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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님은 디스플레이 공장에 2005년에 입사해서, 뇌종양을 진단받은 2020년까지 15년을 근무하셨다. Y님은 긴 근무기간 만큼 다양한 경험을 해오셨다. LCD 액정 검사 오퍼레이터에서부터 LCD TFT 식각 엔지니어를 거쳐서, 병에 걸리기 직전에는 OLED LTPS 도핑 공정 엔지니어로 근무하셨다.

반올림은 Y님이 15년 동안 해당 공정 및 인근 공정에서 노출된 화학물질로 인해 뇌종양이 발생한 것으로 보고, 2021년 6월 3일 대규모 직업성암 집단산재신청 때 산재신청을 진행하였다.

피해자 상담을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첨단전자산업의 이미지와 첨단전자산업에서 이루어지는 노동실태에는 정말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공장의 이미지를 검색해보면 많은 대형 설비가 분주하게 가동되는 모습이 나온다.

그런데 이러한 이미지만 보면 그 안의 노동자들 또한 정말 바쁘게 일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내기 어렵다. 전자산업 직업병 피해자분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전자산업 노동자 중에 바쁘게 일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러한 바쁜 환경, 즉 강한 노동강도는 노동자들의 안전과 직결된다. 예를 들면 설비 정비 작업은 설비 내부의 화학물질 및 부산물에 노출될 수 있으므로 위험성이 높은 작업이다. 원래는 설비 오픈 전 쿨링 타임(설비 내 잔여가스나 열이 충분히 배출되기를 기다리는 시간)을 충분히 가져야 한다. Y님의 회사에도 쿨링 타임이 안전수칙에 들어가 있었고, 그에 더해 작업 시에 안전수칙을 인지시키는 역할을 하는 사람(안전지킴이)도 별도로 있었다.

그러나 Y님이 다니는 동안 설비 오픈 전 쿨링 타임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하루 스케줄이 쿨링 타임을 다 지키면서는 작업할 수 없는 스케줄이기 때문이다. Y님은 하루에 2~3건의 정비를 진행하였는데, 한번 정비에는 2~4시간 정도가 걸렸다. 빡빡하게 짜인 정비 일정으로 인해 Y님은 엔지니어룸(엔지니어들이 정비작업을 하지 않고 있는 시간에 상주하는 공간)에 머문 기억이 거의 없다.

설비 정비 작업의 경우 그 특성상 퇴근 시간이 오더라도 진행되고 있던 작업을 중단하고 퇴근할 수도 없다. 한 작업을 진행 중에 끊고 다음 조에 인계하기가 곤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업무 내용이 부과된 상황에서 엔지니어에게는 두 가지 부당한 선택지밖에 없다.

절차를 지켜가며 연장근무를 할 것인가, 위험하더라도 쿨링타임을 줄이면서 작업할 것인가. 안전지킴이가 있다 한들 이 상황을 뻔히 아는데 어떻게 엔지니어에게 안전수칙에 철저해야 한다고 지적할 수 있겠는가?

Y님의 경험 속에서 위험요인은 엔지니어가 쿨링타임을 줄인 행위도 아니고, 안전지킴이가 쿨링타임 준수를 지적하지 않은 행위도 아니다. 엔지니어가 자신의 안전을 포기하도록 만드는 부당한 스케줄, 즉 노동강도가 위험요인이다.

바쁘면 안전하기 어려운 단순한 법칙은 첨단전자산업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향후 첨단전자산업에서 이루어질 산재 조사나 사업장의 예방대책 등은 노동강도가 어떻게 노동자들의 안전을 해치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그 부분을 해결해나가야 한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현재는 Y님의 경험을 충분히 이해할 만한 사회적 지식이 부족하다. 반도체 LCD의 경우 10여 년 넘는 시간 동안 축적된 다양한 증언과 자료와 연구가 있는데, 비교적 최근 산업인 OLED의 경우 그런 배경 자료가 없기 때문이다. 첨단전자산업의 경우 굉장히 생소한 분야기 때문에 배경지식이 없는 것은 다른 언어로 소통하는 것과도 같다.

도핑 공정이라고 하는 건 무엇일까? A / B / C 작업을 묶어서 도핑이라고 한다는데 그 각각은 또 무엇인가? 반올림 또한 Y님의 경험 중 OLED 부분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앞으로 OLED 산업의 직업병 피해사례가 더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므로, OLED 산업에 대한 사회적인 조사와 연구가 지금 진행되어야 한다.

태그:#OLED, #디스플레이, #직업병, #노동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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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황상기 씨의 제보로 반도체 직업병 문제가 세상에 알려진 이후, 전자산업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시민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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