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6.22 18:30최종 업데이트 21.06.22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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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어디에서 왔을까? 철학적인 질문일 수도 있는 이 질문을 역사적 맥락으로 특정해보자. 여기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선조들이 언제 어디에서 이 땅으로 이주해왔고 정착했으며, 지금까지 다른 인류 집단들과 어떻게 섞여 왔는가를 알 필요가 있다.

우리는 대개 한국 역사의 기초를 단군에서 시작하는 고조선에서 찾는다. 그때부터 수천 년의 시간과 조금씩 달라져온 공간을 배경으로 누가 언제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이동했으며, 누구와 유전적으로 교류했는지를 알 수 있을까?


알 수 있다. 다만, 이를 위해 우리는 DNA를 추출해낼 화석이 필요하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을까

주로 인류학과 고고학 분야에서 다루던 이 같은 주제는 최근 진화유전학 분야에서도 활발히 연구 중이다. 발굴된 화석에서 DNA를 채취해 분석하는 이른바 '고대 DNA(ancient DNA)' 기술이 발전한 결과다.

화석에 남아 있는 DNA는 오랜 세월 물리적·화학적으로 손상되고 부패하는 과정에서 미생물들의 DNA와 섞였다. 때문에 화석 고유의 DNA를 골라내는 실험적 방법과 이를 컴퓨터로 확인하고 분석하는 이론과 기술이 필요했다.

또한, 귀한 유산인 인류의 화석이라는 재료를 사용해야 하는 만큼, 시료에 손상을 가장 적게 입히는 방식으로 프로토콜이 진화해왔다. 치아의 뿌리나 귓속 깊숙한 곳에 위치한 추체골(petrous bone)과 같은 부위의 경우, 치과용 드릴로 극소량의 뼛가루를 채취하는 방식이 사용된다. 특히, 박물관에 전시하는 뼈들은 관람객들이 시료를 채취한 흔적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세심하게 다룬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지난 10여 년간 고대 DNA 기술을 포함한 유전체학 분야의 전반적인 발전 덕에, 화석의 유전체를 분석하는 일은 점차 비용은 낮아지고 속도는 빨라져 왔다. 이와 함께 중요하고 흥미로운 연구들도 속속 발표됐다. 아프리카에서 태동한 현생 인류의 조상 일부가 대략 5만여 년 전에 유라시아 대륙으로 이동했고, 네안데르탈인과 여러 차례 혼혈이 있었으며, 그로 인해 현대 유라시아인 2-4퍼센트에는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체 조각이 남아 있다는 등의 연구들이 대표적이다.

아프리카를 나온 뒤 인류 집단이 유라시아 대륙을 어떻게 이동해갔는지, 그 과정에서 어떻게 서로 다른 집단들이 유전적으로 섞이고 다양한 문화가 나타나고 확산되어 갔는지 밝힌 연구들도 있다. 주로 지금의 유럽 지역에 남아 있는 화석들 위주로 된 연구가 많은 편이다.
 

왼쪽은 호모 사피엔스, 오른쪽은 네안데르탈인의 두개골 모형 ⓒ Wikimedia Commons

 
현생 인류의 직계 조상들이 유럽 대륙에 도착한 것은 대략 4만 5천여 년 전이다. 이들은 간빙기가 시작된 이후인 1만 4천 년 전까지 줄곧 이 지역에 정착해 살았다. 이들은 유전적으로 지금의 유럽인들의 직계 조상은 아니다. 빙하기에서 간빙기로의 기후 변화가 있었고, 이후 청동기와 철기를 지나는 동안 유럽 지역에서는 끊임없이 인류 집단들의 이동과 교류가 이어졌다. 그러는 사이 이들의 유전체도 자연히 다양한 인류 집단과 섞였고, 그것이 오늘날 유럽인들에 이르렀다.

지난 4월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에 발표된 연구를 보자. 1만 6900여 년 전 지금의 이탈리아 북부인 베네토(Veneto) 지역에 살았던 인류의 화석 유전체를 분석해보니 위와 맥을 같이 하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간빙기가 시작돼 유럽을 덮고 있던 빙하가 녹으면서 유럽 지역에 살던 인류 집단들의 인구가 늘고 이동도 많아졌다. 예를 들어, 발칸 반도에서 살던 집단 일부가 이탈리아 쪽으로 이동해 알프스와 그 근처 지역에 정착했다는 것 등이다. 이번에 발표된 연구의 화석 유전체는 위 이동이 대략 1만 4천 년 전쯤을 전후로 일어났다고 추정한 기존 학설을 뒤집었다. 실제 유전적 증거를 보니 그보다 3천년 정도 더 이른 시기에 이동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지난 4월 21일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실린 논문의 일부. 이탈리아 북부 베네토 지역의 1만 6900년 전 화석 유전체를 분석해 간빙기가 시작되면서 발칸 지역에서 이탈리아의 알프스 지역으로의 인류 이동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했다.(Bortolini et al. 2021) ⓒ Current Biology

 
현재의 한국인과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운 화석

지난 6월 10일 자 <셀>(CELL)에는 동북아시아 지역 화석들의 유전체를 분석한 반가운 연구가 발표되기도 했다. 지금의 중국 흑룡강성 지역에서 발굴된 3만 3000~3400년 전 사이를 아우르는 25개 화석들의 유전체를 현재 아시아인들과 이전에 발표된 다른 아시아 지역의 화석 유전체들과 비교 분석했다. 흑룡강성 지역은 한반도 북쪽에 위치한 지역으로, 고구려와 발해 시대에 우리 조상들이 진출했던 곳이기도 하다.

<셀>지 논문의 분석에 따르면, 동북아시아에서도 빙하기와 간빙기를 거치는 동안 유럽에서와 마찬가지로 인류 집단의 이동이 영향을 받았다. 이 지역에 처음 인류 조상이 나타난 것은 적어도 4만 년 전의 일인데, 이들은 빙하기를 지나는 동안 줄곧 이 지역에 정착했던 것으로 보였다. 이들 또한 지금 동북아시아에 사는 사람들의 직계 조상은 아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동북아시아인은 현재 한국과 일본, 중국, 몽골 지역, 러시아의 극동 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말한다.
  

6월 10일 자 <셀>에 실린 논문의 일부. 3만 3000~3400년 전 사이의 화석들을 유전체 분석해 간빙기 이후 동북아시아의 인류 이동이 있었다는 것과 이들 집단들이 현대 동북아시아인들과 유전적으로 가깝다는 것을 밝혔다. (Mao et al. 2021) ⓒ CELL

 
빙하가 조금씩 녹기 시작한 1만 9000년 전쯤부터 3000년 전 무렵까지 화석들의 유전체 혈통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는데, 이는 간빙기 이후 인류 집단들의 이동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유전적 교류가 일어났음을 시사한다. 또, 이 화석들은 유전적으로 현재의 동북아시아인들과 매우 가까웠는데, 이는 현대의 동북아시아인들이 이 시기 인류 이동을 통해 정착한 집단들에게 유전적 뿌리를 두고 있음을 암시하는 결과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이 화석들 중에서도 1만 9000년 전의 화석이 현재의 한국인과 유전적으로 가장 가깝다는 점이다. 이것은 우리 직계 조상들이 간빙기에 흑룡강성의 아무르강 근처에 살던 이들과 같은 집단이었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물론, 이들과 우리가 정확히 어떻게 혈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지는 한반도 지역의 다양한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화석들의 유전체를 분석해야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DNA 기법이 범죄수사에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해결점이 없던 사건에 결정적인 실마리를 제공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인류학·고고학적 연구들에 강력하고 구체적인 단서를 줄 수 있는 고대 DNA 연구가 활발하다. 한국에서도 앞으로 관련 연구들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해본다.

'한국인은 어디에서 왔을까?'와 같은 질문을 비롯해 '고려시대에 왕래했다는 아라비아의 상인들은 우리와 유전적 교류가 있었을까?' '다른 집단에게서 들여온 유전적 변이들은 우리 조상들이 질병과 같은 환경 요인에 적응하는 것에 도움을 주었을까'와 같은 다양한 역사적 혹은 진화적 질문들에 하나씩 답이 드러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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