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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도 훨씬 더 지난 시절에 해월 최시형 선생은 자연보호와 환경 생태를 강조하였다. 스웨덴의 소녀 툰베리는 알아도 해월의 선각은 잘 알지 못하는 우리들 함께 선생의 발자취를 탐사해보면 어떨까.[편집자말]
해월 최시형
 해월 최시형
ⓒ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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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지금 일찍이 겪어보지 않은 대재앙의 화염 속에 놓여 있다. 코로나19 사태는 두 차례 세계대전보다 많은 사망자를 내고도 종식을 모른 채 진행형이다. 세계 각국에서 변이바이러스가 속출하고 변종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단백질도 생물체도 아닌 한갓 미물에 21세기 인류가 유린당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극심한 기후변화는 지구촌을 온통 재앙으로 물들인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상기후 현상은 현대문명의 지속가능성을 묻고있다. 동시적인 두 가지 현상의 근원적이고 근본적인 원인은 과학기술의 이름 아래 자연파괴를 통한 물질문명의 성장과 발전의 결과이다. 인류는 자신이 타고 있는 뗏목을 잘라 연료로 삼으면서도 그 뗏목이 침몰할 수 있다는 걸 모르는 변종 호모사피엔스의 모습이다. 

'문명의 역습'이 인류사적인 재앙으로 현재화하는 모순적 본질 앞에서도 각국의 지도자들은 과거의 관성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성장중독증에 빠져 있다. 현생 인류는 미래 세대에게 큰 빚을 지고, 나아가서는 인류의 삶의 터전인 지구촌을 파멸로 몰아간다.

거대담론을 소환하는 데는 까닭이 있다. 하늘을 섬기고(敬天), 사람을 섬기고(敬人), 천지만물을 섬기(敬物)라는, '삼경설'은 일찍이 세계 어느 사상가나 철학자도 내세운 바 없는 고유하고 독특한 이데올로기이고, 양대 재앙에 직면한 인류가 수용ㆍ실행해야할 과제가 아닐까 싶다. 

삼경설은 "경천만 있고 경인과 경물이 없으면 이는 농사의 이치는 알되 실제로 종자를 땅에 뿌리지 않는 행위와 같다."(주석 1) "사람이 사람을 공경함으로써 도덕의 극치가 되지 못하고, 나아가 물을 공경함에까지 이르러야 덕에 합일될 수 있나니라."(주석 2) 는 경구에 답이 있다. 
  
해월 최시형의 법어
 해월 최시형의 법어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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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서구 중세의 신(神) 중심사상 체계와 근대의 이성(理性) 중심사상 체계를 뛰어넘어 인간과 한울님(신)과 자연만물을 일체화하는 통합적이고 융합적인 철학사상인 것이다.

양천주설(養天主說)도 다르지 않다. 내 안에 모신 한울님을 부모와 같이 받들고 봉양하며, 사람만이 아니라 천지만물을 똑같이 대하라는 것이다. 즉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한울님을 잘 살려나가는 양천주 마음, 한울님을 인간과 동일시하고 나아가서 자연만물과 동일시하는 사상이다. 해월 최시형 선생은 이와 같은 신앙ㆍ종교ㆍ철학을 '사인여천(事人如天)'이란 네 글자로 집대성하였다.

"사람은 하늘이라 평등이요 차별이 없나니 사람이 인위로서 귀천을 분별함은 곧 천의에 어기는 것이니 제군은 일체 귀천의 차별을 철폐하여 선사의 뜻을 이어 가기를 맹세하라." (주석 3)

동학의 종교ㆍ사상ㆍ철학의 기조는 생명사상이다. 사람과 천지만물의 생명을 절대가치에 두었다. 무위당 장일순과 쇠귀 신영복 등 눈썰미가 밝은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동학의 생명사상에 주목하였다. 기계문명의 발달과 무한대의 인간욕망으로 인해 생태계가 파괴되고 지구촌이 이상기온으로 시달리고 있다. 결국 해월의 경천ㆍ경인ㆍ경물의 정신을 현재화하는 것이 지구촌을 살리는 길이지 않을까 싶다.
  
수운 최제우로부터 도통을 물려받아 동학을 민중 속으로 더 넓게 전포한 해월 최시형 선생 (이 사진은 해월 선생이 처형 당하기 직전 찍은 사진에, 1900년에 몸통 부분을 편집하여 제작한 사진이다)
▲ 동학 2세 교조 해월 최시형 수운 최제우로부터 도통을 물려받아 동학을 민중 속으로 더 넓게 전포한 해월 최시형 선생 (이 사진은 해월 선생이 처형 당하기 직전 찍은 사진에, 1900년에 몸통 부분을 편집하여 제작한 사진이다)
ⓒ 박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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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월 최시형은 동학사는 물론 우리 근현대사의 전개에 있어서 지을 수 없는 세 가지 큰 역할을 하였다. 

첫째는 스승 최제우가 남긴 동학의 불씨를 살리고 키우고 불을 지폈다. 가정이지만, 그 시기에 해월이 아니었으면 과연 동학의 불씨가 사그라지지 않고, 수운 교조의 법설과 사상이 온전히 전해지고 조직이 확장될 수 있었을까 묻게 된다. 

둘째는 동학혁명 당시 남북접이 대립하여 주전(主戰)이냐 화전(和戰)이냐로 갈렸을 때 간부들의 뜻을 받들어 주전론을 수용하면서 동학은 혼연일체가 되어 '척왜양'과 '보국안민'의 혁명전에 나서게 되었다. 

셋째는 교조신원운동을 통해 교도와 민중들을 집결하고, 이것은 군주체제의 금제선(禁制線)을 뛰어넘어, 반봉건ㆍ반외세의 민족ㆍ민중운동으로 진화되고, 현대 시민운동의 원류가 되었다.(둘째와 셋째 부분은 뒤에서 상론)

해월 선생은 관군의 추적을 피해 35년 동안 은신생활을 하면서 포교에 전력을 다하였다.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의 오지 마을 50여 곳으로 몸을 숨기며 산골마을 주민들을 상대로 포교를 하였다. 그런 속에서도 스승 수운의 '시천주'에 이어 "세상의 모든 사람, 천한 사람이나 귀한 사람 모두 한울님 같이 대하고 섬겨야 한다"는 '사인여천(事人如天)'의 사상을 정립하고 설파하였다.

해월 선생의 종교적 경지는 뒷날 다만 한울님이라는 신만을 공경한다는 경천(敬天)을 넘어, 사람을 공경하는 경인(敬人), 만물과 하나됨을 통해 만물을 아끼고 또 공경하는 경물(敬物)의 삼경(三敬) 사상으로 구체화되었다. 나아가 이러한 해월 선생의 종교적 경지를 바탕으로 하는 가르침은 오늘 인류가 겪고 있는 자연 환경의 폐해에 대한 매우 소중한 가르침이 되고 있다. 즉 오늘이라는 현대에 이르러, 환경 파괴의 심각성과 함께 비로소 제기되고 있는 생태 및 생명의 문제를, 해월은 이미 100년 전에 구체적이며 근원적인 면에서 제기했었다. (주석 4) 


주석
1> 『천도교경전』, 「해월선사법설 - 삼경」 
2> 『천도교 창건사』 2권, 71쪽. 
3> 『천도교 창건사』 「천도교서」, 7쪽. 
4> 윤석산, 「해월 최시형의 서소문옥중생활과 처형과정」, 『동학학보』 제38호, 68쪽, 2016.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해월 최시형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해월, #최시형평전, #최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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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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