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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 원 세대>를 썼던 우석훈이 코로나의 경제적 영향이 여야 정권 교체보다 클 것이라는 전망을 담은 <팬데믹 제2국면>(문예출판사)책을 펴냈다. '코로나 롱테일, 충격은 오래간다'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 우석훈이 쓴 <팬데믹 제2국면> 책 표지 <88만 원 세대>를 썼던 우석훈이 코로나의 경제적 영향이 여야 정권 교체보다 클 것이라는 전망을 담은 <팬데믹 제2국면>(문예출판사)책을 펴냈다. "코로나 롱테일, 충격은 오래간다"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 문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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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접종이 속도를 내면서 '코로나 이후'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추석에는 마스크를 벗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섞인 전망도 나왔다. 이미 대선 모드로 전환한 정치권은 더는 코로나 따위를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우리는 이제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일까?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되는 삶, 편안하게 친구들과 대화할 수 있는 일상이라는 의미에서는 '이전'이 존재하지만, 경제라는 측면에서 '이전'은 없다.  - 63쪽.
 
우석훈은 <팬데믹 제2국면>(문예출판사)에서 이렇게 단언했다. 그는 코로나의 영향력이 앞으로 몇 년은 더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책 부제는 '코로나 롱테일, 충격은 오래간다'이다. 우석훈은 <88만 원 세대>로 커다란 주목을 받은 적이 있는 경제학자다.
 
팬데믹에서 내가 주목한 것은 꼬리가 아주 길게 나타나는 롱테일 long-tail 현상이다. … 팬데믹은 발생하고 나서 4~5년 후에야 어느 정도 충격이 가라앉는다.  -  9쪽.
 
우석훈은 팬데믹을 4가지 시기로 구분한다. 코로나 백신이 등장하기 전인 제1국면. 선진국에 백신이 보급되기 시작하는 제2국면. 개발도상국에도 백신 접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제3국면. 아프리카를 비롯한 저개발국가에도 백신이 어느 정도 보급되는 제4국면. 코로나 팬데믹이 본격화된 2020년이 제1국면이고, 2023년이 제4국면에 해당한다.

우리는 지금 제2국면을 지나고 있다. 우석훈은 책에서 코로나19의 충격을 IMF 경제위기만큼은 아니어도 정권 교체보다는 클 것이라고 예상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한국에 영향을 미친 그 어떤 재난보다도 길고 두꺼운 꼬리를 남기게 될 것이다. ... 한국 경제가 처음으로 경험한 전격적인 충격이었던 IMF 경제위기보다는 코로나의 충격이 덜할 수 있다. 그렇지만 정권이 바뀌며 여당과 야당이 교체되는 수준의 변화보다는 코로나의 충격이 더 클 것이다.  - 90쪽.
 
우석훈은 우리나라가 코로나 국면을 지나면서 선진국에 들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방역과 경제 성장에서 유럽 선진국보다 선방한 결과다. 하지만 그는 '선진국 진입'이 아닌 양극화와 불평등에 초점을 맞췄다.
 
선진국 한국, … 부자 나라의 가난한 국민, 지금부터 우리는 그것을 제대로 보게 될 것이다.  -  64쪽.
 
불평등과 양극화는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관광산업은 존립 자체가 흔들린다. 반면 디지털 경제는 호황이다. 자영업자, 프리랜서, 문화산업 종사자들은 생계를 위협받고 있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넘쳐나는 돈을 주체하지 못해 지역을 옮겨가며 부동산을 사들인다. 네이버 사태에서 보듯 산업이나 회사 경기가 좋다고 해서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형편도 괜찮은 것은 아니다.
 
버스 안에는 부자들이 자리에 앉아 있고, 공기업 근무자들을 포함한 공직자들이 앉아 있다. 한계에 내몰린 청년들이 서 있고, 가사노동자를 비롯한 여성들이 서 있다. 노약자 보호석이 있기는 하지만, '인생 2모작'이라는 명찰을 단 일부 노인만 앉아 있고, 나머지는 서 있다. 중간중간에 멀미를 버티지 못해서 내린 사람들을 보니까 대학 비정규직 강사 등 지식 생산을 담당하던 사람들이나, 작가와 화가처럼 문화경제 분야 종사자들이 적지 않다.  -  160-161쪽.
 
덜컹거리며 험한 산길을 달리는 만원 버스 비유는 '부자 나라의 가난한 국민'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멀미하는 사람은 버스에서 내리면 그만일 수도 있지만, 경제 현실은 훨씬 더 가혹하다. 울퉁불퉁한 산길을 정비하고 버스 안 자릿수를 늘려야 할 책임이 국가에 있다.

미리 멀미약을 준비하고, 서 있는 사람이 다치지 않게 살필 의무도 있다. 팬데믹 상황에서 귀환한 국가의 역할이다. 하지만 돌아온 국가는 재난지원금 지급도 힘들어한다. 운전에 집중하느라 승객 상태는 안중에 없다.

정부와 여당은 한참을 끌던 손실 보상금 지급을 사실상 포기했다. '소급' 대신 '피해 지원'으로 가닥을 잡은 것. 소급 적용의 어려움을 이유로 들었으나, '재정 건전성'을 내세운 재정 당국의 영향력이 컸다. 재정기획부 권한 축소가 필요하다는 우석훈의 말이 또 하나의 경험적 근거를 갖게 됐다.

벼랑 끝에 내몰린 자영업자의 고통을 외면하면서 '아끼고 아낀 돈'은 어디에 쓰일까? <팬데믹 제2국면>은 가덕도 신공항 건설 등 토건 산업 투자로 회귀하려는 경향이 강해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사람이 아닌 시멘트'에 돈을 쏟아붓다가 잃어버린 수십 년을 보내고 있는 일본 경제를 쫓아가려고 한다고 비판한다.
 
세계 1위 국가를 향해서 달려가다 결국 토건에 발목을 잡힌 일본 경제와, '선도국가'라는 이상한 용어를 사용해 한 단계 도약을 약속하면서 4대강 시절의 토건사업으로 회귀하는 한국 경제의 모습이 너무도 닮았다. 국민의 고통을 보면서도 아끼고 아낀 돈을 시멘트에 아낌없이 쓰겠다는 현재의 경제 운용, 좀 슬프다. 팬데믹 이후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는 더욱 커질텐데, 그러면 사람이 아니라 시멘트에 투자하는 토건 경제로 복귀하려는 경향은 갈수록 더욱 강해질 것이다. - 166쪽.
 
코로나19는 그동안 우리 경제가 안고 있던 문제를 폭발적으로 드러냈다. 공정 담론이 우리 사회를 삼킨 이유도 불평등에 있다. 세대 간, 계층 간 불평등이 코로나를 건너면서 극한으로 치달았다.

그 어느 때보다 국가의 과감하면서도 정교한 대응이 필요하다. 우리는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최소한 지금까지는 '더 나은 세상'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는 분명한 신호가 없다. 오히려 '재난 자본주의' 징후는 확인할 수 있다.
 
과연 한국이 '재난 자본주의' 형태로 갈 것인지, 아니면 그보다는 좀 더 나은 세상으로 갈 것인지, 우리는 분기점 위에 서 있다. -  234쪽.
 
'재난 자본주의'는 <팬데믹 제2국면>에서도 소개하듯 나오미 클라인이 <자본주의는 어떻게 재난을 먹고 괴물이 되는가>(모비딕북스)에서 한 말이다. 사람들이 고통받는 재난을 돈을 벌거나 자신들의 가치관을 실현할 기회로 여기는 것을 가리킨다. 나오미 클라인이 옮긴 프리드먼의 말은 '재난 자본주의'를 잘 보여준다. 대표적 신자유주의자인 프리드먼이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폐허가 된 뉴올리언스 학교를 두고 한 말이다.
 
뉴올리언스의 학교 대부분은 폐허가 되었다. … 비극이라 하겠다. 그러나 한편으론 교육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바꿀 기회이기도 하다. -  자본주의는 어떻게 재난을 먹고 괴물이 되는가, 13쪽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수업 상황에 '미래 교육'을 얹어 '에듀테크' 산업을 확장하려는 자본과 교육 관료들의 노력도 내 눈에는 비슷하게 보인다. 원격 교육으로 벌어진 교육격차에 대한 교육 당국과 보수 교육 진영의 접근도 프리드먼의 태도와 별반 다르지 않다.

교육격차의 뿌리인 사회 경제적 불평등 해소에는 관심이 없다. 대신 학업 성취도 평가를 강조하거나 책임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영어와 수학 교육을 앞세운다. 격차를 강화하는 정책이다.

너나 할 것 없이 '과거와 다른' '코로나 이후'를 말한다. 중요한 것은 누구를 위한 어떤 변화인가이다. 우석훈의 <팬데믹 제2국면>은 코로나가 우리 경제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앞으로 어떤 문제를 일으키게 될 것이지,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차분하게 이야기한다.

버스 안에 타고 있는 우리 모두가 편안하게 목적지까지 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할 때이다.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버스에서 쫓아냈던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의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필요하다면 버스가 아닌 다른 교통 수단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코로나의 충격은 더 길고 두터워질 것이다. 결국 더욱 깊어진 불평등으로 '부자 나라의 가난한 국민'은 미래의 끔찍한 현실이 될 수밖에 없다.

팬데믹 제2국면 - 코로나 롱테일, 충격은 오래간다

우석훈 (지은이), 문예출판사(2021)


태그:#팬데믹 제2국면, #우석훈, #코로나, #롱테일,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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