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밈 전쟁: 개구리 페페 구하기> 포스터

<밈 전쟁: 개구리 페페 구하기> 포스터 ⓒ 왓챠

 
큰 눈에 두꺼운 주름을 지닌 침울한 표정의 개구리. 이 캐릭터는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을 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보았을 법하다. 하지만 이 유명한 캐릭터의 이름이 무엇인지, 어떤 의도로 사용되는지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대다수는 그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채, 마치 유행처럼 남들이 쓰기에 자신도 사용한다. 온라인 공간에서 퍼지는 이런 유행을 '밈(meme)'이라고 한다. 밈이 되어버린 이 개구리 캐릭터, 페페는 원작자의 의도와 달리 혐오의 상징이 되어 버린다.
 
다큐멘터리 <밈 전쟁: 개구리 페페 구하기>는 온라인 속 세상이 어떻게 현실에 영향을 끼치는지 보여주는 작품이다. 밈이란 용어는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서 처음 등장했다. 그는 밈을 한 사람이나 집단에게서 다른 지성으로 생각 혹은 믿음이 전달될 때 나타나는 모방 가능한 사회적 단위라 정의했다. 즉, 문화나 사회 현상을 유전자처럼 전이, 경쟁, 자연선택 등의 과정을 거치며 진화하고 전달되는 것으로 보았다. 현대의 온라인 공간에서 이 밈은 짧은 영상이나 움짤, 사진 등이 유행해 2차, 3차 가공을 거쳐 놀이문화가 되는 걸 의미한다.
 
이러한 밈은 원작자의 의도와 다르게 흐른다는 점이 특징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비의 '깡'이나 <타짜>에서의 김응수가 그 의도와 달리 온라인 공간에서 밈으로 소비되면서 인기를 끌은 바 있다. 개구리 캐릭터 페페 역시 마찬가지다. 2007년 미국의 인디 작가 맷 퓨리는 자신의 학창시절을 바탕으로 한 만화 '보이즈클럽'을 제작한다. 이 작품에는 의인화한 캐릭터들이 등장하는데 그 중 하나가 페페다.
 
 <밈 전쟁> 스틸컷

<밈 전쟁> 스틸컷 ⓒ 왓챠

 
페페가 유명해진 건 'Feels Good Man'이라는 대사 한 줄 때문이다. 자신의 대학시절 에피소드를 주로 그리던 맷은 페페가 바지와 속옷을 내리고 오줌을 누는 장면과 함께 이 대사를 집어넣었다. 이 대사는 주로 남자들이 헬스를 끝낸 뒤 자신의 사진과 함께 인스타에 넣는 문구다. 이 문구와 함께 어딘가 불쌍하고 약해 보이는 페페가 등장하자 사람들은 호기심을 품게 된다. 페페는 그 의도와 달리 이 대사 한 줄로 온라인 커뮤니티 세계에 유명인으로 입성하게 된 것이다.
 
초기에 맷은 이 현상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그의 의도와는 다르지만 캐릭터가 소비되고 유명해졌다는 사실에 즐거움도 느낀다. 주변의 권유로 다양한 페페가 그려진 캐릭터 옷을 만들기에 이른다. 문제는 페페가 포챈(4chan)이라는 커뮤니티 사이트로 흘러 들어가면서 시작됐다. 이 사이트는 인터넷 밈 만들기를 경쟁적으로 하는 사이트다. 이곳을 이용하는 이들은 주로 니트족으로, 그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강하게 비관하는 자학개그나 극단적인 게시글로 밈을 만들어 주목받는 걸 즐긴다. 
  
이들의 눈에 페페가 들어온 이유는 그 생김새에 있다. 큰 눈에 기운 없어 보이는 표정에 매료된 그들은 페페를 가공해 다양한 2차 창작물을 만든다. 이 과정에서 유저들은 커뮤니티 내에서 더 많은 추천을 받기 위해 극단적으로 페페를 가공한다. 반유대주의, 동성애혐오, 성차별, 인종차별 등의 게시물에 페페를 등장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포챈 유저들에 의해 혐오의 상징이 되어가던 페페가 온라인을 벗어나 오프라인으로 향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트럼프의 대선출마였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란 슬로건을 내걸고 극우의 가치관을 보여준 트럼프에 패배주의에 시달리던 포챈 유저들은 열광한다. 그리고 그들은 트럼프와 페페를 합성한 사진들을 유포한다. 트럼프가 혐오발언을 할수록, 그가 대선후보에 가까워질수록 페페 역시 오프라인에서 더 알려지게 되는 것이다. 페페의 정체를 모르는 사람들은 그 개구리 캐릭터를 혐오의 상징으로 인식하게 된다.
 
작품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분리된 공간이 아닌 서로 영향을 끼치는 하나의 세계임을 보여준다. 인류가 발전시켜온 문화와 사회의 밈이 언제나 올바른 곳으로만 향하지 않듯, 온라인 세계 역시 같은 방향성을 보여준다. 사회에 도움이 되는 무언가가 남는 것이 아닌 더 자극적이고 혐오를 품은 성질들이 퍼지게 되는 것이다. 이는 온라인 공간을 자유로운 배설의 장으로 착각하는 현상에서 비롯된다. 화장실(온라인)과 안방(오프라인)이 따로 구분되어 있다 생각하는 것이다.
 
쓰레기를 치우지 않으면 그 냄새가 온 집안 가득 퍼지듯 온라인 공간에서의 혐오와 차별은 언젠가 오프라인으로 새어 나오게 된다. 맷은 자신을 투영한 캐릭터 페페를 잃게 된다. 혐오의 상징이 되어버리면서 그를 비롯해 주변 친구들 역시 오해를 살 만한 상황에 놓여버린 것이다.
 
작품은 밈 현상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의 의견을 통해 마치 종교처럼 번지는 밈의 위험성을 보여준다. 스마트폰의 보급과 SNS의 등장으로 온라인은 그 어떤 시대보다 우리와 가까워졌다. 이 공간에서의 분위기와 기류가 한 개인의 사상과 생각을 움직이는 힘을 지니게 된 것이다. 1년 동안 페페의 밈이 1억 6천만 개가 생성되어 유통되었다는 점은 그 위력을 실감하게 만든다.
 
작품은 객관적 수치와 맷과 주변 사람들의 변화를 통한 감정적인 반응을 통해 개구리 페페가 혐오의 밈이 되어버린 과정을 조명한다. 최근 국내에서도 아기공룡 둘리가 창작자의 의도와 달리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부정적으로 밈화가 된 바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공간을 악취 나는 쓰레기통이 아닌 소통의 장으로 만들기 위해서 개개인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씨네리와인드 기자의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밈전쟁 왓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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