사업 비리 의혹과 관련해 '법조 카르텔'이라는 용어가 오르내린다. 사업 주체인 화천대유의 자문·고문 변호사로 활동한 법조인이 8명이나 된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다. 하나같이 검찰과 법원의 고위직 출신이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대선주자 홍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썩어 문드러진 대한민국 법조 부패 카르텔은 특검이 아니고는 밝힐 수 없다"고 일갈했다. 유승민 캠프 이수희 대변인은 윤석열 후보를 겨냥해 "화천대유 김만배 법조 카르텔의 동조자가 아니냐"고 쏘아붙였다.

말이 법조 카르텔이지, 거론된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검찰 카르텔'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권순일 전 대법관을 빼고는 모두 검사 출신 변호사이기 때문이다. 검찰 카르텔은 내가 자주 쓰는 '검찰 패밀리'와 통하는 단어다.

검찰 패밀리는 검사 출신 변호사, 정치인, 공직자, 기업인 등 검찰과 끈끈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정치권력의 정점인 청와대를 비롯해 국회, 정부기관, 대기업, 대형 법무법인 등 이른바 힘쓰는 자리에 포진한 이들은 검찰권력을 공유하고 향유한다. 검찰의 든든한 우군으로서 유사시 '친정'을 돕기 위해 발 벗고 나선다. 조국 사건과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 김학의 불법 출국금지 사건 등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듯이, 내밀한 수사내용이 이들을 통해 바깥으로 흘러나가고 언론에 전달되기도 한다. 미처 알려지지 않은 피의사실이나 예민한 개인정보 등을 흘리거나 공표한 국민의힘 의원들이 대부분 검사 출신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나도 기자 시절 그랬지만, 언론이 검찰 패밀리를 통해 수사 관련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일부 언론인은 단순히 수사내용을 받아쓰는 차원을 넘어 검찰 논리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전파한다. 대체로 법조 출입 경력을 가진 기자들로, 범검찰 패밀리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전‧현직 검사들과 남다른 친분을 유지하면서 정치부나 논설위원실로 옮겨가서도 친검 논리를 펴는 경향이 있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조성하는 데도 한몫했다.

화천대유와 인연을 맺은 검사 출신 변호사는 모두 7명. 박영수 전 국정농단 사건 특별검사, 김수남 전 검찰총장, 강찬우 전 수원지검장, 최순실 변호인으로 활약한 이경재 변호사, 이창재 전 법무부 차관, 김기동 전 부산고검장, 이동열 전 서울서부지검장 등 하나같이 쟁쟁한 이력을 가진 검찰 패밀리다.

직원 10여 명의 작은 회사가 거액의 급여를 주면서 이 거물급 변호사들을 영입한 이유는 상식적으로 판단하면 된다. 한마디로, 해결사 노릇이다. 우리 사회의 실질적 지배권력인 검찰을 움직이는 힘과 인맥을 갖췄기 때문이다. 그 회사로부터 아들이 받은 '50억 퇴직금'으로 정치생명이 끝날 위기를 맞은 곽상도 국민의힘 의원 역시 검사 출신이다. 그것도 박근혜 정부 때 검찰을 뒤에서 조종하던 청와대 민정수석 출신 성골 검찰 패밀리다.

'석열이 형' 논란의 본질

화천대유 설립자 김만배씨는 경찰에 출석하면서 이들에 대해 "제가 좋아하는 형님들로 대가성은 없었다"고 비리 의혹을 부인했다. "정신적으로 많이 조언해주는 분들"이라면서 친분을 강조하기도 했다. 반은 틀리고 반은 맞는 말인 듯싶다. 전형적인 언론인 검찰 패밀리의 말투다.
 

경기도 성남시 대장동 개발사업에서 특혜를 받은 의혹이 제기된 화천대유자산관리의 최대 주주 김만배씨가 27일 오전 서울 용산구 용산경찰서에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 유성호

 
김씨는 머니투데이라는 언론사에서 오랫동안 법조 출입기자로 활약했다. 타 언론사 기자들이 연차를 떠나 대부분 직‧간접적으로 알 정도로 터줏대감 노릇을 했다. 법조 경력이 있는 모 언론사 중견기자는 김씨에 대해 "많이 설친 편이라 기자들 사이에서 종종 논란이 됐던 인물"이라고 평했다.

김씨가 법조기자로 일할 때 윤석열 후보를 '형'으로 불렀다는 얘기는 그 진위와 별개로 또 다른 관전 포인트를 제공한다. 기자 출신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의 '폭로'에 대해 윤 후보는 강하게 부인했다. 알고는 있지만 가깝지 않았고 외려 탐탁지 않게 여겼다는 주장이다.

여권 지지자들이야 윤 후보와 김씨의 남다른 친분 여부에 관심이 쏠리겠지만, 문제의 본질은 '윤석열'이 아니다. 그런 의혹이 제기될 만큼 일부 법조 출입기자들과 검사들이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이다. 즉 '석열이 형'은 사실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일부 잘나가는 검사들과 관록 있는 기자들이 형-동생 사이로 지냈다는 것은 그다지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국민의힘 대권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 ⓒ 국회사진취재단

 
일종의 정보공동체인 그들의 관계에서는 권력 냄새가 풍긴다. 검찰권력과 언론권력의 결합 말이다. 이는 오랫동안 검찰을 취재했던 내 경험으로도 확인되는 일이다. 검사들이 연루된 어떤 사건을 취재할 때 모 언론사 간부의 요청으로 검찰 간부와 회동한 자리에서였다. 주선자는 법조를 오랫동안 출입한 기자였다. 그는 그를 '형'이라고 불렀다.

화천대유 게이트는 우리 사회 곳곳에 포진해 권력을 누리고 이권을 취하는 검찰 패밀리의 단면을 보여준다. 화천대유와 관련된 변호사들 중 일부도 해당하지만, 재직 중 재벌기업 비리를 수사했던 특수통 검사들이 옷 벗고 나와 재벌을 변호하면서 엄청난 수입을 올리는 부조리한 법조시장을 바꾸려면 검찰개혁을 완성해야 한다. 정권의 이해와 맞아떨어지는 정치적 기획·표적수사로 생사람 잡거나 무리한 별건 수사로 실적을 올려 출세했던 검사들이 검찰 패밀리로 변신해 부와 권력을 누리는 불합리한 사회구조를 바꾸려면 검찰권력을 해체해야 한다.

결론은 검찰개혁

영화 <내부자들>이 현실이 되는 법조-언론 카르텔을 해체하려면 검찰개혁과 언론개혁이 병행돼야 한다. 관건은 과도한 권한을 줄이고 책임을 강화하는 것이다. 검찰 힘이 약해지면 정권도 검찰의 칼을 활용하려는 유혹에서 멀어질 것이고, 정권에 잘 보여 출세하려는 정치검사 시비도 잦아들 것이다. 정보에 목마른 언론도 굳이 검찰과 유착할 필요가 없어질 테고.

여당의 중대범죄수사청 설치와 수사-기소 분리 추진에 반발해 검찰총장직을 내던진 윤석열 후보는 사직의 변에서 "헌법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고 외쳤다. 보기에 따라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 지적으로부터 검찰은 자유로울까? 내가 보기에는 검찰의 유별난 조직이기주의와 지독한 제 식구 감싸기 탓에 헌법정신이 훼손되고 법치가 무너지고 정의와 공정이 왜곡되는데 말이다.

이건 검사 개인이 아닌, 검찰 조직의 문제로 봐야 한다. 한마디로 힘이 넘치기 때문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권한이 많이 줄어든 것처럼 보이지만, 6대 주요 범죄수사권과 영장청구권, 기소재량권 등이 말해주듯 검찰권력은 여전히 막강하다. 구속영장을 칠지 말지를 결정하고, 큰 범죄로 실적을 올리려 작은 범죄를 덮어주고, 판사의 양형에 영향을 끼치는 구형량을 조절하고, 보석 결정에 의견을 제시하고, 형집행정지를 결정한다. 가장 큰 권한은 흔히 하는 말로, 죄를 덮어주는 것, 즉 기소하지 않는 권한이다. 화천대유 사건이 아니더라도, 검찰 고위직 출신 변호사들의 몸값이 왜 그리 비싼지를 곱씹어봐야 할 때다.
 

언론소비자주권행동과 민생경제연구소 등 5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사건과 관련해 곽상도 의원과 아들 곽병채씨,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 업무방해죄, 정치자금법 위반 등으로 곽 의원을 고발하고, 다운계약서 작성, 탈세죄, 뇌물죄 등으로 윤 전 검찰총장을 고발했다. ⓒ 유성호

 
끝으로 언론에 의해 왜곡된 프레임 하나를 지적하고 싶다. 수사와 기소 분리는 검찰의 수사권을 빼앗는 게 아니라 시대정신에 맞게 더 적절한 수사기관으로 옮기려는 것이다. 검찰은 전문 기소기관으로 거듭나서 수사기관과 서로 견제하게 된다. 다만 추진과정에 정치적 이해관계를 배제하고, 그야말로 국민의 이익을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국민의힘 유력 대선후보 두 사람이 다 스타검사 출신이다. 이들이 친정인 검찰을 어떻게 바꿀 생각인지 궁금하다. 정권교체 열망과 검찰권력 비판 여론은 별개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조성식은 오랫동안 기자로 밥벌이하면서 검찰 경찰 군 관련 사건 기사와 인물 인터뷰 기사를 많이 썼다. 제도적 틀에서 벗어난 후 시사 관련 책과 시집 출간, 작곡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