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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코로나19 사태와 폭염으로 많은 분이 힘든 시간을 보내오셨습니다. 저는 유럽에서 오랫동안 지내오고 있는데 일이 있어 한국에 머물고 있습니다. 유럽이나 한국이나 여러 가지로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이런 때, 다른 분들이 보시기에 심각하지 않을 수 있는 일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냈습니다.

휴대전화 없어서 받은 차별
 
스마트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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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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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휴대전화를 쓰지 않는 사람으로서 차별을 받아 왔습니다. 한국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고정관념 때문에, 헌법 10조에 보장된 행복추구권과 17조 사생활의 자유를 끊임없이 침해받아 왔습니다. 이는 국가인권위원회법 2조에 있는 19개의 차별 사유에 직접 해당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인권위 누리집(홈페이지)에 나와 있듯 "법에서 직접 명시하고 있지는 않더라도 특정한 사람을 다른 사람들과 구별 짓는 일정한 집단적 속성에 따라 불이익한 대우가 이루어졌다면 '그 밖의 사유'에 해당한다고 보아" 인권위에서 조사하실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은 점은, 휴대전화의 편리한 점을 부정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휴대전화는 좋은 점도 많고, 어떤 분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휴대전화/스마트폰 사용은 전자파, 시력 저하, 중독 현상에 따른 건강 문제를 포함, 비용 문제, 불법사찰 문제 등 조심스럽게 얘기되어야 할 사안이기도 합니다. 제가 이런 이유로 휴대전화를 쓰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핵심은, 휴대전화를 쓰지 않는 사람으로서 '모든 국민은 휴대전화를 쓸 수 있고, 써야 한다'는 그릇된 생각 때문에 차별을 받아오고 있습니다. 

여러 사례가 있지만, 최근의 예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요즘 감염병 사태로 거의 모두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예방접종을 둘러싼 여러 논란이 있는 가운데, 저는 접종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휴대전화가 없어 본인 인증을 요구하는 인터넷으로 사전예약을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인터넷으로 예약할 수 없는 이들은 전화상담소(콜센터)로 하면 된다고 알고 있어 (제 개인용은 아니지만) 어느 유선전화로 콜센터에 연락하였습니다.

코로나 예방접종 콜센터 직원님, 죄송합니다

고백하건대, 저는 이제까지 그래왔듯, 혹시 개인 휴대전화가 없어 뭔가 문제 되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역시나 그랬습니다. 예약하던 중, 저는 콜센터 직원분께 휴대전화가 없어 인터넷에서 예약을 못 했고, 그래서 연락을 드렸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예약을 하려면 휴대전화 번호가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제 번호가 아니어도 좋으니, 가족이나 지인 번호라도 불러주라고 하셨습니다.

원칙적으로 휴대전화가 없으면 예약을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저는 콜센터에서 고생하시는 것은 알지만, 이는 휴대전화를 쓰지 않는 사람을 차별하는 것이라 답하였습니다. 여러 가지로 고생이 많으신 분께 이런 말을 해야 했던 제가 싫었습니다. 저라고 왜 그렇게 하고 싶었겠습니까? 하지만, 휴대전화 번호가 '꼭' 있어야 한다는 말을 계속 들으며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좀 커지기도 했던 듯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예약은 했지만, 그동안 휴대전화가 없어 받아왔던 차별을 더는 참기 어렵다고 깨달았습니다. 위 사례는 '모든 국민은 휴대전화를 쓸 수 있고, 써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바탕한 차별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휴대전화 문자가 예약을 기억하기 위해서라는데, 왜 문자가 있어야 기억한다고 하시는지요? 종이에 받아적기, 전자우편 같은 방법도 있지 않을까요? 물론, 이는 콜센터 직원분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저 지시사항을 따르셨을 뿐입니다. 그리고 제가 콜센터를 대상으로 진정하는 것도 아닙니다. 저는 휴대전화 번호를 '강요'하는 한국사회 전반에 문제를 제기합니다.

휴대전화 강요, 행복추구권 등 침해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제가 휴대전화의 편리함과 필요성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휴대전화가 없는 사람은 차별을 받는 듯한 구조입니다. 헌법에 보장된 행복추구권과 사생활의 자유 등이 침해받고 있습니다. 저는 이 문제가 한국에만 해당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유럽 여러 나라에서 생활해왔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도 문제가 있다고 느껴 왔습니다. 다만, 한국의 경우 제 경험으로는 휴대전화/스마트폰에 대한 압박감이 특히 더합니다.

휴대전화 사용은 선택의 사안이지 의무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지금처럼 '거의') 의무로 지정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차원의 논의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에 저는 국가인권위원회가 휴대전화를 강요하는 사회구조 및 이에 따른 차별을 '포괄적'으로 검토해주시길 요청드립니다. 편지를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태그:#휴대전화, #차별, #국가인권위원회, #코로나, #스마트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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