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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여 개의 도시락과 함께 필사 시화엽서나눔 두 번째 날이었다. 첫날과 다르게 두 번째 날은 내가 근무하는 군산나운복지관에서 진행되었다. 필사단이 정성스레 시를 적고 그림을 그린 엽서를 어르신들과 장애인분들에게 나누어주는 도시락에 끼워 전달하는 활동이었다. 도시락은 물론이고 마음을 담은 시까지 전달하는 활동이 따뜻하게 다가왔다. 그래서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도 같이 필사를 하지 않겠냐며 물었다.

"너 시 필사하는 봉사 할래?"
"그게 뭐하는 건데?"
"좋은 시 필사한 걸 어르신들에게 보내드린대."
"나 글씨 못 쓰는데..."

 
아이들과 시 나눔엽서를 함께 쓰고 있습니다.
▲ 아이들과 시 엽서 함께 쓰다. 아이들과 시 나눔엽서를 함께 쓰고 있습니다.
ⓒ 서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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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와 둘째 모두 같은 반응이었다. 글씨체가 예쁘지 않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나는 이 활동이 단순히 시를 써서 보내는 게 아니고 정성을 나누는 것이라며 다시 한번 권했고 그제서야 아이들은 같이 하겠다며 웃었다.

"엄마 어때? 이상해?"
"오~ 아니야, 아니야. 엄청 잘 했는데?"


아이들이 우려했던 것과 달리 결과물은 만족스러웠다. 한 장 한 장 정성스럽게 써내려가는 모습이 참 예뻐 보였다. 이렇게 작게나마 우리가 모은 엽서를 가지고 딸과 함께 복지관으로 향했다. 이날만큼은 복지관 직원이 아닌 자원봉사자로 참여하고 싶었기에 오전 휴가를 쓰고 경로식당으로 출근 아닌 출근을 했다.

동아리 필사팀과 자원봉사자들의 필사 시 300여 장을 도시락 하나하나에 올려두었다. 혹 어르신들이 불편해 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글씨를 모르시는 분들은 불편할 수도 있는데 하는 불안한 마음도 들었다.
 
도시락위에 시엽서를 넣다.
▲ 시와 도시락 도시락위에 시엽서를 넣다.
ⓒ 서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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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관에서 근무하는 만큼 도시락 배부는 종종 도와드린 적 있었다. 그러나 이날은 도시락뿐만 아니라 필사단의 마음까지 같이 담아 나누어 드리는 날이라 그런지 감회가 새로웠다. 도시락 하나하나에 엽서를 끼울 때 우리 아이들이 쓴 엽서나 내가 쓴 엽서가 보이면 뭉클하기까지 했다.

도시락에 엽서를 끼울 때 지나가던 어르신들이 관심을 가지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이게 뭐여?"
"오늘은 마음의 양식도 같이 드리려고요."
"어~ 알겄어."


어르신은 그 한 마디로 말뜻을 알아들으셨는지 '허허' 하고 웃으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어르신은 연애편지를 주는 거냐며 여기는 항상 좋은 일만 한다고 말을 하셨다. 박윤희 영양사님은 이 말에 기분전환도 되는 것 같고 덩달아 기분도 좋아졌다며 미소를 보였다. 경로 식당을 도와주는 공익요원들도 나의 이름을 발견하고 "이거 선생님이 썼어요?" "이거 다 손으로 썼어요?" 하고 묻는다. 핸드폰 문자로만 주고받는 젊은 청년들의 눈에는 신기하기만 한 모양이다.
 
도시락과 함께 마음을 나누다. 맛있게 드세요, 오늘은 좋은 시도 읽어보세요. 조리원님의 예쁜 말.
▲ 시를 나누다 도시락과 함께 마음을 나누다. 맛있게 드세요, 오늘은 좋은 시도 읽어보세요. 조리원님의 예쁜 말.
ⓒ 서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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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오전 11시 반. 도시락 배부를 시작하였다.

"맛있게 드세요! 오늘은 좋은 시도 있어요."  
"어~ 꽃이 되어 나에게 돌아왔네."
 
도시락보다 시 엽서에 관심을 보이면서 시를 읽어보고 계시는 어르신
▲ 시를 나누다 도시락보다 시 엽서에 관심을 보이면서 시를 읽어보고 계시는 어르신
ⓒ 서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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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어르신이 하신 말이었다. 그저 엽서에 쓰여진 시 한 문장을 가지고 하신 말인데 그게 어찌나 기분 좋게 들리던지, 이 활동을 같이 시작한 게 너무 뿌듯했다. 같이 도시락을 나누어주던 조리원 윤진경님도 "우리가 행복을 전해 드리는 것 같아. 시 한 소절로 어르신들도 그렇고 우리도 기쁨을 느껴서 평소보다 경로 식당이 더 업그레이드 된 것 같아요"라고 하며 더욱 힘차게 도시락을 전달했다.

"어르신들이 이런 글도 좋아하시는 감수성도 있더라고. 그게 너무 좋았어요."
"그러게요. 어르신들도 한 번 더 쳐다보고, 내용도 물어보시더라고요."

 
도시락위에 나눔엽서와 마음을 담았다.
▲ 시간을 기다리는 도시락 도시락위에 나눔엽서와 마음을 담았다.
ⓒ 서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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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 배부를 마치고 영양사님과 조리사님과 같이 뒷정리를 할 때 나눈 대화이다. 시와 그림이 어울리고 예뻤다며 칭찬도 하시고 자연스럽게 오늘 느꼈던 이런저런 감정들도 주고받았다. 받는 사람의 만족감뿐만 아니라 봉사자들의 만족감도 채워주고 싶다는 이번 활동의 목표. 정확히 이루어진 것 같았다.  

무뚝뚝한 우리 딸은 "그냥 좋았어. 뿌듯했어" 이 두 마디가 다였지만 도시락을 나눌 때 들었던 얘기를 조금씩 하는 걸 보니 말은 안 해도 좋아하는 게 느껴졌다. 혼자 참여하려고 했던 봉사를 딸과 함께해서 그런지 나도 더욱 기분 좋게 느껴졌다. 같이 일하시는 분도 지나가며 딸이랑 같이 하는 게 너무 예쁘다며 한 마디씩 던지고 가셨다.

글을 나눈다. 사랑과 마음을 나눈다. 무심코 던지는 말에 상처를 받고 상처를 주는 시대에 글로 보듬어주고 위로를 해주는 일에 참여하게 되어 커다란 행복감을 안고 다시금 필사 의지를 다진다. 다음번 나눔 행사에도 난 복지관 직원이 아닌 자원봉사자의 일원으로 참여할 것이다. 우리 책방 향기 동아리와 자원봉사단의 시 필사 나눔은 민들레 씨앗이 되어 군산시에 훨훨 날아가서 전달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기자의 블로그와 브런치에 올라갈 수 있습니다.


태그:#군산나운복지관, #군산자원봉사, #시화엽서 필사나눔, #경로식당, #도시락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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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이 좋아서 아이들과 그림책 속에서 살다가 지금은 현실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현실 속에서는 영화처럼 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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