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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후 광주 동구 학동의 한 철거 작업 중이던 건물이 붕괴, 도로 위로 건물 잔해가 쏟아져 시내버스 등이 매몰됐다. 사진은 사고 현장에서 119 구조대원들이 구조 작업을 펼치는 모습.
▲ 매몰된 버스 살피는 구조대원 9일 오후 광주 동구 학동의 한 철거 작업 중이던 건물이 붕괴, 도로 위로 건물 잔해가 쏟아져 시내버스 등이 매몰됐다. 사진은 사고 현장에서 119 구조대원들이 구조 작업을 펼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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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이라고 말하긴 참 잔인하다. 딸의 장례식을 모르고 있는 아버지, 자식의 생일상을 위해 나섰다가 돌아오지 못한 어머니, 늦둥이 외아들을 잃은 어머니...

지난 9일, 광주광역시 재개발구역의 철거건물 해체공사 중 건물이 붕괴되면서 버스를 덮쳐 9명이 사망하고 8명이 중상을 입었다. 사업시공사인 현대산업개발은 사고과정과 책임에 대해서는 정확한 이야기를 하지 않은 채, 그냥 머리를 숙이고 사과한다고 말만 하고 있다. 피해자 지원과 보상을 하겠다고만 한다.

현대산업개발은 이전에도 하청업체를 두었고 2013년 이후 산재다발 사업장, 중대재해 발생 사업장, 사망재해 발생 사업장 등으로 거의 매해 공표되었다. 사고 예방을 그때도 지금도 강조하지만 사고는 끊이지 않고 발생했다.

현대산업개발의 광주 학동 철거건물 붕괴사고의 원인을 찾기 위해 수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지금의 참사는 2년 전 서울 잠원동 철거건물 붕괴사고를 떠올리게 한다. 2년 전 재해지만 현장 관리소장만 처벌된 채 구청과 건축주에 대해서는 아직도 수사 중이라고 한다. 그 사이 법이 바뀌었지만 법과 제도는 현실에서 온전히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안전 조치 지켜지지 않은 현장 
       
정몽규 HDC그룹 회장이 11일 오전 광주 학동 철거건물 붕괴 사고 현장에서 참배한 뒤 이동하고 있다.
 정몽규 HDC그룹 회장이 11일 오전 광주 학동 철거건물 붕괴 사고 현장에서 참배한 뒤 이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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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산업개발이 수주한 건물철거 현장에서는 안전조치들이 되지 않았다. 인도 바로 옆 공사현장에 설치된 가림막은 철거현장을 가리고 먼지 막는 역할만 했을 뿐, 안전막은 없었다. 업체가 설치하지 않은 안전막 대신 가로수가 그나마 붕괴건물을 막아 사망자 수를 줄일 수 있었다고 한다. 

또 인도와 차도에서 위험을 알리고 사람들과 차량을 통제하고 조절할 신호수들이 추가로 배치되지 않았고, 버스정류장은 철거 현장 바로 앞에 그대로 있었다. 철거작업을 어떻게 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해체계획서에는 해체공사 순서나 방법뿐 아니라 구조안전계획, 교통안전 방안, 안전통로 확보 및 낙하방지 대책 등 안전관리대책도 마련해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전혀 언급되지도 이행되지도 않았다. 현대산업개발의 철거공사는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지자체의 허가가 필요하다.

해체계획서는 전문가의 검토를 받아 지자체가 허가하도록 되어있다. 형식적인 허가 절차는 거쳤다고는 하나, 어떤 방식으로 해야 안전한지를 우선으로 두는 계획서 작성과 검토는 아니었다. 아래층에 지지대를 세우고 위에서부터 한 층씩 아래로 철거하는, 안전하지만 돈과 시간이 많이 드는 방식은 선택되지 않았다.

흙더미를 쌓아 굴삭기를 올려서 닿는 곳부터 철거를 시작하다 보니 인도 쪽 벽면이 남게 되고, 아래쪽에서 파 들어가는 방식으로 작업을 하니 남은 벽이 도로 쪽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모든 과정을 점검하고 안전대책을 세워야 하는 감리자는 비용 문제 등으로 상주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현대산업개발은 재하도급은 없었다고 하지만, 오히려 공사과정에 대해 어떤 관리도 하지 않았음을 확인시켜줄 뿐이다. 현대산업개발은 철거공사 전체를 전문업체인 한솔기업에 도급을 주었고, 도급업체는 수주가격의 25% 정도 비용으로 백솔건설이라는 업체에 재하도급을 주었다. 불법이고 이것 자체로 문제다.

그러나 불법‧합법을 따지기 이전에 현실적으로는 하도급에 재하도급으로 내려오면 저렴하게 빨리 공사를 완성하는 업체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게 더 문제다. 재하도급업체는 쥐어짜는 공사만이 가능하다. 새로운 기술이나 공법은 비용이라는 벽 앞에서 아무런 힘이 없다. 그러다 보니 안전한 철거 방법보다 흙더미 위에 굴삭기를 올려놓고 위험한 방식으로 작업을 하게 된다.

이번 사고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적용되지 않는다 
 
13일 오전 광주 동구 학동4 재개발 구역 철거 건물 붕괴 사고 현장 건너편 도로에 사망자를 추모하는 꽃다발과 손편지가 놓여있다. 지난 9일 오후 4시 22분께 이곳에서 철거 중이던 5층 건물이 붕괴하며 잠시 정차 중이던 시내버스를 덮쳤다. 이 버스에 타고 있던 17명 가운데 9명은 숨지고 8명은 중상을 입었다.
 13일 오전 광주 동구 학동4 재개발 구역 철거 건물 붕괴 사고 현장 건너편 도로에 사망자를 추모하는 꽃다발과 손편지가 놓여있다. 지난 9일 오후 4시 22분께 이곳에서 철거 중이던 5층 건물이 붕괴하며 잠시 정차 중이던 시내버스를 덮쳤다. 이 버스에 타고 있던 17명 가운데 9명은 숨지고 8명은 중상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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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재난으로 세상은 조금씩 변해가고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게 바로 법과 제도의 변화다. 비슷한 사고를 막자고 법이 바뀌었다. 그러나 현실은 기대와는 달랐다.

11일 보도된 <연합뉴스>의 '"저러면 안 될 거 같은데"... 주민은 아침부터 붕괴참사 예견'에 따르면, 지난 4월 7일, 이번 철거건물 붕괴가 있었던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철거가 이뤄지는 것을 보고 위험을 느낀 주민이 지자체에 신고를 했다. 하지만 지자체는 지정된 감리자가 있으니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조심하라는 공문을 내려보냈을 뿐, 현장에 나간 건 며칠 뒤였고 이미 공사는 완료된 상태였다.

이번 참사에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적용되지 않는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2022년 1월 27일부터 시행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적용시점과 상관없이 시민재해로 볼 것인가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시행령을 통해 확인될 것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법이 제정될 때 경영계의 압박과 반대로 중대산업재해와 중대시민재해로 나뉘어 규정되었고, 지금의 참사는 버스 이용자들의 사망임에도 '버스 설계‧제조‧설치‧관리상의 결함'이 원인이 아니기 때문에, 중대재해처벌법의 시민재해로 직결되지는 않는다. 다만 '재해 발생 때 생명·신체상의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높은 장소'를 포함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하고 있어 시행령으로 결정할 수 있다.

공중이용시설에 대한 폭넓은 판단과 사업주의 의무규정이 시행령 제정에서 필요하다. 그리고 인허가 공무원과 발주처에 대한 처벌조항도 앞으로 개정해야 할 내용이다. 그렇게 되면 건축물 관리법상으로 권한을 가진 지자체가 철거작업을 허가할 때 지금과는 달라질 것이다.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중심에 둔다면

지난 11일 박범계 법무부장관이 현장을 찾아 "공공 형사정책의 핵심은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중심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 경영자의 포괄적 안전의무를 적시해야 한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빨리 적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5인 미만, 5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와 시민들의 안전이 배제되지 않도록 더 광범위하게 적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사각지대가 사라진다.

지속적으로 이런 사고의 근본적 문제가 되는 하도급을 근절하고 철저하게 관리·감독 할 수 있도록 감리제도를 개선하는 것도 필요하다. 형식적인 해체계획서와 절차적 검토로 처리되지 않도록 전문기관에서 제대로 검토하고 허가되도록 하는 방식으로 변경하는 것도 추진되어야 한다.
  
김부겸 국무총리가 3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총리-경제단체장 간담회에 앞서 5개 경제단체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날 간담회에는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SK그룹 회장)과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구자열 한국무역협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강호갑 한국중견기업연협회 회장이 참석했다.
 김부겸 국무총리가 3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총리-경제단체장 간담회에 앞서 5개 경제단체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날 간담회에는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SK그룹 회장)과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구자열 한국무역협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강호갑 한국중견기업연협회 회장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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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3일 김부겸 총리와 경제계가 만났다. 그 자리에서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경영자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중대재해법의 과도한 처벌 문제는 정부가 올해 안에 법률을 재개정하거나 시행령을 통해 보완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했다. 경영책임자의 책임을 여전히 피할 궁리만 하는 것이다.

현대산업개발과 재계는 머리 숙이고 앞으로는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발표 말고 실제로 하고 있는 게 무엇인가. 계속되는 재해를 막고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면, 재계는 "지금의 중대재해처벌법으론 재해가 예방되지 않는 것 같으니, 정부가 올해 안에 법률을 재개정하거나 시행령을 통해 보완해야 할 것입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안전을 위한 최선은 그렇게 시작되어야 한다.

돌아가신 분들의  평안과 유족에게 위로를 전하며, 부상당하신 분들의 빠른 쾌유를 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권미정 사단법인 김용균재단 사무처장입니다.


태그:#광주 건물붕괴, #중대재해처벌법, #김용균재단, #시민재해, #하도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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