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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린 시절부터 혼자 있는 시간을 즐겼다. 눈에 띄게 내성적이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뭐랄까 혼자 있는 시간은 일종의 에너지 충전 같은 존재였다. 사람들? 좋아한다. 많지는 않지만 친구, 선후배 등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가 나 역시 소중하고 좋다. 형제 자매 없이 외동으로 자라서 그런지 옆에 좋은 사람과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따뜻하고 든든한 느낌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만의 시간은 나에게 상당히 중요하다. 먼 산을 바라보거나 멍하니 있을 때면 아내는 가끔 나에게 '무슨 생각을 해?'라고 물어보고는 한다. 솔직히 할 말이 없다. 아무 생각 없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그냥 멍 때리는거다. 가끔은 이런 멍한 상태에서 뜬금없는 행동을 해서 작은 오해를 사기도 했다.

아무튼 멍을 때린다던가 혼자 간단한 작업 같은 것을 하는 등의 이런 과정이 나에게는 흡사 컴퓨터 재부팅같이 느껴질 때도 많다. 총각 때는 사람들이 많은 곳을 다녀오면 몸이 피곤해도 바로 자지 않고 컴퓨터 앞에서 몇 시간을 보낸 후 잠을 청하기도 했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보냈음에도 따로 혼자만의 시간이 꼭 필요할 정도였다.

언젠가 고민 상담 예능에 나왔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 화장실에서 몇 시간씩 보낸다던 어느 아빠의 이야기가 이미 총각 때부터 가슴에 와 닿기도 했다. 다른 이야기는 모르겠지만 그 부분은 바로 공감을 해버렸다. 여기에는 약간의 성향적인 부분도 있고, 외동으로 혼자 자라서 익숙한 탓도 있는 듯싶다.

나중에 지인들 중에서도 이런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게 있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 항상 사람들 속에서 지내고 바글바글한 것을 좋아하는 외향적 성격으로 보였기에 더욱 그랬다. 역시 사람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듯하다.

'그런 사람이 결혼을 해서 아빠가 되었어?' 문득 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놓고도 신기하다. 어릴 때부터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던 나는 아내와 결혼한 지 4년여 동안 10시간 이상 서로 떨어져 있어 본 적이 없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함께했다. 둘 다 집돌이 집순이인 관계로 아기가 생기기 전에도 휴일 등을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함께 보냈다. 연인이자 아내이자 친구였다. 
 
아들의 존재로 인해 나는 오랜 성향까지도 싹 바뀌어버렸다.
 아들의 존재로 인해 나는 오랜 성향까지도 싹 바뀌어버렸다.
ⓒ 김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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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아들에게 웃음을 배우다

'알면 참 따뜻한데…' 총각 때부터 가까운 사람들에게 많이 들었던 얘기다. 성격 자체가 긍정적인 편이고 외모도 카리스마(?)와는 관계가 멀지만 의외로 나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여기에는 혼자 있기 좋아하는 성향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웃음이 적었던 탓도 컸던 것 같다.

큰소리로 웃어본 적이 살면서 몇 번이나 있었을까 싶다. 좋은 일이 있어도 별반 티를 내지 않았다. 박장대소가 나올 법한 상황에서 조차 미소로 슬쩍 때울 때도 많았다. 그렇다고 포커페이스도 아니었다. 평소에는 화를 잘 안 내는 편이지만 특정 싫어하는 부분을 자극받으면 정색을 하거나 굳은 표정으로 난리를 치기도 한다. 종합해보자면 감정 동요는 적은 편이지만 화를 내는 자신만의 발화점이 있으며 무엇보다 잘 웃지 않는 캐릭터라고 보면 맞을 것 같다.

아내와 아들에게 참 고마운게 바로 그거다. 그런 나에게 웃음을 알려줬다. 지금도 막 명랑한 편은 아니지만 예전과 비교해 덜 어색하게 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을 수 있게 됐고 기분이 좋으면 소리 내서 웃기도 한다.

잘 웃는 이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닐지 몰라도 총각 시절의 나와 비교한다면 정말이지 장족의 발전이다. 일부러 소리 내서 웃는 것이 아닌, 그냥 바로 나오는 그런 본능적 웃음이 늘어난 것은 개인적으로도 흐뭇하다.

아내는 웃음이 많은 편이다. 환하게 잘 웃는다. 처음 만났을 때도 그런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뭔가 선하고 긍정적 에너지가 가득해 보였다. 조그만 장난을 칠 때도 아이처럼 깔깔대며 웃는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닮는다고 한다. 그런 모습을 지척에서 계속 대하다 보니 어느새 나에게도 웃음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했다.

웃음과 표정이 제대로 터지기 시작한 것은 아들이 태어나고부터다. 꽁꽁 묶여있던 자물쇠를 아내가 열쇠로 풀어줬다면 아들은 거기에 기름칠을 듬뿍 해줬다.

말을 배우기 전 혹은 배우는 과정의 아기는 표정으로 의사소통을 한다. 부모나 주변 사람들이 일부러 과장스레 웃고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이유다. 나 역시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금세 그런 것을 알 수 있었고 아들과 얘기를 하기 위해서라도 표정을 풍부하게 만들어갔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스러워져 갔다. 아들이 까르르 웃어줄 때는 온몸의 피로가 풀렸고, 그 웃음을 또 보고 싶어서 더더욱 다양한 표정이 지어졌다. 수년 동안 아내, 아들과 함께 하다보니 지금은 혼자 있을 때가 어색하기도 하다. 몸과 마음이 적응이 되어 함께 있는 것이 더 편해졌다. 함께 있어야만이 아닌 당연히 함께 있는, 본래부터 있어온 분신 같은?

물론 오랜 세월 다져진(?) 혼자 있는 시간에 대한 선호도가 완전히 싹 바뀐 것은 아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좀 힘들었다. 특히 막 아들이 태어나서 젖먹이 시절에는 좀처럼 적응이 안 되었던 기억이 난다. 2시간에 한 번씩 분유를 먹이고 다시 재우고를 반복하는 일은 초보 엄마아빠에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아내가 훨씬 고생했지만 옆에서 조금씩 도와주는 것만으로도 철없는 초보 아빠는 많이 힘들었다. 내 시간이 갑자기 사라지다 보니 몸이 힘든 것은 둘째치고 수시로 짜증이 나고 우울해졌다. 별것 아닌 일로 나보다 더 힘들 아내에게 화를 낸 적도 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몸도 못 움직이고 온몸이 불편한 아들이 더 힘들었을텐데…' 하고 미안해지지만 그때는 참, 내 생각만 했던 이기적이고 못난 아빠였다.

최근에는 아들이 어린이집도 다니고 그때보다는 시간적 여유가 살짝 생겼다. 마음만 먹으면 친구나 지인들과 가벼운 술자리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제는 아내, 아들과 떨어져있어도 리얼 아빠가 되어버린 것 같다.

아직 결혼 안 한 선후배나 지인들은 나와 잠깐의 커피 한 잔도 부담(?)스러워 할 때가 있다. 처음에는 다른 주제로 얘기를 하다가도 조금만 지나면 아들 얘기만 계속하기 때문이다. 안 그러려고 해도 '기승전 아들', '기승전 육아'가 되어버린다.

이는 오롯이 혼자 있을 때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인터넷 영상 사이트 같은 곳을 접속해도 나도 모르게 육아나 아기에 대한 것을 찾아서 보게 되고, 각종 커뮤니티에서 아기 움짤 등이 있으면 그냥 넘어가지 않고 클릭해서 확인해보고 혼자 웃음 짓는다.

휴대폰에 저장된 인물 사진의 90%는 아들이며 휴대폰을 보며 시간을 보낼 때도 가장 많이 눈이 가는 것은 아들 사진과 동영상이다. 혼자 있기 좋아하던 초보 아빠는 조그만 성장을 해나가며 세상 모든 아빠들이 걸었던 그 길을 이제 걷고 있다.

태그:#초보아빠적응기, #혼자있기놀이, #멍때리기, #육아일기, #가족의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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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디지털김제시대 취재기자 / 전) 데일리안 객원기자 / 전) 홀로스 객원기자 / 전) 올레 객원기자 / 전) 이코노비 객원기자 / 농구카툰 크블매니아, 야구카툰 야매카툰 스토리 / 점프볼 '김종수의 농구人터뷰' 연재중 / 점프볼 객원기자 / 시사저널 스포츠칼럼니스트 / 직업: 인쇄디자인 사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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