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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올린 기사(무료급식 300개, 이 도시락이 정말 특별한 이유)의 활동인 '시 필사가 주는 삶의 여유를 내 이웃과 함께 나누는 운동 – 필사시화엽서나눔' 첫날이었다.

정기적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군산시 무료급식센터에서 엽서 나눔을 처음으로 하고 싶었다. 센터의 담당자에게 활동의 의미를 전하고 협조를 구하니, '뭔지는 모르지만 도와드릴게요'라고 흔쾌히 허락했다. 평소 보다 서둘러서 현장에 도착하고, 준비해간 플래카드를 급식배부처 안마당에 달았다.

"이게 뭐여? 바람에 날리니께 테이프로 이곳저곳에 붙여야 되는디."
"네. 감사합니다. 아버님 말씀이 맞네요. 이렇게 붙이니까 보기 좋아요. 오늘은 어르신들이 도시락 이외에 아름다운 글이 써있는 엽서 한 장을 더 받으실 거예요. 멋진 선물 드릴게요."


도시락 배부 두 시간 전부터 와서 기다리는 한 노인이 플래카드를 붙이는 나를 도우면서 말을 걸었다.

오늘의 행사를 준비하며, 6월 자원봉사자들에게 배부된 엽서는 1000장이었다. 그러나 어제까지 도착한 엽서가 150여 장 밖에 되지 않았다. 부랴부랴, 필사 봉사자들에게 부탁하여 아침에 총 250여 장을 들고 기대 반 걱정 반의 마음으로 센터로 갔다. 엽서를 도시락에 어떻게 넣어야 되나, 글씨가 번지면 어떡하나, 혹시라도 도시락을 준비하는 다른 분들에게 방해가 되진 않을까, 여러 가지로 걱정이 더 많았다.

혼자 필사하고 보는 게 아까워 시작한 봉사 
 
필사시화엽서를 붙인 도시락 위 글을 읽으며 너무 좋다라고 연발하는 봉사자들
▲ 시가 써있는 도시락이라고? 필사시화엽서를 붙인 도시락 위 글을 읽으며 너무 좋다라고 연발하는 봉사자들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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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도시락을 준비하는 봉사자들에게 오늘의 활동을 전하니, 서로 엽서를 구경하러 왔다. 엽서에 쓰여진 글씨가 인쇄한 것인 줄 알았다가, 직접 쓴 손글씨인 것을 보고 모두 감동의 멘트를 날렸다. 어떤 분은 '무료급식소의 품격이 높아지네'라고 말씀하셨다.

"아니, 이것을 다 손을 썼어요? 그림도 다 직접 그렸네. 우리가 시를 읽어본 적이 언제여?"
"네. 직접 쓰고 그렸어요. 초등학생 봉사자부터 성인까지 좋은 글과 시를 필사했어요."
"세상에나. 글씨가 이쁘기도 하네. 정성이 가득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으까나."
"그냥, 제가 혼자서 시를 읽고 필사하는 것이 아까워서, 여기 계신 분들과 같이 나누고 싶었어요. 봉사자들이 아니면 혼자 못하고요, 막상 엽서를 모아보니 천상의 그림 같아요."


도시락 준비가 시작되어, 함께한 필사봉사자(박효영님, 장승정님)는 도시락 고무줄 위로 엽서를 한 장을 끼워 넣었다. 오늘 준비된 도시락은 220여 개였는데, 필사엽서가 끼워진 도시락은 이전의 도시락과 달랐다. 너도나도 도시락 위에 있는 엽서의 글을 읽고 감탄하는 소리가 내 마음을 환하게 밝혀 주었다.

도시락 배부 전에 봉사자 이모들에게 먼저 엽서를 드렸다. 눈을 감고 하나씩 뽑도록 하면서, 받으시는 글은 그 어떤 글이라도 오늘의 최고 선물이라고 말씀드렸다. 어떤 분은 정호승 시인의 <봄길>, 어떤 분은 이해인 수녀의 <6월의 편지>, 다른 분은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는 꽃>, 또 다른 분은 조동화 시인의 <나 하나 꽃피어> 등의 다양한 시와 명언이 쓰인 엽서를 뽑으며 어린 아이들처럼 즐거워했다.

"이모님, 뽑으신 시를 낭송 한번 해보시겠어요?"라고 부탁하니, 주저 없이 고운 목소리의 시 낭송가가 탄생했다. 바로 70대 봉사자 이옥순 이모님의 시 낭송가가 되는 순간이었다.
 
나 하나 꽃 피어 - 조동화

풀밭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 피고 나도 꽃 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나 하나 물들어 산이 달라지겠느냐고도 말하지 말아라.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결국 온 산이 활활 타오르는 것 아니겠느냐.
 
엽서를 받으신 분들은 한결같이 오로지 자신을 위해 시가 탄생한 것처럼 감동했다. 몇 번을 읽어보시고, 눈물을 찔끔거리며 고맙다는 말을 계속했다. '아, 사람이란 정말 밥만 먹고 사는 것이 아니구나. 이렇게 글을 먹고, 시도 먹으며 살도록 창조되었는데 바쁜 삶에 지쳐 우리의 본성을 잊고 사는 거였구나'라고 생각했다.

"영양사로 일한 지 10년, 이런 행사 너무 좋아요"
 
봉사자들의 정성스런 필사시화엽서를 담고 수혜자를 기다리는 220개의 도시락
▲ 필사시화엽서를 담은 도시락 봉사자들의 정성스런 필사시화엽서를 담고 수혜자를 기다리는 220개의 도시락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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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 배부 시간이 되어 센터의 마당으로 나갔다. 태양 빛이 한여름 폭우처럼 내리쬐는 마당에 서서 큰 소리로 다시 한번 오늘 도시락을 설명 드렸다.

"어머님, 아버님~ 오늘 도시락에는 특별한 엽서가 하나 있어요. 평소처럼 맛난 도시락이지만 오늘은 멋진 시나 글귀가 써있는 엽서 하나가 특별 반찬으로 들어갑니다. 버리지 마시고 한 번씩만 읽어주세요. 우리나라 시인들의 시나 좋은 글을 어린이들과 엄마들이 엽서에 직접 쓰고 그림도 그렸어요. 여러분과 함께 읽고 사랑과 희망을 나누고 싶어요."

"도시락만 먹고 엽서 버릴 사람은 나한테 주세요. 얼마나 정성이 가득하고 예쁜지 버리는 사람은 도시락도 안 줄거야"라는 영양사님의 뼈있는 농담에 모두 한바탕 웃었다.

"안 버려. 걱정 마. 읽어봐야지. 그럼 그럼. 수고해요. 고맙네 고마워."

어르신들이 다양하게 대답하며 도시락을 받아 나갔다.

"이곳에서 영양사로 일한 지 10년인데, 이런 행사는 너무 좋아요. 그냥 인쇄물이나 가져오는 줄 알았어요. 어떻게 이 많은 것을 필사하나. 나도 학생 때, 연애 때 생각나네. 고마워요. 우리 수혜자들도 도시락으로 배고픔을, 시 엽서로 마음의 양식을 채워서 오늘만큼은 행복할 거예요."

영양사(군산급식센터, 손순영)님이 말했다. 무엇보다 도시락을 받는 기초수급대상자들 중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 시 엽서가 우울증의 치유제가 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많은 봉사활동 중에 오늘처럼 '글'로서 나눔의 행복을 느낀 적이 있었을까 싶었다. 앞으로 전개될 5개월간의 봉사동아리 '민들레씨앗'의 필사시화엽서 나눔운동이 우리 군산 지역민들의 마음에 큰 위로와 희망이 되길 기도한다. 이 나눔은 한 달에 두 번 무료급식센터를 중심으로 배부하며, 필사봉사자들은 누구든지 언제든지 참여할 수 있다.
 
시화엽서도시락 배부후 기념 사진
▲ 이런 멋진 도시락 보셨어요? 시화엽서도시락 배부후 기념 사진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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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필사시화엽서, #군산시자원봉사센터, #군산무료급식센터, #필사봉사단민들레씨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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