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9.04 15:19최종 업데이트 23.03.04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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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7년 9월 1일 일본 도쿄 스미다구 도립 요코아미초 공원에서 간토 대지진 당시 학살된 조선인들을 추도하기 위한 행사에 반대하며 항의하는 일본 우익세력들을 경찰이 저지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9월 1일 일본 도쿄 스미다구 요코아미초 공원에서는 '간토(관동) 대지진 조선인학살' 제98주기 추도식이 열렸다. 코로나 상황이 심각해 2020년에 이어 올해도 일반 시민의 참여는 온라인으로 이루어졌다. 이날 <황혼의 사무라이>를 만든 일본의 영화감독 야마다 요지는 "많은 조선인이 차별과 편견에 근거한 폭력으로 살해된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소설가 나카자와 케이도 "부당한 폭력으로 사람의 생명을 박탈해서는 안 된다"는 뜻을 전해왔다.

이 추도식에 온라인으로 참가한 가토 나오키. 그는 2013년에 <9월 도쿄의 거리에서>(아래 거리에서)란 블로그(https://tokyo1923-2013.blogspot.com)를 개설하고 같은 이름의 책을 펴냈다. <거리에서>는 간토 대지진 때 학살된 조선인 이야기를 기록한 책이다.

"조선인은 모두 죽여라"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 전 도지사는 2000년 4월 육상자위대 제1사단 창대 기념식에서 '지진이 일어나면 외국인이 폭동을 일으킨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이등국민이란 뜻이 담긴 '3국인(조선인, 중국인, 대만인을 낮춰 부르는)'이란 표현도 썼어요. 그게 계기가 되어 조선인 학살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어요." 


그가 직접 행동으로 나서게 된 것은 2012년 신오쿠보 거리에서 '재특회'의 혐한시위를 접하면서부터다.

"착한 조선인도 나쁜 조선인도 없다. 조선인은 모두 죽여라."
"여러분, 거리에서 한국여자를 보면 돌을 던져도 강간해도 무방합니다."
"일본 사회의 진드기, 쓰레기, 구더기, 재일조선인 구체처분 담당입니다."


현장에선 이런 말들이 경찰의 보호 속에서 외쳐졌다. '행동하는 여성' 소속이라는 한 여자는 "코리아타운을 뭉개버리고 가스실을 만들자"는 끔찍한 말까지 했다. 이들의 시위에 재일코리안들은 생업에 타격을 받았고 다가올지 모를 폭력에 몸을 떨었다.
 

가토 나오키 작가의 모습 사진을 좀처럼 안찍은 그, 겨우 6년 전의 사진을 한 장 얻었다. ⓒ 가토 나오키

 
이때 가토 나오키는 "지금이야말로 써야 되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이 신오쿠보에는 그의 재일교포 동창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친구들이 공격받을 수 있다는 위기감에 그는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민족차별에 대해 항의하는 행동'을 만들었다. 그는 도쿄와 사이타마, 요코하마를 돌며 '1923년 간토대학살'에 관한 생생한 자료를 모아 블로그 '거리에서'를 만들고 9월 1일부터 한 달간 글을 썼다.

블로그에 올린 자료는 다듬어져 코로카라출판사에서 책으로 나왔는데 지금까지 8쇄, 18,000부가 발행됐다.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단체인 '카운터스' 회원이나 민족차별에 대해 반대하는 이들 사이에서 반향이 컸다. 한국에서도 2015년 갈무리출판사가 펴내 화제가 되었다. <거리에서>에는 대학살의 잔혹함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조선인 다섯 명을 나기노 하라의 산지기 무덤가에 구멍을 파서 앉힌 후 목을 베 죽이기로 결정,
첫 번째 구니미쓰는 싹둑 훌륭하게 목을 잘랐다. 두 번째로 게이지는 우두둑 힘을 줬지만 반 정도 밖에 잘리지 않았다. 세 번째 다카지가 휘두른 칼은 목 피부만 조금 남겼다. 네 번째 미쓰오는 구니미쓰가 벤 칼로 다시 훌륭하게 한 번에 베어버렸다. 다섯 번째로 기치노스케는 힘이 모자라 반 정도 밖에 자르지 못하고 두 번째 칼질로 마저 끝냈다. 구멍속에 넣고 모두 묻어버렸다.
- 거리에서 76쪽
 
이는 가토 나오키가 지바현 야치요시 다카쓰 지구에 살던 한 주민의 일기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1923년 9월 8일 이 마을사람들의 살육행위를 기록한 것인데 이는 단지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거리에서'에는 이같은 증언과 사례들이 가득해 곳곳에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지진의 참화로 길가에 널려진 시체들 ⓒ 연합뉴스

 
일본 우익의 눈엣가시 '요코아미초'

'이런 자료들을 발굴해 인터넷에 연재하고 책으로 내면 우익들의 타깃이 되지 않나요'라는 얘기에 가토씨는 "'반일' '과격파' '사형하라'며 나를 집요하게 비판하는 우익들이 생겼습니다. 그래도 견딜 만합니다"라고 (자신의 문제는) 담담히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현재의 일본 상황은 심각하고 시민사회의 힘은 약하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2년 후인 2023년이면 어느덧 학살 100주년이 된다. 백년을 허망하게 넘어가지 않으려면 진상규명과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그는 어떻게 전망할까. 

"조선인 희생자들의 추도식은 소규모이지만 사이타마의 혼조, 요코하마의 구보야마 등 각 지역에서 열리고 있고, 최근에는 관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일본에서 조선인 학살조차 '없었던' 걸로 하려는 무리들이 있습니다. 일본의 전쟁범죄나 식민지 지배에 관한 책임을 부정하는 세력이 나날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2년 안에 반전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진상규명이나 공식사죄, 유족에 대한 보상은 당연하지만 실현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요코아미초 공원에서 열리는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을 2023년까지 우익의 공격에서 지키는 일, 황당무계한 '학살 부정론'이 퍼지는 것을 막는 게, 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를 '방위'하겠다는 특별한 표현을 썼다. 릿쿄대학교 사학과 교수였던 야마다 쇼지 선생은 <조선인 학살에 대한 일본국가와 민중의 책임>이라는 책에서 간토 대학살 때 희생된 조선인 묘비석의 이름과 비문 내용을 분석했다. 그는 많은 비석들이 대부분 선인지묘(鮮人之墓)라는 이름으로 '몇 명이 언제 죽어 묻혀 있다'고만 적어 단순한 위령비에 그쳤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조선인학살사건 50주년을 기념해 1973년 '간토대지진 조선인희생자 추도행사실행위원회'에 의해 세워진 요코아미초의 추도비는 달랐다. 이 비문은 "대지진의 혼란 가운데 잘못된 책동과 유언비어로 6000여 명에 이르는 조선인들이 그 귀한 생명을 빼앗겼습니다"라고 학살이었음을 분명하게 적었다. 학살의 책임자까지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이전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추도비였다.
 

간토대학살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 앞에서 집회 여는 일본극우들 1일 일본 도쿄 스미다(墨田)구 요코아미초(橫網町) 공원에서 간토(關東)대지진 조선인 학살 희생자 추도식이 열린 가운데, 추도식장에서 불과 40m 떨어진 곳에서 일본 극우 인사들이 집회를 열어 방해하고 있다. ⓒ 연합뉴스

 
요코아미초 공원은 원래 일본군 군복을 만들던 공장터였다. 지금 이곳에는 1923년 간토대지진과 1945년 도쿄 공습 때 희생된 일본인들의 추도비와 위령당이 있다. 그 옆으로는 일본 스모가 열리는 료코쿠국기관도 있다. 때문에 이곳에 있는 '조선인희생자추도비'와 해마다 이곳에서 열리는 '추도식'은 일본 우익에게 눈엣가시다.
   
2017년 자민당 의원 코가 토시아키는 요코아미초 공원 내 '추도비를 철거하라'고 도쿄도에 요구했다. 자민당 국회의원 아카이케 마사아키도 마찬가지였다. 도쿄도지사인 고이코 유리케는 2017년부터 올해까지 추도문을 보내지 않고 있다. 2017년에는 일본 여성의 모임 '소요카제'가 요코아미초 공원에서 "조선인 학살은 누명이다"라고 주장했고, 2019년에는 우익들이 '조선인희생자추도식'을 방해하며 몸싸움을 벌였다.

일본의 위기감

가토 나오키가 '방위'를 하겠다고 한 것은 이처럼 요코아미초의 추도비와 추도식이 일본 우익과 양심적인 시민운동이 첨예하게 맞붙는 전선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곳을 지켜내는 초병이 되겠다고 자임한 것이다. 지금 일본의 우경화는 군국주의로 치달을 때처럼 걷잡을 수 없게 심각해지고 있다. 

"청일전쟁 때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백 년 동안 일본은 아시아의 유일한 선진국이었습니다. 일본이 아시아의 중심이고 근대화의 모범이라는 관념이 일본을 지배했습니다. 그런데 1990년대 이후 일본은 후퇴하고 위축되었지만 주변 국가는 새로운 길을 걸으며 발전했지요. 일본은 이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면서 예전 제국주의 시절에 대해 향수를 느낍니다. 평화헌법을 고치려 하고 코로나로 비상시국임에도 굳이 올림픽을 강행한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그의 이런 분석을 접하면 더욱 걱정이 커진다. 전쟁범죄와 식민지 지배 책임을 아예 부정하는 데로 나아가는 이 상황에서 '간토대학살'에 대한 해결책이 있을런지... 그는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자고 한다. 그게 희망이 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며.
 

도쿄 중심가서 군위안부 한일합의 반대시위 지난 2016년 1월 10일 오후 일본 도쿄 중심가인 긴자(銀座) 거리에서 혐한 시위대 수백명이 '위안부 합의 규탄 국민 대행진'이라는 명목으로 행진하고 있다. ⓒ 연합뉴스

 
최근 그는 "'조선인 학살은 없었다'는 왜 엉터리일까?"라는 사이트를 만들었다. "조선인 학살은 없었다. 그것은 조선인이 진짜로 폭동을 일으켰거나 우물에 독을 탔기 때문에 일본인이 반격했을 뿐이다"와 같은 '학살 부정론'을 비판하는 사이트다(http://01sep1923.tokyo/). 또 그는 코로카라출판사에서 'NO hate(노 헤이트)'와 'TRICK(트릭)! 조선인 학살을 없던 걸로 하고 싶은 사람들'이란 책을 냈다. 

"2013년까지 혐한 시위에는 300명 이상이 모였다. 그들은 시민에게 폭력까지 휘둘렀지만, 경찰은 그들을 규제하지 않았다. 하지만, "카운터스"를 중심으로 차별반대시민들의 반격이 시작되고 '혐오 발언 규제법'과 지역별 조례가 생겼다. 시민들의 항의까지 더해지면서 혐한시위의 현장 참가자는 많이 줄었다.

문제는 사람들의 내면에 스며든 차별의식이다. 인터넷에는 혐한 발언이 넘쳐난다. 2021년 2월 13일 후쿠오카에서 지진이 일어났을 때 트위터상에 '지진으로 조선인이 좋아한다'와 같은 유언비어가 돌았다. 서점에는 혐한 책들이 넘쳐나고 티비에서는 악착같이 한국을 부정하는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다. 집권 여당에, 매스 미디어에, 인터넷에, 보통 시민들에게 혐한 사상, 인종 차별주의 자체는 독버섯처럼 스며들어있다."


그가 책을 통해 내린 진단이다. 그는 내면에 스며들어 있는 보이지 않는 차별의식과 편견에 맞서기 위해 계속해서 쓰고 또 쓰면서 행동하겠다는 의지를 책과 사이트를 통해서 보여준 것이다.

카토 나오키는 1967년 도쿄에서 출생해 호세이(法政) 대학을 중퇴한 후 출판사를 다니며 작가가 되었다. 그는 손문과 연대하여 신해혁명에서 세계혁명을 꿈 꾼 '미야자키 도텐'의 삶을 쓴 바 있다. 앞으로 조선인 여성 비행사 '박경원' 그리고 태평양 전쟁에 끌려갔던 일본 청년들의 이야기도 써갈 생각이다.

돌아보면 가토 나오키는 한평생 반전 평화, 차별 반대, 그리고 한중일의 연대와 우정에 관해 글을 쓰고 행동해 왔다. 그의 글과 행동을 보며 우리 자신에게 던져야 하는 뼈아픈 질문이 있지 않을까?

왜 우리정부는 독립정부를 세운 지 70여 년이 넘었지만 일본 정부에게 '간토대학살'에 대해 진상규명을 단 한번도 요구하지 않았는지?
상해임시정부조차 위험을 무릅쓰고 특파원을 파견해 피해조사작업을 벌여 학살된 사람이 6661명임을 밝혀냈건만.
왜 우리는 한반도 어디에도 간토대학살 피해자를 기리는 단 한기의 추모비도 세우지 않았는지?
 
못다 한 이야기
① 간토는 일본의 관동지방을 말한다. 도쿄, 사이타마, 요코하마, 지바현들을 일컫는 말이다. 일본에서는 관동대진재라고 보통 표현한다. 1923년 9월 1일 11시 58분 진도 7.2의 강력한 지진으로 12만 가구의 집이 무너지고 이재민이 40만명에 달한 재난을 말한다. 제2차 야마모토 내각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사태수습에 나섰다. 그런데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자 민중의 불만을 돌리기 위해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 '조선인이 폭동을 준비한다'는 유언비어를 조직적으로 퍼트리며 정부,군대,경찰,자경단이 합세해 조선인 대학살을 자행했다. 여기서는 관동대진재를 '간토대지진'으로 썼다.
 
② 9월1일 요코아미초 공원에서 열린 추도식에 보낸 일본의 영화감독 야마다요지와 소설가 나카자와 케이의 메시지는 아래 기사에서 인용했다.
(https://news.yahoo.co.jp/articles/4f153bd4f68bcee81afcef6502bdc1717e423820)
 
③'재특회'는 대표적인 혐한 극우단체다. 정식 명칭은 '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모임'(대표 사투라이 마코토)으로 2007년 1월 20일에 발족해서 2009년 10월 22일 기준으로 회원수가 7,000명이 넘었다. 특별영주자격을 갖고 있는 재일코리안들의 권리를 폐지하자고 주장하며 혐한, 혐오시위를 주도하고 있다.
 
③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도 2015년 '갈무리출판사'에서 나왔다. 당시 가토나오키는 한국 내 출판을 반기면서도 자신의 책이 민족주의 정서에 활용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는 당부를 했다.
 
④ '거리에서' 76쪽의 학살장면은 나라시노 수용소와 관련이 있다. 조선인에 대한 자경단의 학살이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자행되자 일본 정부는 대내외에 알려질 것을 우려, 9월 4일을 기점으로 민간의 폭력을 통제하고 보호를 명분 삼아 조선인 3,000여명을 도쿄 동쪽에 있는 지바현 나라시노 수용소에서 가두기 시작한다.
 
이때 군은 조선인 중 사회주의자, 저항경력이 있는 자, 요시찰 인물들을 분류하여 이들 일부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 다카쓰, 오와다, 오와다신덴, 가야다 등 주변의 마을 사람들에게 죽이도록 했다.
 
이는 당시 후나바시 경찰서 순사부장 와타나베 요시오가 "하루에 두세 사람씩 수가 모자란다"는 증언, 그리고 재일사학자 강덕상이 수용인원과 출소인원 사이에 300명 차이가 난다는 점에 주목, 연구하면서 의문이 제기되었고 이후 학살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일기, 증언들이 나오면서 그 실체가 밝혀졌다.

⑤ 가토 나오키씨 인터뷰는 이메일로 진행했다. 여러 제약에도 야후재팬 칼럼니스트 서대교씨의 도움을 받아 많은 얘기들을 주고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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