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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30도가 넘는 날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날씨에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은 결국 장애가 있는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게다가 이들의 죽음은 늘 뒤늦게야 알려집니다. 집에서 고약한 냄새가 나고 벌레가 기어 다닐 때야 발견되는 겁니다.

무더위에 5~6일 만에 발견된 죽음은 보통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입니다. 취약계층의 죽음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나라가 발전해도 취약계층의 삶은 나아지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여기 존엄한 삶이 무너졌다. 더 이상 죽이지 말라! - 장애인과 가난한 이들의 합동사회장'이 17일 오후 서울 중구 청계광장 부근에서 2박3일 일정으로 시작되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가 추모발언을 하고 있다.
 "여기 존엄한 삶이 무너졌다. 더 이상 죽이지 말라! - 장애인과 가난한 이들의 합동사회장"이 17일 오후 서울 중구 청계광장 부근에서 2박3일 일정으로 시작되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가 추모발언을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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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맞은편 빌딩 숲 사이 동자동 쪽방촌에 사는 김정호 동자동사랑방 이사장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폭염은 곧 '죽음'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최근 차 안에서 숙식을 해결하던 50대 홈리스 남성의 죽음(8월 8일)과 옥탑방에 혼자 살며 뇌병변 경증장애와 희귀질환을 앓던 30대 장애인의 죽음(7월 29일)을 언급했다.

빈곤사회연대·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시민단체의 연합체인 '장애인과 가난한 이들이 합동 사회장 공동장례위원회(아래 합동장례위)'가 17일 오후 서울 파이낸스빌딩 앞에서 취약계층으로 죽음을 맞이한 이들을 위한 '합동 사회장'을 열었다.

이름도 얼굴도 없다는 것을 뜻하는 듯 합동분향소에는 검정 실루엣만 있는 영정 사진 두 개와 검정 천으로 씌워진 빈 관이 놓였다. 이날 사회를 맡은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가장 빛나는 순간을 기억하자는 뜻으로 합동분향소에 국화 대신 장미가 새겨진 흰 천을 내걸었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가난과 장애를 차별하는 한국사회의 복지정책 때문에 죽음이 이어지고 있다"면서 "장애인과 가난한 이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복지서비스를 개혁하라"고 요구했다.

"지자체, 찾아가는 복지 서비스 펼쳐야."
 
'여기 존엄한 삶이 무너졌다. 더 이상 죽이지 말라! - 장애인과 가난한 이들의 합동사회장'이 17일 오후 서울 중구 청계광장 부근에서 2박3일 일정으로 시작되었다.
 "여기 존엄한 삶이 무너졌다. 더 이상 죽이지 말라! - 장애인과 가난한 이들의 합동사회장"이 17일 오후 서울 중구 청계광장 부근에서 2박3일 일정으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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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리에 참석한 박승민 동자동사랑방 활동가는 폭염이 이어진 7·8월, 쪽방촌 주민들은 무더위를 피할 곳이 없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넓은 공원 한쪽에 마련된 무더위쉼터에는 그늘막 하나와 대형 선풍기 한 대만 있었다"라면서 "이마저도 지난해와 올해에는 코로나를 이유로 무더위쉼터가 코로나 전보다 50% 축소돼 운영됐다"라고 말했다.

이어 "폭염특보가 발효되면 행정안전부는 "야외활동을 자제하라"는 내용의 긴급재난문자를 발송하지만 쪽방촌 주민들에게는 실내가 안전한 공간이 아니다"라고 호소했다. 환기가 원활하지 않고 냉방시설이 완비돼 있지 않은 곳에 머무르면 온열질환 발생 가능성이 커진다는 지적이다.

박 활동가는 지자체 관계자들이 이들의 현실을 직접 살피기 위해 '찾아가는 복지서비스'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모니터링이나 전화로 쪽방촌 주민들의 안부를 물을 게 아니라 이 사람들이 어떻게 여름을 보내고 있는지 직접 보고 돕는 복지가 시급하다"라고 말했다.
 
'여기 존엄한 삶이 무너졌다. 더 이상 죽이지 말라! - 장애인과 가난한 이들의 합동사회장'이 17일 오후 서울 중구 청계광장 부근에서 2박3일 일정으로 시작되었다. 최용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이 추모발언을 하고 있다.
 "여기 존엄한 삶이 무너졌다. 더 이상 죽이지 말라! - 장애인과 가난한 이들의 합동사회장"이 17일 오후 서울 중구 청계광장 부근에서 2박3일 일정으로 시작되었다. 최용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이 추모발언을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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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방촌에 거주하는 김정호 이사장 역시 "폭염 때 쪽방촌에 있으라는 건 그냥 죽으라는 말밖에 안 된다"라면서 쪽방촌 주민들은 대부분 기저질환이 있는 60대 이상의 노령층인데 이들은 온열질환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 온열질환은 열로 인해 발생하는 급성질환으로 두통과 어지러움, 피로감, 의식 저하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신속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사망에도 이를 수 있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 공동표는 정부의 복지제도를 비판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불평등 해소를 이야기했지만 장애등급제는 가짜로 폐지하고 부양의무자 기준도 약간 폐지했다"면서 " 국가가 책임질 것을 가족들에게 책임전가하는 동안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라고 토로했다.

정부에 ▲기초생활보장제도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장애인탈시설지원법 제정 등을 통한 복지확대와 사회서비스 공공성 강화를 요구한 합동장례위는 19일 오전 11시까지 합동 분향소를 운영할 계획이다. 이어 온라인(https://forms.gle/MprQSziZmzD3q5nv6)으로 장례 위원을 모집해 취약계층의 죽음이 남긴 불평등 개선 요구·추모 메시지를 11일 청와대와 국회에 전달할 예정이다.

태그:#장애, #폭염, #빈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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