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의 성지라 불리는 웸블리 스타디움이 눈물바다로 변했다. 하필이면 가장 잔인한 승리 팀 결정 방식인 승부차기가 또 이어졌으니 아쉽게도 진 팀 선수들은 모든 것이 자신의 탓만 같았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 11미터 킥을 성공시키지 못한 잉글랜드 선수들은 모두 교체 선수들이었고 나이도 매우 어린 편이었다. 형들이 다가와 위로했지만 눈물은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로베르토 만치니 감독이 이끌고 있는 이탈리아 남자축구대표팀이 우리 시각으로 12일 오전 4시 런던에 있는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EURO(유럽축구선수권대회) 2020 잉글랜드와의 결승전에서 연장전까지 1-1로 비긴 뒤 이어진 승부차기에서 간판 골키퍼 잔루이지 돈나룸마의 슈퍼 세이브 활약에 힘입어 3-2로 이겼다. 1968년 로마에서 열린 유럽축구선수권대회 결승전에서 유고슬라비아를 2-0으로 이기고 우승했던 기억 그 이상의 감격을 재현한 것이다.

대회 최우수선수, GK '돈나룸마'

결승전 시작 후 1분 56초만에 믿기 힘든 골이 터져나와 웸블리 스타디움이 일찍부터 뜨겁게 달아올랐다. 홈 팀 잉글랜드의 역습 상황, 오른쪽 측면 키어런 트리피어가 날카롭게 올린 크로스가 반대쪽으로 날아와 루크 쇼의 벼락같은 하프 발리슛이 들어간 것이다. 

이탈리아 수비수들이나 골키퍼 돈나룸마가 서로 얼굴을 쳐다볼 수밖에 없을 정도로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오랜만에 웸블리 스타디움 관중석에 모여든 수많은 홈팬들은 이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것처럼 기쁨을 나누기 시작했다. 

하지만 뒷심 좋은 이탈리아가 이대로 물러설 팀은 아니었다. 62분에 페데리코 키에사가 날카롭게 깔아찬 오른발 슛부터 가볍게 볼 일이 아니었다. 잉글랜드 골키퍼 픽포드의 슈퍼 세이브로 이 순간은 모면했지만 5분 뒤 코너킥 세트피스까지 감당하지는 못했다. 베라티의 1차 헤더 슛은 픽포드가 막아냈지만 바로 앞에 흐른 공을 수비수 보누치가 왼발로 정확하게 밀어넣었다.

잉글랜드가 이번 대회에 탄탄한 수비 조직력을 자랑하며 강력한 우승 후보로 손꼽혔지만 정말로 그들의 오랜 숙원을 풀기 위해서는 추가골이 절대 필요했다. 그런 의미에서 연장전 시작 후 5분이 지나면서 얻은 절호의 역습 기회에서 스털링이 반박자 빠른 얼리 크로스를 보내주지 못한 순간은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모두가 피하고 싶은 승부차기가 이어졌고 홈 팀 잉글랜드로서는 매우 씁쓸한 입맛을 다셔야 했다. 잉글랜드의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감독은 연장전 종료 직전에 한꺼번에 두 장의 교체 카드를 썼다. 누가 봐도 승부차기 키커를 작정하고 들여보낸 것이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 때 함께 들어간 마커스 래시포드와 제이든 산초가 잉글랜드의 오랜 염원을 이루지 못했다. 어쩌면 상대적으로 어린 선수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순간이었을 것이다. 

1997년생 마커스 래시포드는 잉글랜드의 세 번째 키커로 나와 상대 골키퍼 돈나룸마를 슛 동작으로 속였지만 오른발 킥 방향이 약간 틀어지는 바람에 왼쪽 기둥을 스치며 밖으로 나가버렸다.

래시포드와 함께 교체 멤버로 들어온 2000년생 제이든 산초도 그 다음 네 번째 키커로 나와 오른발 킥을 날렸지만 이탈리아의 영웅 돈나룸마 골키퍼가 날아올라 막아냈다.

잉글랜드의 마지막 키커 또한 후반전에 교체로 들어온 2001년생 미드필더 부카요 사카였고 부담감 속에 찬 왼발 킥을 돈나룸마가 자기 왼쪽으로 훌쩍 날아올라 막아내고 말았다.

준결승전에 이어 결승전까지 승부차기 승리로 이탈리아의 우승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잔루이지 돈나룸마는 시상식에서 대회 MVP 성격의 'Player of the Tournament' 트로피를 받아들었다.

EURO 2020 결승 결과(12일 오전 4시, 웸블리 스타디움, 런던)

★ 이탈리아 1-1 잉글랜드 [득점 : 레오나르도 보누치(67분,도움-마르코 베라티) / 루크 쇼(2분,도움-키어런 트리피어)]
- 연장전 후 승부차기 3-2로 이탈리아 우승!

이탈리아 선수들
FW : 로렌조 인시네(91분↔안드레아 벨로티), 시로 임모빌레(55분↔도메니코 베라르디), 페데리코 키에사(86분↔페데리코 베르나르데스키)
MF : 마르코 베라티(96분↔마누엘 로카텔리), 조르지뉴, 니콜로 바렐라(54분↔브라이언 크리스탄테)
DF : 에메르손(118분↔알레산드로 플로렌지), 조르지오 키엘리니, 레오나르도 보누치, 지오반니 디 로렌조
GK : 잔루이지 돈나룸마

잉글랜드 선수들
FW : 라힘 스털링, 해리 케인, 메이슨 마운트(99분↔잭 그릴리시)
MF : 루크 쇼, 데클런 라이스(74분↔조던 헨더슨 / 120분↔마커스 래시포드), 칼빈 필립스, 키어런 트리피어(70분↔부카요 사카)
DF : 해리 매과이어, 존 스톤스, 카일 워커(120분↔제이든 산초)
GK : 조던 픽포드

EURO 최근 결승전 기록(왼쪽이 우승 팀)
2020년 이탈리아 1-1(PSO 3-2) 잉글랜드
2016년 포르투갈 1-0 프랑스
2012년 스페인 4-0 이탈리아
2008년 스페인 1-0 독일
2004년 그리스 1-0 포르투갈
2000년 프랑스 2-1 이탈리아
1996년 독일 2-1 체코 공화국
1992년 덴마크 2-0 독일
1988년 네덜란드 2-0 소련
1984년 프랑스 2-0 스페인
1980년 서독 2-1 벨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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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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