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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대통령, 지방자치단체의 의회와 단체장 선거에 나온 후보들은 대부분 "경제를 살리겠다"라고 공약합니다. 예를 들어, 아래 그림은 2014년 통영시장 선거에 나왔던 한 후보의 선거 공보물 중 일부입니다. '풍요롭고 넉넉한 통영, 지갑이 두터워지는 통영 만들기'를 위해 한 후보는 관광 시설, 호텔, 아파트, 골프장을 건설하겠다고 공약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시설물들을 지으면, 정말 통영시민의 지갑이 두터워지나요?
   
우리나라의 선거 공약들은 대부분 토목 건설 사업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런 토목 건설 사업들이 서민들의 지갑을 두텁게 해주나요?
▲ 2014년 통영시장 선거에 나온 한 후보의 선거 공약 중 일부.  우리나라의 선거 공약들은 대부분 토목 건설 사업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런 토목 건설 사업들이 서민들의 지갑을 두텁게 해주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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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시설물 건설이 아니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이 지역 경제를 살릴 수 있을까요? 어떤 정책을 써야 지역에 일자리가 생기고, 취약 계층의 소득이 증가할까요?

이런 질문들을 하다가 제가 생각해낸 정책이 '참여 소득을 위한 참여예산제'입니다. 먼저 사례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경남에 있는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기금 지원을 받아 '주민이 참여하는 해양쓰레기 정화사업'을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진행했습니다(아래 그림 참조).

3년간 사업을 하면서 주로 노인으로 구성된 주민들이 마을 인근 바다에서 해양쓰레기를 정화하면, 그 대가로 1시간당 1만 원의 임금을 지급했던 사업입니다. 매일 청소를 하는 게 아니라, 한 달에 몇 차례만 하기 때문에, 각각의 주민이 받은 임금은 한 달에 많아 봐야 수십만 원밖에 안됐습니다. 하지만, 주민들에게 그건 큰 금액이었습니다. 또한 그 일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이 마을의 환경과 발전 방안에 대해서도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재정 지원을 받아 실시된 이 사업은 시민들이 주도하는 참여 소득 제도의 성공한 사례입니다.
▲ 통영에서 실시된 "주민과 함께하는 해양쓰레기 정화사업"의 집행 구조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재정 지원을 받아 실시된 이 사업은 시민들이 주도하는 참여 소득 제도의 성공한 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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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업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대화와 신뢰 등의 사회적 자본이 증가했습니다. 이 사업을 하기 전에 주민들은, 마을 앞바다의 잘피숲을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하자는 제안을 반대하기도 했지만, 이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해양보호구역에 대한 오해가 풀리고 결국 2020년 초에 해양보호구역 지정이라는 큰 성과를 낳았습니다.

둘째, 그전에도 정부가 시행하는 공공근로라는 사업이 있었고, 공공근로사업도 일종의 참여 소득으로 볼 수 있습니다. 참여 소득은 "공공재의 생산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그 대가로 소득을 주는 제도"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통영의 이 사업은 어떤 사업을 할지를 시민들이 직접 제안하고 수행했다는 점에서 정부 주도의 공공근로와 다릅니다.

셋째, 이 사업이 이렇게 잘 될 수 있었던 것은, 이 사업을 기획한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이 상근자 인건비를 받고 직접 사업을 집행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업을 해야 사회자본이 증가할지는 그 사업을 기획한 사람들이 가장 잘 알고 있으며, 기획한 단체가 사업 수행도 제일 잘 합니다. '참여 소득을 위한 참여 예산제'의 모델에 대해서는 <한겨례> 조혜정 기자가 2021년 5월 29일에 쓴 기사에 좀 더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정부의 참여예산제 개선 방향

제가 이 글에서 제안하는 것은 이와 같은 사업을 정부 재원으로 하자는 것입니다. 이미 전국의 지방자치단체와 중앙 부처가 참여예산제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남 순천시는 2022년을 위해 130억 원의 예산을 참여예산제로 배정해놓고 있습니다(순천시. 2022년 주민참여예산제 운영 계획).

그런데, 현재 참여예산제는 제안한 사람이 직접 수행할 수 없고, 인건비를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방재정법 제39조의 참여예산제에 관한 조항을 수정해서 이 두 가지를 가능하게 하자는 것이 저의 제안입니다.
   
현재 대부분의 지자체의 참여예산제에선 시설사업과 행사만 가능하고, 주민에게 직접 인건비를 지급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일자리와 소득 창출을 위한 좋은 기회를 놓치고 있습니다.
▲ 2022년 순천시 주민참여예산제 운영계획 현재 대부분의 지자체의 참여예산제에선 시설사업과 행사만 가능하고, 주민에게 직접 인건비를 지급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일자리와 소득 창출을 위한 좋은 기회를 놓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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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참여 소득제를 제안한 이유는, 참여 소득제가 기후변화에 대응한 사회 전환에 따른 갈등을 예방하고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십시요. 전국적으로 태양광과 풍력에 대한 갈등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대체에너지로의 전환이 아무리 좋은 것이고 필요한 것이라 하더라도, 주민들이 그런 에너지 전환의 주인이 되지 않으면, 갈등이 계속해서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갈등을 풀기 위해서는 대화와 참여가 매우 많이 필요합니다. 대화를 통해 지역의 특징에 맞는 대체에너지 개발 방법은 물론, 지자체의 에너지 전환 정책도 함께 수립되어야 합니다.

바로 이런 대화나 갈등 조정 등에도 모두 주민들이 시간을 내서 참여해야 하는데, 그것도 주민들로서는 일종의 노동이 됩니다. 그 동안 우리 정부는 주민들의 이런 대화 참여를 노동으로 생각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면서 '왜 대화의 장을 열어줬는데도, 참여하지 않는가?'라며 정부는 주민들만 비난해왔습니다.

이제, 주민들이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대화의 장에 참여하는 것도 일종의 참여로 보고 이에 대해 합당한 소득을 정부가 지급해야 합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대화가 증가하고, 대화를 통해서 신뢰가 증가해야만 에너지 전환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경제 성장을 위해 필요한 것도 물리적 자본 아니라 사회적 자본

여기까지 들었을 때, 대통령님은 이런 질문을 할 수도 있을 겁니다. "아무리 에너지 전환도 중요하고, 기후변화 대응도 중요하지만, 정부 예산을 그렇게 비생산적인 일에 써도 되는가? 대화에만 참여해도 소득을 준다면 너무 낭비적인 게 아닌가?"
   
한계생산 체감의 법칙에 따라, 이미 많이 투입되어 있는 물리적 자본(도로, 건물 등)을 추가로 투자할 경우, 그로 인해 소득이 증가되는 것은 매우 적습니다. 그에 반해, 현재 매우 적은 사회적 자본(신뢰, 협동, 대화, 참여)에 투자할 경우, 그로 인한 소득 증가분이 매우 큽니다.
▲ 사회적 자본의 한계생산이 물리적자본의 한계생산보다 훨신 더 크다. 한계생산 체감의 법칙에 따라, 이미 많이 투입되어 있는 물리적 자본(도로, 건물 등)을 추가로 투자할 경우, 그로 인해 소득이 증가되는 것은 매우 적습니다. 그에 반해, 현재 매우 적은 사회적 자본(신뢰, 협동, 대화, 참여)에 투자할 경우, 그로 인한 소득 증가분이 매우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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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질문에 대한 답을 드리겠습니다. 경제학 원론 책에 '한계 생산 체감의 법칙'이 나옵니다. 생산에 투입하는 어떤 요소의 양이 증가할수록, 그 투입으로 인해 증가되는 생산량은 점점 줄어든다는 뜻입니다.

이미 짐작하셨겠지만, 도로와 건물 등의 물리적 자본은 우리나라에 너무 많은 반면, 대화, 신뢰, 시민 참여 등의 사회적 자본은 너무 적습니다. 그러므로, 예를 들어, 이런 물리적 자본을 1조 원만큼 투자할 경우, 그로 인한 생산의 증가량은 0.1조 원밖에 안 됩니다.

그에 반해 우리 사회에 거의 없는 사회적 자본을 1조 원만큼 투자할 경우, 그로 인한 생산의 증가량은 3조 원씩이나 됩니다. 그러므로, 똑같은 1조 원의 정부 자금을 지출할 거라면, 건축물과 같은 물리적 자본에 투자하는 것보다 참여와 대화 등의 사회적 자본에 투자하는 것이, 우리 경제의 성장을 위해서도 더 좋은 것입니다.

사회자본의 생산성은 측정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사회자본의 생산성이 높다는 저의 주장을 증명해줄 직접적인 증거는 없습니다. 하지만, 간접적인 증거는 있습니다. 예를 들어, 경남 거제에서 경북 구미까지 이어지는 남부내륙고속철도의 비용편익 비율은 약 0.58~0.71밖에 안 됩니다(KDI 공공투자관리센터. 2017. 남부내륙선 철도 건설 예비타당성 조사 보고서).

이것은 100원을 투자하면 최대 71원밖에 못 건진다는 뜻이며, 수익률로 표현하면 마이너스 29%라는 뜻입니다. 그만큼 생산성이 낮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나라에 교통 인프라가 이미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가덕도 신공항의 비용편익 비율도 약 0.7입니다(매일경제신문 2020년 11월 16일 기사).

그에 반해 대화와 신뢰와 같은 사회적 자본은 어떨까요? 1960년 이후 60년 넘게, 우리나라는 물리적 자본에만 투자했을 뿐, 사회적 자본에는 거의 투자를 안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현재 사회적 자본의 수준은 선진국들 중 최저치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언론 신뢰도는 선진국 37개국 중 꼴찌입니다(한겨레, 2018년 6월 14일 기사).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국 중 늘 30위권에 있다가, 그나마 2018년에 22위로 다소 올라왔습니다(한겨레, 2019년 11월 14일 기사). 그런데, 사회적 자본이 이렇게 부족하다는 것은, 거꾸로, 사회적 자본의 한계 생산성이 매우 높을 수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출처: 박준. (2018). 사회 갈등 지수와 갈등 비용 추정. 한국행정연구원.
▲ 갈등이 줄어들수록(사회적 자본이 증가할수록) 1인당 GDP가 증가합니다(경제가 살아납니다) 출처: 박준. (2018). 사회 갈등 지수와 갈등 비용 추정. 한국행정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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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자본의 한계 생산성이 높아서, 사회적 자본에 투자하면 경제 성장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주장은 저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행정연구원의 박준 박사님이 2018년에 '사회갈등지수와 갈등 비용 추정'이라는 연구 보고서를 냈습니다. 여기에 다음과 같은 그래프가 나옵니다.

OECD 소속 36개 국가의 갈등지수와 1인당 GDP를 비교해봤더니, 아주 강한 역의 상관관계가 나왔다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갈등의 수준을 낮춘다면, 경제 성장이 된다는 것인데, 갈등의 수준을 낮추는 것은 대화와 신뢰 등의 사회적 자본을 증가시키는 것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소 성급한 결론일 수는 있지만, '사회적 자본의 증가는 경제 성장에도 기여한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박준 박사님은 구체적으로 "우리나라의 갈등 수준을 스웨덴만큼 낮출 수 있다면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는 3만 4178달러(2015년 기준)에서 3만 8635달러로 증가할 것이다"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1인당 GDP의 증가분인 4457달러를 우리나라 인구 약 5천만 명에 곱하면 2258억 달러, 즉 약 248조 원이 됩니다. 정부가 사회적 자본을 증가시키면 일 년에 248조 원의 소득이 더 생길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결론 겸 요약

결론을 겸해 요약해서 다시 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온실가스 배출량 저감 없이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온실가스 배출량 저감은 에너지 가격 상승 없인 거의 불가능합니다.

책임 있는 지도자라면, 설령 국민들에게 비판을 받을지언정 에너지 가격 인상을 위해 에너지 관련 세율을 인상하기 위한 법률 개정을 해야 합니다. 다행히, 국민들 중 70%는 오히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에너지 가격 인상을 원하고 있습니다. 또한 다른 국민들도, 에너지 가격 인상을 통해 증가된 조세 수입을 기후변화 적응 기술 개발과 취약 계층 보호에 사용한다는 믿음이 증가된다면, 에너지 가격 인상 정책을 지지할 것입니다.
  
참여예산제 사업을 제안한 시민이 그 사업을 직접 수행하고, 그에 대해 인건비를 지급할 수 있도록 하는 법률 개정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사회자본도 증가하고 동시에 일자리도 창출됩니다.
▲ "참여소득을 위한 참여예산제"를 위해 필요한 법률 개정 방향 참여예산제 사업을 제안한 시민이 그 사업을 직접 수행하고, 그에 대해 인건비를 지급할 수 있도록 하는 법률 개정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사회자본도 증가하고 동시에 일자리도 창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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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증가시키려면, 대화와 신뢰 등을 포함하는 사회적 자본을 증가시켜야 합니다. 통영에서 했었던 주민 참여형 해양쓰레기 정화 사업이 보여주듯, 참여 소득을 위한 참여예산제를 실시한다면, 사회적 자본이 증가할 것입니다. 또한 순천시에서 했던 것처럼, 기후변화가 와도 안전하고 행복한 도시를 만들려면, 도시 전환의 방향을 결정하는 과정에 주민들이 적극 참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참여예산제를 통해 국민들이 제안한 사업을 국민들이 직접 수행하고, 인건비를 적절히 받을 수 있도록 관련 법규를 개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이 사업을 실시해서 에너지 전환과 관련된 갈등을 해소하고 정부 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증가한다면, 이는 경제 성장에도 도움을 줄 것입니다. 이를 위한 법률 개정 방향은 위 그림과 같습니다. '참여 소득을 위한 참여예산제'를 꼭 실시해 줄 것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관련 기사]
문재인 대통령님께 드리는 기후변화 편지 1 http://omn.kr/1twmx
문재인 대통령님께 드리는 기후변화 편지 2 http://omn.kr/1twnf

태그:#기후변화, #참여소득, #참여예산, #지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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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의민주주의 환경연구소장, 행정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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