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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한겨레>는 서울시 송파구청을 비롯한 25개 자치구의 초과근무 실태를 파헤쳐 보도했다.
 지난 23일 <한겨레>는 서울시 송파구청을 비롯한 25개 자치구의 초과근무 실태를 파헤쳐 보도했다.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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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보도된 서울 송파구청 공무원들의 초과근무 수당과 출장 수당의 부정 수급 사건의 여파가 이어지고 있다. 이로 인해 공무원 사회가 다시 한번 파렴치한 '공공의 적'으로 낙인찍혀 버렸다. 기사에 달린 수천 건의 댓글은 차마 읽기조차 민망할 지경이다. 

해당 공무원들 십중팔구는 '재수 없이 걸렸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다른 곳에서도 흔히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늘 해오던 것이라 죄의식을 느낄 리도 만무하다. 관행으로 여겨지는 순간 합법과 불법의 경계는 사라지고 만다.

오십보백보일 거라며 억울해 하는 그들을 향해 정부가 칼을 빼들었다. 김부겸 국무총리가 직접 나서서 중앙과 지방 정부의 공무원 전체를 대상으로 전수 조사를 지시했다. 부정 수급 사실이 밝혀지면 관련 공무원을 징계하고 해당 기관에 대해서도 페널티를 부과하기로 했다. 

이후에도 행정안전부와 국무조정실, 국민권익위원회 등에서 현장점검을 통해 부정 수급을 적발해나갈 것이라 덧붙였다. 그러나 정부의 엄포에도 부정 수급을 차단하기 위한 제도 개선은 쉽지 않을 듯하다. 지방 공무원의 복무 점검 권한이 지자체장에게 위임되어 있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지방 정부별 점검 실태를 정기적으로 보고받는 정도에서 그칠 공산이 크다. 설령 중앙 정부에 권한이 있다고 한들 제도 개선의 묘수가 있을 리 없다.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고들 하지만, '하드웨어'의 개선에 매몰되면 필연적으로 또 다른 편법과 불법이 싹트게 된다.

우리는 이미 숱하게 겪어왔다. 사달이 날 때마다 제도 개선을 앞세웠지만, 그걸 비웃기라도 하듯 온갖 편법이 등장하며 미봉책에 그치고 말았다. 공무원들의 수당 부정 수급 문제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데도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현실은 제도 개선의 한계를 명확히 보여준다.

변명도 핑계도 아닌 궤변

단언컨대, 제도라는 '하드웨어'의 문제가 아니다. 제도를 만드는 이도 적용받는 이도 모두 기관만 다를 뿐 공무원들이다. 서로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아는 '가재와 게'들이라는 이야기다. 아무리 파격적인 제도라도 이내 적응하게 되고 결국 또 하나의 관행으로 정착한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린다'며 손가락질할 법도 한데, 과문한 탓인지 그들을 꾸짖는 공무원이 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되레 일부에서는 그들을 두둔하는 듯한 발언을 쏟아냈다. 수당 지급 문제를 중앙 정부가 통제하는 것에 반대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전국공무원노조 관계자는 "초과근무수당과 출장여비는 공무원들의 낮은 임금을 보전하기 위한 성격이 강하다"고 주장했다. 불합리한 수당 구조 등 전반적인 임금 체계를 개선해달라는 요구에도 정부가 묵묵부답이어서 불가피한 자구책이라는 투다. 정부가 편법을 조장했다는 뜻이다.

나아가 송파구가 다른 자치구보다 많은 출장여비를 받는 것도 "송파구 노조가 교섭해서 얻어낸 것"이라고 말했다. 참고로 다른 자치구가 월평균 1인당 12만 원을 받은 반면 송파구는 그 두 배가 넘는 월평균 26만 원에 이른다. 편법의 '유능함'을 뽐내고 있는 셈이다.

그들과 처지가 다른 교사로서 주제넘은 짓 같아 조심스럽지만, 이번 사달에 대한 전국공무원노조의 반응을 접하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해명이랍시고 내놓은 게 변명도 핑계도 아닌 궤변이라는 생각에서다. 임금 체계가 잘못되었으니, 불법도 용인된다는 발상 아닌가.

초과근무와 출장 시간을 조작해 늘리는 등의 불법이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는 건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다. 납작 엎드려 사과해도 시원찮을 마당에, 언론과 정부에 화살을 돌리는 건 누가 봐도 뻔뻔한 짓이다. 송파구청만 조리돌리는 건 지나치다는 해명 역시 전형적인 물타기다.

공무원에 대한 신뢰도

극소수 구청 공무원의 비위 행위로 규정하지 않고, 정부의 무능과 언론의 마타도어인 양 몰아가는 전국공무원노조의 인식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국민의 공복인 공무원을 대표하는 조직이라면, 해당 공무원들의 일벌백계를 요구해야 옳다. 그것이야말로 오늘도 본분에 충실하며 묵묵히 일하는 대다수 공무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부정 수급에 연루된 공무원들이 처음부터 나쁜 마음을 먹진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다들 하는데 나만 안 하면 바보'라는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혼자만 정의로운 척한다고 조롱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불법조차 관행이라며 두둔하는 조직 문화를 통째로 손보지 않고선, 아무리 좋은 제도를 가져온다 해도 백약이 무효라는 이야기다. 

고작 수당 십수만 원에 개인의 양심을 맞바꾸지 말라. 그것은 공무원 사회 전체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허무는 일이다. 업무량에 견줘 임금이 낮다고 여긴다면, '정공법'으로 맞서는 게 옳다. 관행에 찌들어 불법 행위에 편승한 이들을 일컬어 우리는 '영혼 없는 공무원'이라 부른다. 

거칠게 말해서, 그들은 스스로 조직 속 톱니바퀴가 되어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기계다. 상급자가 시키는 일만 하고, 튀는 언행은 철저히 삼간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비난받을 일 없다'며 '월급 받은 만큼만 일하자'는 주의다. 그들에게 자긍심을 기대하는 건 연목구어일 뿐이다. 

부디 불의 앞에서 '모두가 예스라고 말할 때, 노라고 외칠 수 있는' 당당한 공무원이 되어 달라. 국민이 낸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공무원이라면 더더욱 그래야 한다. 적어도 조직 내에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살라'고 말하는 동료들의 처세술에 맞서 기꺼이 '모난 돌'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공무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곧 그 사회의 신뢰도를 의미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무원의 집단적 부정부패는 사회가 붕괴하는 과정의 핵심 징후다. 과민 반응일지 모르지만, 송파구청 공무원들의 비위 행위와 전국공무원노조의 민심과 동떨어진 해명이 대수롭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다.

태그:#송파구청 공무원 수당 부정 수급, #김부겸 국무총리, #전국공무원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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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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