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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나미술관 입구에 이이남 전시 안내 홍보물
 사비나미술관 입구에 이이남 전시 안내 홍보물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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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남 작가의 개인전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다(The breath of life)'가 사비나미술관(이명옥 관장)에서 8월 31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에 총 21점(모니터 영상 15점, 영상설치 6점)의 작품이 소개된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사비나미술관에서 기획된 전시인데 코로나19 등으로 좀 늦어졌다.

20세기 영국 인류학자 '잭 구디(J. Goody)'는 동양은 서양과 다르게 여러 번의 르네상스가 있었다는데, 당나라 시대 특히 시 분야에서 르네상스가 있었던 것 같다. 당 말에 '사공도(司空圖, 839-908)'라는 시인이었다. 이이남 작가에겐 그가 이번 전시의 영감의 원천이었단다. 읽어보니 섬세하고 호방하다. 이 정도 시라면 '동양미학의 진수'라 할 만하다. '정선'의 그림에도 영감을 줬다.

사공도의 시 '이십사시품(二十四詩品)' 중 한 구절인 "형상 밖으로 훌쩍 벗어나 존재의 중심에 손을 쥔다"를 이이남 작가는 특히 좋아한다. 이게 아래 작품명이 된다. 이이남 작가가 이 시인을 주목한 데는 팬데믹 시대에 그가 우주의 생명 근원을 제대로 간파했기 때문이리라.
 
이이남 I '형상을 벗어나 존재의 중심에 서다' 고서, 수조, 모터, 가변크기 2021. 뒤 작품 '시가 된 폭포'가 보인다. 고대 갑골문부터 추사의 세한도에 이르기까지 총 5300권에서 받은 문자 데이터로 제작되다
 이이남 I "형상을 벗어나 존재의 중심에 서다" 고서, 수조, 모터, 가변크기 2021. 뒤 작품 "시가 된 폭포"가 보인다. 고대 갑골문부터 추사의 세한도에 이르기까지 총 5300권에서 받은 문자 데이터로 제작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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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남 작가는 작년 중국 방문할 때 팬데믹 때문에 공항에서 꼬박 12주간 자가격리를 견뎌야 했다. 거의 백일간 무료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저절로 자신의 삶과 예술에 대해 돌아보게 되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깊이 성찰하고 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이 된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이게 그의 작업에 전화위복이 되었다는 점이다. 이런 감금이 오히려 작가가 신작을 구상하고 신개념미술을 잉태시키는 호기가 되었다. 하긴 작가는 어떤 위기 속에서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데 집중하는 존재이기에 그런 결과는 예상할 수도 있다.

작가는 '난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맹렬하게 물었다. 엉뚱하게도 자신의 생체적 DNA부터 알아보자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마침 이이남 작가 친구 중에 생명과학연구소에 있는 이가 있었다. 그의 협력으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보내 작가의 DNA 염기서열 정보를 알아냈다. 그렇게 DNA 데이터를 반전시켜 디지털 작품을 만든 것이다.

DNA 데이터가 디지털 '조춘도' 되다
 
이이남 I '인간, 자연, 순환, 가족' 65" LED TV, 싱글 채널 비디오 2021. 작가 DNA 데이터로 디지털 산수화를 그리다. 중간에 '곽희'의 '조춘도(早春圖)'도 보인다.
 이이남 I "인간, 자연, 순환, 가족" 65" LED TV, 싱글 채널 비디오 2021. 작가 DNA 데이터로 디지털 산수화를 그리다. 중간에 "곽희"의 "조춘도(早春圖)"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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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된 작가 DNA 테이터가 반전되어 눈 덮인 '곽희'의 '조춘도(早春圖)'로 보인다
 입력된 작가 DNA 테이터가 반전되어 눈 덮인 "곽희"의 "조춘도(早春圖)"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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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작품은 작가의 10대, 20대, 40대 DNA 데이터로 만든 것이다. 그 데이터가 하얀 눈처럼 쌓이면 어느새 그게 반영이 되면서 중국 북송(北宋) 화가 '곽희(郭熙)'가 완성한 '조춘도(早春圖)'가 그려지는 것이다. 80대 DNA로 그린 건 따로 있다. 주변 대부분 작품이 거울 반사체로 만들어진 것은 자신을 돌아보고 피드백하는 메타포로 보면 된다.

DNA 데이터를 통해 작가의 혈통과 유전자는 물론 예술적 취향도 찾아낼까 궁금하다. 작가는 '시와 회화는 하나(詩畵一律)'라는 동양 전통에 공감 지수가 높은데 이것도 작가의 DNA와 관련 있나 싶다. 서양회화에선 '풍경화'가 있듯이 동양회화에는 '산수화'가 있는데 역시 이이남 작가의 DNA에는 이런 시의 정신이 담긴 산수화에 심취하는 기질이 강해 보인다.

작가가 들은 과학자 얘기로는, DNA는 경이롭고 신비하고 복잡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하는데, 시각 예술가는 그걸 가시화할 수밖에 없다. 비유컨대 작가는 자신의 DNA를 작품에 넣고 대신 관객의 혼을 빼낸다고 할까. 이렇게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작가와 작품과 관객이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한다면 전시장의 한계를 넘어 쌍방형 예술적 향유가 가능하게 된다.
 
작품 설명 중인 이이남 작가
 작품 설명 중인 이이남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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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의 특징은 뭔가 과장한다기보다는 세계미술사에 이슈를 던진 것이다. 작가는 "'나'라는 자아 존재의 연결성을 역추적하고 나는 어디에서 왔는지, 나의 뿌리와 본질은 어디에 있는지 찾아가며, 앞으로 우리의 공동체와 인류는 어떻게 어디로 가는지 상상하고자 한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인류공동체 진로에 대한 고민도 엿보인다.

영국 작가 '마크 퀸'은 자신의 피로 자화상을 그렸지만, 이이남은 자신의 DNA 데이터를 가지고 '디지털 산수화'를 그렸다. 이런 시도는 세계 최초가 아닐까. '인공지능 아트'가 있지만 이제 'DNA 산수화'도 생길 판이다. 하긴 서양 모더니즘 시의 창시자 보들레르는 "새로운 아름다움은 늘 기괴하다(bizarre)"고 했는데 정말 그런 것 같다.

참고로 이이남(1969년생) 작가를 간단 소개하면, 그는 2019년 영국 테이트 모던의 '백남준' 회고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Integrated Systems Europe', 2020년 벨기에 브뤼셀의 한국대사관의 '코리안 미디어 아트월(Korean Media Art Wall) 전시로 국제적 주목을 받고 있다. 아시아미술관(SF, 미국), UN본부 등에 그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첨단' 아트도 결국 '고전' 회화에서
 
중국 북송시대 왕희맹(王希孟)이 그린 '천리강산도(千裏江山圖)' 이런 고전 작품은 포스트모던하다.
 중국 북송시대 왕희맹(王希孟)이 그린 "천리강산도(千裏江山圖)" 이런 고전 작품은 포스트모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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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를 보면 이미 수천 년 전에 디지털 아트가 있었던 것 같다. 이이남 작가는 자신의 예술의 원류는 항상 고전에서 찾는다. 그러다 보면 '겸재'나 '강희언' 등 한국의 고전회화로 올라가겠지만 더 올라가면 '황희맹' 같은 중국 고전작가 등과 만날 수밖에 없다.

이이남은 전남 담양 출신이다. 어려서 봐온 '남종화'나 등굣길 주변 자연의 경이로움에 빠졌던 체험 등이 그의 작품 경향에 주류가 된다. 무의식 속 잠재한 그의 이런 취향은 언제나 튀어나올지 모른다. 다시 말해 그는 '천지인'을 넓게 포용하는 시 정신을 추구한다고 보인다. 그래서 대상과 주체가 분리되지 않는 '물아일체'의 세계와도 통하게 된다.
 
이이남 I '반전된 빛' 스티로폼, 싱글채널 비디오, 2021/ 실제로 보면 그림자가 계속 움직인다. '반전된 산수'도 있다.
 이이남 I "반전된 빛" 스티로폼, 싱글채널 비디오, 2021/ 실제로 보면 그림자가 계속 움직인다. "반전된 산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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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의 또 하나의 키워드는 '반전'이다. 위에서 보듯 DNA가 그림이 되는 게 바로 반전 때문이다. 기존의 관념을 해체하고 재해석하고 뒤집어 보는 건 작가로서 필수사항이다.

그는 관객에게도 그런 걸 요구한다. 그래야 관객도 전시의 주인공으로 참여자가 되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관객이 전시장에 들어왔을 때와 나갈 때 전혀 다르게 생각하는, 마음의 반전이 일어나길 기대한다. 위 작품도 해(日), 달(月) 글자가 마주 볼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 그러니 '공존'이 필요한데 그걸 관객에게 추리해보라고 권하는 방식이다.

하긴 그럼에도 지금은 팬데믹 시대, 어쩌다 '눈'의 시대가 아닌 '코'의 시대가 되었다. 정말 반전의 시각이 필요하다. 사람들 눈은 떴으나 코를 막고 사니 이럴 때는 사람들 코에 생기를 넣어주는 것이 급선무다. 이번 재난의 시대를 계기로 획기적이고 기발한 바이오아트, 디지털 산수화를 탄생시킨 건 너무나 반가운 일이다.

덧붙이는 글 | 덧붙이는 글 | 사비나미술관 http://www.savinamuseum.com/kor/index.action
전화 02-736-4371 약도 http://www.savinamuseum.com/kor/about/direction.jsp


태그:#이이남, #왕희맹, #디지털 아트, #사공도, #이십사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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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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