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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시계방향 심광주 관장/ 토지주택박물관, 주보돈 명예교수/ 경북대학교 사학과 이성주 교수/ 경북대학교 고고인류학과,  신희권 교수/  서울시립대학교 국사학과, 최병현 명예교수/ 숭실대학교 사학과
▲ 신라왕성 월성 서성벽 발굴조사 ▲왼쪽부터 시계방향 심광주 관장/ 토지주택박물관, 주보돈 명예교수/ 경북대학교 사학과 이성주 교수/ 경북대학교 고고인류학과, 신희권 교수/ 서울시립대학교 국사학과, 최병현 명예교수/ 숭실대학교 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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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신라 왕성인 월성 발굴조사에서 사람을 제물로 사용한 인신공희와 월성의 축조 연대·축조 방식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발굴된 인골은 135cm의 여성으로 추정되며, 2017년 인신공회 인골 2구가 발굴된 월성 서성벽에서 발굴됐다.

또 월성의 축조 시기에 대해서도 확인했다. 출토된 유물의 전수 조사와 40여 점의 가속질량분석기 연대 분석을 통해 4세기 중엽에 축조된 것을 확인했다. 이번 발굴조사의 역사성과 의미에 대해 전문가의 의견을 들었다.

- 신라왕성 월성 발굴의 의의는?
심광주 관장/토지주택박물관 : "고구려, 백제, 신라 중에서 신라가 가장 견고하고 높은 성을 쌓았다. 삼국통일의 근원적인 힘은 성곽에서 찾을 수 있다. 고고학에서 오랫동안 궁금했던 것이 신라의 축성 기술은 언제부터 시작됐고 어떻게 형성됐는지였다. 월성 발굴은 그러한 신라 토목 기술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아주 중요한 유적이라고 생각한다."

- 월성이 축조되던 시기는 언제로 보나?
주보돈 명예교수/경북대학교 사학과 : "월성의 축조 연대는 그동안 논란이 되어왔다. 기록에는 2세기 초였는데, 어떤 학자는 5세기 후반으로 보기도 했다. 이번 발굴을 통해 4세기 중엽에 월성의 축조가 시작된 것으로 밝혀졌는데 4세기 중엽은 사로국을 중심으로 주변 지역을 병합하며 신라가 탄생하는 시기다. 이 시기는 왕호를 마립간이라 하고 적석목곽분이 경주 분지에 축조되는 시기와 맞물린다. 이번 발굴조사가 초기 신라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줄 것으로 생각된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가 월성 서성벽 구간에서 발견된 인골에 경화처리를 하고 있다.
▲ 신라왕성 월성 발굴현장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가 월성 서성벽 구간에서 발견된 인골에 경화처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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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을 재물로 하는 인신공희가 의미하는 것은?
이성주 교수/경북대학교 고고인류학과 : "성벽 축조와 관련된 인신공희라는 것은 중국 용산시대부터 크게 유행을 했고 상나라 때 토성을 축조할 때 인신공희을 행했다. 특히 성벽 내부 그중에서도 문지 근처에서 많이 했다고 전해진다. 어떤 학자는 문지 부근에서 행한 이와 같은 의례들의 경우, 넓은 광장 앞에서 많은 사람이 함께 수행을 보면서 내부 결속도 다지기도 했다고 한다. 초기 국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의례로 일종의 퍼블릭 세리머니의 형태로 진행됐다.

그렇지만 중국의 그것과 신라 월성에서 나온 것을 곧바로 연결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주나라 때 의례 혁명이 있었고 그 이후로 인신공희와 같은 원시적인 예습은 폐기됐다. 그런데 수천 년이 지나 신라 경주 한복판에서 이런 의례가 행해졌다는 것이 대단히 흥미롭다. 초기 국가 형성기에 권력 장악, 이데올로기 장악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우리가 공통점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는 대중을 장악하고 국가에 대한 통제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 인신공희가 아닌 우연히 묻혔을 가능성은 없나?
최병현 명예교수/숭실대학교 사학과 : "기저부 조성층이라고 해서 흑색의 재, 나무, 지정 말목 등 지금의 파일 공법처럼 무른 땅을 단단히 붙이는 기초공사가 있고 다음으로 기저부 조성층의 거의 상층부에 체성, 성벽을 막 쌓아 나기 직전에 사람을 희생해서 제사를 지냈던 그런 유구가 나왔다.

2017년 당시 학계에서는 사람 뼈가 나왔다고 해서 인공적으로 제사 지낸 거냐 아니면 무슨 다른 어떤 계기로 사람이 우연히 묻힌 거냐 하는 논란도 있었다. 이번에 여성 인골이 나온 위치나 성벽 진행 방향, 같이 나온 유물 등을 종합해 볼 때 성벽 축조와 관련해서 묻은 게 틀림없다고 볼 수 있다."
   
신라 왕릉 월성에서 발굴된 인골에 대한 3D 스캔작업을 하고 있다.
▲ 신라왕성 월성 발굴현장 신라 왕릉 월성에서 발굴된 인골에 대한 3D 스캔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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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 발굴은 어떻게 진행돼야 하나?
신희권 교수/서울시립대학교 국사학과 : "성은 오랜 시간에 걸친 수축, 개축 그리고 후대의 훼손 등으로 파는 곳마다 (그 양상이) 조금씩 다를 수 있다. 내가 발굴했던 풍납토성도 파는 지점마다 조금씩 다른 기술이 나오기도 하고 예상치 못했던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중요한 사적지를 전체를 다 판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서성벽의 문지 같은 성내의 핵심시설이 있는 문, 해자와의 연결을 어떻게 했는지, 성벽의 단면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지점 등 우리가 이 성을 통해서 알아야 할 만한 요소들이 무엇인가를 먼저 결정하고 해결하는 데 가장 중요한 지점들을 전략적으로 발굴할 필요가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ACN아시아콘텐츠뉴스에도 실립니다.


태그:#문화재청, #경주, #월성, #인골,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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