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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가석방 된 지 6일째인 8월 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오전 공판을 마치고 법원을 빠져나가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가석방 된 지 6일째인 8월 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오전 공판을 마치고 법원을 빠져나가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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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직업을 구하고 있다. 오죽하면 취업준비생이란 말까지 있을까. 실업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밤늦게까지 공부하고 면접을 대비한다. 채용 비리는 열 받는다. 그토록 취업을 원했는데 누군가 특혜를 받아 날름 자리를 챙기니까.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가문의 영광을 수호해야 할 사람들은 취업도 채용 비리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자기 자리는 정해져 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가문의 영광이 중요하더라도 법률이 제한한 직업을 가져서는 안 된다. 그러면 '가문'이 '법률' 보다 더 우위에 서게 된다. 사회적 특권 계급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특정경제범죄법은 재산범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은 판결이 확정된 때로부터 형벌 집행 종료 후 5년이 지날 때까지 국가·지방자치단체가 출자한 기관이나 유죄판결된 범죄행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업체에 취업할 수 없다고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명문 가문 출신 홍길동이 아무리 유능하더라도 가문의 회삿돈을 횡령하거나 배임행위를 저질렀다면 공기업이나 가문의 회사에 취업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홍길동이 다른 일을 못 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회사에 취업하거나 장사를 하면 된다. 물론 그냥 놀아도 된다.

특정경제범죄법이 이러한 취업제한제도를 둔 이유는, "경제윤리에 반하는 특정경제범죄 행위자에게 형사벌 이외의 또 다른 제재를 가함으로써 특정경제범죄의 유인 내지 동기를 제거하면서도, 범죄행위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는 기업체에서 일정 기간 회사법령 등에 따른 영향력이나 집행력 등을 행사하거나 향유할 수 없도록 함으로써 관련 기업체를 보호하여 건전한 경제질서를 확립하고 나아가 국민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서"다. (서울행정법원 2020구합67681)

대한민국 법무부는 삼성그룹의 법무팀인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가석방 된 지 6일째인 8월 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오전 공판을 마치고 법원을 빠져나가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가석방 된 지 6일째인 8월 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오전 공판을 마치고 법원을 빠져나가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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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 8월 13일 가석방된 직후 삼성전자 서초사옥으로 출근하여 경영 현황을 보고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8월 24일 삼성그룹 차원에서 240조 원을 신규 투자하고 4만 명을 채용한다는 투자·고용 방안을 발표하였다. 이재용 부회장의 취업제한 위반 논란이 일자 법무부는 '참고자료'라는 것을 배포하였다.

여기에는 "회사법령 등에 따른 영향력이나 집행력 등'은 상법 및 회사 정관에 의해 권한과 의무가 부여되는 대표이사 또는 등기이사의 영향력, 의사 집행력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판단됨. 이재용 부회장의 경우 부회장 직함을 가지고 있으나 미등기 임원으로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의 케이스와는 차이가 있음"이라고 되어 있다. 어처구니가 없다.

법무부는 판례를 자기 마음대로 갖다 썼다. 삼성전자 2021년 반기보고서(기준일: 2021. 6. 30.) 임직원에 관한 사항을 보면, 미등기 임원 905여 명 중 비상근은 이재용 부회장 단 1명이다. 등기 임원 11명 중 비상근은 사외이사 6명이다. 등기 임원 그 누구도 미등기임원 이재용 부회장보다 삼성전자에 대한 영향력·집행력이 크지 않다. 이재용 부회장이 원탑이란 사실은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법무부는 애써 외면하면서 판례가 언급한 영향력·집행력을 등기 이사의 영향력·집행력으로 애써 축소한다.

법무부의 설명대로라면 아동학대범죄를 저질러 아동복지법에 따라 취업제한명령을 받은 사람도 미등기 무보수로 일하면 아동관련기관에서 취업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게다가 법무부는 2019년 특정경제범죄법상의 취업제한제도에 대해 "회사의 소유권 행사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중대 경제범죄로 유죄가 확정된 사람의 회사 경영권 행사를 제한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2년 만에 입장이 바뀌었다.

통계청의 '한국표준직업분류표'에 따르면, '기업 회장'은 '이사회나 이와 유사한 운영기관 또는 법령에 의해 위임된 권한 하에 사업체의 전반적인 정책을 수립하고 운영현황, 과거의 실적, 미래의 계획을 평가하여 사업계획을 결정하며 대외적으로 사업체를 대표하는 자'로서 분류코드 11201이다. 이재용씨가 기업 회장이 아니라 '부회장'이라고 한다면, '기업 고위 임원'의 분류코드는 11202이다.

어차피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그룹의 최고경영자라면, 그가 놀라운 경영능력을 발휘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일단 법부터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본인이 뇌물과 횡령 범죄를 저질러 그 고초를 겪었는데 다시 법을 지키지 않고 있다. 가석방이 취소될만한 행동이다. 그런데 법질서를 확립해야 할 법무부는 오히려 이재용 부회장은 '취업'한 것이 아니라는 식으로 위법상태를 조장하고 있다.

국어대사전에는 '취업'이 '일정한 직업을 잡아 직장에 나감'이라고 정의되어 있고,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전자로 출근하여 삼성그룹의 전반적인 정책을 수립하고 운영현황, 과거의 실적, 미래의 계획을 평가하여 사업계획을 결정하고 있는데 말이다. 대한민국의 법무부인가, 아니면 삼성그룹의 법무팀인가.

차라리 당사자에게 묻는 게 빠르겠다. 이재용 부회장님, 당신의 현재 직업은 무엇입니까?

덧붙이는 글 | 필자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생경제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이재용부회장, #분류코드, #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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