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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근처 시민의 강 바닥 청소와 주변 화단 정리를 봄부터 지금까지 네 달째 지켜보고 있다. 봄 초입에 마주했을 땐 겨울을 보내고 새봄맞이 정비를 한다고 생각했다. 강바닥의 이끼를 긁어내고 떨어진 잡목을 걷어내는 정비작업이 한 달 정도 길게 이어졌던 것 같다. 

봄기운이 한창일 무렵엔 강 양쪽의 화단을 정비하고 있었다. 산책로 주변의 웃자란 풀들과 마른 풀들을 걷어내고 예쁘고 아기자기한 꽃들을 심어놓으니 봄의 기운과 생기가 느껴졌다. 마치 어린아이들의 작고 통통거리는 걸음마 같아서 시민들을 미소짓게 했던 것 같다.

이른 더위가 찾아들 무렵엔 그 꽃들에게 자동으로 물을 뿜어주는 장치를 설치하고 있었다. 무더위에 식물들의 물고픔을 염려해서 설치하는 것 같았다. 가장자리 보행로를 따라 걷다 보면 팔에도 분무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방울이 튀었고, 때 이른 더위에 맞는 차가운 물의 느낌이 시원해서 일부러 손을 가져다 대며 걷기도 했다. 

시민의 강 정비는 지금도 조금씩 이어지고 있다. 겨울의 묵은 때를 벗긴다고 생각했고, 화사한 봄을 맞이한다고 생각했고, 무더위 혹은 장마를 대비한다고 생각했던, 한때라고 생각했던 정비가 이어지는 것을 지켜보며, 앞으로 가을을 대비하고 겨울도 대비할 때까지 이어지지 않을까 생각하는 중이다.

가끔 보기 때문에 의식하지 못했지만 어쩌면 일 년 내내 새로운 맞이를 반복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고, 우리의 삶처럼 모든 움직임이 그렇게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코로나로 인해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사람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며 실내 환경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움직임이 가전 업계의 호황을 가져왔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집밥 먹는 수요가 증가하면서 전기밥솥이나 김치냉장고의 수요가 많아졌다는 기사도 있었고, 가전 업계는 근무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해서 밀려드는 주문에 대응하고 있다는 기사도 있었던 것 같다. 

재택근무가 가전의 수요를 증가시켰고, 온라인 수업 등 비대면 상황의 영향으로 컴퓨터나 TV의 수요가 늘었다고 했다. 실제로 성인 대상으로 기획하고 운영하는 비대면 강의에서도, 자녀들이 온라인 수업 중이라서 소리를 끄고 참여하겠다는 말을 많이 한다. 좁은 공간에 가족 모두가 각각 비대면으로 수업하는 상황이라면 각각의 컴퓨터나 휴대폰으로 모두가 참여하고 있을 테니, 전자기기의 수요나 수업에 참여하는 모습들이 충분히 이해되기도 했다.

집으로 눈을 돌리는 현상은 강의 내용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시민들을 위해 평생학습센터에서 기획된 프로그램 중 정리수납 관련 프로그램은 단연 인기다. 지난 5월 기획한 프로그램은 단 하루 만에 수강인원 25명을 채웠고 접수를 마감했다. 그 프로그램이 지금 진행되고 있다. 수강생들은 매 회차 프로그램에서 배운 대로 집안을 조금씩 정리하고 변화된 모습을 카톡에 올린다. 그들과 함께 나의 여름 맞이도 정리수납 프로그램에 맞춰 집안을 조금씩 정리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수납 용품의 종류와 선택 요령, 쇼핑백으로 서랍장 정리하기, 비닐봉지 정리하기 등을 배우고, 하루에 한두 개씩의 서랍장이 정리된다. 정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비움이다. 오늘 정리한 서랍도 구석은 들여다보지 않은 채로 차곡차곡 쌓여 있던 것들이 많았다. 이런 것들이 있었나 싶은,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로 쌓였던 것들이 강의를 핑계로 아낌없이 비워지고 있다.

혼자서는 막연했는데, 공간에 따라 이야기를 풀어 나가니 강의 내용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것 같았다. 알지 못했던 정리 아이디어도 배운다. TV에서 보던 완벽한 상태를 마주하는 것과는 다르게 직접 단계를 밟아 나가니 제법 만만해 보이기도 한다. 강사가 강조한 가장 중요한 원칙은 한 번에 무리하지 않는 것이다. 하루에 10분이나 15분 정도의 시간을 투자해서 조금씩 정리하는 것을 추천했고 실제로 그렇게 따라 하는 중이다.

비대면 강의의 취약점인 참여자들의 호응도 이 강의에서는 문제가 아니다. 자격증도 취득할 수 있는 과정이라서 수강생들의 뜨거운 열기를 매주 실감하고 있다. 자격증이 주는 모집 효과와 강의 효과는 엄청난 것 같다. 첫 차시부터 자격증 취득에 관한 문의가 이어졌다. 증빙 하나로 나를 설명할 수 있는 수단, 지금은 온라인으로 자격증을 취득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차시가 진행됨에 따라, 꼭 필요한 수납 용품의 준비부터 주방과 냉장고, 옷장과 화장대, 거실과 욕실, 현관의 정리 수납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아마도 이 과정이 끝날 때쯤이면 수강생들 모두의 집이 깔끔하게 바뀌지 않을까 싶다. 성실히 참여한 모두에게 전문가의 증빙이 주어질 것이고.

작년 이맘때 나는 무엇을 했는지 생각해 보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의 터널 속에서 마스크 속에 가려진 세상이 언제 끝날지 걱정하며 한 사람당 정해진 마스크를 매주 사 모으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휴관과 개관을 반복하는 헬스클럽의 불규칙한 운영에 지쳐 동네 곳곳을 걷는 것으로 눈을 돌리기도 했던 것 같다. 

사람들과의 모든 만남을 코로나 이후로 미루었고, 비정상인 듯한 상황들을 정상으로 맞이해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들을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하기도 했던 것 같다. 여행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지만, 차로 가까운 곳을 한 바퀴 둘러보는 것으로 대체하고 있었고, 인적 없는 자연에서 단지 흙을 밟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감에 기뻐했던 것 같기도 하다.

​2년 가까이 코로나가 이어지니 이제는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나름의 지혜를 발휘하는 방법을 모두가 찾고 있는 것 같다. 정상이 어떤 것이었는지, 지금의 상황이 비정상인 것인지 명확히 구분할 수도 없는 것 같다. 사람들과의 소통에서도 몇 번 정도 만나 얼굴을 익히고서야 상대에게 마음을 터 놓을 수 있었는데, 이제는 온라인에서 만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까워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고 드문드문 만나도 격하게 반갑다.

​소통이란 것이 손과 손을 마주 잡고,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고 서로의 온기가 느껴져야 가능하다는 생각에서 조금은 벗어나고 있다. 작은 화면에서 반갑다는 손짓으로도, 눈웃음으로도, 공감의 박수와 짧은 대답으로도 만남에 버금가는 소통의 효과가 발휘되는 것 같기도 하다. 이야기를 나누며 같이 울컥하고 같이 웃기도 하는 것을 보면.

​9월 이후에는 집단 면역을 기대하며 해외여행에 대한 설렘으로 여행업계나 사람들의 마음이 들썩이고 있다. 다양한 사이트에서 자가격리 면제 국가나 해외여행 가능 국가를 알려주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무리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여행을 하려면 올해 말까지는 비대면 상황에서 여름을 맞이하고 가을 준비하고 겨울을 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시민의 강이 계절에 따라 새롭게 변화하는 것처럼, 지난 코로나의 시간도 엄청난 변화의 흐름 속에서 적응하며 삶을 일구었다. 매년 해오던 것을 코로나라고 해서 멈추지 않았고 그 시간도 인생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매김하는 것 같다. 매일 새로운 시도를 했고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늘 이어지는 당연한 것 같은 일상이 사실은 무척 소중하고 귀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시간이었고,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오직 그 시간이었다는 것을 새삼 배운다.

끊임없이 열심을 낸 지나온 모든 순간과 지금의 시간은 어쩌면 낙원까지로 인정할 수는 없을지라도 의미 있는 삶의 기억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인생은 낙원이에요
우리들은 모두 낙원에 있으면서
그것을 알려고 하지 않지요"(최영미, <낙원> 중) 

태그:#코로나, #비대면, #낙원, #삶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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