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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글쓰기 그룹 '대체왜하니?'는 초4에서 중3까지 10대 사춘기 아이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엄마 시민기자들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편집자말]
"엄마, 내 생일 선물로 이거 사줘."

아이는 다짜고짜 핸드폰을 내 앞으로 내민다. 생일이 아직 보름이나 남았는데 빠르다, 빨라. 무슨 선물을 골랐는지 궁금해 핸드폰을 봤다. 초등학교 4학년인 아이가 고른 선물은 인기 걸그룹 여자아이들 CD다.

"너 여자아이들 좋아해?"
"응. 노래 좋아. 나 네버랜드야. 여자아이들 팬클럽."


예전엔 마마무 팬클럽 무무라고 하다가 얼마 전엔 방탄소년단 팬클럽 아미라고 하더니 그새 또 바뀐 모양이다.

"그래? 그런데 CD는 왜 사? 집에 CD플레이어도 없는데."
"요즘 누가 음악 들으려고 CD를 사? 음악은 유튜브에서 듣지. 포카 가지려고 사는 거야. 그리고 내가 사는 건 CD가 아니라 앨범이라고."

"포카? 포카가 뭔데?"
"포토카드!"


아이는 연이은 내 질문이 귀찮다는 듯 팔짱을 딱 끼고 말한다. 참 내, CD가 앨범 아닌가? 게다가 음악을 듣지도 않는데 왜 앨범을 사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 외에는 갖고 싶은 게 없다고 하니 어쩔 수 없다.

정리된 책장 한 켠에 생긴 굿즈존 
 
책장 좀 정리하라는 내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던 아이가 책장을 깨끗하게 정리했다. 정리된 책장 한 켠에 굿즈존이 생겼다.
 책장 좀 정리하라는 내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던 아이가 책장을 깨끗하게 정리했다. 정리된 책장 한 켠에 굿즈존이 생겼다.
ⓒ 김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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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후, 여자아이들 CD, 아니 앨범이 도착했다. 아이는 최근 앨범이 아닌 작년에 나온 덤디덤디 앨범을 샀다. 왜 작년 앨범을 샀냐고 물으니 이번 앨범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아 그렇다는 대답이다. 아이는 앨범을 세트로 구매했는데 그 안에는 낮 버전과 밤 버전 CD 2개가 들어있다. 난 '낮 버전은 밝게, 밤 버전은 조금 슬프게 리메이크된 건가' 하고 생각했으나 내 생각이 틀렸다.

"CD 음악은 똑같아. 포카가 다르지. 포토북도 다르고."

어머나, 같은 CD를 2개나 사다니. 맞다, 어차피 CD를 들을 것도 아니라고 했지. 난 진정하고 구성물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CD가 플라스틱 케이스가 아닌 종이봉투 안에 있다. 과연 이 앨범의 주인공은 CD가 아니다.

CD 외에 알록달록한 36페이지의 포토북과 엽서, 초대장, 투명 스티커, 그래픽 스티커, 멤버 스티커와 포스터가 들어있다. 나에겐 단순한 종이 쪼가리지만 아이는 귀한 보물을 다루듯 조심스레 만진다. 사진을 찍은 후 그것들을 가슴에 꼭 껴안고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조금 뒤 아이 방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나. 책장 좀 정리하라는 내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던 아이가 책장을 깨끗하게 정리했다. 정리된 책장 한 켠에 굿즈존이 생겼다. 아이의 카톡 프로필 사진이 바뀌었다. '덕후의 방'이라는 제목을 단 사진으로.

나 때와는 다른 요즘 초등학생들의 덕질(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나 인물 등에 심취하여 그와 관련된 것을 모으거나 찾아보는 행위)이 궁금해 아이와 함께 글쓰기 하는 날, 초등학생의 덕질에 대해 쓰는 건 어떠냐고 물었다. 흥미 있는 소재에 아이의 눈이 반짝인다.

"엄마 초등학교 때는 말이야(사실은 국민학교지만), 좋아하는 가수가 생기면 용돈을 모아 음반 가게에 가서 그 가수의 테이프를 샀어. 그리고 그 가수가 나오는 프로그램은 다 챙겨봤지. 참, 서점에서 인기 있는 가요 악보도 팔았어. 하나에 500원이었는데 그걸 사다가 얼마나 열심히 피아노 연습을 했는지 몰라. 물론 문방구에서 연예인 사진도 많이 샀지. 더 커서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좋아하는 가수 음악을 틀어달라고 신청했어. 지금처럼 문자로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엽서로 일일이 적어 보냈다고. 완전 정성이지."

나 혼자 추억에 잠겨 말이 많아졌다. 급기야 내가 박남정의 기역니은 춤을 추기 시작하니 아이는 지루한지 드러눕는다. 후다닥 정신을 차리고 엄마 때와는 다른 요즘 아이들의 덕질에 대한 글을 쓰라고 했다. 아이는 술술 적어 내려간다.

오랜만에 보는 아이의 의기양양한 모습

아이가 쓴 글을 요약하자면, 요즘 초딩의 덕질은 첫째, 인터넷에서 좋아하는 그룹의 사진을 모아 오픈 채팅, 네이버 카페 등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리고, 원하는 사진을 다운받는 것이다.

둘째는 해당 가수의 유튜브 스트리밍을 하는 거다. 유튜브 조회수가 음악프로그램 순위를 결정하는데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굿즈를 사는 것이다. 자신이 산 굿즈를 본인 SNS나 카페, 블로그 등에 올리고 팬들끼리 서로 공감대를 형성한다.

글을 읽는데 아이의 열정이 보이는 것 같아 웃음이 난다. 난 아이의 글 아래에 빨간 펜으로 '요즘 초등학생의 덕질에 대해 잘 설명해 주었어요'라고 쓰고 웃음 표시를 남겼다. 그리고 아이에게 질문했다.

"그런데 너 이렇게 덕질하는 거 어떻게 알았어? 처음엔 몰랐을 거 아냐."

아이는 한심하다는 듯 날 보며 말한다.

"엄마, 그런 건 저절로 알게 돼. 인터넷에 좋아하는 연예인 이름을 치고 관련 내용 몇 개만 보면 알게 되는 걸. 그리고 덕질에 대해 알려주는 유튜브도 있어."

아이의 말을 듣고 검색해보니, '○○가수에 입덕(덕질을 시작했다는 뜻)했는데 팬으로서 알아야 할 게 뭐냐, 어떻게 하면 되냐'라는, 딱 봐도 초등학생이 올린 것 같은 글이 엄청 많다.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를 쳐다보니 아이의 어깨가 으쓱하다. 오랜만에 보는 아이의 의기양양한 모습이다.

처음에는 가수의 사진 때문에 앨범을 사는 아이가 이해되지 않았지만, 내가 아이만 했을 때를 생각해보니 또 그럴 수 있겠다 싶다. 나라도 좋아하는 가수의 사진을 얻으려고 앨범을 사고, 좋아하는 가수에게 도움이 된다고 하면 관련 유튜브를 수도 없이 봤을 테니까.

"어른이라면 자신이 지금의 자기 자녀만 한 나이였을 때에 뭘 했고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를 깊이 돌아보는 게 중요하다. 진정으로 아이들의 문제를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란 그것뿐이다." - <찰리 브라운과 함께 한 내 인생> 33p.

초4에서 중3까지 10대 사춘기 아이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엄마 시민기자들의 콘텐츠
태그:#초딩, #덕질, #여자아이들, #굿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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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살아 갈 세상이 지금보다 조금 나아지기를 바라며 내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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