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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25일 오늘은 6.25 전쟁 71주년이다. 6.25 전사자들의 유해를 발굴하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국유단)에서 유해발굴병으로 군 생활을 한 나로선 매년 6월 25일만 되면 애틋한 마음이 인다.

광덕산, 설악산, 박달봉, 견치봉, 그리고 화천의 무명 943고지까지. 1년 9개월 동안 오른 유·무명의 고지들의 풍경과 그곳에서 마주한 전쟁의 참상들은 지금도 내 기억 속에 생생하다.

호미로 살살 긁기만 해도 쏟아져 나오는 각종 탄피들을 보면서 교과서에서만 보던 전쟁이란 게 정말 이 땅에서 벌어졌음을 실감했다. 마침내 발굴된 유해들은 도대체 어떤 모습으로 죽어갔을까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형체 없이 으스러진 뼛조각들의 형태가 대부분이었다. 그때 나는 간접적으로나마 전쟁의 공포를 체험했던 것 같다. 
 
2015년 6월, 설악산 상봉 정상에서 유해발굴을 실시하는 모습. 스크린이라는 장비를 이용해 미세한 뼛조각을 찾아내는 장면이다. (오른쪽 국유단 모자를 쓴 이가 기자 본인)
 2015년 6월, 설악산 상봉 정상에서 유해발굴을 실시하는 모습. 스크린이라는 장비를 이용해 미세한 뼛조각을 찾아내는 장면이다. (오른쪽 국유단 모자를 쓴 이가 기자 본인)
ⓒ 박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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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만 쌓여있던 '북한 전사자 매장지역 자료집'

군 생활 중 에피소드 몇 개를 소개해보려 한다.

첫 번째 일화. 국유단에서는 전국의 전사자 유해 매장 추정 지역을 자료집으로 제작하고 있다. 그중에는 '북한 내 전사자 유해 매장 추정 지역'을 정리한 자료집도 있었다.

원래는 이런 자료집들을 바탕으로 발굴팀이 투입돼 대대적인 유해발굴을 실시하는데, 북한 자료집은 당장 쓰일 일이 없어 그저 먼지만 쌓인 채 유리진열장에 보관돼 있었다.

참 씁쓸하고 아쉬웠다. 북한에서 전사했다는 이유만으로 여전히 남녘 땅 고향으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무수히 많은 호국용사들은 언제쯤 귀환할 수 있을까.

한편으로 기왕 유해발굴병으로 군 생활하는 것, 북한에 파견돼 유해발굴작전을 펼쳐보고 싶다는 개인적인 꿈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한창 군 생활을 하던  2014년부터 2016년은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사건 등으로 남북관계가 심각하게 얼어붙은 상황이었기에 꿈도 꿀 수 없었다.
 
2012년 6월, 인제 명당산에서 노출된 유해를 수습하고 있는 국유단 발굴병의 모습. 매년 6월 각종 매스컴을 통해 소개되는 호국영령의 감동적인 이야기 뒤에는 이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있다.
 2012년 6월, 인제 명당산에서 노출된 유해를 수습하고 있는 국유단 발굴병의 모습. 매년 6월 각종 매스컴을 통해 소개되는 호국영령의 감동적인 이야기 뒤에는 이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있다.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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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밤, 당직실로 걸려온 전화

밤에 당직을 서다 보면 가끔씩 '우리 아버지' '우리 오빠' '우리 형'을 찾아달라는 유족들의 제보 전화를 받곤 한다. 그날도 내가 당직을 서던 날이었다. 밤에 전화가 울리기에 받았다.

"우리 오빠 좀 찾아주세요."

당신의 오빠가 황해도 해주에서 전사했다며 그곳에 묻혀있을 테니 하루빨리 발굴해달라는 청원 전화였다. 늙은 여동생의 간절한 목소리에 덩달아 숙연함을 느꼈다.

물론 내가 그분께 해드릴 수 있는 말은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반드시 찾아드리겠습니다"라는 실천하지도 못할 위로의 한 마디뿐이었다.

북한 내 유해발굴 실시돼야

지난 2년 반 동안 강원도 철원 비무장지대(DMZ) 남쪽 화살머리고지 일대에서 실시된 6.25전쟁 전사자 유해발굴작전이 지난 24일 종료됐다. 군 당국은 총 3092점(잠정 유해 424구)의 유해를, 유품 10만1816점을 발굴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와 DMZ 일대에서 유해발굴을 실시하는 등 유해발굴작전 지역의 범위가 확대된 것은 늦었지만 다행한 일이고 기쁜 일이다. DMZ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유해발굴작전을 실시하는 후배 발굴병들을 보면서 기특하다는 생각과 함께 아무나 경험할 수 없는 숭고한 사명을 수행한다는 생각에 부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2012년 5월 25일, 북한에서 발굴된 故 이갑수 일병의 유해가 고국으로 봉환되는 장면. 미군이 북한 지역에서 발굴한 유해를 미국을 경유해 송환한 특별한 경우에 해당된다.
 2012년 5월 25일, 북한에서 발굴된 故 이갑수 일병의 유해가 고국으로 봉환되는 장면. 미군이 북한 지역에서 발굴한 유해를 미국을 경유해 송환한 특별한 경우에 해당된다.
ⓒ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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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쉬움도 크다. DMZ 유해발굴을 합의한 2018년의 9.19 남북군사합의는 '남북공동 유해발굴'을 천명하고 있었다. 그러나 곧바로 남북관계가 얼어붙으면서 그 꿈은 실현되지 못했다. 지난 2년 반의 유해발굴작전 역시 남측의 단독 작전으로 수행됐다.

만약 이번에 남북공동유해발굴이 성사되었더라면, 이를 기초로 북한 내 유해발굴작전까지도 추진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아쉬움이 남는다. 

국유단은 앞으로도 화살머리고지 동쪽 백마고지 일대에서 다시 유해발굴작전을 개시할 예정이라 한다. 이번 발굴작전에는 북한도 참여하길 고대한다. 북한 역시 전사자 유해발굴과 같은 인도적 차원의 교류협력사업에는 좀 더 대국적으로 협조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서 점차적으로 북한 내 6.25 전사자 유해를 발굴해 그분들을 그리운 가족의 품으로, 고향의 품으로 보내드릴 날을 그려본다. 만약 그런 날이 오기만 한다면야 비록 예비역이지만 기꺼이 두 팔 걷고 달려나가 힘을 보태겠노라 다짐 또 다짐해본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합니다. (https://blog.naver.com/gabeci)


태그:#6.25, #한국전쟁,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 #유해발굴병, #국유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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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사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한국근대사 전공) / 취미로 전통활쏘기를 수련하고 있습니다. / <어느 대학생의 일본 내 독립운동사적지 탐방기>, <다시 걷는 임정로드>, <무강 문일민 평전>, <활 배웁니다> 등 연재 / 기사 제보는 heig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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