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6.24 07:10최종 업데이트 21.06.24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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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서울현충원에 가면 충혼당이라는 봉안소가 있다. 묘역 안장이 한계에 이르자 봉안소를 만들었다. 지은 지 15년쯤 되었다. 한 해에 한 두 번 그 곳을 찾는다. 돌아보면 곳곳에서 20대 초반의 빡빡머리를 한 앳된 얼굴을 담아 둔 유골함을 만날 수 있다. 해가 갈 수록 아는 얼굴도 늘어난다. 생전 만나본 적 없는 얼굴을 그들의 부모가 들고 온 영정으로 익혔다. 

처음 그 곳에 갔던 건 학교 후배의 봉안식 때문이었다. 2014년 여름이었고, 후배는 스물 세 살이었다. 후배는 그로부터 1년 전인 2013년에 상관의 괴롭힘으로 세상을 떠났다. 당시 군은 괴롭힘과 사망의 인과 관계를 무시하고 그를 일반 사망자로 분류했다. 순직으로 처리하면 책임져야 할 사람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국립묘지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유족은 1년이나 군과 싸운 뒤에야 순직 처분을 받아냈고, 국립묘지에 안장도 할 수 있었다.

먼저 간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오늘도 국군수도병원 영안실에는 자식을 땅에도, 가슴에도 묻지 못한 채 마음 놓고 곡 한 번 해보지 못하는 부모가 많다. 죽음의 원인이 밝혀지지 않아서, 밝혀진 원인이 타당하지 않아서, 사람이 죽었는데 책임지는 자가 한 명도 없어서, 원인 제공자가 아무런 벌을 받지 않아서. 각각의 사연도 다양하다. 충혼당에 있는 내가 아는 얼굴의 대부분도 그런 시간을 보내다 현충원에 들었다. 나라 지키다 죽은 사람을 나라가 책임지지 않는다. 
 

고 홍정기 일병의 군번줄. ⓒ 이희훈

 
홍 일병의 허망한 죽음

2016년 한 청년이 군에서 뇌출혈로 사망했다. 알고 보니 아급성(급성과 만성 사이) 골수성 백혈병이었다. 그는 자기가 백혈병에 걸린 줄도 모르고 세상을 떠났다. 치료 한 번 못 받아보고 그렇게 떠났다. 보름 전부터 몸에 알 수 없는 멍이 들고, 이유 없이 토를 하고, 두통이 심해 밥을 못 먹었다. 건강하던 친구가 갑자기 그러니 선·후임 동기가 다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군의관은 자꾸만 감기약을 줬다. 물론 혈액검사 장비가 없는 의무대에서는 환자가 백혈병에 걸렸는지 확인할 도리가 없다. 하지만 더 심한 증세로 자꾸 환자가 찾아오면 상급병원에 보내 검사를 받게 하면 될 일인데 군의관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사단 작계 훈련이 시작되었다. 모두 바빴고, 환자는 아픈 몸을 이끌고 부대에 남아 단독군장을 차고 임무를 수행했다. 사망의 직접 사인이 아급성 뇌출혈이었던 것으로 볼 때, 아마 이때쯤부터 뇌출혈이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환자는 훈련 5일간 병원도 못 가고 앓았다. 바깥 병원은 고사하고 의무대도 가질 못했다. 

훈련 기간이 끝난 뒤에야 간부 하나가 창백한 얼굴의 청년을 민간 병원에 데려갔다. 의사는 혈액암이 의심되니 당장 큰 병원을 찾아가라고 권했다. 그러나 보고를 받은 대대장은 아무 조치도 안 했다. 이틀 뒤 낮에 국군춘천병원 외진이 잡혀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틀 뒤 새벽, 증세가 급격히 심해진 청년이 다시 사단 의무대를 찾았다. 군의관은 혈액 계통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짐작했지만 바이탈이 정상이란 이유로 응급 후송을 하지 않았다. 비슷한 증세로 의무대를 찾은 것이 한 두번도 아니요, 민간 병원에서도 즉시 큰 병원에 가보라 했지만 아무도 환자의 상태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도리어 군의관은 사단 의무대에 병상이 없다며 연대 의무실로 되돌려 보냈다. 청년은 연대 의무실에서 밤새도록 토했다. 아침엔 그 몸을 끌고 구급차도 아닌 단체 외진 버스를 타고 직접 군병원에 가서 CT를 찍고 혈액검사를 했다. 뇌출혈이 확인되어 곧장 대학병원에 실려 갔을 땐 이미 의식을 잃은 뒤였다. 

이 청년의 이름은 홍정기다. 2018년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이 허망한 죽음을 알렸다. 그리고 그로부터 또 3년이 지났다. 

책임 회피용으로 악용되는 순직 유형
 

고 홍정기 일병이 손꼽아 기다리던 제대날짜가 수양록에 적혀 있다. ⓒ 이희훈

 
사망 당시 국방부는 홍 일병을 순직 3형으로 분류했다. 대한민국은 공무를 수행하다 사망한 순직 군인을 3등급으로 나눈다. 1등급은 '타의 귀감이 되는 고도의 위험을 무릅쓴 직무 수행 중 사망한 사람', 2등급은 '국가의 수호, 안전보장 또는 국민의 생명, 재산 보호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직무 수행이나 교육 훈련 중 사망한 사람', 3등급은 '국가의 수호, 안전보장 또는 국민의 생명, 재산 보호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직무 수행이나 교육 훈련 중 사망한 사람'이다.

똑같이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다 공무 중에 사망했는데 누구의 죽음은 귀감이 되는 죽음이고, 누구의 죽음은 국민을 위한 죽음이고, 누구의 죽음은 이도 저도 아니다. 이렇게 매겨진 죽음의 무게는 보훈처로 그대로 넘어간다. 보통 1, 2형은 순직군경으로, 3형은 재해사망군경으로 분류한다. 대개의 1, 2형은 국가유공자가 되고, 3형은 보훈보상대상자가 된다.

법률에 순직을 유형별로 나누어 놓은 것은 2015년의 일이다. 그전까지만 해도 군에서 가혹행위 등으로 극단적인 선택에 이른 병사들은 순직을 인정받기 정말 어려웠다. 서두에 소개한 학교 후배의 사례처럼 사망의 원인이 직무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입증해도 일반 사망으로 처리되기 일쑤였다.

이를 바로 잡으려고 당시 국회 국방위원이었던 김광진 의원이 군인사법 개정 작업에 나섰다. 자해 사망한 이들을 순직자에 포함하는 대신, 순직의 유형을 1, 2, 3형으로 나누게 되었다. 어찌 되었든 유의미한 변화였다.

그런데 국방부는 이 법을 엉뚱하게 악용하기 시작했다. 홍 일병의 사례와 같이 군의 책임을 회피하는 데 사용한 것이다. 군 복무 중 사망한 이의 명예를 회복하고, 유족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만든 법으로 망자를 모욕하고 유족을 괴롭히고 있는 셈이다.

국방부는 홍 일병이 복무 중에 백혈병에 걸려 급격히 악화된 것은 인정하지만, 백혈병에 걸릴 만한 근무 환경이 아니었으니 발병은 군의 책임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공무 상 사망은 인정하지만 사인이 직무수행이나 교육훈련과는 무관한 순직 3형이란 것이다. 얼핏 들으면 그럴싸한 이야기다. 

그러나 국방부의 주장은 홍 일병이 복무 중 백혈병 진단을 받고, 치료도 받다 사망했을 때나 성립되는 이야기다. 홍 일병의 선행 사인은 백혈병이지만 그는 백혈병 진단을 받기도 전에 급성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다. 젊은 남성이 이처럼 백혈병에 걸려 한두 달 만에 사망할 확률은 낮다.

대부분 이유 없이 몸에 멍이 들거나 자꾸 토하면 빨리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고 치료도 받기 때문이다. 백혈병 진단 이후 뇌출혈과 같은 합병증만 잘 관리하면 이렇게 허망하게 빨리 세상을 떠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데 홍 일병은 영내 생활을 하는 병사였다. 군 의료시설은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능력이 없었고, 원한다고 민간 병원에 아무 때나 갈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다. 게다가 훈련 기간까지 겹쳐 의료서비스 접근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에 놓여있었다.

그리하여 자기 병명이 뭔지도 모르고 계속 일을 했고,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군인이 복무와 훈련을 이유로 제때 필요한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했다면, 국가 수호, 안전보장, 국민의 생명, 재산 보호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죽음이라 할 수 없다.

그럼에도 국방부는 순직 3형 처분을 통해 '이 아이는 죽을병에 걸려 죽었으니 우리 탓 하지 말라'는 변명을 늘어놓는다. 일말의 책임 의식도 찾아볼 수 없는 몰염치다. 이에 유족은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고, 위원회는 순직 2형이 합당하다는 방향으로 권고를 내렸다. 유족은 이에 근거해 유형 변경을 신청했다.

그러나 지난 3월, 국방부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는 이 신청을 또 기각했다. '죽을 애가 죽었을 뿐인데 왜 나한테 그러시오'란 말을 장황하게 풀어 써서 유족 앞으로 보냈다. 

번지르르한 말잔치만
 

고 홍정기 일병의 군입대 사진과 유품이 비닐팩에 보관되어 있다. ⓒ 이희훈

 
곳곳에서 자식 잃은 부모가 영정을 품에 안고 거리로, 국방부로, 보훈처로, 법원으로 뛰어다니며 자식 죽음에 알맞은 등급을 매겨달라고 싸운다. 국가가 보훈 수혜자를 나랏돈 타 먹으려는 거지 쯤으로 바라보는 못된 습성을 고치지 않는 한 참담한 풍경은 바뀌지 않는다. 당신이 얼마나 희생했는지 능력껏 입증해보라는 오만한 시스템이 굴러가는 세상에 헌신이란 없다. 건강하게 입대한 사람을 그대로 집으로 돌려보내지 못했으면 희생의 빈 자리는 오롯이 나라가 책임져야 한다. 국민들은 그러라고 세금을 낸다. 

해마다 6월이면 호국보훈의 달이라고 번지르르한 말이 잔치다. 정치인들은 뭐에 당선될 때마다 현충원에 가서 고개를 숙이고 잊지 않겠노라 방명록에 멋진 다짐을 적는다. 그런다고 호국영령과 순국선열이 나라를 보우해주시는 게 아니다.

오늘도 영령과 선열은 대한민국과 소송 중이다. 나라를 지키다 떠난 이들이 나라와 싸우고 있다. 유족들은 통곡으로 묻는다. 

내 아들의 나라는 대체 어디인가?
덧붙이는 글 김형남 기자는 군인권센터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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