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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의 한 '어린이 보호구역' 모습.
  서울의 한 "어린이 보호구역"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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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십수 년째 스쿨존으로 출퇴근하고 있다. 초등학교 교사이기 때문이다. 아마 퇴직하는 그날까지 숙명적으로 스쿨존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등하교 시간대 스쿨존은 무척 붐빈다. 형형색색의 가방을 멘 아이들이 줄지어 교문으로 향하고, 자전거 페달을 밟는 친구도 있다. 어떤 학생은 할아버지 손을 잡고 걷는다. 차량으로 등교하는 인원도 꽤 된다. 비상등을 켠 차량이 쉼 없이 자녀를 내려놓고 떠나기를 반복한다. 

스쿨존에 접어들면 긴장감이 팍 오른다. 출근했다는 실감이 든다. 전방을 주시하고 언제라도 브레이크를 밟을 수 있도록 발끝에 힘을 준다. 누구도 다치게 하고 싶지 않다. 상대를 위해서라도, 그리고 나를 위해서라도.

2020년 3월, 민식이법이 통과되었을 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함없다. 스쿨존을 매일 지나는 만큼 사고가 날 가능성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월등히 높은 것은 맞지만 그래도 찬성하는 편이다. 

최근 '민식이법 놀이'라는 괴상한 용어를 만들어서 안 그러던 아이들까지 나쁜 놀이의 세계로 유도하게 만드는 여론이 있다. 일부 언론에서 아이들이 민식이법 제정 이후 일부러 차량에 뛰어드는 경우가 있다며 제대로 확인되지 않는 사례를 보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극소수 아이들의 일탈을 확대 해석하여 민식이법 제정의 근본 취지까지 부정하는 것은 우려스럽다.

민식이법이 불러온 긍정적인 변화들 

나는 우리 반 아이들이 학교 앞 도로에서 다치는 것을 수차례 경험했다. 아이들은 울면서 교실로 오거나, 울면서 집으로 갔다. 사고 유형은 다양했다. 쌩 지나가는 택시의 사이드 미러가 팔을 치거나, 자녀를 태우러 온 다른 학부모 차량에 부딪혔다. 커다란 SUV 차량이 횡단보도 옆에 주차되어 있어서 그 차량을 돌아 나오다가 1톤 트럭 타이어에 발등을 밟히기도 했다. 

어린이에게 어른의 물건은 너무 크고, 눈높이가 다른 어른은 어린이를 잘 보지 못한다. 우리 반이 아니더라도 학교 전체에서는 크고 작은 사고가 종종 있었다. 다행히 사망에 이르거나, 중환자실에 입원할 정도의 부상은 겪지 않았다. 그러나 사고는 잊을 만하면 발생했다.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나는 화가 났다. 어린이들은 다양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어린이 보호구역 내 시속 30킬로미터 이하 운행 규칙은 번번이 무시당하기 일쑤였고, 불법 주정차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스쿨존에서 불법 유턴을 하는가 하면, 저학년 어린이가 횡단보도에 진입했는데도 재빨리 가속하여 그 앞을 빠져나가는 사람도 많았다.

불법 주정차 문제로 학교에서 교통 민원을 넣으면 단속 때문에 며칠만 반짝하고 곧 제자리로 돌아왔다. 도리어 주차 공간이 협소한데 학교 때문에 불편을 겪었다며 화를 내기도 했다. 교문을 개방해 주말이라도 운동장을 주차장으로 쓰자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던 중 민식이법이 제정되었고 스쿨존에는 여러 변화가 생겼다. 무인 단속 카메라, 과속 방지턱, 신호등이 설치되었다. 시민들의 안전 경각심도 높아졌다. 아무래도 어린이 보호구역 내에서 사고 가해자를 가중 처벌하는 내용이 효과를 발휘한 듯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긍정적인 변화다. 

물론, 운전자는 불편할 수 있다. 혹자는 '음주운전 사망사고와 스쿨존 사망사고를 낸 운전자가 받는 형량이 같다'며 이치에 맞지 않음을 따지기도 한다. 운전자도 사람인데 어떻게 완벽할 수 있으며, 종잡을 수 없는 소수의 어린이로 인해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면 어떡하냐는 것이다. 일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기는 하나, 나는 압도적인 '반 민식이법 정서'를 몸으로 느끼며 덜컥 겁이 났다. '노 키즈존' 팻말이 걸린 가게 앞에 선 기분이었다. 

노 키즈존과 민식이법은 무슨 상관관계가 있나. 교사이기 전에 두 아이의 아빠이기도 한 나는 노 키즈존이 당혹스럽다. 아이들이 피해를 전혀 주지 않는다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린이가 손쉽게 배제의 대상이 되고, 그것에 적극적으로 동조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 섬뜩하다. 

가게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제어할 수 없는 어린 손님 혹은 그것을 방치하는 일부의 보호자가 마뜩잖을 수 있다. 그러나 진상 고객은 다양한 유형으로 존재한다. 어째서 무례하고 소란 피우는 어른 금지존은 없으면서 노 키즈존은 유행처럼 번질 수 있을까. 눈살을 찌푸렸던 계기는 어른이 원인일 때가 훨씬 많았는데.

혹시 무의식적으로 어린이를 만만하게 여기는 게 아닐까. 경제력도 없고 사회적인 위력을 행사하지도 못하니 존재 자체를 거부한다는 메시지를 당당히 보일 수 있는 것이다. 노골적인 차별의 징표라고 생각한다. 비슷한 맥락으로 나는 민식이법을 반대하는 목소리 이면에 깔린 고압적인 자세를 감지할 때가 있다. 초등교사라서 가지고 있는 예민한 직업병 같은 것일 수도 있지만, 어린이를 깔보는 태도는 결코 바람직한 모습으로 보이지 않는다.    

어린이는 어린이다, 그러므로 

민식이법이 필요한 이유는 어린이는 말 그대로 어린이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호기심이 왕성하고, 때때로 충동적이다. 어른보다 판단력이나 신체능력 면에서 부족할 수 있다. 어린이는 경험이 적고, 실수를 한다. 그렇기에 사회적 약자인 어린이를 어른들이 보호하고 배려하는 것이다. 

나는 어린이를 함부로 대하는 분위기가 두렵고 싫다. 아이들은 노 키즈존에서 쫓겨나고, 스쿨존에서의 강력한 어린이 보호책이 과하다며 다수의 어른들이 합세하여 국민 청원을 넣는다. 사람들은 어린이가 모범적인 어른처럼 행동하기를 바란다. 오랜 기간 초등학생과 지내 온 나의 경험에 따르면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

민식이법으로 인한 운전자의 곤란함을 십분 고려한다고 해도 민식이법 개정, 나아가 폐지까지 운운하는 주장은 지나치지 않을까. 우리 사회는 어린이에 대한 관용이 부족하다. 그리고 이런 주장이 주류를 차지하는 세상은 아이들이 살기 좋은 곳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나는 오늘도 학교로 출근한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스쿨존을 통과할 것이다. 선생님 차라고 해서 장난을 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교실에서는 목청 높여 교통안전 지도를 할 것이다. 이런 생활을 아직 이십 년 넘게 해야 되지만 그래도 괜찮다. 어린이는 보호하는 게 맞으니까. 다른 운전자 분들께서도 다소 스트레스를 받으시겠지만 너그러운 마음으로 배려해 주시길 바란다. 

태그:#민식이법, #어린이, #학교, #스쿨존,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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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교사입니다. <선생님의 보글보글> (2021 청소년 교양도서)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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