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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 8. 11. 미 공군 B-29 폭격기들이 무차별로 폭탄을 투하하고 있다.
 1950. 8. 11. 미 공군 B-29 폭격기들이 무차별로 폭탄을 투하하고 있다.
ⓒ NARA / 눈빛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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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기억 

2021년 6월 25일은 6.25전쟁 발발 71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 전쟁을 생생히 기억하는 사람은 70대 후반 이상일 것이다. 나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때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그해 7월 하순, 당시 내가 살았던 경북 구미에까지도 인민군이 진주했다. 어느 날 북녘인 김천 쪽에서 대포소리가 '쿵쿵' 울리고 화약 냄새가 고약하게 났으며 집 앞 신작로에는 피란민들이 가득 메웠다.

우리 집도 소달구지에다 피란봇짐을 잔뜩 싣고 남쪽으로 떠났다. 몹시도 더운, 뙤약볕이 심한 여름날이었다. 애써 낙동강에 이르렀으나 이미 진주한 인민군들이 길을 막았다.
 
"남조선 인민들, 어서 집으로 돌아 가라야. 미제 폭탄 맞지 않으려면."
 
우리 가족을 비롯한 많은 피란민들은 발길을 돌렸다. 우리 일행이 아래구미 광평동에 이르렀을 때 미 공군 세이브 제트폭격기가 하늘을 까맣게 덮고는 폭탄을 쏟았다. 피란민들은 가재도구와 피란봇짐을 팽개치고는 광평동 사과밭으로 달려가서 남자들은 사과나무에 올라 둥치를 껴안고, 여자들은 사과밭 땅콩 밭에 몸을 숨기고 폭격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나는 그때 여섯 살 소년으로 미군 폭격기의 무서움은 모른 채 폭탄을 떨어뜨리는 게 신기해 땅콩 밭에서 일어나 폭격기를 쳐다보다가 할머니에게 뒤통수를 쥐어 박힌 기억이 지금도 뚜렷하다.
 
1950. 11. 20 원산, 미 공군의 폭격으로 도시 전체가 파괴되고 건물의 기둥과 굴뚝 일부만 남아 있다.
 1950. 11. 20 원산, 미 공군의 폭격으로 도시 전체가 파괴되고 건물의 기둥과 굴뚝 일부만 남아 있다.
ⓒ NARA / 눈빛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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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폭격기 공습

마을에는 폭격이 심하여 금오산 오른편 대성리 마을 앞개울에서 피란을 했다. 개울에서 피라미를 잡다가 폭격기 소리가 나면 토굴로 가서 고개를 박고 숨었다. 밤에는 폭격은 없었지만 그때만 해도 늑대와 여우들이 들끓어 사람 냄새를 맡고 구성지게 울면서 특히 어린아이들을 물어 가곤 했다. 그래서 밤이면 아이들은 한 가운데서 어른들은 바깥으로 자거나 불침번을 섰다.

때때로 인민군들이나 보안대 요원들이 덴지(전지)를 들고 피란처로 와서 얼굴을 비추면서 군인(국군)이나 경찰들을 색출했다.

그때 같이 피란을 한 둘째 고모네 복실이란 개가 요란하게 짖어댔다.
 
"개X끼!"
 
따발총으로 갈기자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 복실이가 이튿날 밤중에야 피란처로 다리를 절면서 돌아왔다. 고모는 이불호청을 찢어 그 헝겊으로 복실이 다리 총상을 감싸주면서 말했다.
 
"아이고, 우리 복실이 살아서 돌아왔구나. 고맙다."
  
1951. 9. 20. 북한의 한 병사가 짐승처럼 기어오면서 투항하고 있다. 전쟁은 사람을 짐승이 되게 한다.
 1951. 9. 20. 북한의 한 병사가 짐승처럼 기어오면서 투항하고 있다. 전쟁은 사람을 짐승이 되게 한다.
ⓒ NARA / 눈빛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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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는 가라

많은 세월이 흐른 뒤 2004년 2월, 내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5층 사진자료실에서 'Korean War'라는 앨범을 들추자 1950년 6.25전쟁 사진들이 그날을 반추케 했다. 그때 나는 그 사진들을 모두 수집하여 전후 세대에 보여주고자 스캔해 왔다. 이후 3차례 더 방문하여 2천여 매를 입수하여 <지울 수 없는 이미지 1, 2, 3> <나를 울린 한국전쟁 100장면> <한국전쟁․Ⅱ> 등의 사진집을 펴낸 바 있다.

그날이 71년이 지난 오늘도 남과 북은 서로 총구를 겨냥하고 있다. 우리는 아직도 강대국 꼭두각시 노름에 춤추면서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나는 이 땅의 한 작가로서 소명감을 가지고 6.25전쟁 이야기를 냉정한 시선으로 담아 <전쟁과 사랑>(가제)란 제목으로 1700여 매의 장편소설로 탈고하여 6.25전쟁 기념일 날 출판 계약을 한 후 올 연말 내 펴낼 것이다.

이제 남과 북 동포들은 무기를 버리고 평화롭게 살 때가 됐다. 이젠 우리도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고 화도 내고 휴전선 철조망도 걷어야 할 때도 되지 않았을까?

일찍이 시인 신동엽은 다음과 같이 울부짖었다.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든 쇠붙이는 가라.

태그:#6.25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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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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