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9.02 07:07최종 업데이트 21.09.02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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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쓰레기 500톤이 쌓여 있는 선별장 2020년 10월 미디어 '닷페이스'가 공개한 영상. 플라스틱 쓰레기가 판로를 찾지 못하고 쌓이는 것은 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 것보다 새로 만드는 것이 비용이 덜 들기 때문이다. 그린피스에 따르면 플라스틱 10개를 버릴 경우 그 중 2개만 재활용되고, 대부분은 소각 또는 매립된다. ⓒ 닷페이스

 
나에게는 편의점 일이 참 잘 맞는다. 강사 생활을 하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으로 돌아와 보니, 사회생활을 위한 페르소나와 본래의 나 사이 갈등이 크지 않다는 점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하지만 내면 갈등을 겪는 일이 하나 있는데, 바로 비닐봉투 제공 문제다. 평소 손님으로서의 나는 상점에서 비닐봉지를 줄기차게 거절하고, 용기에 담아달라며 텀블러, 밀랍랩, 반찬통을 당당히 내민다. 그러나 알바생일 때는 곤란을 겪는다. 일부 손님이 근처 편의점은 봉투를 그냥 준다며 우리 점포와 비교하면, 매출을 걱정하던 점장님 얼굴이 먼저 떠오른다.


어떤 경우는 무상제공이 위법이라고 설명해도 손님 얼굴에서 '여긴 인정머리가 없군'이라는 표정이 읽힌다. 속으로는 '봉투는 인정이 아닙니다. 세상이 차근차근 망하고 있다고요. 이놈의 플라스틱 때문에…!'라고 외치지만 정색하거나 가르치려 들 수는 없다.

사실 나는 매일 외면하고 싶은 현실을 편의점에서 마주한다. 매대와 시식대에 빨대와 나무젓가락을 꼼꼼히 채워 넣고 재활용도 안 된다는 즉석밥 용기들을 보기 좋게 진열하며, 기후위기 '심화'에 적극 협조하는 기분을 느낀다. 컵얼음이 시원시원하게 팔려나갈수록 마음이 무거워진다. 종이 빨대 대신 '구부러지는 빨대'가 필요하다는 손님께 웃으며 플라스틱 빨대를 건네는 기분은, 뭐랄까, 시험 때 답을 알고 있지만 일부러 틀린 답을 써 넣는 기분처럼 묘하다. 종종 생각한다. '편의점에서 일회용품과 플라스틱이 사라지는 날이 올 수도 있을까?'

달라진 편의점, 그런데 이게 친환경이라고?

편의점 업계도 플라스틱과 일회용품 소비를 줄이기 위해 변화의 길을 찾고 있기는 하다. 2030년까지 전 업종에 걸쳐 비닐봉투를 퇴출한다는 환경부 방침에 따라, 편의점마다 기존 비닐봉투를 생분해성 수지로 된 친환경 봉투로 전면 교체하거나 다회용 부직포 쇼핑백, 종이봉투를 판매하고 있다. 간편식 중에는 비건 샌드위치, 콩고기 삼각김밥 등 채식인을 위한 메뉴도 늘고 있고, 이중 일부는 옥수수 전분으로 만든 PLA(Poly Lactic Acid) 용기에 담겨 나온다.

그런데 곳곳에서 '이게 친환경이라고?'하는 생각이 불쑥 끼어든다. 5대 편의점 중 CU와 GS25는 즉석 커피에 대해 텀블러 할인을 시행 중인데, 재미 있는 사실은 커피 기계에 텀블러를 끼워 넣을 수 없는 곳도 있다는 것이다. 기계가 종이컵 높이에 맞춰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뉴스;트리>에 따르면 일부 편의점은 안전사고의 위험 때문에 일회용 컵에 커피를 받아 다시 텀블러에 옮겨 담는다고.
  
한 편의점 브랜드에서 올해 출시한 소주컵, 종이컵, 접시 등 일회용품 8종에는 '친환경'이라는 이름이 크게 붙어 있다. 종이컵은 국제산림경영인증을 받은 크라프트지로 제작했고 화학적 처리를 대폭 줄였으며, 접시류는 플라스틱 원료 사용량을 절반 이하로 줄였다는 것이 업체 측의 설명이다. 분명 기존 일회용품보다는 한 발 나아간 것인데, '친환경 일회용품'이라니, 가려운 곳을 두고 다른 자리를 긁는 듯 찜찜하다.

편의점에서 일회용품 판매를 중단할 수는 없을 테지만, '친환경'이라는 적극적 홍보는 우려를 낳는다. 플라스틱을 사용하고 있음에도 소비자들은 '친환경이라고 하니 생분해가 되나 보지'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일회용품을 소비하기 쉽다. 더구나 국제산림경영인증은 숲을 관리하는 기준일 뿐 생산 과정의 탄소배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그린 워싱(Green Washing, 위장환경주의, 제품 생산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오염 문제는 축소시키고 재활용 등의 일부 과정만을 부각시켜 마치 친환경인 것처럼 포장하는 것)'과 '그린 버블(Green Bubble, 친환경 관련 기업들의 가치가 과도하게 부풀려지는 것)'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이유다.
  
내가 '위장환경주의자'는 아닐까
 

'에코'라는 이름이 붙은 무라벨 사이다 기존 상품과 구별하고 라벨이 없어 생기는 불편에 이해를 얻기 위해 '에코'라는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하지만 전체가 플라스틱인데다 묶음포장마저 비닐로 되어 있는 물건을 '에코'라고 부르기는 조금 불편하다. 한 업체에서만 보이는 모습은 아니다. ⓒ 김나라

 
페트병 겉면의 라벨을 떼고 만든 '무라벨 생수'가 처음 나왔을 때, 단지 그 생수를 사보기 위해 우리 편의점에 들른 손님이 있었다. 요즘도 계산대에서 일반 생수보다 무라벨 생수를 더 자주 만난다. <머니투데이>에 따르면 CU의 자사브랜드 무라벨 생수 'HEYROO'는 2월 출시 후 한 달 간 판매량이 라벨이 있던 제품 대비 78.2%나 늘었다. 환경 인식이 높아진 소비자들이 죄책감을 덜고 간편하게 분리 배출할 수 있는 상품을 택하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문제는 무라벨 열풍으로 같은 기간 생수 전체 매출이 20.4% 늘었다는 점이다. 얇은 비닐 띠 한 장씩을 제거하고서 엄청난 페트병 생산을 촉진하게 된 셈이다. '친환경'이라는 단어가 모든 생산과 소비의 면죄부가 되지는 않는다. 소비자가 먼저 '그렇다고 하니 그런 줄 아는' 수동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관련 정보를 따져보고, 소비가 환경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짐작해 볼 필요가 있다.

최근 부끄러운 사실을 알았다. 단 일주일 간, 2인 가구인 우리 집에서 나온 플라스틱 쓰레기는 자그마치 114개. 그린피스에서 시민을 대상으로 한 '플라스틱 집콕 조사'에 참여해서 알게 된 결과다. 정확히 따지면 이것도 수량이 아니라 제품명에 따라 분류한 가짓수다.

마지막 날 엑셀시트에 쓰레기 정보를 기록하는 중 '정크푸드주의자'인 동거인에게 장난스럽게 호통쳤다. "누가 이렇게 비닐을 많이 버렸어!" 그런데 입력을 마친 후 전체 목록을 되짚어보며 민망해졌다. 대부분은 그가 아닌 내가 만들어낸 쓰레기였다. 왜 내가 만드는 쓰레기는 적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환경에 관심을 갖고 노력한다는 만족감' 때문에 현실을 똑바로 보지 못한 것 아닌가 싶었다. 

물론 한 사람이 모든 것을 할 수는 없다. 기업에서 플라스틱 포장을 대체할 시스템을 마련하지 않아, 아무리 고민해도 대안적 소비를 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안일한 회피 심리에 익숙해져 있었다는 것은 중요한 발견이었다. 기업과 문화를 탓하며 외면할 것이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시도할 것인가' 고민해야 제품 생산과 유통 구조에도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편의점 알바생으로서 할 수 있는 것들
 

소비되지 않아 점포 여기저기 쌓인 컵라면용 나무젓가락 나무젓가락의 유통기한은 4개월이니 대부분은 시원하게 쪼개져 보지도 못한 채로 버려질 것이다. 얼마 전 라면 업체 4사와 편의점 기업 측에 편의점 나무젓가락의 발주식 공급에 대해 제안 글을 남겼다. 구체화되지 않은 생각이었지만 그 중 한 곳에서는 '관련 부서에 잘 전달하겠다'는 답변이나마 받을 수 있었다. ⓒ 김나라

 
실제로 소비자의 끈질긴 요구에 기업들이 바뀌고 있다. 환경운동연합이 펼친 '플라스틱 트레이 제로' 캠페인이 3개월 만에 큰 성과를 거두어, 롯데제과는 '카스타드' 트레이를 9월 이전에 종이로, 해태제과는 '홈런볼' 트레이를 내년 하반기까지 친환경 소재로 교체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농심은 '생생우동'의 트레이에 대해 연말까지 대책을 마련하고 동원 F&B는 '양반김' 트레이를 2023년까지 교체한다.

나도 편의점 알바생의 권한 내에서 비닐봉투 사용을 줄이려고 여러 꼼수를 써본다.  처음엔 "봉투 드릴까요?" 대신 "비닐 사용하시겠어요?"로 접객 용어를 바꾸는 등 방책이 초라했는데, 요즘 좋은 방법을 찾았다. 재사용 쓰레기봉투를 계산대 위에 올려두는 것이다. 눈에 띄면 필요가 생기는 법이라, 파란 재사용 봉투를 본 손님들은 상당수 이 봉투를 선택한다. 

그럼에도 아직 자잘한 자괴감을 느끼는 지점이 많다. 음료의 묶음포장은 대부분 비닐이고 매일 물건 정리 후 나오는 포장재는 구기고 접어도 큰 상자 두 개에 다 담기지 않는다.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물건들이 생존을 위협하는 것이 슬프고 지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더 찾아야겠다고 마음을 돌려 먹는다. 

환경에 무관심한 기업의 상품을 사지 않는 것도 방법이다. 서명 운동에 동참하고, 환경 기사를 자주 열어보는 별것 아닌 일이 우리가 매일 새로 지는 빚을 조금이라도 줄이는 길이다. 우리나라 기온도 10년마다 0.3도씩 꼬박꼬박 오르고 있다. 100년 전보다 여름이 21일가량 늘어났다는 것이 올해 기상청의 발표다. 절실한 것은 무의미한 죄책감이나 손쉬운 만족감이 아니다. 내 일상과 주변 상황, 기업 운영, 정부의 정책을 끈덕지게 지켜보고 문제를 현실적으로 파악하는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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