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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 신평면 소재지를 지나고 섬진강을 따라서 석등슬치로(石燈瑟峙路)를 5km쯤 내려가면, 섬진강 옆 구릉지의 마을 가운데에 우뚝 서 있는 진구사지 석등이 멀리서도 보인다. 이 석등은 규모도 크고, 석등을 조각한 예술적 수준도 우수한 아름다운 석등이다. 이 석등은 천이백 년이 넘은 걸출한 예술작품인데, 덩그러니 홀로 폐허가 된 절터를 수백 년간 지키고 있다. 방문객에게 깊은 사색과 성찰의 여운을 준다.

진구사지 석등을 감상하고, 다시 섬진강 따라 0.8km쯤 내려가다가 우회전하여, 운암면 사량리 방향으로 작은 고개인 죽치(竹峙)를 넘는다. 죽치를 넘으면 운암면 사양리의 고갯길 옆에 영화 <국화꽃 향기>로 인상 깊은 영화배우 장진영의 기념관이 있다.
 
기념관 간판의 사진에는 아침 이슬같이 생동감 넘치는 그녀가 맑은 미소로 임실 옥정호를 내려다보고 있다.
▲ 임실 장진영기념관 기념관 간판의 사진에는 아침 이슬같이 생동감 넘치는 그녀가 맑은 미소로 임실 옥정호를 내려다보고 있다.
ⓒ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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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영 기념관 표지판에 비행사 복장의 장진영 사진이 눈길을 끈다. 당당하게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했던 장진영은 비행사 복장도 잘 어울린다. 아침 이슬같이 생동감 넘치는 그녀가 맑은 미소로 섬진강 옥정호를 내려다보고 있다.

영화배우 장진영은 소녀 시절에 예능 분야에 소질이 있어 미술과 피아노 부문에 많은 수상을 하였고 피아노 전공을 고려하였다고 한다. 의상학과를 전공한 대학생 시절에 모델로 활동하며 미스코리아에 선발되었다.

이후 CF 모델로 연예계에 데뷔하고, TV 드라마에 출연하다가, 영화배우로 연기력을 인정받게 된다. 그녀가 출연한 영화는 1999년의 <자귀모>를 시작으로 <소름>, <국화꽃 향기>, <싱글즈>, <청연>과 2006년의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등이 있다.

장진영은 2008년 9월에 위암 진단을 받고, 2009년 9월 첫날 3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분당 스카이캐슬 추모공원에 머물다가, 2011년에 이곳 임실 섬진강 상류 옥정호의 가까운 한가로운 고갯길 옆에 안식처를 잡았다.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해맑은 미소와 그리운 이름으로 영원한 추억의 장소를 마련하였다. 이곳 장진영 기념관에는 그녀의 삶의 여정을 회고할 수 있는 자료가 주제별로 정리되어 전시되어 있다.

최근에 기념관 옆 도로 건너편에 '국민배우 장진영 추모비'를 크게 세우고, 주차장을 확장하였다. 6월 중순인 요즈음, 기념관 주위에는 가로수 벚나무들의 푸른 잎 사이로 버찌가 익어가며 붉은색, 보라색과 검은색의 영롱한 변화를 연출하고 있다. 기념관 주위의 도로변에는 맥문동이 매끄러운 초록색의 윤기를 자랑하며 가을의 보랏빛 개화를 염원하고 있다.

강이면서 호수인 섬진강 옥정호
 
기념관에는 영화배우 장진영이 1972년에 출생하여 2009년에 세상을 떠나기까지 삶의 여정을 회고할 수 있는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 장진영기념관 홀 기념관에는 영화배우 장진영이 1972년에 출생하여 2009년에 세상을 떠나기까지 삶의 여정을 회고할 수 있는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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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영 기념관에는 어르신 한 분이 시간이 날 때마다 기념관 주변의 수목을 보살피며, 화단과 잔디밭을 가꾸고 있다. 영화배우 장진영의 부친 장길남씨다. 부친은 섬진강 옥정호가 내려다보이는 이곳 임실 운암면 선산(先山)으로 딸의 묘소를 옮기고, 선산 아래 도로변에 기념관을 세웠다. 자식을 가슴에 묻고 사는 그분의 심정과 딸을 향한 그리움은 어떻게 가늠할 수 있을까?

이 기념관에는 장진영의 이름으로 설립된 계암장학재단 사무실이 있으며, 매년 소외된 환경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등 의미 있는 장학사업을 하고 있다. 장진영 기념관은 섬진강 옥정호의 한적한 도로변에 있어서 방문객이 많지는 않다. 기념관의 출입문이 잠겨있을 때가 있는데, 방문객이 오면 친절하게 기념관의 문을 열어주며 안내한다.

섬진강은 지역에 따라 부르는 향토적인 이름이 있다. 예로부터 섬진강 상류인 임실군 운암 지역을 흐르는 강은 운암강이라고 불렀다. 소설 <혼불>의 작가 최명희는 임실의 운암은 바위가 풀어져 안개가 되고, 안개가 굳어져 바위가 된다고 했다. 임실의 운암(雲巖)은 '구름 운과 바위 암'의 이름처럼, 섬진강 감입곡류 하천의 흐름이 빚어낸 절경의 바위 풍경과 섬진강의 여명이 피워내는 물안개가 섬진강 상류 운암의 정체성이다.

섬진강 옥정호는 강이면서 호수다. 옥정호의 수면은 잔물결이 햇빛에 반사되어 은빛 비늘로 출렁이는 호수이며, 옥정호의 내면은 천천히 흐르는 침묵과 사색의 강이다. 이 옥정호에 가을이 되면 호숫가의 산기슭 곳곳에 가을의 여인을 닮은 구절초가 지천으로 핀다. 구절초가 개화하면 그리움이 물안개처럼 피어난다. 임실의 운암 옥정호에서는 그리움이 응결되어 바위가 되고, 그리움이 기화되어 안개가 된다.

쑥부쟁이처럼 구절초는 흰색이나 흰색에 가까운 연분홍색 꽃잎이 앙증맞고 아담하여 그리운 추억을 선명하게 회상하게 한다. 가을 국화 구절초의 꽃말은 가을 여인이다. 섬진강 옥정호 산기슭에 피는 가을 구절초의 정서는 장진영 기념관과 잘 어울린다. 

임실 옥정호의 고갯길 죽치에 들국화인 구절초가 피면, 봐도 또 봐도 가슴 아픈 영화 <국화꽃 향기>가 생각난다. <국화꽃 향기>는 한 번의 의미 있는 인연이 숙명이 되는 가치와 사랑하는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이 그렇게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그대가 떠나간다 해도 나는 그대를 보낸 적이 없다. 여전히 그대는 나를 살게 하는 이유다. 진실한 사랑의 이야기는 삶과 죽음의 영역을 초월하여 유한한 인생에서 영원한 전설로 살아남았다.

장진영 기념관, 영원한 국화꽃 향기와 푸른 제비
 
장진영은 CF 모델로 연예계에 데뷔하고, TV 드라마에 출연하다가, 영화배우로 연기력을 인정받게 된다.
▲ 장진영기념관 트로피 장진영은 CF 모델로 연예계에 데뷔하고, TV 드라마에 출연하다가, 영화배우로 연기력을 인정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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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비쳐서 은빛으로 출렁이는 잔물결이 섬진강 옥정호의 진솔한 얼굴이다. <국화꽃 향기>와 <청연> 같은 개성 있는 영화를 남기고 유성(流星)처럼 짧은 생애를 살다간 배우 장진영은 안개와 바위가 영겁의 순환을 이어가는 섬진강 운암의 옥정호에서 별자리를 이루는 별이 되었다. 기념관에는 장진영을 그리워하는 안타까운 마음들이 잘 표현된 추모의 글들을 볼 수 있다.

햇살은 옥정호에서 은빛 물결이 되어 출렁인다. 죽치의 바람도 나무들을 감싸고 함께 흔들린다. 우리의 추억 속에 계절은 10여 년 속절없이 흘러갔지만, 배우 장진영의 맑은 눈동자와 밝은 웃음은 영원한 생명력으로 머물러 있다. 장진영 기념관이 있는 임실 옥정호 고갯길에는, 계절을 초월하여 국화꽃 향기가 피어나고 푸른 제비가 하늘을 날고 있다. 여기서 푸른 제비는 '하늘을 나는 비행기'의 은유다.
 
영화 ‘청연(靑燕)’은 푸른 제비를 의미하여 ‘하늘을 나는 비행기’의 은유다. 이 영화에서 꿈을 찾아 당당하게 노력하는 당찬 배우 장진영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 장진영기념관 청연 영화 ‘청연(靑燕)’은 푸른 제비를 의미하여 ‘하늘을 나는 비행기’의 은유다. 이 영화에서 꿈을 찾아 당당하게 노력하는 당찬 배우 장진영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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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영은 영화 <청연>(靑燕)을 촬영할 때, 처음 타본 복엽기(複葉機) 위에서 거센 바람을 맞으며 진정한 자유를 느꼈다고 한다. 복엽기의 거칠고 힘찬 날개 소리를 들으며, 뚜껑 없는 복엽기에서 세찬 바람을 맞으며 행복했을 배우 장진영은 이제 그녀의 기념관에서 정지된 시간과 함께 영원한 추억의 장면이 되었다. 푸른 하늘을 향한 힘찬 날갯짓으로 세상 위로 날아오르며 시대를 넘어선 꿈을 꾸며 영원히 비행하고 있다. 
 
햇빛처럼 뜨거우면서도 바람처럼 시원했던 여자, 그리고 배우……. 기념관에는 장진영을 그리워하는 안타까운 마음들이 잘 표현되어 있다.
▲ 장진영기념관 그리움 햇빛처럼 뜨거우면서도 바람처럼 시원했던 여자, 그리고 배우……. 기념관에는 장진영을 그리워하는 안타까운 마음들이 잘 표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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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은 물을 따라 길을 내려가도 좋고, 물을 거슬러 길을 찾아 올라가도 좋다. 가을이 되어 장진영 기념관 입구에 보랏빛 맥문동이 피면, 그리움의 정서는 옥정호의 물안개처럼 더욱 진하게 피어나리라. 허울이기에 오래 갈 수 없는 기억이 아니라, 진실하고 맑은 꿈을 피우다가 산화한 배우 장진영이기에 진한 여운은 오래오래 이어질 것이다.

임실 관촌면에서 신평면 진구사지 석등을 지나, 죽치를 넘으며 <국화꽃 향기>의 배우 장진영을 만나보고, 옥정호 붕어섬과 국사봉으로 가는 여정은 섬진강이 흘러가는 방향을 따라가는 섬진강 상류의 명소 탐방이다.

그러나 이와 반대 방향으로, 먼저 옥정호 국사봉에서 붕어섬을 조망하고, 죽치에서 장진영 기념관을 방문하며, 진구사지 석등을 찾아보는 코스도 추천할 수 있는 여정이다.

섬진강은 사계절 내내 맑은 자연의 숨결로 출렁이면서 여유롭게 굽이져 흐른다. 섬진강의 풍경을 감상하는 여정에는 휴식과 삶의 성찰이 가득하다.

태그:#장진영기념관, #임실 옥정호의 별, #임실 운암 장진영, #장진영 국화꽃 향기, #장진영 청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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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해설사입니다. 향토의 역사 문화 자연에서 사실을 확인하여 새롭게 인식하고 의미와 가치를 찾아서 여행의 풍경에 이야기를 그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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