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9.01 12:46최종 업데이트 21.09.01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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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수십 년간 방치된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는 일들이 진행되고 있다. 제주 4·3항쟁(4·3사건, 4·3학살)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위안부·강제징용 피해 등에 대한 진상규명이 그렇다.

그런데 그런 아픔과 상처에 소금을 뿌리며 저주를 퍼붓는 일이 우리 사회 일각에서 스스럼없이 벌어지고 있다. 8월 30일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이승만기념사업회)가 주관한 '대한민국 건국 73주년 학술대회'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 이 학술대회는 서울광장 옆 프레스센터에서 개최됐다. 


헌법 전문에 따르면 2021년은 대한민국 건국 102주년이다.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선언했다. 이는 대한민국정부가 1919년부터 행정적 관할권을 행사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3·1운동 정신에 있음을 선언하는 것이다.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이 취임한 날은 1789년 4월 30일인데도 미국인들이 13년 전인 1776년 7월 4일을 미합중국의 건국일로 인식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대영제국의 식민지배에 대한 저항 정신을 기초로 미국의 정통성을 세우고자 그렇게 하는 것이다. 이는 거사가 성공한 시점보다 거사를 일으킨 날을 더 중시하는 인류의 오랜 사고방식과 무관하지 않다.

이승만 출생 100주년을 기념해 1975년에 창립준비위원회가 발족했고 지금은 신철식·나경원 정·부회장 체제로 운영되는 이승만기념사업회는 102주년 된 대한민국 역사를 73주년으로 축소시켜 놓고 있다. 그 사이 29년간 벌어진 독립투쟁의 역사를 대한민국 역사로 편입할 명분을 약화시키고, 그 기간에 벌어진 친일반민족행위를 대한민국 법령에 따라 처벌할 근거를 약화시키려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영상 축사에 나선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 역시 "1948년 우리 선조들의 희생과 노력으로 자랑스럽고 위대한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이 출발했습니다"라며 헌법 전문과 배치되는 발언을 했다. 유관순을 비롯한 1919년 당시 우리 선조들의 희생과 노력 위에서 대한민국이 출발했다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외면한 것이다.

이 학술대회 관계자와 발표자들이 3·1운동의 역사적 의의만 부정한 것은 아니다. 이들은 한국 현대사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려는 우리 사회의 염원에 재를 뿌리는 발언들을 서슴없이 내놓았다. 대표적인 것이 4·3에 대한 발언이다.

근거도 없이  
 

화상 발표를 하는 이주천 원광대 명예교수. ⓒ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

 
'신생 취약국가 대한민국의 건국과 남로당의 무장폭동 - 제주 4·3 사건을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발표한 이주천 원광대 명예교수는 분단정부를 반대하고 통일정부를 추구하고자 궐기했던 제주도민들의 희생을 폄하했을 뿐 아니라 4·3을 모스크바와 연결하는 방법으로 그 의의를 깎아내리고자 했다.

뉴라이트(신우익) 학자인 이주천 교수는 텔레비전 방송에 출연해 5·18 북한 개입설을 확산시킨 일로도 알려져 있다. 일례로 5·18 제33주년을 닷새 앞둔 2013년 5월 13일에는 TV조선 <장성민의 시사탱크>에 출연해 북한군이 5·18에 개입했다는 황당한 주장을 내놓았다.

5·18 제29주년을 앞둔 2009년 5월 7일에는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현대사 재조명 토론회'에 참석해 '전두환 장군으로 인해 눈물을 흘렸다'는 발언까지 했다. 그날 발행된 <오마이뉴스> 기사 "촛불은 광주사태 일으킨 좌익세력의 선동"(http://bit.ly/zjxsS)에 따르면 그의 발언은 이렇다.

"김영삼 정부 때, (19)80년 국가의 혼란을 수습했던 전두환 장군을 위시한 신군부 인물들이 반란 모의자가 돼 평생 국가를 위해 봉사한 과정에서 얻은 훈장까지 박탈당했다. 그들은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 참전하며 목숨을 걸고 싸워온 무공훈장까지 박탈당했다. 나는 그 판결문을 눈물이 나서 읽을 수가 없었다."

다시 2021년 현재로 돌아와서, 이주천은 학술대회 발표에서 5·18을 바라보는 시각으로 4·3을 바라봤다. 광주시민들을 외부세력과 연관시키듯, 제주도민들도 바깥 세력과 연계했다. 이 사건의 의의를 소련 스탈린에 대한 추종에서 찾아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4·3항쟁의 성격을 언급하는 대목에서 "이것은 북한의 무력 남침, 적화통일의 사전정지 작업이라는 점이 2년 뒤에 있었던 6·25 남침 전쟁으로 판명됐습니다"라고 말했다. 김일성의 적화통일을 위한 준비 작업이 바로 4·3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제주 4·3사건은 미군정과 유엔의 건국 작업 실행에 대한 폭동이자 도전이었고 대한민국 건국 이후 지속된 무장투쟁이었기에 반란으로 규정해야 마땅합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런 뒤 문제의 소련 발언이 나왔다.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를 보면, 제주 4·3 사건이 자주적인 통일정부를 구성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논리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것이 자주적 통일정부의 구성이란 것이 미군 철수를 유도하여 향후 공산화된 통일정부를 지향하는 것이었다는 겁니다. 그들의 사상적 조국이 공산주의 소련이었다는 것입니다. 또 그들이 충성을 한 인물은 공산주의 독재자 스탈린이었다는 것입니다. 철저한 스탈린주의자였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제주 4·3이 소련과 연관됐다는 결론을 이끌어내기 전에 이주천이 강조한 것이 두 가지 있다. 그는 4·3이 진행되던 1947년 하반기에 소련이 남한의 무장투쟁을 지시했다고 주장한다. 4·3의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1947년 하반기에 미국이 유엔을 통해 한반도 총선거를 실시하는 계획을 추진하자 이에 맞서 소련이 아래와 같이 대응했다고 그는 말한다.

"그 당시 소련은 어떻게 하느냐? 유엔 위원단 활동을 저지하기 위해서 남한에 있는 좌익과 남로당에 지시를 해서 파업·폭동·무장테러를 전개하라고 지시를 했습니다. 해방정국에서 대한민국 건국을 직접 방해한 세력은 남로당이고, 그 남로당의 배후에는 소련군정이 있었습니다."

남조선노동당(남로당)은 해방 전부터 활동한 자생적 공산주의자들을 묶은 조직이었다. 소련과 연계된 것은 김일성에 의해 조직된 이북 공산주의 세력이었다. 단순히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만으로 남로당과 소련을 연결하는 것은 한국 공산주의 운동에 대한 몰이해를 반영한다. 남로당이 소련의 지원을 받는 막강한 조직이었다면, 그들이 김일성에 의해 허무하게 무너진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주천은 '1947년 하반기에 소련이 무장폭동을 지시했다', '4·3 주역들이 충성을 바친 대상은 소련 스탈린이었다'라고 말하면서도, 4·3이 소련의 지시에 따라 움직인 구체적 증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학자로서 무책임한 발언이다.

잔인하고 무책임한
 

문재인 대통령이 3일 오전 제주 4·3 평화교육센터에서 열린 제73주년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에서 추념사를 하고 있다. 2021.4.3 ⓒ 연합뉴스


이주천이 강조한 또 다른 한 가지는 4·3이 제주도민들의 자발적 투쟁이 아니었다는 주장이다. 소련의 지원을 받는 남로당이 제주도민들을 부추겼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4·3의 주역은 남로당이었다면서 "많은 제주도 인민들이 조직화되고 동원됐"고 이들이 "들러리이고 일종의 소모품이었"다고 말했다.

4·3에 대해 설명할 때는 남로당만 강조할 게 아니라 남로당원들을 포함한 전 제주도민들의 참여를 언급하는 게 마땅하다. 제주 출신인 역사학자 양정심이 1995년 <성대사림> 제11집에 기고한 '제주 4·3 항쟁에 관한 연구'에 이런 대목이 있다.
 
(1947년) 3월 10일 제주도청의 파업을 시발로 제주도는 조선에서 처음 보는 관공리의 총파업에 휩싸였다. 도청 파업에 이어 모든 관공서는 물론 은행·회사·학교·교통·통신기관 등 도내 156개 단체 직원들이 파업에 들어갔고, 상점은 철시되고 학생들은 동맹휴학에 들어갔다. 심지어는 미군정청 통역까지 참여하고 모슬포·중문·애월 지서 등지에서 제주 출신 경찰관 중심으로 현직 경찰관들이 파업에 동참하는 일도 벌어졌다.
 
얼마나 많은 제주도민들이 4·3에 뛰어들는지를 보여주는 서술이다. 그들은 누군가를 위한 들러리나 소모품으로서 아니라 자기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4·3에 뛰어들었다. 남로당원들이 많은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제주도민들의 자발적 투쟁의 일부를 구성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이주천 원광대 명예교수는 제주도민들의 독자성·자주성을 근거 없이 부정했다.

이주천 교수가 내놓은 발언들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커다란 해악이 되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제주도민의 10%인 근 3만 명이 희생된 이 사건의 아픔과 상처를 함께 치유해도 부족할 판국에, 제주도민들을 스탈린의 하수인 정도로 격하하는 것이 얼마나 잔인하고 무책임한지 그 역시 절감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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