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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 이성애자, 양성애자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건 상관없이 난 바르게 가고 있어. 난 살아남고자 태어났으니까.(No matter gay, straight or bi. Lesbian, transgendered life I'm on the right track, baby I was born to survive) - 레이디 가자의 'Born This Way' 

레이디 가가의 노래 'Born This Way(2011)'는 그의 커리어에서도 손꼽히는 명곡이다. 그는 성적 지향, 인종 등 다양한 특질을 두고 '모두가 신이 만들었기에 위대하다'고 축복한다. 모든 차별과 선을 긋는 이 곡은 현재 성소수자(LGBTQ) 커뮤니티에서도 찬가로 여겨지고 있다.

차별과 인권에 대한 감수성은 오늘날 가장 유효한 시대 정신 중 하나다. 군사정권 집권기의 시대 정신은 '문민으로의' 정권 이양이었다. 그러나 정치적 민주화가 달성된 87년 체제 이후, 다른 과제 역시 수면 위로 떠 올랐다. 다양한 요소에 따라 생활세계가 달라진다는 사실이 인지된 것이다. 개인의 다양성을 보장하고, 차별을 차단할 때 민주주의가 완성된다는 공감대 역시 모였다.

'차별과 혐오를 멈추는 노력', 이제 엔진 달았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차별금지사유(성별, 성적 지향, 장애, 정치 성향, 인종, 민족, 학력 등)를 설정해놓고, 고용, 교육, 재화 용역의 이용 공급, 행정 서비스 등에서의 차별을 막고자 하는 법안이다. 2021년 6월 현재, 차별금지법에 대한 논의는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시민들의 국회 청원은 등록된 지 22일 만에 10만 명을 달성했다. 이 청원은 성립 요건을 충족하면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되었다.

차별금지법은 논의가 시작된 이후 줄곧 표류 중인 법안이었다. 국제연합(UN)에서는 한국 정부를 대상으로 10년 이상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해왔다. 여섯 차례 발의되었지만 본회의까지 가지는 못 했다. 18대 대선을 치르던 2012년 12월, 당시 문재인 대통령 후보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과제로 뽑았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집권 이후에 정부 여당은 '사회적 합의'를 운운하며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성적 지향', '성별정체성'의 차별금지사유 포함 여부를 두고, 보수 개신교 사회에서 강력한 압박을 보냈던 것도 무시할 수 없었다. 선거 때 이들이 행사하는 영향력은 컸다. 문 대통령조차도 보수 개신교 지도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교회의 우려를 알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며 이들을 달래기도 했다. 2007년 노무현 정부 법무부가 발의한 차별금지법안에서 '성적 지향' 등의 차별금지사유가 삭제되었던 것도 비슷한 이유에 근거했다.

그러나 올해는 분위기가 다르다. 지난해 6월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차별금지법안을 발의한 데에 이어, 지난 16일,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의원을 포함한 24인의 여권 국회의원이 '평등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두 안의 공동 발의에 모두 참여한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의원은 '차별과 혐오를 멈추는 노력을 지난 14년 동안 방기해온 죗값을 치러야 한다'라고 말했다.

사회적 합의, 과연 얼마나 더 필요한가?

국민의힘 이준석 신임대표는 차별금지법에 대한 질문을 받자, '충분히 숙성된 사회적 논의가 있었다'고 답했다. 그는 역대 대한민국 보수 정당의 당대표 중 가장 진보적인 반응을 내놓았다. 그러나 그는 며칠 후 불교방송(BBS)에 출연해 다시 유보적 태도를 취했다. "취지에 공감하지만, 입법 단계에 이르기에는 사회적 논의가 부족하다"고 말한 것이다.

그는 국민 상당수가 우려하고 있다면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덧붙였고,  기독교계의 우려 역시 언급했다. 그러나 인권 문제에 있어 '사회적 합의'만을 운운하는 것은 기존의 여의도 문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것은 지금까지 기존 정치권이 차별 이슈를 외면하고, 후순위로 미뤄왔던 논리 구조와 완전히 동일하다. '사회적 합의'라는 말은 유보를 정당화하는 데에 줄곧 쓰였던 정치적 수사였다.

보수 세력과 종교계를 설득하는 과정과 별개로, 사회적 논의는 충분히 이뤄졌다. 차별금지법 입법에 대한 논의는 2007년부터 14년 동안 이어졌고, 지금도 두 개의 차별금지법안이 발의되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20년 4월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0 차별에 대한 국민인식조사'에 따르면, 88.5%가 평등권 보장을 위한 법률 제정에 동의했다. 비슷한 시기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진행한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 1500명 중 87.7%가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했다. 청원 성립 요건(10만 명)이 빠르게 채워진 것 역시 무시할 수 없는 근거다.

지난 3월, 성전환 수술 이후 강제 전역 조치를 당한 고 변희수 하사가 세상을 떠났다. "기갑의 돌파력으로 그런 차별을 없앨 수 있다"고 외쳤던 그였지만, 현존하는 차별의 벽은 쉽게 돌파되지 못 했다. 그는 자신의 '능력'과 상관없이 군대를 떠나야 했다. 차별금지법은 차별에 고통받다 떠난 이들에 대한 대답이다. 시민이 생득적, 후천적 요소 때문에 차별받는 것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목소리가 주어지지 않은 이들에 대한 연대이기도 하다. 이 당위에 우선하는 명분은 무엇인가. 사회적 합의는 과연 얼마나 더 필요한 것일까?

밴드 '9와 숫자들'은 지난 17일,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촉구하는 노래 'Opening'을 공개했다. 이들은 "난 너의 믿음을 인정할 테니, 너도 내 사랑을 응원해줄래?"라고 노래한다. 논의와 합의만을 강조하는 정치인들에게 이 노래를 권한다. 이 당연한 노랫말이 지금보다 당연하게 여겨질 때, 우리 사회는 한 걸음을 더 내디딜 수 있다.

태그:#차별금지법, #평등법, #장혜영, #권인숙, #이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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