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9.07 18:19최종 업데이트 21.09.07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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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1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으로부터의 철수가 끝났다고 선언하며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결정은 단지 아프가니스탄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이것은 군사 점령을 통해 타 국가를 '다시 만들기'(remake) 했던 시대의 종말이다"라고 선언했다.

하지만 한 시대의 종말을 고하기는 일러 보인다. 현재 아프가니스탄 난민이 220만 명인데 이번 철군으로 50만 명이 추가될 수도 있다고 유엔 난민위원회(UNHCR)가 발표해 인접국 및 유럽이 긴장하고 있다. <비비시>(BBC)에 따르면, 인접국인 파키스탄과 이란이 더 이상의 난민을 받기 어렵다고 밝혔고, 우즈베키스탄 역시 난민이 제3국으로 가기 전 임시적으로 거처할 숙소를 제공하는 데까지만 돕겠다고 발표했다.
 

파키스탄과 인접한 아프가니스탄 스핀 볼다크에서 2일(현지시간) 국경을 넘어 파키스탄으로 가려는 아프간인들이 대기하고 있다. 이슬람 무장 조직 탈레반이 아프간의 카불 공항마저 장악한 가운데 파키스탄은 아프간인의 입국을 허용하지 않을 계획이며, 현재 카불에서 파키스탄 토크함으로 가는 가장 가까운 경로는 응급 치료와 같은 비상 상태가 아니면 입국이 허용되지 않고 있다. 2021.9.2 ⓒ 연합뉴스

 
유럽도 상황은 좋지 못하다. 5천 명 정도 수용하겠다고 밝힌 영국과 달리, 오스트리아, 폴란드, 스위스는 일찌감치 아프가니스탄 난민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내년 4월 대선을 앞둔 프랑스는 조심스럽다. 반 이민-반 난민 정책을 취하는 극우 마린 르 펜(Marine Le Pen)과 맞붙을 것으로 예상되는 마크롱 대통령은 EU국가들과 긴밀한 협의 하에 난민을 수용하겠다고 하면서도 "난민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럽 사회가 난민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2015년의 기억 때문이다. 당시 시리아 내전으로 유럽행을 희망한 난민수가 120만 명에 달했고 이와 연관된 사회 문제들, 즉 테러, 극우, 반 무슬림, 인종주의, 포퓰리즘이 위험 수준까지 달했다. 독일 기독교민주당(CDU)의 아르민 라셰트(Armin Laschet)는 "2015년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며 2015년을 소환했다.

"2015년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2015년 6월 23일, 그날은 큰 아이가 당일치기로 프랑스 견학 가는 날이었다. 새벽 6시에 학교에 집합, 대절한 버스로 유로 터널을 지나 오전 9시 이전에 프랑스 작은 마을에 도착, 마을을 둘러본 후 늦은 오후 다시 유로 터널을 통해 영국으로 돌아오는 간단한 견학이었다. 준비도 간단했다. 50유로 이상은 주지 말라는 학교 지침에 따라 집에 있던 유로를 꺼내주고 간식만 넣어 보냈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오후 1시 전후로 BBC는 프랑스 칼레 항구 노동자들의 파업을 보도했다. 시작은 파업이었으나 점차 초점은 난민으로 옮겨 갔다. 파업으로 인해 유로 터널 통과가 지연되면서 모든 교통수단이 서행하자 이틈을 이용해 최종 목적지를 영국으로 잡았던 시리아와 소말리아 등지의 난민들이 서행중인 화물용 트럭, 개인 트럭, 버스에 몸을 던졌다. BBC는 저속으로 움직이는 대형 트럭 위에 올라타거나 매달려 있는 난민들의 위험한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여줬다. 프랑스 경찰들이 유로 터널로 뛰어드는 난민들을 저지하기 위해 무력행사를 시작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대부분 "칼레 정글"(2015-2016)이라는 난민 캠프에 있던 이들로 이들은 영국행을 희망하고 있었다. 이들이 칼레에 있던 이유는 입국 심사 때문이었다. 자국 입국 심사는 자국 영토에서 이루어지만, 영국과 프랑스는 편의상 프랑스로 가는 입국 심사를 영국에서, 영국으로 가는 입국 심사를 프랑스에서 하고 있었다. 이 규정에 따라 영국을 최종 목적지로 잡은 난민은 입국 심사를 프랑스 칼레에서 받아야 했다. 당시 난민 수가 급증하던 때라 영국행 난민 입국 심사는 지연되었고 1500-3000명 정도가 집단 거주하는 난민 캠프가 칼레에 형성되어 있었다. 파업으로 차량이 저속 운행하자 기다림에 지친 칼레 정글 난민들이 영국행 유로 터널로 뛰어든 것이다.
 

2015년 6월 24일(현지시각) 프랑스 북부 칼레에서 몰래 트럭을 타고 영국해협을 건너려던 난민들이 경찰에게 들키자 도망치고 있다. 프랑스 선원들 파업으로 통행이 중단됐던 영불 해저터널인 유로터널과 인근 프랑스 칼레항은 이날 오후 늦게 운영을 재개했으나 영국 밀입국을 시도하려는 아프리카 난민 수천명이 몰려들면서 혼란이 지속하고 있다. ⓒ 연합뉴스

 
트럭을 향해 돌진하는 모습, 트럭 문에 매달리거나 트럭 위로 올라가 붙어 있는 모습은 분명히 위험했다. 다의적인 위험성이었다. 절박함에 죽음을 감수한 위험이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 그들은 비합법적·위협적인 방식으로 자기 사회로 뛰어드는 이방인이 주는 위험성일 수도 있었다. 수십 명의 인명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이 사건은 그날 오후부터 영-프 정부간 외교 신경전으로 확산됐다. 프랑스는 책임을 영국의 더딘 난민 입국 심사 탓으로 돌렸다. 영국 정부는 칼레 사태가 양국의 외교 문제로 확산되는 것을 막으려고 총리와 내무부장관이 직접 나서서 사태 수습을 위한 성명을 발표했다.

노동자 파업이 난민 문제로 그리고 외교 갈등으로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 와중에 프랑스로 견학 갔던 아이 학교 일행은 영락없이 프랑스 칼레에 묶였다. 학교는 학생들의 상황 파악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긴급 이메일을 돌렸다. 결국 그날 밤이 되어서야 사태가 진정 국면으로 들어섰고 아이는 자정 가까운 시간에 돌아왔다.  
  

프랑스 북부 항구도시 칼레에서 난민들이 유로터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수천 명의 난민들이 영국행 화물열차나 트럭을 타기 위해 유로터널 근처로 몰려들고 있다. 2015.8.4 ⓒ 연합뉴스

 
아슬아슬한 논의

내가 겪은 그 날의 사건은 예고편이었다. 걷잡을 수 없이 밀려오는 외부인을 인류애적으로 포용할 것인가 아니면 국내 질서를 혼란스럽게 하는 이질적 존재로 규정하고 막아야 할 것인가, 절충한다면 적정선은 어디이며 이들이 가지고 올 사회적 파장은 무엇일까에 대한 아슬아슬한 논의가 유럽 각국에서 시작됐다.

논의의 난이도는 최상급이었다. 인도주의적 관점과 극우가 양 끝에 있었다. 인도주의적 관점에서는 반 난민-반 이민을 기본으로 한 극우의 확산을 막아야 했다. 극우가 확산될 경우, EU가 지난 수십 년간 공들인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 원칙도 무너지고 반EU(민족주의) 정서 속에 EU의 지속성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자국민을 보호하는 동시에 난민에 대해 인종이나 특정 종교에 차별적인 배타적인 언어가 쏟아지지 않도록 하면서 테러리즘에 단호해야 했다.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 총리는 정치 인생에서 최대 승부수를 던졌다. 7월 난민 어린이들과 만남의 자리를 가진 후, "우리는 할 수 있다"며 난민 문제를 자국 이해 중심이 아닌, 인도주의적 관점으로 다루겠다고 선언한 것이다(이후, 독일은 100만 명 이상의 난민을 수용했다).

극우인 영국독립당의 나이절 패라지(Nigel Farage)는 메르켈의 결정이 근대 정치사에서 가장 치명적인 실수라며 "그녀는 끝났다"고 단언했다. 미국 언론 역시 가장 이상주의적인 원칙으로 21세기 독일을 이끌었으나 그 이상주의로 인해 그녀의 정치 인생이 내리막길로 들어섰다며 다음 선거에서 승리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다(2017년 메르켈의 기독교 민주당은 제1당이 되었지만 32.9%에 불과한 지지로 사회민주당과 연립 정부를 꾸렸다). 
 

터키 해변에서 숨진 채 발견된 시리아 난민 소년 알란 쿠르디의 사망 1주기를 맞아 난민 실태를 보도하는 CNN 뉴스 갈무리. ⓒ CNN


인도주의적인 관점이 힘을 얻은 순간도 있었다. 그 해 9월 지중해 해변에서 발견된 3살배기 알란 쿠르디(Alan Kurdi)의 시신 사진은 전 세계를 경악시켰다. 하지만, 2015년은 유럽 내 테러 사건 발생이 최고에 달했던 해였다. 그 해 11월 13일 파리의 공연장과 축구장 등 6곳에서 총기 난사와 자살 폭탄 등 연쇄테러가 발생, 130여 명이 죽고 490여명이 부상당했다. 이외에도 크고 작은 테러 사건이 2015년 한해 유럽에서만  211건이 발생했다. 다음해 3월 22일에는 브뤼셀 테러가 있었고 6월 16일에는 영국 하원 의원 조콕스가 지역 도서관 앞에서 살행당하는 등 테러는 잊힐 만하면 또 일어났다. 
  
테러와 고조되는 반 이슬람-반 이민 정서 속에 결국 EU는 2016년 3월 터키와 조약(EU-Turkey Deal)을 체결했다. EU로 향하는 난민을 터키가 수용한다는 조건으로 EU는 난민 수용소 건설, 난민들의 교육과 건강 등을 위해 미화 약 70억 달러를 제공한다는 내용이다. 해결된 듯했지만, 정치적 결과도 컸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를 외치며 출범했던 EU지만 난민 문제는 두 슬로건에 대한 깊은 의구심을 낳았고, 결국 EU는 독일-영국-프랑스를 가리켰던 '빅3'중 하나를 잃었다.    

2021년의 유럽

아프가니스탄 난민 문제를 둘러싸고 유럽 각국은 현재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15년 난민 위기 이후 EU 탈퇴라는 최대 정치적 변동을 겪었지만, 난민 문제를 자국이 통제할 수 있게 된 영국은 비교적 차분하다. 보리스 존슨 내각은 "세계적 영국(Global Britain)"이라는 자신들의 슬로건에 부합하도록 아프가니스탄 난민 5천 명 정도를 수용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선거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이기 때문에 정치적 계산을 떠나 난민 수용에 대한 시스템 재검토에 들어갔다. 

일간지 <가디언>에 따르면, 지금까지 난민 수용도는 큰 지역차를 보였다. 정치적 성향으로 보았을 때, 노동당 지지 지역이 보수당 지지 지역에 비해 8배 높게 난민을 수용했다. 또, 인구별로 보았을 때 잉글랜드 남쪽이 인구 1만 명당 1명을 수용한 반면, 북동부는 1만 명당 16명, 북서부는 1만 명당 12명을 수용했다.

난민 수용의 지역적 불균형을 제기한 측은 광역 맨체스터와 리버풀이다. 노동당 소속의 두 시장은 난민을 환영한다고 밝히는 한편, 영국 내 모든 지방 단체가 인구별 경제력에 맞게 난민을 수용, 이들의 주택 및 교육과 복지를 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EU) 회원국 내무부 장관 회의에서 루치아나 라모르게세 이탈리아 내무장관(오른쪽) 등 참석자들이 대화하고 있다. 이날 EU 회원국 장관들은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장악에 따라 촉발될 수 있는 대규모 불법 이주 움직임을 막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2021.8.31 ⓒ 연합뉴스

 
9월 26일 총선을 3주 앞두고 있는 독일에서 난민 문제는 선거와 직결되어 있다. 인도주의적 난민 정책으로 메르켈은 유럽의 도덕적 지도자로 자리매김했지만 여전히 그녀의 난민 정책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5년이 지난 2020년, 100만이 넘는 난민들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독일 사회에 통합되고 있다는 보고도 있지만, 여론은 여전히 반대가 우세한 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다. 덕분에 반 난민 정서와 비례하며 2015년 이후 급성장, 반 이민-포퓰리스트 및 극우로 평가받는 독일대안당(Alternative for Germany)이 현재 제 1야당이다. 선거 이후를 알 수 없지만 메르켈의 기독교민주당도 "2015년을 반복하지 않겠다"며 메르켈의 난민 정책과 거리를 두고 있다.

2021년은 2015년과 어떻게 다를까. 2015년 당시 인도주의적 접근을 어렵게 한 것이 테러였다면 2021년의 그것은 아마도 코로나일 것이다. 코로나로 악화된 경제적 불평등이 각국의 화두로 등장, 천문학적 비용이 필요한 급진적인 개혁안도 나오고 있다. 영국은 스코틀랜드와 웨일스를 중심으로 보편적 기본 소득제를 타진하고 있다. 독일 베를린의 경우, 주택 소유의 한도를 정하고 그 이상은 국유화하자는 국민 투표를 앞두고 있다. 이 속에서 난민에 대한 인도주의적 관점이 얼마나 현실적으로 설득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확실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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