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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코로나 확진자 수가 3일 이상 1000명을 훌쩍 넘기자 정부는 거리두기를 4단계로 격상시켰다. 그에 따라 수도권 학교는 2주간 전면 원격수업으로 전환되었다. 중고등학교는 그즈음 방학을 맞았으나, 초등학교는 방학까지 2주가 남은 상황이었다.

나는 초등학교 2학년 담임이다. 전면 원격수업 전환 발표가 당황스럽긴 했지만, 초등 1~2학년은 매일 등교하던 중이라 대처하기에 더 나았던 것 같다. 지난 한 차례의 전면 원격수업 기간(6월 16~18일)은 너무나 급작스러워 아이들에게 교과서조차 들려 보내지 못했었다. 교과서도 없이 줌 수업을 했던 그때에 비하면 더 나은(?) 상황이었다.

2주라면 원격수업으로 여름방학을 맞이해야 한다. 교육 과정이 거의 끝나가는 시기이긴 했지만, 마지막 단원 중 남아 있는 부분도 꽤 있었다. 아이들에게 교과서와 원격수업에서 다룰 수 있는 수업 자료들을 모두 가방에 넣어 보냈다. 원격수업을 맞을 줄 몰랐던 아이들은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등교한 금요일에 무거워진 가방 무게만큼 무거워진 하교를 맞아야 했다.

그렇게 줌 수업으로 1학기 막판을 달려온 2주. 드디어 1학기를 마무리했다. 초등 2학년 아이들과 4교시 내내 줌으로 수업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다. 코로나 시기 동안 아이들은 원격수업에 익숙해질 만도 하지만, 비대면 수업 시 대처하기 힘든 돌발상황은 생기기 마련이다.

엄마가 기껏 깨워놓고 출근했는데 그새 또 잠들어 1교시 수업에 늦게 들어온 아이, 선생님이 공유하는 영상이 안 보인다며 우는 아이, 아이가 화면에서 사라져서 불러도 한참을 나타나지 않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큰 일 보러 화장실에 가 있던 아이, 배터리 충전이 안 됐다며 곧 기기가 꺼질 거라고 발을 동동 구르는 아이, 자기 집에서 기르던 고양이, 강아지를 화면에 보여주는 것도 부족해 갓 돌 맞은 동생까지 수업에 대동하던 아이.

학교에 등교해 책상, 의자에 바른 자세로 앉아 귀를 쫑긋하던(힘들면 노력이라도 하던) 우리 반 귀요미들 중 많은 아이들은 가정이라는 익숙한 환경에서 맞는 줌 수업에서는 유치원생이나 1학년생으로 퇴행한 모습을 보였다.

그래도 그 정도는 애교로 넘길 수 있었다. 4교시 내내 컴퓨터나 태블릿, 핸드폰 화면에 집중한다는 것이 초2 아이들에게 얼마나 힘들 것인가? 어르고, 달래고, 때로는 단호하게 응징(?)하며 무사히 2주간의 줌 수업을 마치고 1학기 마지막 날을 맞이했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오늘을 마무리하리라, 마음먹었다.

'광복절 계기 교육' 시간이 된 여름 방학식

1교시 여름 방학식. 방학식이라고 해봤자 담임 선생님과 전날 대면으로 나눠준 여름방학계획 안내장을 보며 방학 안내를 하는 시간이었다. 방학 기간과 개학일을 안내하고 '방학 중 국기 다는 날'을 주지시켰다. 항상 광복절은 여름방학 기간에 있다 보니 아이들과 광복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많지 않다. 작년에 학교도 많이 나오지 않던 아이들이라 개중 몇 아이들은 잘 모를 것 같기도 했다.

"얘들아, 광복절이 무슨 날인지 아니?"

음소거를 하지 않고 조금만 긴장을 늦추면 북새통이 되는 줌 수업 시간에 일순, 정적이 감돌았다. 광복절이 무슨 날인지 아는 것을 말해 보자고 했더니, 몇몇 아이들이 손을 들었다.

"국기 다는 날이요."
"3.1 운동을 한 날이요."


아이들의 머릿속에 3.1 운동과 광복절은 혼동이 되는 날일 수도 있겠다. 그때 줌 화면에 번쩍 든 아이의 손이 보였다.

"유관순이 태극기 만든 날이요!"

다른 친구가 언급한 '3.1 운동'에서 힌트를 얻은 것 같긴 한데, 이 녀석, 웃기려고 한 말은 아닌 것 같았다. 초2 아이들에게 조촐한 방학 안내를 하려다 '복병'을 만났다. 광복절에 대해 제대로 아는 아이들이 없다니. 이럴 수는 없었다.

"미국이... 일본에... 원자폭탄을 터뜨린 날이요."
"우리나라가 독립한 날이에요."


평소에 책을 많이 읽는 기동(가명)이가 더듬거리며 한 말과 생각이 깊은 예은(가명)이의 말이 없었다면 난 좀 서글펐을 것 같다. 평소엔 참 똘똘한 우리 아이들이 엄혹했던 우리의 역사를 까맣게 잊고 있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얘들아, 지금까지는 광복절이 무슨 날인지 몰랐어도 돼. 그런데 이 시간 이후부터는 광복절이 무슨 날인지 모르면 정말 부끄러운 일이야."

그렇게 여름 방학식 시간은 '광복절 계기 교육' 시간이 되었다. 아이들에게 줌으로 전달하기에는 어렵기도 하고, 어린아이들이라 깊이 있게 다루어주진 못했지만 독립 운동가들 이야기에 자기 방 책장에 꽂혀있던 '김구', '유관순', '안중근' 위인전을 꺼내 보이는 아이들도 있었다. 아이들에게 '광복절'이 조금은 의미 있는 날로 다가갔기를 바란다.

나를 제대로 알아야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고 했다. 가끔 내가 학교에서 배우지 못했던 근현대사의 이야기를 접하면 놀랍고 어떻게 이렇게 무지할 수 있었을까, 부끄럽기 그지없다. 어른들의 이해관계로 왜곡시킨 역사를 우리 아이들에게 두리뭉실하게 전달하는 것은 눈, 코, 입의 위치를 뭉뚱그려놓고 이게 우리 얼굴이야, 하는 것과 같다.

'30-50 클럽'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는가? 1인당 국민소득 3만 불 이상, 인구 5천만 명 이상인 나라를 '30-50 클럽' 국가라고 부른다. 이 그룹에 들어가 있는 나라가 생각보다 많지 않은데,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에 이어 2019년 우리나라가 마침내 이 그룹에 일곱 번째로 들어갔다고 한다. 

G7 국가 중 캐나다만 빠진 격인데 캐나다, 그 넓은 땅덩어리에 인구가 고작 3800만 명 정도라니, 내가 10여 년 전 캐나다를 방문했을 때 그 나라가 그렇게 휑하게 느껴졌던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얼마 전 G7 정상회의 때 우리나라가 초청된 것만 보아도 우리나라의 달라진 국제적 위상이 느껴진다.

국가가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고 기분 좋아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 개개인이 얼마나 고양된 인격과 배움이 있는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나를 제대로 알아야 나를 둘러싼 세계를 보다 폭넓게 인식할 수 있다. 내가 속한 세상의 과거를 제대로 알아야 현재의 나를 바로 세우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방학을 맞았으니, 내 개인의 인격 고양과 배움을 위해 더 노력해야겠다.

아이들의 방학은 모든 어머니들이 더 바빠지는 기간이다. 나도 두 아이를 둔 학부모라 세 끼 밥 챙겨 먹여야 하는 방학이 즐겁게만 다가오지는 않는다. 아이들이 있는 가정 모두 방학 기간이 조금은 덜 힘들고, 조금은 더 즐거운 기간이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brunch.co.kr/@gruzam47)에 함께 게시된 글입니다.


태그:#여름방학, #광복절, #초등학교, #교육, #방학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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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넘은 공립초등학교 교사입니다. 아이들에게서 더 많이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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