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6.25 07:31최종 업데이트 21.06.25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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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시장 후보 앤드루 양이 2021년 6월 1일 뉴욕 브루클린에서 열린 선거운동사무소 개소식에서 지지자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 연합뉴스


6월 22일 밤 11시 로컬 뉴스엔 두 시간 전 끝난 뉴욕시장 민주당 경선 출구조사 결과가 떴다. 에릭 애덤스 31%, 마야 와일리 22%, 캐스린 가르시아 21%, 그리고 앤드루 양 12%. 29일 부재자 투표 개표를 거쳐 최종 결과는 7월 초에나 나올 예정이다. 막 시작된 개표 결과에 환호하는 상위권 후보의 캠프를 차례로 보여주던 뉴스 화면은 굳은 표정의 앤드루 양을 중계 방송한다. 

"오늘 밤 나온 숫자에 의하면 나는 뉴욕시장이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난 이 경기를 양보하겠습니다. 누가 차기 시장이 되든 830만 뉴욕 시민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나도 기쁘게 함께 하겠습니다." 


2020 민주당 대선 후보로 등장해 얻은 전국적 인지도를 바탕으로 뉴욕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던 앤드루 양. 2017년 대선 출마 선언부터 4년여에 걸친 긴 경선을 끝내는 순간을 지켜보며 같은 아시안으로서 느끼는 감회가 남달랐다. 안타까움과 안쓰러움과 아쉬움이 얽힌 그런 복잡함이다.

지지율 1위에서 4위로 

선거 일주일 전인 6월 15일 뉴욕 맨해튼 록펠러센터. NBC 스튜디오가 있는 이곳에서 민주당 뉴욕시장 후보들의 마지막 TV 토론이 벌어졌다. 불꽃 튀는 두 시간의 스탠딩 토론 후 후보들은 시원 섭섭한 모습으로 방송국 문을 나섰다.

지쳐있는 타 후보들과 달리 앤드루 양은 다른 후보에 대한 박수를 유도하기도 하고 문밖에 기다리던 이들의 공격적인 질문에 친절히 대답해주며 가장 늦게 차에 올랐다. 
 

마지막 TV 토론을 마친 후, 토론 상대에 대한 박수를 유도하고 있다. ⓒ 최현정

 
같은 시각 인근의 딤섬 식당은 생중계 된 후보들의 질문과 대답, 동작에 박수와 야유를 보내는 이들로 가득했다. 잠시 후 환호가 파도처럼 터진다.    

"와아, 정말 왔네. 오늘 정말 잘 싸웠어."
"에릭 애덤스에 대한 마지막 펀치, 빵 터졌잖아." 


가게를 가득 메운 젊은 서포터들과 하이파이브·주먹 인사로 파이팅을 외치는 남자는 방금 전 TV에서 활약하던 앤드루 양이다. 

"난 오늘 여러분을 대신해서 열심히 토론하고 왔습니다. 여러분이 얼마나 최선을 다해 도와주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내 이름이 새겨진 옷을 입고 모르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고 낯선 집 문을 두드리는 모두가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다 같이 우리 뉴욕을 바꿔봅시다."

자정 가까운 시간이었지만 후보나 서포터들 모두 지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올해 46세의 앤드루 양은 그들 한 명 한 명과 셀카를 찍고 악수를 하고 허그했다. 돈을 주고 움직이는 조직이라면 하지 않아도 될 행동이다 싶었다. 자원봉사자들과 앤드루 양 사이의 신뢰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솔직히, 앤드루 양의 지지세는 선거를 앞두고 크게 꺾이는 중이었다. 2021년 1월 13일 뉴욕시장 출마 선언 당시 그는 가장 신선하고 주목받는 후보로 줄곧 여론조사 1위를 유지했다. 아시안 증오 범죄에 대한 경각심 속에 대만계 미국인인 앤드루 양의 당선은 무난해 보였다.

하지만 공직 경험이 없고 NY 선거에서 투표를 하지 않았다는 전력, 팬데믹 상황에 뉴욕을 떠나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공격 지지, 정신질환자에 대한 최근의 발언 등이 보도되며 지지율이 떨어졌다. 

한 토론에서 그는 뉴욕에서 가장 좋아하는 역으로 타임스퀘어를 답했는데, 뉴요커인 양을 '관광객'으로 조롱한 만평이 <뉴욕 데일리뉴스>에 실리기도 했다. <뉴욕 타임스>와 <뉴욕 데일리뉴스>는 뉴욕시 위생국장 출신 후보를 공식 지지 중이다. 양의 대선 출마 당시, 그에겐 대통령보다 시장으로서 도시를 운영하는 게 더 적합할 것이라고 제안했던 <뉴욕 타임스>는 시장 선거가 본격화 되자 앤드루 양을 집중 공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SNS에서 앤드루 양을 팔로우 하며 주변에 적극적으로 추천하던 나도 이스라엘 트윗 이후엔 갈등한 게 사실이다. 아시안 대신 유대교 커뮤니티가 주축으로 보이는 그의 선거 광고가 불편했다.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을 만든 부유한 전략가에 의해 그의 캠프가 움직인다는 기사나 보수적인 유대교 정교회의 지지를 얻기 위해 애쓴다는 소문 등은 나를 비롯한 기존 서포터들을 실망시키기에 충분했다. 언론을 비롯한 뉴욕 기득권들에게 아시안 시장은 시기상조라는 자조가 지켜보는 나도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서 대선 때부터 양을 취재했다는 인터넷 매체 버즈피드 기자에게 양의 부인인 에벌린(Evelyn)이 했다는 말이 꽂힌다. 

"당신이 내 남편에 대해 공정하게 썼다니 다행이네요. 지난 3개월 동안 내 남편 머리에 뿔이 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았거든요." 

선거 운동을 하며 아시안인 그와 그의 아내가 직면했을 높고 두터운 벽이 느껴지는 말이었다. 

주목 받은 기본소득-전국민의료보험 공약

"정치가 가야 할 방향을 버니 샌더스가 얘기하고 있다면 앤드루 양은 구체적인 실천 방법을 제시해 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편과 함께 후원했다는 한 여성은 처음엔 그의 공약이 매우 황당해 보였다고 했다. 하지만 팬데믹을 겪으며 그가 말한 기본소득이나 전 국민 의료보험 같은 개념이 매우 현실적으로 다가왔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10대 동생과 양의 뉴욕 시장 선거 캠프 일을 돕고 있는 제시도 그런 사람이다.  

"나는 그를 지난 대통령 선거 때부터 지지했어. 마침 내가 사는 뉴욕 시장에 출마한다고 해서 1월부터 본격적으로 돕는 중이지. 시청엔 우리처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싸울 사람이 필요해. 팬데믹으로 고통받는 소상공인들 같은 이들 말이야. 나는 양이 그런 사람이라고 믿어."

라파엘은 팬데믹이 낡은 정부 조직에 경고를 울리고 있다고 말한다. 

"내가 알기론 팬데믹 같은 유행병은 수년 동안 반복돼 왔어. 그런데 우리 미국은 다른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별 준비가 없다 싶어. 정부 조직에 대한 그의 신선한 접근은 미래를 준비하는데 중요한 아이디어라 생각해."

린다는 앤드루 양의 캠프에 젊은이들이 많은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그는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그걸 건설하려는 사람이야. 우리는 20년 넘게 이 도시에서 살며 변화를 만들 거야. 기후 변화와 노숙자 문제 같은 것들을 해결하면서 말이지. 이전 40~50년간 해오던 방법으로 뉴욕이란 도시의 문제를 해결하는 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해. 미래에 대한 그의 해결책은 우리를 움직이게 하고 있어."
   

앤드루 양 서포터들이 붙여놓은 지지 문구 ⓒ 최현정

  

가게를 가득 메운 앤드루 양 서포터들 ⓒ 최현정

   
마지막 TV 토론 직후에 만난 앤드루 양의 지지자들은 모두 열정적이고 긍정적이고 열린 사고의 소유자들이었다. 아시안과 유색인도 많았지만 비 유색인도 꽤 많았다. 그들이 앤드루 양을 매력적이라고 하는 것만큼 얘기 나눠 본 그들 하나하나도 반짝이는 눈을 가진 멋진 이들이었다. 그러한 젊은이들을 사로잡고 헌신적으로 움직이게 한 앤드루 양의 힘은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도시 뉴욕만이 아닌 우리 아시안 커뮤니티의 귀한 자산이란 생각이 들었다.

혹자는 앤드루 양이 백인이었다면 미국 유권자들이 그의 아이디어와 에너지를 다르게 취급했을 거라 안타까워한다. 혹자는 아시안 혐오 극복을 위해 더 성실한 미국인이 되자고 한 그의 말을 시대에 뒤떨어졌다 비난한다. 그가 넘어야 할 벽은 그 중간 어디쯤에 있을 것 같다. 

75년생, 그만큼이나 멋지고 씩씩한 아내 에벌린과 함께 그가 그려낼 미래가 궁금하다. 여러 시행착오를 겪은 후 다시 뛰어드는 그의 다음 도전에 미리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그를 바라보고 있을 미국 안의 수많은 아시안 젊은이들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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