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사람에 대한 호기심은 누군가와 '나와 너'로 연결하게 만드는 시작점이기도 하고, 때론 희미해져가는 상대방의 영혼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주는 씨앗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사람에 대한 호기심만큼이나 흥미로운 관찰 대상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의자이다.

 
찰스 레니 매킨토시의 대표작인 '레더백 체어'
 찰스 레니 매킨토시의 대표작인 "레더백 체어"
ⓒ 일러스트 백두리

관련사진보기


의자는 거기에 앉는 사람과 닮아있기 때문이다. 레더백 체어를 보고 아무렇지 않게 앉아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왠지 모를 부담감 때문에 작품을 감상하듯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도 레더백 체어를 소장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 의자를 조각품을 보관할 만한 장소에 고이 모셔놓고 감상용으로만 활용한다고 한다.
 
'앉지 마세요 앉으세요' 책 겉표지
 "앉지 마세요 앉으세요" 책 겉표지
ⓒ 안그라픽스

관련사진보기

 
<앉지 마세요 앉으세요>, '디자이너에게 듣는 스물 여섯 가지 의자 이야기' 저자인 건국대학교 김진우 교수를 지난달 16일 화상회의 줌으로 인터뷰했다. 김 교수는 디자인과 관련된 다양한 영역의 글을 써오다가 '의자가 살아있다'는 피드백을 듣고, 과감히 다른 것들을 덜어낸 채 의자에 관한 글만 모아서 이 책을 펴내게 되었다고 한다.

의자에 대한 그의 생각은 여러 비유를 통해 책 여기저기에서 묻어난다. 그의 책을 통해 우리는 다양한 형태의 의자를 마주할 수 있고, 그 의자를 통해 표현하려 했던 디자이너의 의도와 자연스레 만나게 된다. 또 의자가 제작된 시대의 철학적·사회적 배경을 접하는 기쁨도 누릴 수 있다. 의자는 그 모든 것을 '연결'해 주고 있다. 다음은 김진우 교수와 나눈 인터뷰 내용이다. 
 
지금 앉아있는 의자에 대해 설명하며 실물을 보여주고 있는 모습.
 지금 앉아있는 의자에 대해 설명하며 실물을 보여주고 있는 모습.
ⓒ 유영수

관련사진보기

 
-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작가가 앉아 있는 의자는 어떤 것인지 궁금해졌다.
"이건 차이나 체어인데요. 한스 웨그너(모던 덴마크 디자인을 구현하는 대표적인 인물)가 중국의 대표적인 디자인의 영향을 받아서 만든 것이고요. 이 의자는 워낙 카피본이 많은데, 카피본의 디테일이 요즘은 상당히 발전한 게 사실이에요."

- 책에 '모방과 오마주'에 대해 언급하셨는데요.
"1차 산업혁명이 일어났던 1800년대부터 양산가구의 형태로 의자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그 중 100여 년이 넘는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모델들이 많아요. 바우하우스 시절에 만들어진 의자들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죠. 유럽에서 만들어진 의자가 수입이 되면서 가격이 많이 비싸지게 되니까, 카피본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인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오리지널이 잘 팔리지 않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굳이 법적으로 대응하지 않는 거죠. 오리지널 의자는 대를 이어서 소장품으로 간직할 수 있다는 점이 메리트라고 생각해요." 

- 책을 기획하며 품으셨던 기대 세 가지가 있다고 책에서 밝히셨는데요. 첫 번째는 디자인 전공자들에게 의자를 통해 세상을 보는 관점을 보여주고 싶었다. 두 번째,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쓰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통해 인문사회학자와 디자이너가 소통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말씀하셨는데요.
"처음에 출판사에 기획서를 제출할 때 디자인 전공자들이 아무래도 많이 읽지 않을까 예상했어요. 그런데 아직까지는 의외로 비전공자들이 많은 관심을 보여주고 있고, 가장 의외였던 것은 여든이 넘으신 제 어머니가 이 책을 두 번이나 읽으셨다는 말씀을 듣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어요. (혹시 딸에 대한 애정 때문이 아닐까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 제 어머니는 매우 솔직하신 분이거든요. (웃음) 이 책을 통해 제가 몰두하고 있는 뇌과학이나 진화생물학자 분야의 전문가들과도 앞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 의자와 그 의자에 앉는 사람이 닮아있다고 하셨는데, 다섯 종류의 의자와 그것을 닮은 사람에 대해 연관지어서 말씀해 주실 수 있는지요.
어려운 질문이긴 한데요. 제가 책에서 '주인공인 의자', '조연인 의자', '의자가 아닌 의자',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의자', '질문하는 의자' 이렇게 다섯 가지의 의자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갔잖아요. 제가 많은 의자 디자이너들을 만나보기도 했고 안면이 있어서 잘 아는데요, 사실 의자를 사용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디자이너와 의자 또한 상당 부분 닮아있어요. 한 가지 예를 들면 베르너 판톤이 디자인한 '판톤 체어'는 실제로 보면 정말 화려해요. 베르너 판톤 역시 사람들의 눈에 띄고 싶어하는 사람이었거든요."
 
덴마크 디자인의 전형적 공식을 깨뜨린, 베르너 판톤의 작품 '판톤 체어'
 덴마크 디자인의 전형적 공식을 깨뜨린, 베르너 판톤의 작품 "판톤 체어"
ⓒ 일러스트 백두리

관련사진보기



- 두 번째는 '조연인 의자'인데요.
"조연인 의자의 대표적인 작품은 핀란드 국민의자로 불리우는 알바르 알토의 '스툴 60'이에요. 핀란드는 교육제도가 워낙 유명하고 위대한 평민을 길러낸다는 가치를 지향하는 나라인데, 이 의자가 보여주는 평범함이 그것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해요. 핀란드를 여행하다 보면 집, 학교, 도서관 등 어디서든 '스툴 60'을 쉽게 볼 수 있어요. 저는 유명 디자이너의 작품인 이 의자를 박물관에서만 볼 수 있는 게 아니라, 평상시에 일상 속에서 사용하며 자라나는 핀란드 아이들에게 이 의자가 주는 의미는 남다르다고 생각해요."

- '의자가 아닌 의자'로 넘어가 볼까요?
"도예가 이현정이 만든 의자들은 정말 독특한데요. 보통은 도면을 그리고 정확한 치수에 맞게 구조화시킨 다음 의자를 만들게 되거든요. 그런데 도자기는 가마에 들어간 다음 어떤 결과물로 나올지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는 거고 간혹 유약이 흐를 수도 있는 거잖아요. 저는 이런 부분이 매우 불안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기존의 틀을 깨고 이현정 작가의 자유분방한 캐릭터가 의자에 녹여진 것이 아닐까 싶어요."

-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의자'도 궁금해집니다.
"이 의자들은 만들어진 당시에는 그렇게 명성을 날리지는 못한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가치가 재조명되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을 뿐 아니라 그 의미가 되살아나는 것을 볼 수 있어요. 대표작으로는 디자인 분야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시작을 알렸던 '멤피스의 의자'와 의자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린 마르셀 브로이어의 '바실리 체어'가 있습니다."

- 다섯 가지 의자 중 마지막인 '질문하는 의자'는 어떤 의미일까요.
"'질문하는 의자'는 저에게 다음 책을 집필할 수 있는 동기를 만들어준 아주 특별한 의자입니다. 디자인을 공부하기 위해 대학에 들어온 친구들에게 '이미 훌륭한 의자들이 충분히 나와 있는데 너희들은 도대체 앞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겠니?'라고 말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판보 레멘첼의 '24유로 체어'를 보면서 제 생각은 사뭇 달라졌어요. 예를 들어, 바우하우스에서 디자인한 의자를 디자인 공유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다운로드하고 각자의 방법으로 만들 수 도 있지 않을까요? 이런 시스템은 기존의 디자인 방식과는 전혀 다른 혁신적인 시대를 열어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 글을 쓰는 동안 함께 여행하며 길벗이 되어준, 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시죠.
"저에게는 2000년생 딸이 있는데 이 아이가 대안학교를 나왔어요. 졸업 이후에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딸을 보면서 엄마로서 저도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요. 마침 제가 2019년에 연구학기를 하면서 딸과 함께 여행을 가게 됐고 그때 이 책에 대한 마무리 작업을 할 수 있었는데, 더불어 딸과 함께 딸의 인생과 진로에 대해 깊이있게 대화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죠.

이 책에 의자 사진이 아닌 일러스트레이션을 활용한 계기도 바로 딸 때문인데요. 어느 날 레더백 체어 사진을 걸어놓고 글을 쓰던 제 옆에서 딸이 스케치하듯 그림을 그리는 것을 보고, '아 저거다' 싶었어요. 물론 편집 과정에서 백두리 선생님의 일러스트레이션을 사용하긴 했지만, 제 책이 나오는 데 딸이 일정 부분 공헌한 셈이죠."

앉지 마세요 앉으세요 - 디자이너에게 듣는 스물여섯 가지 의자 이야기

김진우 (지은이), 안그라픽스(2021)


태그:#오마이뉴스, #책마주, #앉지마세요앉으세요, #김진우교수, #의자에대한모든것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람을 사랑하고 대자연을 누리며 행복하고 기쁘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서울에서 평생 살다 제주에서 1년 반,포항에서 3년 반 동안 자연과 더불어 지내며 대자연 속에서 깊은 치유의 경험을 했습니다. 인생 후반부에 소명으로 받은 '상담'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더 행복한 가정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꿈꾸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