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건은 1900년 9월 2일 대구에서 출생했다. 작가 생활은 1920년 11월 단편소설 〈희생화〉를 선보이면서 시작했다. 그는 1921년 1월 〈빈처〉와 11월 〈술 권하는 사회〉를 발표하면서 단숨에 '문단적인 명성'을 얻었다(조연현, 〈현진건 문학의 특성과 문학사적 위치〉, 《현진건 연구》, 새문사, 1 981, Ⅱ-91). 

동아일보 사회부장으로 재직하고 있던 현진건은 1936년 8월 25일 '일장기 말소 의거'를 일으켜 구속되었다. '일장기 말소 의거'는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소식을 신문에 보도하면서 사진의 일장기를 지워버린 민족언론 독립운동이었다.

일제는 그후 '다시는 언론에 종사하지 않는다' 등의 조건을 붙여 현진건을 석방했고, 연재 중이던 장편소설 〈흑치상지〉를 강제 중단시켰고, 창작집 <조선의 얼굴>의 판매를 금지했다. 그 이후 가난과 울화에 시달리던 현진건은 1943년 4월 25일 타계했다. 이날 그의 절친한 벗이었던 이상화도 세상을 떠났다.  

현진건의 생애는 '한국 단편소설의 아버지'이자 일장기 말소 의거를 일으킨 독립유공자로 요약할 수 있다(김윤식 ‧ 김현, 《한국문학사》, 민음사, 1973, 153쪽). 그런데 서울 부암동 집터 앞에 세워져 있는 표석과, 대구 두류공원 '현진건 문학비'에는 일장기 말소 의거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현진건의 정체성을 절반만 드러내는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  

현진건은 독립운동가로도 널리 인식되어야 한다. 그를 소설가로만 한정해서 여기는 것은 옳지 않다. 이광수 등 수많은 문인들이 친일로 변절했을 때 현진건은 투옥되고 고문당하면서 얻은 울분과 병으로 끝내 43세의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했다. 그런 현진건을 단순히 소설가로만 소개해서는 안 된다.

현진건에 대한 또 다른 오해의 하나는 그의 작품세계를 흔히 '자전적'이라고 이해하는 점이다. 필자는 현진건 선생의 탄생 121년을 맞아 그의 작품을 자전적 소설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펼치려 한다. 다만 지면 관계상, 가장 널리 자전적 소설로 여겨지고 있는 〈빈처〉 한 편에 대해서만 분석을 해보고자 한다.

〈빈처〉를 자전적 소설로 볼 수 없는 이유

〈빈처(貧妻)〉의 사건은 모두 '가난(貧)'에서 유발된다. 그 점은 '가난할 貧'을 포함하고 있는 제목이 처음부터 강력히 말해주고 있고, 첫 장면도 '가난'으로 시작된다. '아내'는 전당포에 맡길 저고리를 찾는 중이다. 이미 전당포에 맡겨버린 옷이라 집에 있을 리 없는데도 기억을 하지 못한 탓에 그것을 또 맡기려 하고 있는 것이다. 기억력 쇠퇴 탓에 벌어진 일인 듯싶지만 실제로는 '가난'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이어서, 친척들로부터 "거지가 될 것"이라는 비아냥에 시달리고 있는 '나'는 "돈을 알고 위인이 진실"하다는 평판이 자자한 동년배 친척 T와 자신을 비교한다. 이 역시 '가난' 때문이다.

다음에는, T가 자신의 아내에게 주려고 산 "흰 비단 바탕에 두어 가지 매화를 수놓은 양산" 이야기가 나온다. 그것을 "홀린 듯이 들여다보고 있"던 아내가 "당신도 살 도리를 좀 하세요"라고 말한다. "성낸 불길이 치받쳐 올라온" '나'는 아내에게 "막벌이꾼한테 시집을 갈 것이지, 누가 내게 시집을 오랬소! 저 따위가 예술가의 처가 다 뭐야?"라고 폭언을 퍼붓는다. '가난'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그러다가 장인 생신 잔치에 가게 되고, "여느 여자를 보아도 거의 다 비단옷을 입고 고운 신을 신었는데" 아내만 혼자서 마땅히 입을 옷이 없어 "당목옷(무명 피륙)을 허술하게 차리고 타박타박 걸어오는" 광경이 펼쳐진다. 나는 "이 집 하인인가 보다"라고 사람들이 "경멸"하는 것만 같아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화끈"거린다. 이 역시 '가난' 탓이다.

동생이 낡은 신을 신고 온 것에 마음이 아팠던 처형이 새 신을 사들고 찾아온다. 아내는 처형이 돌아가고 난 뒤 "퍽 이쁜 걸요!", "어쩌면 이렇게 맞어요!" 하면서 좋아한다. 그 광경을 보며 나는 아내에게 "저 따위가 예술가의 처가 다 뭐야?"라고 막말을 했던 일을 "후회"한다.

나는 아내에게 "나도 어서 출세를 하여 비단신 한 켤레쯤은 사주게 되었으면 좋으련만…" 하고 말한다. "아내가 이런 말을 듣기는 참 처음"이다. 아내는 나의 그 말에 감동하여 "얼마 안 되어 그렇게 될 것이야요!"라고 "힘있게" 말한다. 이런 대화를 주고받게 된 것도 물론 '가난' 탓이다.

만약 '나'가 가난하지 않은 예술가라면 그를 주인공으로 해서는 〈빈처〉 같은 소설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핵심적인 문제는 현진건의 실제 삶이 소설 속 '나'의 가난과 얼마나 일치하는가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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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부암동 현진건 집터 앞의 표석. 현진건이 일장기 말소 의거를 일으킨 독립유공자라는 내용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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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결혼한 뒤) 처음에는 그럭저럭 지내었지마는 한 푼 나는 데 없는 살림이라 한 달 가고 두 달 갈수록 점점 곤란해질 따름이었다"는 내용은 현진건의 실제 삶과 거리가 까마득하다.

현진건의 집은 아버지가 정3품 대구전보사장을 역임한 덕분에 홍건, 석건, 정건, 진건 네 아들이 모두 러시아, 중국, 일본에 유학했을 정도였고, 현진건의 장인 이길우(李吉雨)는 만석꾼이라던 형 이장우(李長雨)와 더불어 대구에서 손꼽히는 부호였다.

소설은 "처가 덕으로 집간도 장만하고 세간도 얻어 소위 살림을 하게 되었다"라고 했지만, 현진건은 "처가 덕"으로 집을 장만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중국에서 돌아온 6월 19일 이후 불과 세 달도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난 양부(養父, 궁내부 시종과 주일공사관 참서관을 역임한 당숙 보운)가 남겨준 서울 종로구 관훈동 52번지 주택의 소유자가 되었다.

물론 현진건은 소설의 주인공처럼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아내가 저고리를 전당포에 맡겨야 일상 경제가 지탱되는 빈곤 상태는 더욱 아니었다. 소설은 현진건의 실제 삶과 거의 정반대일 정도로 판이하게 묘사되어 있을 뿐이다.

1915년 결혼 이래 거주했던 처가도 대구 중구 인교동에 있었으므로 현진건이 장인의 생일을 맞아 "(소설의 부부가 사는, 서울) 천변 배다리 곁"에서 "거리가 꽤 멀"리 떨어진 "(서울) 안국동" 처가까지 "한참"을 걸어갈 일도 없었다.

〈빈처〉는 가난에 시달리는 아내를 등장시키고 있으나 현진건의 실생활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빙허가 서울로 올라오고 난 뒤에도 대구의 처가에서 물질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음은 물론 심지어는 가정부까지 주선해 주었다.

거기다 양가로부터 물려받은 재산도 적지 않아서 경제적으로 궁색한 편은 아니었다. 그래서 빙허의 관훈동 집에는 <백조> 동인들인 나도향, 박종화, 안석영, 박영희를 비롯 고향 친구 이장희, 이상화, 백기만 등이 끊임없이 드나들었다.

사소한 유사점이 있다고 소설을 자서전처럼 여겨서야

〈빈처〉의 주인공 '나'와 작가 현진건의 실제 삶 사이에 발견되는 공통점을 중심으로 논의를 진행해 보자. 두 사람 모두 작가 지망생이라는 점, 아내가 남편보다 연상이라는 점, 남편은 외국 유학을 한 신식 지식인이고 아내는 구식 여성이라는 점이 소설과 실제의 공통점이다. 하지만 이는 현진건 특유의 경험이 아니라 당대에 너무나 흔한 사회현상이었으므로 〈빈처〉가 '자전적 소설'이 아니라 '사회 소설'로 인정되는 데에 오히려 유용한 근거로 여겨진다.

마지막으로 남은 공통점은 소설 속 주인공이 "내가 외국으로 돌아다닐 때에 소위 신풍조에 띄어 까닭 없이 구식 여자가 싫었다. 그래서 나는 일찍이 장가든 것을 매우 후회하였다"라고 자술하는 부분이다.

현진건이 수필 〈결혼제도 없는 사회〉에서 "가정이란 인생고의 실험실인 줄 생각합니다. 제도가 아무리 변한다 하더라도 이 고苦만은 의연히 고로 남을 것 같습니다. 내게 능력이 있다면 가정‧결혼‧이혼 제도가 없는 사회이겠지요"라고 말한 내용을 본인의 "후회"로 간주한다 하더라도 이 점만 가지고 소설 자체를 자전적이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소설 속의 '나'가 구식 여성 아내와 이혼한 후 신여성과 재혼하지 않듯이 현진건도 이혼과 재혼을 거치지 않았다고 하여 〈빈처〉를 자전적 소설이라고 할 수도 없다. 결론은, 소설의 '나'와 작가 현진건은 전혀 다른 삶을 보여주고 있으므로 〈빈처〉는 결코 자전적 소설이 아니다.

소설의 '나'는 빈곤에 짓눌려 무기력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현진건 본인은 부유한 가정 출생에 외국 유학 후 유력 신문사 현직 기자로서 처가도 부호였을 뿐만 아니라 강력히 일제에 저항한 독립운동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